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제 앞에 선 그리스도 (1617)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Gerrit van Honthorst, 1590-1656)는
테르 브루겐과 더불어 위트레흐트의 역사화가 아브라함 블뢰메르트의 제자였고,
로마로 건너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명암의 극적 대비와 사실적인 묘사로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회화를 발전시킨 화가이다.
그는 로마에서 귀족들과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을 위해 일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고,
로마사람들은 우아하고 매혹적인 밤 풍경을 잘 그린 그에게
‘밤의 헤리트’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그가 1617년에 그린 <대사제 앞에 선 그리스도>는 런던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그림은 그가 10년 동안 체류하던 로마에서
상인 빈첸조 주스티니아니의 주문으로 제작한 작품이고,
마태오복음 26장 57-68절의 이야기를
촛불 빛을 이용해 극적인 긴장감을 부여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으로 겟세마니 동산에서 붙잡혀
대사제 카야파의 저택으로 끌려갔다.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그분에 대한 거짓 증언을 찾았고,
마침내 두 사람이 나서서, “이자가 ‘나는 하느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였다.
대사제 뒤에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두 사람이 바로 거짓 증인들이다.
그들은 근엄하게 서서 예수님께 불리한 증언을 했다.
팔짱을 낀 사람의 얼굴에서는 완고함이 묻어나고,
모자를 쓴 사람의 얼굴에서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표정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 증언은 아무 효과도 없이 어둠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그러자 대사제가 붉은색 모피 털옷을 입고 앉아서
집게손가락을 치켜들며 예수님께 물었다.
“당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소?
이자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어찌 된 일이오?”
그런데 대사제 카야파의 치켜든 손은 ‘나는 내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상처를 확인한 다음에 믿겠다.’라는 사도 토마스의 손가락을 연상시킨다.
대사제가 말하였다. “내가 명령하오. ‘살아 계신 하느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밝히시오.’”
그는 예수님께 메시아인지를 증명해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손에 오랏줄이 묶인 채 입을 다물고 계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의 흰옷에 불빛을 흠뻑 품고 있어 당신이 세상의 빛이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광채로써 증명하고 있다.
그분은 슬픈 눈빛으로 대사제에게 말하고 있다.
“내가 메시아라고 네가 말하고 있잖아. 내가 너에게 말할게.
이제부터 ‘너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거야.’”
촛불을 경계로 대사제 쪽에는 율법서가 펼쳐져 있다는 것과
예수님의 손에는 오랏줄이 묶여있다는 것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대사제 카야파는 예수님을 율법으로 묶으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외적으로는 율법에 묶여있지만
내적으로는 율법을 능가하는 자유로움을 지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사제의 얼굴빛에는 두려움이 묻어나고
예수님의 얼굴빛에는 평온함이 묻어나고 있다.
그래서 대사제가 자기 겉옷을 찢으며 수석 사제들에게 말하였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방금 여러분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자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라는 죄명으로 죽을죄를 덮어 씌었다.
그러나 그분께서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무죄한 이를 죽이는 죽을죄를 짓게 된 것이다.
예수님 뒤에는 군사들이 칼과 창을 들고 서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분을 주먹으로 치며 더러는 손찌검하면서,
“메시아야,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면서
예수님을 놀려 댈 것이기 때문이다.
혼토르스트는 촛불의 명암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촛불의 빛은 섬세한 심리해석의 효과적인 소재가 되었고,
밤에 벌어지는 위협적이고 삼엄하게 심문하는 분위기를 창조해내며,
등장하는 인물들의 진실성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그림 전체를 단일한 분위기로 만들어서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에 관람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우리도 지금 대사제 카야파처럼 예수님께 손가락질하며
네가 메시아라면 한번 증명해보라며 예수님을 모독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침묵으로 응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