욥 39:1-12
들나귀에게 주신 축복
하나님은 대우주의 운행만을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산염소, 암사슴, 들나귀, 들소까지에도 온정을 가지고 돌보십니다.
길가의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진리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때에는 영적인 신비로움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나귀 한 마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들을 통하여 인간에게 주신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 1.자유(自由)를 주셨습니다
본문 5절...<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하나님께서는 들나귀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중동 지방의 초원에서 자생하고 있는 야생 짐승인 들나귀는 자유 분방하고 성질이 사나워서 가축으로 기르기에는 부적당한 동물입니다.
짐승을 길러서 도움을 얻고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들나귀는 쓸모 없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들나귀에게 마음껏 내 달리면서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는 반문은, 어느 곳이든지 거침없이 뛰어 다니는 들나귀의 자유로운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들짐승에게도 거침없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물며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신 자유야 더 말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요한복음 8:32절에서 말씀하셨고 36절에서는 <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죄와 고통과 죽음이 질곡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마음껏 향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유를 널리 전하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2.처소(處所)를 주셨습니다
본문 6절...<내가 들로 그 집을 짠 땅으로 그 사는 처소를 삼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들나귀에게 넓은 들판의 땅 전부를 자기 처소가 되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을 나는 새 한마리도 거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어찌 거처 때문에 염려하도록 만드실 까닭이 있겠습니까?
##### 3.먹이를 주셨습니다
본문 8절...<초장이 된 산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것을 찾느니라.>
산과 들판 모든 초장(初場)은 전부가 들나귀의 먹이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사철 비가 오지 않는 사막 지대가 아니면 푸른 풀과 나뭇잎은 어디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초식 야생 동물도 다 마찬가지지만 들나귀 역시 먹을 것 때문에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일에야 더 말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면서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현실은 거처 문제와 마찬가지로,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양식의 위협이 따르고 있습니다. 농촌은 물론이고 도시에 살고 있는 절대 빈곤층은 매일 먹어야하는 양식 때문에 걱정이 끝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씩 먹지 못해서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
들나귀는 어느 야생 동물보다도 더 쓸모가 없는 짐승입니다. 이를 길들이기 어려운 점으로 보면 <불순종의 표본이 되는 짐승>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런 보잘것 없는 짐승에게도 불편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시며 거처를 주시고 먹이를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의식주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고 오히려 신령한 자유와 거처와 양식을 구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런 삶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욥 39:18-30
말에게서 얻는 교훈
넓은 벌판에 단 걸음에 누비며 힘차게 달리는 말의 기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의 기백이 아무리 뛰어난들 말의 품위에 비교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말은 전쟁터에서 다시없는 무기의 하나가 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말의 기상은 신앙인들에게도 여러 가지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1.힘차게 달립니다
본문 19,20절...<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말의 기상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것은 힘차게 달리는 모습입니다. 달리되 조금도 지치는 일이 없이 꾸준히 달리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의 기상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점이 '힘차게 달리는 일'입니다.
<예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믿음은 靜이 아닌 動입니다. 퇴보가 아닌 전진입니다. 바라는 실상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산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철저한 자기 부정입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은 이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자기 부족을 인정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이 시인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의심없이 믿는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은 앉은뱅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처럼 끝까지 바르게 달리라고 권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곧은 길을 달릴 수 있도록 저는 다리는 고침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소년도 피곤하고 장정도 곤비하여 넘어지겠지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어 피곤치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생활은 하늘나라가는 경주입니다. 그러기에 지치지 않고 달리는 말처럼 우리도 끝까지 달려 하늘나라까지 가야할 것입니다.
##### 2.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본문 21,22절...<그것이....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두려움을 비웃고 놀라지 아니하며 칼을 당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말은 적군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고 적에게서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지시에 따라 죽기를 두려워 하지 않고 싸움에 임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수1:9)는 격려를 들었습니다.
사사 기드온은 두려워 말라는 하나님의 격려를 받고 불과 3백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나아가 메뚜기 떼보다 더 많은 미디안 군사를 물치쳤습니다.(삿6:23-7:9-23).
신앙인의 적군인 마귀는 군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로 무장하면 그 야비한 방법과 권모술수에도 두려워 할바가 못됩니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면 점점 더 약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적을 두려워하여 물러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 3.하나님 명령만 따라 움직입니다
25절...<장관의 호령과 떠드는 소리를 듣느니라.>
말은 아무리 전쟁터에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가 뒤덮고 있더라도 지휘자의 호령 소리를 정확히 가려 듣고 그 명령대로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 임함에 있어 두려움 없이 적진에 뛰어드는 일도 중요하고, 물러서는 일이 없이 끝까지 싸우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만 따라 움직이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중요합니다.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 왕을 향하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사무엘상 15:22절에서 충고하였습니다.
솔로몬 왕도 전도서 5:1절에서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최우선하여 먼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