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관식은 [金冠植, 1934.5.10 ~ 1970.8.31]타계할 때까지 거칠 것없는 행동으로 문단에 숱한 화제를 뿌렸으며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며 시 1천수를 줄줄 외웠으며, 한학에도 밝아 시의 세계가 깊고 그윽하다는 평을 들었읍니다 1955년에 《현대문학(現代文學)》을 통하여 《연(蓮)》 《계곡에서》 《자하문 근처(紫霞門近處)》 등이 추천되어 데뷔하였읍니다.. 어려서 한학과 서예를 익히고 성리학과 동양학을 배웠기 때문에 동양인의 서정세계를 동양적인 감성으로 노래하는 특이한 시풍을 이룩하였고,. 심한 주벽(酒癖)과 기행(奇行)으로 많은 화제를 낳기도 하였으나, 동양인 으로서 투철하려고 한 몸부림은 시와 인간에 특유의 체취를 풍기게 하였읍니다.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은 애석한 일이었읍니다.
폐가[廢家]에 부쳐
-김관식
길을 가다 보니
외딴 집 한 채가 비어 있었다.
무슨 이 집의 연척(緣戚)이라도 되는 양
앞뒤를 한 바퀴 휘둘러보다.
구렁난 지붕에는
풀 버섯이 같이 자라고
썩은새 추녀 끝엔 박쥐도 와서 달릴 듯하다.
먼지 낀 툇마루엔 진흙 자국만 인(印) 찍혔는데
떨어진 문(門)짝 찢어진 벽지(壁紙) 틈에서
퀴퀴한 냄새가 훅 끼치고
물이끼 퍼런 바가지 샘에
무당(巫堂)개구리 몇 놈이 얼른 숨는다.
이걸 가지곤
마른 강변(江邊)에 덴소 냅뛰듯
암만 바시대도
필경 먹고 살 도리가 없어
별똥지기 천수답(天水畓)과 골아실 텃논이며
논배미 밭다랑이 다 버려둔 채
지게품을 팔고
막벌이를 하더라도 도회지(都會地)라야 한다고…
오쟁이 톡톡 털어 이른 아침을 지었을 게고
게다가 차(車) 안에서 먹을 보리개떡도 쪘을 테지만
한번 떠난 뒤 소식(消息)이 없고
장독대 옆에
씨 떨어져 자라난 맨드라미 봉숭아꽃도 피었네.
돌각담 한모퉁이 대추나무에
참새 한 마리 포르르 날아들어
심심파적(破寂)으로 주인(主人)의 후일담(後日譚)을 말해 주는 양
저 혼자 재재거리다 말고 간다.
찌는 말복(末伏)철 저녁 샛때
귀창 터지거라
쓰르라미만 쓰라리게 울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