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1) 수보리 존자는 과거에 수행하면서 생각했던 것과 오늘의 깨달음과의 차이점을 말하면서 장자 궁자의 비유를 들어서
반성하고 부처님의 참 뜻을 알아서 밝힘으로써 자기가 가야할 길을 설명하니 그것이 바로 부처의 길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일불승만이 부처님의 참 뜻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승도 없고 삼승도 없으며 오로지 일불승이 있을 뿐입니다.
(2) 오시팔교에 대한 설명
부처님의 일대기를 오시(五時)로 나눠서 설명하니 화엄시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있는 그대로 설법하시니
알아들을 수가 없으므로 다시 정도를 낮춰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나머지 四시가 진행됩니다.
녹야원에서부터 상림수 아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설법하신 과정을 설명하니
아함시 방등시 반야시 법화 열반시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함 방등 반야를 42년간 설법하시고
마지막 8년을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하시니 50년 설법이십니다.
설하시는 법을 내용에 따라서 분류하니 장(藏) 통(通) 별(別) 원(圓)교를 설하시고,
가르치는 방법에 따라서 돈(頓) 점(漸) 비밀(秘密) 부정(不定)을 설하시니
서로 상대를 포함하기도 하고 다른 짝을 겸하기도 하였습니다.
천태대사의 이 五時八敎論은 그 어지러운 시기에 탁월한 견해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동양 삼국은 이 교판을 주로 의지하여 교판을 세웠습니다.
장교는 일반적인 진리를 설하여서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원론적인 것을 설하시며(제법무아와 제행무상을),
별상교에서는 보살위에 오른 대인들에게는 특별한 이치와 현상을 설하시니(제법공상),
통교에서는 이들을 부분적으로 동시에 설하시니 이를 통교라고 합니다.
원만교란 일불승을 이름하는 것이니 원만 무애한 진리를 가르치시는 경지입니다.
이처럼 근기와 시기에 따라서 법의 내용을 다양하게 하셨으며,
법을 설하는 모습도 돈오, 점수, 비밀, 부정등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시팔교의 교판을 세운 간단한 내용이다.
(3) 화엄의 원교를 설하나 중생들이 알아듣지 못하여 방편의 다리를 건너서
이제야 법화경에서 원교를 다시 설하니 얼핏 화엄경과 법화경이 중복되는 듯이 보입니다.
허나 돈오를 하는 원만교인 화엄경과
방편의 교를 지난 원만교인 법화경은 그 순서에 차별이 있습니다.
허나 더 중요한 사실은 생생세세히 살림살이를 끌고 가는 점이 화엄경과 다름이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역사와도 같은 것이니,
수기를 받은 때부터 팔상작불을 하는 때까지 이 법화경은 역사처럼 계속되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그 수행에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물론 生을 받을 적마다 화엄의 돈오를 해야 하며 또 법화살림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과 법화경이 동전의 앞뒤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의 근본에서는 법화가 그 답을 해야 하므로 천태대사는 법화를 超八醍醐(초팔제호)에 놓았습니다.
(4) 화택의 비유와 장자궁자의 비유가 다른 점
화택의 비유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불승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장자궁자의 비유는 화택의 비유를 듣고 4비구가 깨달은 내용을 비유한것입니다.
화택의 비유가 일불승에 이르게 하기 위한 비유의 설명이라면 장자궁자의 비유는
이제 일불승의 중요한 까닭을 이해하고서 그동안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설하신
자비스런 모습을 낱낱이 생각하며 반성하는 비유입니다.
화택의 비유에서는 3승방편이 오로지 일불승을 위한 방편임을 강조하여서 제자들로 하여금
일불승에 들도록 비유하신 반면에 장자궁자의 비유에서는 제자들이 일불승에 이르고 보니
그동안의 방편교들이 얼마나 자상하고 자비스런 법문들이었던가를 사뭇치게 깨닫고서
자기 반성을 하는 것을 비유를 들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법문입니다.
“五時를 설명하고서 부처님의 설명하신 내용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니
‘無’를 강조하는 장교가 있었고,
‘無와 空’를 같이 설하시는 통교가 있었으며,
‘空’만을 강조하시는 별교가 있었으며,
이제 ‘實’을 말씀하시는 일불승교가 있습니다.
無와 空과 無作을 말씀하시고
有餘涅槃을 말씀하신 것은 오로지 일불승에 들게 하여서 부처가 되게 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그것은 진실한 목적지는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 4비구도 부처님이 되어서
스승님과 같은 자리에 이르겠습니다.”라고 반성하며 참회하며 발원하여서 보리심을 일으키는 장면입니다.
(5) 일불승에 이른 법화행자가 方便經을 보는 방법
우리는 소승법문에서 일으키기 쉬운 오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諸法이 無我인데 누가 윤회를 하며 누가 성불을 하는가?
諸行이 無常한데 과연 내가 찾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소승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래서 아비달마론에 삼아승지겁을 지나서야 성불한다는 문이 있습니다.
이는 소승인이 성불하는 것이니 여기에서 왜 반문을 하지 않는가요?
無我인 수행자가 어떻게 삼아승지겁을 지내는가요?
생명의 본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대전제가 있고서야 가능한 문구입니다.그렇습니다.
생명의 본체는 영원합니다.
생명체가 삼계를 벗어나는 해탈을 하지 못하고서는 육도윤회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원론적으로는 諸法無我에 이르면 해탈하여서 윤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계도 있고 윤회도 있고 해탈도 있습니다.
일불승을 체득한 수행자는 화엄학을 공부하거나 법화행을 허거나 간에 일불승을 하고 있는 불자는
아함 방등 반야의 경문들을 볼 적에는 그 밑바닥에 중요한 전제를 깔고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법무아와 제행무상에서는 ‘無’한 경지의 실존체가 있음을 전제하고
이 실존체를 향해서 지금의 공부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특히나 諸法空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개념이 뚜렷해야 합니다.
물론 한 소식해서 한 물건이 뚜렷이 나타난 수행자는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생명의 본체를 밝히기 위한 일체의 과정들과 그 노력들을 보면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듭니다. 空哲學의 백미인 금강경에서는 이 생명의 본체를 놓아 버리고서 경문을 해석하려 한다면
수많은 오류를 범하며, 때로는 그 번역이 너무도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일불승을 공부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은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없이 지내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卽非에 들면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이요,
是名에 들면 중생계에 드는 것으로 이해하면 그 법문을 해석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반야심경에도 있습니다.
不異와 卽是가 있으니 일불승을 깨달은 사람은 이 문귀를 잘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不二의 경계에 들어가는 수행이요, 여기에서 제반현상을 아는 것이니 그것이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으로 공한 생명의 실상에 相卽하고 보면
생명의 세계가 펼쳐지니 이것이 일불승입니다.
이처럼 일불승인은 아함 방등 반야의 밑그림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밑그림이 부처님의 참 뜻입니다.
[사전]
부처님의 十代弟子;
小乘法; 자기만을 위한 수행을 하는 법.
大乘法; 더불어 사는 방법을 수행하는 법.
信解; 교법을 믿고 아는 것.
知見寶藏; 부처님의 법을 아는 것.
長子; 재산이 많은 사람.
窮子; 가난한 사람.
阿耨多羅三藐三菩提; 깨달음의 경지.
上首; 대중가운데 우두머리.
空; 대승의 공한 법.
無作; 생과 멸이 본래 없는 것.
六神通; 불교 수행자가 얻는 여섯 가지 신통력으로 1.천안통 2.천이통 3.타심통 4.숙명통 5.신족통 6.누진통.
涅槃; 번뇌가 다 한 경지. 불생불멸의 경지.
戱論; 말장난
(3) 영험록(무안지옥을 벗어나다)
동진 안제가 구마라즙 신역 묘법연화경 전부질 8권 28품을 공중에서 서사공양드리고자 명필 유용에게 칙명을 내려 서사케
했다. 유용은 천하명필 오룡의 아들인데 오룡은 도교를 신봉하여 아들 유룡에게 유언하기를 “너는 나의 집안에 태어나 예능을
이었음이라. 나에게 효양하려거든 필코 불경은 쓰지마라. 더욱이 그중에서 법화경은 절대 쓰지 말아라. 우리 본사 천돈이라.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음이라. 그렇거늘 저 법화경에서 ‘지금 삼계는 모두 바로 나의 것이며 그 가운데의 중생은 모두 바로 나의 아들이거늘 그리고 지금 이 곳 모든 근심과 난리가 많으니 오직 나 한사람만이 능히 구원하고 보를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였으니 기괴한 일이로다. 유언을 어기어 불경은 쓴다면 내가 곧 악령이 되어 네 목숨을 끊어 버리겠다” 하였다.
오룡이 임종시에 혀가 8쪽으로 찢어지고 머리가 7쪽으로 쪼개지며 아홉구멍으로 피를 토하고 죽었으나 그 아들은 인과를 분별하지 못하여 자기 아버지가 정법을 비방한 방범죄로 인해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악상이 나타난 것을 알지 못하고서 유언을 지켜 불경을 쓰지 않음이라. 하물며 입으로 외울 것인가? 이러한 이유로 황제의 칙명을 두 번이나 거역하여 받지 않으니 황제가 세 번째
칙서를 내리되 “네가 부친의 유언에 의하여 짐을 거역하는 것을 이해하며 이를 용서하였다. 너는 와서 다만 제목만을 쓰라.
전하의 백성들은 모두 왕의 아들이며 너의 부친도 나의 아들이 아니겠느냐. 사사로운 일로 공사를 가벼이 말라. 다만 너에게 제목만은 쓰게 하노니 만약 이도 거역한다면 비록 불사를 짓는 이 자리일지라도 네 목을 쳐서 왕령을 세우리라” 하였다.
유룡이 어찌할 수 없이 궁중에 들어가 제목을 쓰니 묘법연화경 권제일 묘법연화경 권제이 모법연화경 권제삼 묘법연화경 제사
묘법연화경 제오 모법연화경 권제육 모법연화경 제칠 묘법연화경 제팔, 팔달 육십네자였다. 쓰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유룡은 “내가 왕명을 거역할 길이 없어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불경을 썼으니 불효자가 되었도다. 천신도 노하시리라” 한탄하며 잠이
들었다.그날 밤 꿈에 큰 광명이 나타나더니 한 천인이 뜰 앞에 섰는데 헤아릴 수 없는 권속이 뒤따라왔으며 이 천인의 머리 위
허공중에는 육십자 부처님이 계시었다. 유룡이 합장하고 묻기를 “어떤 천인이시옵니까?”하니 대답하기를
“나는 너의 아버지 오룡이다. 불법을 비방한 죄로 혀가 여덟 조각으로 찢어지고 아홉 구멍에서 피를 흘렸으며,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쪼개지고서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저 임종 시의 고통도 견디기 어렵다고 여겼는데 무간지옥 고통은 그의 백천만억배 더
견기기 어려웠다. 둔한 칼로 손톱을 도려내고 톱으로 목을 자르며 숯불 위를 걷게 하고 가시덤불에 굴리는 등 그 고통이 무수히 많아 끊어짐이 없음이라. 어떻게 해서 나의 아들에게 일러줄까 생각했으나 방법이 없음이라.
임종 시에 “불경을 쓰지 말라” 유언한 것을 후회하여 나를 원망하고 혀를 깨물었으나 아무 소용도 없는데 홀연히 묘(妙) 한자가
무간지옥의 솥 위로 날아오더니 변하여 금색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시어 32상을 흡족하게 맞추시고 면모가 만월 같으시다.
대음성을 내시어 설하시기를 ‘가령 법계에 널려있는 선(善)을 끊은 중생들이라도 한번이라도 법화경을 들으면 결정코 성불하리라!’하시었습니다. 또 이 글자 속에서 큰 비가 내려 무간지옥의 불꽃을 끄니 염라왕은 관을 기울여 공경하고 옥졸들은 철장을 버리고 섰으며, 모든 죄인은 무슨 일인지를 몰라 떠드는데 다시 법(法) 한자가 날아오니 먼지와 같았다 이어서 연(連)자, 화(華)자,
경(經)자, 제(第)자, 일(一)자... 이렇게 64 부처님께옵서 나투시어 마치 64개의 해가 공중에 뜬것과 같았으며 하늘에서는 감로를
내려 죄인들에게 주었습니다.
죄인들은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하고 물으니 64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우리들 금색 몸은 전단보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무간지옥에 있는 오룡의 아들 유룡이 쓴 묘법연화경의 8권의 제목 팔달 육십상의 문자니라. 저 유룡의 손은 오룡이 낳은
분신이기 때문에 유룡이 쓴 문자는 곧 오룡이 쓴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설하시니 무간지옥의 죄인들은 “우리들도 사바세계에
있을 때는 아들도 있고 아니도 있고 권속도 있었음이라. 어찌하여 공덕을 짓지 않는가. 또 공덕을 짓는다할지라도 선근의 쓰임이 약해서 이루어지지 못함인가” 한탄하기를 혹은 하루, 이틀, 일년, 이년..일겁이 되어 이 같은 선지식을 만나 구원을 받아 모두 다 나의 권속이 되어 무간지옥을 벗어나 도리천으로 올라감이나 우선 너를 예배코자 왔노라”하였다.
유룡이 듣고 기쁨이 몸에 넘침이라. 아버지의 모습도 보고 64부처님께 예배하여 받들게 됨이라. 6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는 따로 주인이 없고 네가 우리의 단월(시주)이니라. 이제부터 너의 아버지가 되어 너를 수호하리니 너는 해태하지 말라.
너의 임종 시에 와서 도솔천 내원궁으로 인도하리다” 하시었습니다. 유룡이 더욱 황송하여 맹세하기를 “오늘부터 다시는 외전의 문자를 쓰지 않겠나이다”하고 꿈에서 깨어나 이 몽사를 황제께 고하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이 불사는 이미 성취되었도다”하고 이 사실을 기록케 하였다. 명필 유룡은 그 뒤 한평생 묘법연화경을 서사하고 독송하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