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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천지회의 모임 진근남과 유대홍 등은 그가 스스로 이름을 알려 주는 소리를 듣고 속 으로 생각했다. (무림에 이서화라는 인물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가명일 것이다. 그러나 젊은 영웅들 가운데 이와 같이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역시 들어 본 적이 없지 않 은가?) 진근남은 물었다. "불초는 견문이 좁아 강호에 귀하 같은 영웅이 나타나신 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정말 부끄럽소이다." 이서화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사람들은 천지회의 진총타주가 사람을 대할 때 성의로써 대한다고 하 더니 과연 명불허전 이구려. 나의 천한 이름을 듣고 만약 오래 전에 들 었습니다 하는 투의 인사말을 했다면 불초는 속으로 어느 정도 그대를 업수이 여기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불초는 가까스로 강호에 발을 디딘 몸으로서 조금도 명성을 떨치지 못한 몸이라 저 자신마저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명성을 들은지 오래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하하하!" 진근남은 미소를 띠웠다. "오늘 이와 같이 만나게 되었으니 이형의 대명은 강호에 널리 퍼져 이 후 그 누구라도 이형을 만나게 된다면 모두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는 인사말을 하게 될 것이외다" 이 한마디는 실로 지극히 상대방을 칭찬하는 말이라는 것을 모두들 알 아들을 수 있었다. 천지회와 목왕부의 사대 고수가 놀랍게도 그를 막지 못했고 제대로 잡지도 못했으며 진근남은 그와 이초를 주고받았으나 겨 우 약간 우세를 점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와 같은 솜씨라면 수일 이 내에 자연 천하에 알려지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이서화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불초가 조금 전에 펼친 것은 그저 잔재주에 불과하 며 어느 정도 방무좌도의 무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분 노영웅께서 는 운중현조(雲中現爪)를 펼쳤는데 하마터면 저의 팔을 분질러 버릴 뻔 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젓기를 좋아하는 구레나룻의 친구는 두 손으로 나의 뒷허리께를 잡았는데 아마도 한수의 박토수(博兎手)가 아 닌가 생각이 드는데 정말 저로 하여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만들었 답니다. 그리고 이 허연 수염의 노인께서는 백원취도(白猿取挑)라는 일 초로 제 옆구리의 살을 마치 봉숭아처럼 꽉 잡고서는 놓지 않더군요. 그리고 이 기다란 수염을 기른 친구분이 펼친 한 수는.... 음 초식이 고묘한 것으로 보아 성황반소귀(成隍拌小鬼)가 아닙니까?" 관안기는 왼손의 엄지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했 다. 기실 이 일초의 본명은 소귀반성황인데 그가 거꾸로 말하는 것은 스스로 겸손한 태도들 보이기 위해서 그와 같이 말한것에 불과했다. 관안기 등 네 사람이 동시에 손을 써서 그의 몸을 잡고 그가 그들의 손 길을 뿌리치고 몸을 솟구친 것은 삽시간에 일어난 일에 불과했다. 그런 데도 네 사람이 펼친 초식을 조금도 틀림없이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와 같은 견식은 그야말로 그의 무공보다 더욱더 뛰어난 것 같았 다. 유대홍은 말했다. "이형, 그대는 솜씨가 뛰어난데, 안력은 더욱 뛰어난 것 같구려." 이서화는 손을 내저었다. "노영웅께서는 과찬이십니다. 네 분이 조금 전에 형제의 몸에 쓴 초식 으로 말하면 어떤 초식이라도 사람의 목숨은 빼앗아 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 분께서는 그저 손이 닿는 것으로 그쳤을 뿐 불초에게 추호도 상처를 입히지 않았습니다. 네 분 선배께서 손에 사정을 두어 주신 점 불초는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유대홍 등은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운중현조, 박토수, 백원취도, 소귀 반성황의 이 사초는 각기 지극히 무서운 살수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저 한 웅큼의 힘만 더 보태면 되는 문제 인데 이를 이서화가 지적하고 나선 것은 그야말로 그들 네 사람의 얼굴 을 더 돋보이게 만든 셈이 되었다. 이때 진근남이 말했다. "이형께서 이렇게 찾아오신 것은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기 때문인가요?" 이서화는 말했다. "그 점에 있어서 용서를 빌지 않을 수 없군요. 불초는 진총타주에 대해 서 언제나 흠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우연히 천지회 총타주께서 북경에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해서라도 풍채를 한번 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소개해 주는 사람이 없어 당돌하나마 불청객이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붕 위에서 몰래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훔쳐 듣게 되었죠. 불초는 오삼계라는 간악한 도적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며 그저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 어 놓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던 차라 그만 참지 못하고 입을 벌렸으 니 여러분들께서는 용서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뭇사람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켜서는 반례를 했다. 천지회와 목왕부의 뭇수뇌 인물들은 스스로 통성명을 했다. 위소보는 천지회의 수뇌인물이며 지금 북경에서는 그야말로 진근남 다음 가는 서 열이었으나 이서화의 눈초리가 시종 자기의 얼굴로 돌려지지 않는 것을 보고 입을 열지 않았다. 이때 목검성이 말했다. "귀하가 바로 오삼계라는 도적의 원수이니 우리들과는 그야말로 같은 입장으로 동도(同道;뜻을 같이 한다는 뜻)라고 할 수 있소이다. 그러니 서로 손을 잡고 그 간악한 자를 주살함에 있어서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떻소이까!" 이서화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조금 전 소공야와 진총타주께서는 세 번 손뼉을 쳐서 맹세를 하려고 했는데 그만 불초가 경솔하게시리 그만 중단시키고 말았습니다. 두 분이 세 번 손뼉을 친 이후 불초 또한 세 번의 손뼉을 쳤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유대홍은 물었다. "그러니까 귀하가 만약 오삼계를 죽인다면 천지회와 목왕부의 군호들은 모두 다 귀하의 호령을 들어야 한다 이 말씀입니까?" 이서화는 말했다. "그거야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불초는 후배입니다. 여러 영웅들을 뒤따를 수만 있다면 족하는데 어찌 군웅들을 호령하겠다고 감히 나설 수 있겠습니까?" 유대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귀하의 마음속으로는 융무와 영력 가운데 어느 선제께서 진 정으로 대명나라의 정통이라고 생각하시오?" 과거 유대홍은 영력황제와 목천파를 따라 싸움을 하면서 서남쪽으로 물 러가게 되었고 그리하여 운남에서 면전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위험과 어려운 일을 겪고서도 결국 영력황제가 오삼계에게 죽음 을 당한 것을 슬퍼하면서 그는 영력의 후손을 다시 황제의 위에 세우겠 다고 피맺힌 맹세를 한 바 있었다. 진근남은 대국적인 측면에서 그와 같은 일로 다투는 것을 싫어했지만 이 뜨거운 피가 아직도 끓고 있는 노영웅은 그 점을 아직도 잊지 못하 고 있는 처지였다. 이서화는 말했다. "불초가 한 마디 귀에 거슬리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여러분들은 너무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대홍은 안색이 약간 변해서는 서둘러 물었다. "귀하는 노왕(魯王)의 옛부하시이오?" 과거 명나라 순종 황제가 죽은 이후 각지에서 스스로 청나라에 항거하 여 일어선 사람 가운데 먼저 복왕(福王)이 있었고 그 후에 당왕과 노 왕, 계왕이 있었다. 그러나 유대홍은 그와 같은 말을 한 이후 즉시 자기가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서화의 나이로 볼 때 청나라가 중원으로 들어온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많으니 결코 노왕의 옛부하라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물었다. "귀하의 선친께서 노왕이 옛부하였소?" 이서화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기의 의견을 피력했다. "장래 오랑캐들을 쫓아내게 된다면 순종, 복왕, 당왕, 노왕, 계왕의 자 손들 가운데 그 누구든 황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기실 한나라 사람이라 면 어느 누구라도 황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목소공야와 유노영 웅께서도 안 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대만의 정왕야와 진총타주 자신 만 하더라도 안 된다고 볼 수 없는 일이죠. 대명나라의 태조 황제께서 몽고의 황제를 쫓아낸 이후 결코 송나라 조씨 집안의 자손을 모셔와 황 제로 삼지 않고 자기 스스로 대위에 올랐지만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승 복했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말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일찌기 듣지 못했던 이야 기인지라 하나같이 얼굴빛이 변했다. 유대홍은 오른손을 들어 차 탁자를 한번 내리치며 날카로운 어조로 물 었다. "그대의 그 말은 그야말로 대역무도하시구려. 우리들은 모두 대명나라 의 유민이며 신하라고 할 수 있소. 그저 명나라를 세우기만 바랄 뿐인 데 어찌 그와 같은 야심을 가질 수 있단 말이오?" 이서화는 화를 내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유노영웅, 후배에게 한 가지 모를 일이 있어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 다. 그것은 조금 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대송나라 말년 몽고 오랑캐 가 우리 한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우리 대명나라의 홍무제께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서는 오랑캐를 내쫓은 후 어 째서 조씨 자손을 황제로 세우지 않았을까요?" 유대홍은 싸늘히 코웃음쳤다. "흥, 조씨의 자손들은 운이 이미 다했다고 볼 수 있소. 그리고 이 강산 으로 말하면 태조 황제께서 피를 뿌리는 싸움끝에 얻은 것인데, 그야 물론 두 손으로 조씨에게 바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더군다나 조 씨의 자손 가운데 오랑캐를 쫓아내는데 손톱만큼도 공을 세운 사람이 없소이다. 그러니까 설사 태조 황제께서 바치려고 하셔도 천하 백성과 뭇장수와 병졸들이 반드시 승복할 수 없었을 것이오." 이서화는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장래 주씨 자손들이 어떤 공로를 세운다거나 세우지 못한다거나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공로가 크면 모든 사람들이 추대하고 옹호할 것이며 그 황제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결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만약 손톱만큼도 공을 세우지 못했느데도 등극을 한다면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 유노영웅, 청나라를 물리치자는 큰 대업에는 그야말로 천 갈래 만 갈래의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어떤 것은 급하고 어떤 것은 늦출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삼계를 죽이는 것은 급하고 새로운 황제를 세우는 것은 늦추어도 되 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홍은 그만 말문이 막히는 듯 대답할 바를 모르더니 중얼거리듯 말 했다. "늦출 일이 어디 있겠소. 내가 보기엔 모두가 급하오. 그야말로 당장에 모조리 해결했으면 속이 시원하겠소." 이서화는 설명했다. "오삼계를 죽이는 것이 급하다는 것은 오가라는 악적의 나이가 이미 많 아 빨리 죽이지 않는다면 제명대로 살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니 그야말로 천하의 인인의사(仁人義士)들에게 한평생 큰 한을 품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새로이 군주를 세운다는 것은 오랑캐를 쫓아낸 이 후의 일입니다. 우리들은 그야말로 오랑캐들을 무찌르지 못하느 것이 걱정될 뿐 어느 영명한 군주를 모시는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라고 봅니다." 진근남은 그가 도도하게 설명하는 말이 모두 사리에 닿는 것을 보고 무 척 탄복하여 말했다. "이형의 말은 정말 사리에 합당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오삼계라는 간악한 도적을 죽일 수 있을 것인지, 이형의 고견을 듣고 싶소이다." 이서화는 말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후배는 그렇잖아도 여러분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하던 참입니다." 목검성은 말했다. "진총타주께서는 어떤 고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진근남은 말했다. "불초의 의견으로는 오 역적이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저 그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는 그 죄를 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러니까 어찌 되었든간에 그가 패가망신하고 온가족의 남녀노소는 말할 것도 없고 풀 한 포기 제대로 남지 않을 정도로 몰살을 시켜야 하며 그 를 뒤따르며 나쁜 짓을 일삼았던 장수와 군졸들까지 일망타진 되어야만 이 이 대한나라의 수천 수만의 백성들의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 수 있 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유대홍은 탁자를 치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옳은 말이외다. 옳은 말이외다. 진총타주의 말씀은 그야말로 내 마음 에 꼭 들었소이다. 노제, 나는 그대의 말을 듣고 마음속이 근지러워옴 을 금할 수 없소이다. 그대에게 무슨 묘책이 있어서 오도적으로 하여금 멸족을 당하게 하고 닭이나 개 한 마리 남길 수 없는 방법이 있는지 알 고 싶소이다." 그리고 그는 덥석 진근남의 팔을 잡고 마구 흔들어대며 말했다. "빨리 말해 보시오. 빨리 말해 보시오." 진근남은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모두들의 희망이지만 불초에게 그 무슨 묘책이 있어 그와 같이 오삼계를 거꾸러뜨릴 수 있겠습니까." 유대홍은 아 하고 탄식을 발하더니 진근남의 팔을 놓았다. 실방의 빛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진근남은 손을 뻗쳐서 목검성에게 말했다. "소공야, 우리는 아직도 두 번의 손뼉을 치지 않았구려." 목검성은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그리고 손을 뻗쳐서는 그와 가볍게 두 번 손뼉을 쳤다. 진근남은 고개를 돌려 이서화를 바라보았다. "이형, 우리 역시 세 번의 손뼉을 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면서 그는 손뼉을 쳤다. 이서화는 몸을 일으키더니 공손히 말했다. "진총타주께서 만약 오역적을 주살하게 된다면 이 이모는 응당 천지회 의 명령을 받들며 감히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이모가 만약 요 행스럽게도 친히 그와 같은 악적을 죽일 수 있다면 그저 총타주께서 저 의 체면을 크게 세워 주는 방법으로서 이 이모와 의형제를 맺어 불초로 하여금 그대를 형님으로 모시도록 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그 이외에는 감히 더 달리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진근남은 웃었다. "이현제(李賢弟), 그대는 나를 너무나 높이 평가하는구려. 좋소, 사내 대장부가 한 마디의 말을 내뱉으면 사마라도 뒤쫓아 잡을 수가 없소이 다." 위소보는 옆에서 군웅들이 비분강개하는 광경을 보고 뜨거운 피가 끓어 오르는 것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자기가 금방 나이가 들어 몸이 커지고 무공 또한 즉시 고강해져서는 이서화처럼 뭇영웅들 앞에서 크게 한번 뽐내 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다가 사부가 사내 대장부가 일 언을 내뱉으면 사마라도 잡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그만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마난추(駟馬難追;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도 뒤쫓기 어렵다.),즉 사마가 뒤쫓아 잡기 어렵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는 다시 속으로 생각했다. (빌어먹을, 사마는 어떤 말일까? 어째서 그토록 빨리 달릴 수 있을까?) 진근남은 부하들에게 술좌석을 펼치도록 분부했다. 그리고는 군웅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연회석상에서 이서화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그야말로 언변이 뛰어나고 견문이 넓은 편이었 다. 그러나 그는 시종 자기의 문파와 수법과 출신내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역세와 소강이 그에게 군호들을 소개시켰다. 이서화는 위소보가 나이 가 어린 데도 놀랍게도 천지회의 청목당 향주라는 말을 듣고 그만 크게 의아해 했다. 그러다가 그가 진근남의 제자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랬었군.) 그는 몇 잔의 술을 마시고는 먼저 작별을 고했다. 진근남은 그를 대문 앞까지 전송하여서는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속 삭였다. "이현제, 조금 전 우형(愚兄)은 그대가 친구인지 적인지 알 수가 없어 실례된 점이 많았소. 따라서 그대의 발목을 잡았을 때 암경(暗勁)을 사 용하게 되었소. 그 기운은 두 시진 이후에 발작을 일으키게 되오. 그러 나 그대는 조금도 운기행공해서 해소시키려고 하지 마시오. 그저 흙이 있는 곳에 땅굴을 파고 전신을 그 안에 묻은 이후 코와 입만 내놓고 숨 을 쉬도록 하시오. 매일 네 시진동안 그와 같이 몸을 땅에 파묻듯 하고 있어야 하며 모두 이레 동안 계속하면 아무런 후환이 없을 것이외다." 이서화는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이미 그대의 응혈신조(凝血神조)에 적중되었다는 것입 니까?" 진근남은 말했다. "현제는 너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 방법대로 해소시킨다면 결코 큰 화는 없을 것이외다. 이 우형의 경솔한 점에 대해서 현제는 양 해해 주시구려." 이서화는 얼굴에 놀람과 당황한 빛을 곧 지우며 웃었다. "그거야 소제가 스스로 죄를 만들어서 벌을 받게 된 셈이죠." 이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오늘에야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겠 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허리를 굽히고 절을 한 후 표연히 그곳을 떠나갔다. 유대홍은 말했다. "진총타주, 그대가 그의 몸에다가 응혈신조를 펼쳤소? 소문에 들으니까 그 신조에 적중된 사람은 사흘 후면 전신의 혈액이 차츰 풀죽처럼 응고 되며 치료할 수 있는 약도 없다던데 사실이 그러하오?" 진근남은 말했다. "이 재간은 너무나 음독하여 소제는 평소 가볍게 펼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공이 대단하고 또 그가 우리의 기밀을 훔쳐 들었는데 어 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그를 암산한 것입니다. 이야말로 광명 정대한 행동이 못 되니 말하기에 부끄럽습니다." 목검성은 말했다. "그 사람이 만약 오랑캐의 앞잡이거나 혹은 오삼계의 부하였다면 진총 타주가 그와 같이 그를 제압하지 않으면 우리의 비밀은 누설되고 말 것 이니 그 화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진총타주께서 단 한 수에 적을 제압 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손상을 입고도 알지 못하게 했으니 이와 같은 신공이야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탄복케 하는구려." 진근남은 다시 백한송의 죽음에 대해서 사과의 뜻을 표했다. 백한풍은 말했다. "진총타주, 그 일은 다시 들먹이지도 마십시오. 저의 돌아가신 형님이 야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위향주께서 우리 오사숙 등 세 사람을 구해 주었으니 불초로서는 그저 고맙게만 생각합 니다." 목검성은 속으로 누이의 행방이 걱정되었으나 천지회의 군웅들이 들먹 이지 않자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 상대방에서 들먹이지도 않는데 자기 가 묻게 된다면 상대방을 의심하는 꼴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시 몇 순배의 술이 돌았다. 목검성 등은 몸을 일으키고 작별인사를 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소공야, 그대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조만간 오랑캐들이 군사를 파견해서 그대들을 시끄럽게 할 것입니다. 물론 그대들은 두렵지 않겠지만 오랑캐의 군사들은 갈수록 수가 늘어날 것이니 일시에 모조리 죽일 수도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대홍은 소리내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소형제의 말씀이 옳소. 그렇게 말씀해 주어서 고맙소. 우리들 은 즉시 집을 옮기도록 하지." 목검성은 말했다. "진총타주, 위향주, 그리고 여러 친구들, 청산은 언제나 모습이 변하지 않고 녹수는 항상 흐르는 법이니 우리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목왕부의 뭇사람들이 돌아간 이후 진근남은 말했다. "소보,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무공에 진전이 있었는지 알아 봐야겠 다." 위소보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얼굴빛이 대뜸 변했으나 아무 렇지 않은듯 대답했다. "네, 네" 그리고 사부를 따라 동쪽에 있는 상방으로 들어가서는 말했다. "사부님, 황제는 저를 보내 궁중 자객의 행방을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제자는 빨리 돌아가 보고를 해야 합니다." 진근남은 물었다. "무슨 자객의 행방이란 말이냐?" 그는 어젯밤 도착했기 때문에 궁중에 자객이 들었던 일을 모르고 있었 고 대강만 들었을 뿐이었다. 위소보는 목왕부의 군호들이 궁안으로 들어와 황제를 찔러 죽이려 하는 한편 그 죄를 오삼계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는 등 사정을 이야기했 다. 진근남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와 같은 일이 있었느냐?" 그는 많은 풍랑을 겪었으나 그 일을 자세히 듣고 역시 무척 충격을 받 은 듯 말했다. "목씨 집안의 친구들은 정말 호방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구나. 대거 궁안으로 침입해 들어가다니 정말 놀랍다. 나는 그저 서너 명이 달려들 어가 황제를 찌르려고 했다가 사로잡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역시 오 삼계라는 간악한 도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였구나. 네가 오립신 등 세 사람을 구하고도 궁 안으로 들어간다면 위험하지 않겠는가?" 위소보는 자기가 영웅답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서 자객을 석방한 것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서 한 일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가 없었 다. 그리고 궁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절대 위험이 없다는 사실도 말할 수 없는지라 그저 큰 소리를 쳤다. "제자는 이미 몇 사람의 대신들과 사람들을 끌어들여 일을 그들에게 미 루어 놓았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에는 제자를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궁 안에서 소식을 염탐하도록 명하셨는데 만약에 목왕부의 세 사람을 구한답시고 궁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면야 사 부님의 큰 일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근남은 무척 기뻐서 말했다. "옳다. 우리는 이미 목검성과 세 번의 손뼉을 쳐 맹세를 했다. 도리를 따져 말할 때, 목왕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제 몇 되지 않아 결코 천지회의 적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들과 맹세를 하게 된 것은 첫째로 당왕이 정통이니 계왕이 정통이니 하는 다툼으로 두 집안의 화 기를 깨뜨리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었다. 오랑캐를 멸망시키기도 전에 우리 한나라의 호걸들끼리 먼저 서로를 죽이고 죽는 데서야 어떻게 큰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 그리고 둘째로 만약 목왕부의 사람들을 거두어 본회에 가입시키게 된다면 우리 천지회의 힘을 크게 증강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감히 궁안으로 뛰어들어 크게 소란 을 피웠구나. 이로 미루어 볼때 오삼계라는 역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는 어떠한 방법도 마다할 사람들이 아니구나. 우리들도 역시 온힘을 다 해서 임해야지 그렇지 않고 그들에게 선수를 빼앗기게 되면 천지회는 목왕부의 명령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들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 아니겠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목소공야께서 무슨 재간이 있겠습니까. 그저 자기의 아버 지가 훌륭했다는 것뿐이죠. 만약에 제가 그의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똑같이 목소공야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부님 과 같이 대영웅이시고 대호걸께서 만약 그의 명을 듣게 된다면 그야말 로 저는 화가 나서 죽을 것입니다." 진근남은 한평생 얼마나 많은 치하와 아첨의 말을 들었는지 몰랐다. 그 러나 이 몇 마디 말이 열 몇 살의 소년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무척 진실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속으로 여간 기쁘지 않았고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그는 위소보가 원래 눈치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 다. 더군다나 기원과 황궁이라는 두 곳은 그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허위 가 많고 간사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위소보가 그와 같은 곳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자연 그 눈치 빠름과 교활한 점이 이미 여느 어른보다도 뛰 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진근남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근남은 천지회에서 매일 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의기투합한 호걸이라, 어찌 이 어린 제자의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것이 아니고 따 라서 열 마디 가운데 아마 대여섯 마디는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위소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린애가 무엇을 안다고 그러느냐? 네가 어떻게 소공야에게 재간이 없 다는 것을 아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그가 황궁으로 사람을 보내 황제를 찔러 죽이려고 했지만 부질없이 많 은 부하들의 목숨만 버리게 되었고 오삼계에게는 조금도 손상을 입히지 못했으니 그것이야말로 재간이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멍청이, 바보짓을 한 것이라 할 수 있죠." 진근남은 말했다. "네가 어떻게 오삼계에게 추호도 손상을 입히지 않았다는 것을 아느 냐?" 위소보는 말했다. "이 목씨 집안의 소공야가 사용한 계책은 지극히 우둔한 것입니다. 그 는 궁 안으로 들어가 황제를 찔러 죽이도록 시킨 사람들이 입고 있는 내의에 평서왕부라는 글자를 새기게 했고 또한 무기에도 평서왕부, 혹 은 대명산해 관총명부라는 글자를 새기게 했습니다. 오랑캐의 멍청이가 아니라 진짜 오삼계의 부하들이라면 어째서 그와 같은 글자가 새겨진 무기를 사용하겠느냐 하는 점을 자연히 상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근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맞구나."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오삼계의 아들 오응웅이 지금 북경에 와서 금은보화를 황제에게 바쳤 습니다. 오삼계가 황제를 찔러 죽이려고 한다고 하여도 결코 이러한 때 에는 노리지 않겠지요. 더군다나 그가 황제를 찔러 죽이려는 목적이 무 엇이겠습니까? 그저 군사를 일으켜서는 자기가 황제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만약 이런 시기에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면 오랑캐들은 즉시 그의 아들을 잡아 죽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째서 멀쩡한 아들을 북경으로 보내 죽음을 당하도록 하겠습니까?" 진근남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기실 위소보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나 역시 나이가 어렸다. 따라서 군국대사(軍國大事)나 인물 또는 세상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지극히 한도가 있었다. 이 몇 가지 판단은 그로서는 조금도 상상 해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마침 공교롭게도 사부 앞에서 자기 가 판단한 것처럼 말한 것이다. 진근남은 그 말을 듣고 제자가 사리를 분석하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느 꼈다. 천지회에서는 무공의 고수가 적지 않으나 머리가 이처럼 밝은 사 람은 몇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당초 그가 이 애 를 청목당의 향주로 임명한 것은 청목당 안의 내분을 없애자는 것이고 또 뭇사람이 맹세한 말을 그대로 실천하자는 데 있었다. 그런 연후에 다시 똑똑한 사람과 능력있는 사람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바 로 자기의 제자이니 그때 위소보에게 명하여 자리에서 물러나 어질고 능력있는 사람에게 양보하도록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때 그의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진근남은 생각했다. (이 아이는 용기도 있고 견식도 있구나. 벌써 이렇게 대단한대 다시 몇 년 동안 갈고 닦는다면 정말 청목당의 향주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 가서는 결코 다른 아홉 명의 향주에게 지지 않을 것 같구나.) 그리하여 그는 물었다. "오랑캐는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지금은 아직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황제는 이미 의 심을 품은 것 같습니다. 그는 아침에 시위들을 불러서는 그들보고 자객 들이 펼친 무공수법을 펼쳐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시위가 몇 수를 펼쳐 보였고 모두들 다투어 의논을 하더군요. 제자가 옆에서 보고 두 가지 초식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산유수와 횡소천군이라는 이초를 펼쳐 보였다. 진근남은 한숨을 내쉬었다. "목왕부에는 정말 인재가 없구나. 이것은 분명히 목가권이다. 청궁 시 위들 가운데 고수가 적지 않은데 어찌 알아볼 사람이 없겠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제자는 풍제중 풍형과 현정도장이 펼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오 랑캐 시위들도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랑캐들이 사람을 잡겠다고 수색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전 목씨 집안의 소공 야에게 빨리 북경성에서 빠져나가 몸을 숨기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진근남은 말했다. "참 잘했다. 잘 했어.너는 이제 궁 안으로 들어가 알아보도록 해라. 그 리고 내일 다시 오너라. 내 너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마." 위소보는 사부가 잠시 자기의 무공을 시험해 보지 않겠다는 말에 속으 로 크게 기뻐서는 급히 절을 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밤은 그저 다급한 김에 부처님의 발을 안은 셈이 되었다. 그러나 소군주에게 사부의 그 무공비결에 쓰여 있는 말들을 읽어 달래서 어찌 되었던 간에 조금이라도 기억을 해야지. 그래야만 사부님께서 내일 물 어보시게 되었을 때 어느 정도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하면 사부님께서는 내가 연마를 잘못했다는 것을 탓하실 수 있을 뿐 내 가 게으름을 피웠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탓을 한다면 사부 님께서 나에게 가르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야말 로 탓한다면 자기 자신을 먼저 탓해야 할 것이다.) 위소보는 궁으로 들어가자마자 즉시 서재로 갔다. 강희는 한참 여러 지방에서 올라온 상주문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를 보자 읽던 것을 덮어 놓고는 물었다. "무슨 소식이라도 알아냈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는 귀신처럼 알아맞히시는군요. 정말 틀림없었습니다. 반역을 도모한 자는 정말 운남 목씨 집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강희는 기뻐서 말했다. "정말 그런가? 그것 참 잘 되었구나. 다륭의 얼굴빛을 보니 그는 아직 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더구나. 너는 무엇을 알아냈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그 세 명의 사로잡힌 자객들은 본래 오삼계의 부하라고만 우겨댔습니 다. 다총관은 그들을 죽도록 매질을 했지만 그들은 전혀 그 말을 번복 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강희는 말했다. "다륭의 무공은 뛰어난 편이지만 지모가 없는 사람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소신은 황상의 성지를 받들어 몽혼약으로 시위들의 정신을 잃도록 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황태후께서 네 명의 태감을 보내 즉시 손을 써서 자객을 죽이려 하셨습니다. 소신은 당돌하게도 황상께서 안배한 계책대로 자객의 앞에서 그 네 명의 태감을 죽이고 자객을 궁에서 데리 고 나갔습니다. 그 세 명의 반역도들은 정말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더 군요." 강희는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다륭이 와서 태후 아래의 태감 수령 한 명이 자객을 놓아 보 냈다고 말하길래 정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대가 부린 수작이었군."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나 황상께서는 태후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신의 목숨은 보존할 수 없답니다. 태후는 이미 저에게 소신이 황상에게만 충성을 다할 뿐 태후에게는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고 크게 꾸지람하신 적이 있습니다. 기실 태후와 황상 두 분을 어찌 따로 떼어 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 에게는 두 군주가 없다지 않았습니까! 결국 황상의 성지만을 첫째로 받 들어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후께서 황상에게 묻지도 않으시고 자 객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은 도리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 다." 강희는 그의 이간질을 아랑곳하지 ㅇ고 말했다. "나는 물론 태후에게 말하지 않겠다. 그 세 명의 자객은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궁을 나갔습니다. 그들 세 사람은 스스로 제게 진 짜 성명을 밝혔습니다. 원래 그 늙은 것은 요두사자 오립신이라 했고 두 명의 젊은 것 가운데 한 사람은 오표라고 했으며 한 사람은 유일주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천번 만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죠. 그리 고 끝내 소신에게 속아 넘어가서 소신을 데리고 그들 주인을 만나 보게 끔 했습니다. 정말 황상의 짐작대로 몰래 사건을 일으킨 사람은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반역도들은 모두 그를 소공야라고 했으며 진짜 성 명은 목검성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목천파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수하에는 무공이 지극히 고강한 늙은이가 있었는데 철배창룡인가 뭔가 하는 유대홍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성수거사 소강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백씨쌍웅 가운데 백이협 백한풍 등등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누어 양류 골목과 서갱진 골목 두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강희는 물었다. "그대는 모두 만나 보았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모두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은 천하의 백성들이 하나같이 황상께서는 나이가 많지 않은 데도 착하고 밝으시기 이를 데 없어 그야말로 수천 년간 보기 드문 훌륭한 황제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무리 큰 용 기가 있다 하더라도 감히 황상을 해칠 마음은 없었다고 하더군요. 어젯 밤 그들이 궁안으로 들어와 소란을 피우게 된 것은 완전히 오삼계를 함 정에 빠뜨려서 오삼계가 목천파를 해쳐 죽인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답 니다." 이 몇 마디의 아첨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희가 친히 정 사를 돌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아 천하 백성들이 그야말로 강희의 공덕을 노래하거나 칭송할 계제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고 간에 들통 이 난다 하더라도 아첨만은 들통이 나지 않는다느 말이 있듯이 강희는 백성들이 자기가 수천 년간 보기드문 훌륭한 황제라고 칭송한다는 말에 그만 흐뭇해져서는 미소를 띠웠다. "나는 아직도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는 인정(仁政)을 펼치지 못했는데 착하고 밝기 이를 데 없다는 등의 말은 그대가 지어낸 것이겠지?" 위소보는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들이 친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두들 오배라 는 대간신은 양민들을 박해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를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했답니다. 그런데 황상께서 정사를 돌보시자마자 그를 죽였기 때문 에 그것이야말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은 황상을 무슨 조생(鳥生)인가 또는 무슨 어탕(魚湯)에 견주어서 칭찬 을 했습니다. 소신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아마도 좋은 말이라 생 각하고 역시 속으로 매우 기뻐했습니다." 강희는 약간 어리둥절하더니 곧 그 말을 알아차린 듯 껄껄 소리내어 웃 었다. "하하하, 원래는 요순우탕(堯舜寓湯)이야, 제기랄, 뭐가 조생어탕이 야?" 그는 요순우탕에 견주어서 하는 칭찬의 말을 위소보가 결코 날조할 수 없을테니 절대 틀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영렬전을 이야기할때 군신들이 끊임없이 주원장을 요순우탕에 버금가는 황제라고 칭송하는 말을 많이 하였는지라 위소보 역시 그와 같은 말에 익숙해지 고 말았다. 물론 그 뜻은 알 수 없었지만 조생어탕이 바로 황제에게 아첨하는 좋은 말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주원장이 매번 그와 같은 칭찬의 말을 들을 때마다 용안이 크게 기꺼워했노라는 말을 들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위소보가 이때 그와 같은 한 마디를 소황제에게 사용하자 아니나 다를 까 강희 역시 용안에 크게 기꺼워하는 표정을 띠우고 웃은 것도 지극히 크게 흐뭇해하는지라 자기의 아첨의 말이 제대로 들어맞게 되었다는 것 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황상, 조생어탕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물건인가요?" 강희는 웃었다. "그래도 조생어탕이야? 그대는 정말 손톱만큼도 학문이 없구나. 요순우 탕으로 말하면 고대의 네 분의 어질고 밝은 군주를 말씀하시는거야. 그 분들은 그야말로 크게 착하고 크게 지혜로운 분들이며 인덕을 천하에 베푼 훌륭한 황제라고 할 수 있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랬었군요. 그랬었군요. 알고 보니 그 반역도들도 결코 전혀 조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군요." 강희는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그대로 도망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는 없다. 빨리 다륭을 불러들이도록 해라." 위소보는 대답하고 나가서 어전 시위총관 다륭을 서재로 불렀다. 강희 는 다륭에게 분부했다. "반역도들은 정말 운남 목씨 집안사람들이다. 그대가 시위들을 이끌고 가서 즉시 사로잡도록 해라. 소계자, 반역도들 패거리에 어떤 인물이 있는지 그대는 다총관에게 이야기하도록 해라." 위소보는 즉시 목검성과 유대홍 등의 성명을 말했다. 다륭은 깜짝 놀라 말했다. "알고 보니 철배창룡이 몰래 일을 지휘하고 있었군요. 이 한 떼의 도적 들의 내력은 대단하답니다. 그 요두사자 오립신만 하더라도 소신은 그 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궁 안에서 하루낮 하룻밤을 가 두어 두면서도 그의 내력을 알아내지 못했다니 정말 뜻밖이군요. 만약 소신이 조금이라도 총명했다면 그가 언제나 머리를 가로젓는 것을 보고 는 짐작했어야 옳았습니다. 만약 성상께서 명백하고도 단호한 조처를 내리지 않으셨다면 우리 시위들은 모두 다 그들이 오삼계가 보낸 사람 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그들은 이때쯤 벌써 도망치고 말았을걸? 이번에는 반드시 그들을 사로잡으리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미 주모자를 알게 되었으니 설사 이번에 사로잡지 못한다 하 더라도 큰 지장은 없네. 두려운 것은 우리가 모든 사실을 모르는 것은 고사하고 남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사실일걸세. 다륭은 말했다. "네, 네, 소신이 너무 멍청했습니다. 황상께서 영명하시어 다행이었습 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그리고 고래를 숙여 절을 한 후 물러나서는 즉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 다. 강희는 말했다. "소계자, 나는 자녕궁으로 가서 문안 인사를 올려야겠다. 그대는 나를 따라오게나."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위소보는 태후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간히 부들부들 떨릴 지경 이었다. 강희는 말했다. "그대는 왜 울상을 짓고 있나? 내가 그대를 데리고 태후를 뵈러 가겠다 는 것은 바로 그대의 목숨을 보존하자는 것이야."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네." 자녕궁에 도착하여 강희는 태후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객의 내력을 밝 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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