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의 참회 (1615)
루도비코 카라치
르네상스의 영광이 매너리즘에 밀려난 시기,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 등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의 세력 확산을 막기 위해 고심했고
구체적인 노력의 하나로 미술을 통해
신앙을 격려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을 적극 권고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술 작품이 감동적이면서도
신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맹인 경우도 많았던 일반 신자들은 보다 사실적인 미술 표현을 통해
교회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이해했다.
루도비코 카라치(Ludovico Carracci, 1555-1619는
그의 사촌들인 아고스티노 카라치와 안니발레 카라치 등과 함께
볼로냐 화파에서 시작하여 바로크 미술 확립에 크게 공헌한
가톨릭 개혁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1615년에 그린 <성 베드로의 참회>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뒤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마태오 26,31-35)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잡히시자,
베드로는 칼을 빼어 들고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귀를 잘랐고,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기 위해
멀찍이 떨어져 붙잡혀 가시는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의 저택까지 들어갔다.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마태오 26,69-75)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이제 늙고 힘이 없는 노인이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 희망했지만
그의 몸은 지쳤고 그의 옷은 완전히 벌어지고 흩어져 있다.
그는 왼손을 허공에 내밀고 오른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하늘을 향해 배신의 죄를 온몸으로 통회하고 있다.
그는 수난의 앞날을 상징하는 맨발을 하고 있다.
그의 발 옆에는 예수님께서 맡기신 천국의 열쇠가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주신 천국의 열쇠를 감히 들 수도 없었다.
그는 천국의 열쇠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채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배경의 암흑은 그가 체험한 어두운 밤이다.
자신이 그토록 장담했던 예수님과의 약속이 무너지는 순간
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어둔 밤을 체험한 것이다.
루도비코는 이 작품에서 참회하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
인간의 나약한 본질의 속성을 참으로 인간적이고 절실하게 표현했고,
무엇보다도 참회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만일 사도 베드로가 배신의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토록 절실하고 진실 되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것이고,
주님 앞에 낮은 사람의 모습으로 주저 않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그 누구도 인간적 실수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죄를 지은 이후의 태도이다.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참회하였고,
결국 그분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그러나 유다는 배신의 죄를 슬퍼하며 목매달아 죽었다.
겸손하게 주님을 믿는 사람만이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참회하는 사도 베드로의 그림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베드로가 입고 있는 붉은색과 푸른색과 흰색은
베드로가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배신의 죄를 깨닫게 해준 닭이 붉은 겉옷 안에 감싸있는 것은
사랑 속에 가려진 예수님의 음성을 상징한다.
오늘도 그분은 우리에게 닭의 울음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겸손한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베드로처럼 참회하겠지만
교만한 사람은 닭이 울어도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하느님만 원망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