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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명을 해서 안 됐지만 저기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들으면, 그분은 너무나도 유명한 분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합니다. 법문 듣는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요. 삼생을 두고 공덕을 지어도 달라이라마 법문 한번 듣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업장소멸이 되니까.
그럽니다. 그런데 방금도 말씀드렸듯이 내가 그분을 칭명해서 평가절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그분은 정토에서 온 보살. 상품보살이지요. 아직 불과를 증하려면 백생이 걸릴지, 천생이 걸릴지, 백겁이 걸릴지, 억겁이 걸릴지 모릅니다. 불과를 증한 어른이 법문을 하면 업장소멸이 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지금 많이 투자를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우리 청법 대중 대부분 다 그러시겠지만 진실하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깊습니다. 이 법문을 통해서 업장소멸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법문은, 수지교본을 가지고 전번에 부처님에 대해서 말씀을 했는데, 오늘은 삼법인설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금 어렵지요. 어려우나 제가 쉽게 쉽게 풀어서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그렇게 풀어서 이야기를 해도 여러분이 이해가 잘 안되더라도, 오늘 여러분이 성지 중 성지에 와서 자재만현 법문을 들으면(밀장이라 말씀을 다 못 드리겠지만), 여러분이 투자한 것의 백배 천배 복을 받아갈 겁니다.
지역팀장을 위한 수지교본은 여러분한테 나누어드렸으니까 집에 가서 보시고, 또 오늘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가서 여러번 여러번 들어보십시오.
오늘은 삼법인설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부처님에 대해서 한시간 말씀을 드렸지요. 내가 TV 법회 그 전에 한 2,3년 3,4년 전에 라디오 법회 그리고 TV 법회를 마치고 몇 번인가 법문한 그 법문을 통해서 부처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한국불교는 특히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마음이 부처. 이걸 어려운 말로 하면 ‘심즉시불’이라고 합니다. 심즉시불. 마음이 부처라는 가르침을 천년도 넘게 여러분들이 여러분 조상들이 들어왔습니다. 여러분도 세뇌(洗腦)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재만현이라는 사람이 책을 펴내고 TV 석상에 나와서 그것이 아니오, 견성은 붓다 이루는 시작입니다. 깨달음은 붓다 이루는 시작입니다. 격외는 깨달음, 깨달아서 하는 말이지만 공을 이야기하는 말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고 이제 시작입니다 하는 정말로 폭탄적인 법문을 쏟아 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이후 정말 처음으로 경전에도 ⟪금광명최승왕경⟫이라는 경전이 있지요. 거기에 부처님의 삼신설이 나옵니다. 그리고 잘 보면 ⟪법화경⟫에서 행간에 읽을 수도 있고, ⟪화엄경⟫을 보면 알 수도 있고, 많은 논장을 보면 불신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자재만현의 법문은 너무도 생소하기 때문에 그 경에 있는 말, 논장에 있는 말은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선종의 기본명제인 ‘심즉시불’, 그 다음 불교의 기본명제인 ‘무아설’, 이 측면에서 내 법문을 들어보면 이건 아니거든요. 부처님이 있다고 하는 말은 자기들은 용납이 안 됩니다. 무아설에서는 부처님도 없고, 부처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또 귀신도 없고, 영혼까지도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승복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부처님의 거룩한 인격에 대해서 신력에 대해서 덕성에 대해서 그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고, 부처님을 믿는 그 신앙을 고취할 겁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건 불교가 아닙니다. 마음 마음 하는 것은 심교지요. 마음 심(心)자 심교(心敎)이지 불교가 아닙니다.
부처님 되는, 붓다 이루는 데는 실로 억겁의 수행이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과는 견성과 같이 어떤 하나의 사건을 만나서 깨달음이 오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견성 후 실로 백생, 천생, 억겁을 수행하고 보살도를 완성해야 불과를 이룬답니다. 부처가 된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구체적으로 많이 했지만, 오늘 삼법인 설에 들어가기 전에 또다시 부처님에 대한 말씀을 10분 정도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억겁 동안에 수행하고 이타행을 해서 탐·진·치 삼독 내지 백팔번뇌를 소멸시키고, 또 과보 받을 업장을 녹이고 또 천만생에 행한 습, 습 중에도 사악한 습, 사악한 기를 없애고, 전생의 모든 빚을 갚고, 그래서 깊은 삼매, 대적정삼매를 통과하여 자기 불신을 얻는(불과를 증한) 부처가 됩니다.
깊은 삼매 자재해서 이 우주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억겁을 수행하고 보살도를 완성했기 때문에 만덕을 갖추게 됩니다. 가령 지혜, 그리고 또 자비 그리고 또 복덕, 온갖 팔만 사천 신통, 그리고 중요한 것은 법신·보신·화신 이 세 몸을 얻는 삼신을 구족한 붓다가 됩니다. 붓다가 되면 미래제가 다하도록 죽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겁니다. 영원히 생사를 자재할 수 있습니다. 아라한과 같이 한번 생사를 자재하는 것이 아니고, 실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천 번 만 번이고 얼마든 생사를 자재할 수가 있습니다. 붓다가 되면. 그리고 항상 대적정삼매를 수용합니다. 그런 부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자들의 꿈은 성불, 붓다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여러분도 거기다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깨달음 얻어서 보림을 완성하면 아라한이 되는데 누구나 아라한까지는 될 수 있다고 스님이 많이 말씀했습니다. 아라한에 목표를 둘 것이 아니라 붓다 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답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럴꺼예요 스님이 이 말씀을 하면 나는 아직도 아라한이 되는데도 도저히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붓다 되라는 그 말씀까지 하실까? 그런데 그것을 강조한 책이 ⟪법화경⟫이올시다. 자 좋습니다. 아라한에 다 목표를 두십시오. 일단 아라한에다 목표를 두면 아라한과를 얻으면 이제 윤회를 벗어나기 때문에, 윤회를 벗어난다는 말은 여러분 아실 겁니다만, 윤회를 벗어나기 때문에 생사를 마음대로 합니다. 부처님, 붓다의 생사를 마음대로 한다는 것하고는 좀 다릅니다. 아라한은 한번 원력수생 할 수 있지요. 인간세상에 영원히 안 올 수도 있는데 보살이 되기 위해서 오지요. 원력수생합니다. 인간 세상에 안 오고 싶으면 안 옵니다. 자 아라한이 되는 데다 목표를 두세요. 그러면 이 지겨운 인간 세상에 안 옵니다. 인간 몸 안 받을 수 있습니다. 저기 하늘도 뛰어 갑니다. 54품이나 되는 저 하늘의 세계까지 훌쩍 뛰어서 삼계를 초월해야 아라한입니다. 시공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여기가 아라한입니다. 아라한과를 얻는 데다가 목표를 두십시오.
여러분 그런데 자력으로는 대단히 어렵다고 했습니다. 타력에 의존하십시오. 타력에 의지하면 여러분들도 다 가능합니다. 현해탄을 헤엄을 쳐서 일본에 건너가는게 자력수행입니다. 타력은 배나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는 그런 방식 그게 타력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여러분들한테 여러 번 칭명염불을 하라고 권했을 겁니다. 칭명염불 하십시오. 칭명염불법이 구체적으로 내 수지교본에 나와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부처님의 절대적인 가피를 업어야 아라한이 되는데 대단히 수월합니다. 여러분들 공부하면 그 경계를 노트에 일기로 써서 나한테 제출하라고 했는데 한 30명이 그동안에 제출했습니다. 그분들의 일기를 쭉 보니까 한 10명 정도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 말해드립니다. 10명 정도는 가능성이 있구나 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스님은 부처 없다는 그런 종래 불교계의 언급에 대해서, 가르침에 대해서 정면 도전했습니다. 있다 하는 것이죠. 있다. 근데 어떻게 계시느냐?
유무를 초월한 ‘무아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시더라 이렇게 말을 하고 나갔습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경을 보면 ‘일체중생이 실유불성’이라고 합니다. 모든 중생은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열반경⟫에서. 그런데 무아사상에서 볼 때는 그 말도 흠이 잡힙니다. 그 말도 맞지 않습니다. 불생불멸의 불성이 그 존재가 있다고 말하는 그 말에 대해서도 불교의 기본명제인 무아설에 입각해서 볼 때는 그것은 외도적인 냄새가 풍긴다 그럽니다. 힌두교에서 아트만이라고 나오지요. 외도적인 아트만 사상으로 본답니다.
그래서 여래장 사상,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여래장 사상은 불교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재래불교의 주장이올시다. 근데 그건 무아를 잘못 보고 한 말이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무아를 잘못 보고 한 말이다. 앞으로 나오는 삼법인설에서 제법무아인이 나옵니다. 그때 가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야 돼요.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생사해탈에 있습니다. 생사해탈이라는 것은 나고 죽는 것을 마음대로 한다 그 말이어요. 그래서 나고 죽는 윤회에서 훌쩍 뛰어나가지고 생사를 마음대로 하는 대장부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겁니다. 생사, 생노병사, 조금 더 부연하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고통스럽지요. 생사는 고통스러운 겁니다. 고통스러운 것이요. 우리가 생사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말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생사해탈을 가르칩니다.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둘째, 깨달음이 필요해요. 본성을 깨닫는 것이 하나가 있고, 이 우주 자연의 속성, 존재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세 가지가 있어요. 삼법인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것을 깨달으면 이제 생사를 해탈하는 길에 들어선다 그럽니다. 그래서 ⟪아함경⟫같은 책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말씀하신 겁니다. 아라한이 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자재만현은 그렇게 정의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라는 데 있다. 요렇게 더 부연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은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소? 하고 묻습니다. 자,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면 ‘견불요생사(見佛了生死)’라고 합니다. 생사를 다 마쳐버렸다고 마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부처님의 그 상호가 너무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하고, 청정하고, 광휘·빛 자체이기 때문에 너무너무도 지혜롭고, 자비롭기 때문에 이렇게 한순간만 부처님을 뵈올 수 있다면 생사를 마칠 수 있다고 합니다. 나고 죽는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말 이에요. 그렇게 부처님의 상모에 있어서도 위대하다 그말이에요. 그런데 그 상모를 어떻게 볼 것이냐?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냐? 하고 많이 물어왔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싶을 거예요. 누구나 친견할 수 있지요. 있는데 어렵습니다. 있는데 어렵습니다. 얼마만큼 어렵느냐 깊은 삼매에 들어가서 보는 건데 그 깊은 삼매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깊은 삼매에 들어가려면 탐·진·치 일체의 번뇌가 녹아져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대적정삼매를 들어갑니다. 삼매 중에서도 삼매인 대적정삼매에 들어가게 됩니다. 들어간 그 수행자가 불제자가 비로소 부처님을 볼 수 있답니다.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 이후로 그 수다한 많은 스님들 큰스님들이 나왔지만, 대적정삼매를 통과한 분은 두 분 밖에 없었다 합니다. 수보리 존자와 사리불 존자.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붓다입니다. 그래야 자기 불신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건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탐·진·치 삼독 번뇌를 여의고, 업장 습기를 녹여 없애버린 청정한 대 수행인의 눈으로서는 볼 수 있다 그 말이에요. 무아 속 깊은 삼매에 들어서 빛의 존재인 붓다를 뵐 수 있다 그럽니다. 그렇게 아십시오.
그리고 불과를 증했으면 이제 대반열반, 반열반은 큰스님 돌아가시면 반열반이라고 하고, 부처님이 돌아가신 것을 대반열반이라고 합니다. 대반열반하면 자기 불신, 진짜 자기 몸뚱이하고 내가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리 들어가버려야 영체 4개가 미래겁이 다 하도록 그 상적광세계에 계시는데(대적정삼매에 들어 계시는데) 언제라도 인간 몸을 받아 올 수가 있습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정법을 펴기 위해서 오십니다. 사람 몸을 받아 옵니다. 사람 몸을 받아 올 때는 이미 불과를 증한 분들은 억겁의 업장이 녹아버리고, 탐·진이 녹아버리고, 습도 기도 다 녹아버리고, 갚아주어야 할 은혜도 다 갚아버렸고 보살도를 완성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신 마음대로 날 곳을 정해서 옵니다. 날 곳을 정해서 오는데 정법을 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왕가나 왕족으로 오게 됩니다. 그때 당신의 몸, 진짜 불신, 그걸 원만보신이라고 하는데 빛덩어리로 이루어진 당신의 몸뚱이는 거기 상적광세계, 연화장세계라고도 합니다. 거기에다 당신의 몸뚱이는 놔두고 몸 하나만 쏙 빠져나옵니다.
이 세상에 온 몸뚱이를 응화신이라고 하지요. 혹은 응신이라고도 하고, 혹은 화신이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올 수가 있고, 하늘 그 많은 하늘 그리고 이 우주에 변재해 있는 많은 중생이 사는 불국토에 가서 법문을 할 때에는 당신의 몸뚱이가 직접가실 수도 있지만 화신으로 가실 수도 있습니다. 화신으로. 그래서 동시에 붓다는 천이고 만이고 억이고 당신의 몸을 나투어 가서 중생을 교화한다. 이렇게 위대한 분이 붓다다.
여러분 지난 시간에서 지금까지 만현스님이 법문한 내용을 대충 집어봅니다. 15분 동안에. 그런데 부처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니까, 공부한 분들은 아니다. 마음이 어디까지나 부처고, 만현스님이 본 부처는 환상이고 환영이고, 아니면 천마의 나툼이다. 요렇게 말을 합니다. 자 다시 말씀드립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환영이 아니면 천마의 소행이다 여기에 대해서 답해줍니다.
첫째, 환영은 실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환영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지성, 이성을 갖춘 이야기 말은 못합니다. 환영이라면요.
둘째, 천마의 소행이다? 삼매속으로 천마는 들어 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천마의 모습은 부처님의 진불의 모습에 백천만억분의 일도 미치지 못합니다. 천마는요. 부처님의 화신에도 백천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합니다. 천마는요. 천마뿐만 아니라 지상에 변화해 자재하는 신들의 집단이 있습니다. 그런 신들도 불·보살의 모습으로 나툴 수도 있습니다. 공부한 사람들한테 그렇게 나툽니다. 그러면 공부한 사람들이 속지요. 그러나 깊이 공부한 사람은 속지를 않습니다.
천마는 불·보살의 화신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어떤 점에서? 1. 불·보살의 화신은, 빛의 존재이신 붓다의 화신들은 비록 화신으로 나오지만 몸 주변에 광휘 빛을 띱니다. 2. 눈동자 색깔이 대단히 자비롭습니다. 왜냐 탐·진·치가 완전히 녹아버렸기 때문에. 그러나 천마는 탐·진·치가 그득하기 때문에 눈에 살기가 있습니다. 3. 그 모습도 화신은 대단히 거룩하고, 선정, 삼매, 계율, 보시, 정진, 이러한 바라밀을 다 완성을 했기 때문에 붓다는 그 화신이라 하더라도 너무너무도 선정상이고, 인욕의 상이고, 자비의 상이고, 계율을 그렇게 철저하게 억만겁을 지켰기 때문에 계율의 상이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천마는 다릅니다. 부처님을 친견할 정도의 수행자는 이 영혼이 너무너무도 아름답고 청정하기 때문에, 영혼이 청정하다 못해서 빛이 되어 있기 때문에, 천마는 정확히 그 천마를 향해서 보면 도망을 가버립니다. 마치 두더지가 태양 빛에 약하듯이 그래서 도망을 쳐버립니다. 이쯤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는 합니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세상! 그래서 불교라고도 할 수 없는 현재의 이 불교. 부처님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다고 말한다면 중이 될 필요도 없고, 적당히 살고, 적당히 법을 지키면서 누가 안 볼 때는 원 없이 자기 욕심대로 살고, 그래도 좋겠지요.
그러나 자재만현 스님의 법문 내용은 아니지요. 그것이 아니고 부처님도 계시고, 극락도 있고, 지옥도 있고, 윤회도 하고, 귀신도 있고, 그래서 천도도 하고, 지옥의 실상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법문을 하면은 모두모두 귀의하고 올바른 가르침에 대해서 갈구하고, 새벽 3시에 닭이 울지요. 새벽을 알리지요. 오직 현지사 만이 정법을 알리는 이 사자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아십시오.
부처님께서 팔만사천 법문을 하셨지요. 그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서 가장 기본이 되는 진리를 세 가지로 들추어서 삼법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삼법인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의 불교의 교리 강의 법문입니다. 여러분 책을 집에 가서 보시고, 아까 말씀 드렸듯이 테이프 가지고 가서 많이 많이 들어보십시오. 굉장히 중요한 법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된다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어떤 절대자가 있어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서로서로 인연 따라서 모든 것을 내가 지어서 받고, 당신은 당신이 지어서 받고, 이렇게 서로 서로 인연이 모여서 세상을 이루고, 이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어떤 절대자를 부르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그건 여러분이 아시지요. 모든 것은 인연 소생이다 그거요. 삼법인설 세 가지 법인이 되는 말씀이다. 그말이요. 법인이라는 것은 법이라고 하면 법리, 이치 그말입니다. 인은 도장 인(印)잔데 인증한다는 뜻, 진리다 그 말이요. 세 가지 진리.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진리.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이 삼법인 사상 삼법인설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아까 생노병사 이야기를 했지요. 우리 중생이 고통을 받는 받고 사는 이유는 탐애와 탐욕, 욕심과 무지 때문에그렇답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고 사는 이유가 탐애와 무지 때문에 그렇답니다. 인간은 자기의 본성을 모르고 삽니다. 그 다음에 이 우주의 모든 존재의 세 가지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삽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고통이 생긴다 그거에요. 그래서 바로 고통이 생겨난 원천은 이 탐애와 무지에 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삼법인설을 지금 여러분한테 이야기해 드립니다.
세가지 진리(삼법인)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그럽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말이에요. 우주관의 일체 만상을 보면 찰나에 생겨났다가 찰나에 없어진 것도 있고 이렇게 해서 영원히 유지, 진전, 상속이 된다는 것이 재행무상의 의미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 말이에요. 인간도 동식물도 무생물도 우주도 생각도,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요 이것이 제행무상이며 이것이 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걸 어려운 말로 여러분 ing 라고 하지요.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이에요. 모든 것은 변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을 안해요. 이게 지금 필요합니다. 무상관을 확립해라 그거요. 제행무상을 말씀하시는 것은 무상관을 확립했으면 싶어서 부처님께서 이 불지로 보니까 불안으로 보니까, 이 우주 만상은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어. 그래서 생겨났다 없어졌다 생겨났다 없어졌다 해요. 어떤 것은 찰나에 생겨났다가 없어져. 생각 같은거.
그런데 모기나 하루살이는 하루 살다가 없어져 버리죠. 또 사람은 기껏 80년이나 백년 살다가 죽어. 저 지구나 태양은 안 그래요. 저것은 엄청난 덩어리 아닙니까? 부피가. 이런 것들은 겁도 더 돼. 그러나 없어질 때가 있다고 보는 것이 불교입니다. 항상 진행하고 있습니다. 항상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항상 죽음으로 치닫고 있으니까, 없어질 날이 있는 것이오. 이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그럽니다. 모든 것은 시간적으로 관련이 되어있고 좀 있다 말하겠지만은 모든 것은 공간적으로 다 관련이 되어 있대요.
여러분. 녹음 다시 틀어서 항상 여기서 생각해보세요. 모든 것은 시간적으로 관련이 되어있고, 모든 것은 공간적으로 보면 다 관련이 되어 있대요. 여러분과 나가 별개인 것 같지만 다 관련이 있대요. 관계가 있데요. 재행무상.
천도재를 하다가 보니까 이러저러한 죽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집안에 영가를 보니까 총각인데 전문의 자격을 다 따놓고 간암으로 죽었어요. 또 어떤 가정의 영가를 보니까,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연수원을 졸업하고, 검사 보직 발령을 받고, 아침에 출근하는데 교통사고 당해서 죽었어. 요런 사람도 있어. 이렇게 무상한 거요. 허망한 거요. 허망한 거요. 항상 자기가 살 줄 알지. 근데 이치는 그렇지 않아. 항상 변화해. 죽음으로 치닫고 있어. 항상 변화해. 이 우주, 저 태양 별까지도. 그걸 제행무상이라고 합니다.
신라시대 때 저기 낙산사 대중스님들 가운데서 조신이라는 스님이 있었어요. 하루는 탁발을 나가다가 거기 고을에 원님 따님을 봤어요. 완전히 매료가 되어 버렸습니다. 넋이 빠져버렸어요. 절에 와서는 그 조신 스님은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그 처녀 생각만 합니다. 이것이 인제 깊어가니까 상사병이 되었지요. 상사병으로 죽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천도재를 해보니까, 총각도 있고, 처녀도 있고 많아요. 상사병이 들었어, 중인데. 그러니까 이제 완전히 자기가 중이라는 신분도 잊어버려요. 그리고 오직 그 아가씨를 어떻게 만나나? 그 아가씨와 어떻게 가능하면 결혼할 수 없나? 이 생각만 하지. 그건 중 생각이 아니지.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기도를 했답니다. 낙산사 부처님 대비상 앞에서. 요즘 화재로 어떻게 됐나요? 홍련암만 남았다죠. 그 대비상 앞에서 기도를 한단 말이요. 매일 시간만 나면 나가서 그 부처님 앞에 가서 그 처녀하고 맺어달라고 기도만 한단 말이야. 그런데 아침에 종성을 하지 않아요. 종성. 알지요? 옛날에는 가난해서 절 법당 안에 종이 있었어요. 지금도 있는 절도 있지요. 땅땅 때리는 종성을 하는데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꿈이야기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절을 뛰쳐나가서 그 원님 집으로 달려가는데 저기서 달려오는 아가씨가 있어. 보니까 꿈에도 그리워했던 그 아가씨가 거기도 이 스님한테 그냥 푹 빠졌던 가봐요. 눈이 맞아 버렸어. 그래서 거기서도 탈출을 했답니다. 그래서 만났지 만나가지고 이제 장인 장모한테 말하면 안돼지요. 이건 도저히 신분상 맞지 않잖아요. 그래 둘이 도망을 갔답니다. 산속으로 산속으로 도망을 갔어요. 그래서 인제 움막을 짓고 화전을 일구어서 삽니다. 일년 이년 삼년 만에 애를 하나 낳았어요. 화전을 일구고 살아. 정말 피땀 흘려서 살아. 죽도록 노동 해서 겨우 먹고 사는 거요. 그래서 3년 만에 두 번째 딸을 낳고, 또 딸 낳고 또 딸 낳고 여섯을 낳았는데 마지막 애가 서너 살 먹더니 죽어버렸어. 그래서 너무 너무도 슬퍼서 두 부부가 웁니다. 발 뻗고 우는데, 인제 5명을 먹여 살릴 생각을 하니까 눈앞이 깜깜해. 그동안 좀 저축해 놓은거 애가 병이 나서 다 약값으로 들어가 버리고 이제 살 수가 없어. 그래서 울면서 우리가 두명, 세명 애를 나누어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구걸이라도 하면서 살다가 내년 꼭 이맘때 여기서 만나자고 그랬어. 그래서 자기가 남자니까 세 사람 챙기고, 부인은 두 사람 챙기고, 그래서 이렇게 떠나는데 자식이 죽은데다가 또 생이별을 할려니까 발이 떨어지지가 않아 한없이 우는 거요.
그런데 누가 톡 차. 주지 스님이 예불시간이 되어 들어오셔서, 요놈의 자식이 종성은 안 하고 꾸벅꾸벅 조니까 툭 찼단 말이요. 그래서 깨어 보니까 5분도 안돼. 2~3분 밖에 안됐어. 근데 자기는 30년을 살았어. 30년을 살았답니다.
자 이것은요 모든 중생에게 부처님의 위신력이 어마어마함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거 가능하지요. 그런 장면을 줄여서 인생의 고달픔을 보여주신 겁니다. 조신스님한테 이 세상 살아오았자 허망함을 보여준 거요. 그러니까 무상함을 알고 부처님 공부 잘해서 고통에서 벗어나고, 생사에서 벗어나고 하면 윤회를 벗어나면, 하늘에서도 하늘이라고 하는 성중하늘에도 가고, 보살도 되고 부처도 될 텐데. 그래서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그런 장면을 보여주신 거요. 그래서 조신스님이 크게 깨우쳐서 공부를 잘했답니다. 그게 제행무상입니다. 모든 것은 변해.
여러분 지금 보니까 어떤 분은 칠십도 먹은 것 같고, 육십도 잡순 것 같고 그러는데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그런데 여러분은요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합니다. 안하고 나는 그저 한 백년은 살겠지, 이백년은 살겠지. 아마 그렇게 구체적인 생각은 안 하지만 잠재의식에 자기가 곧 죽을 것은 절대 생각 안 합니다. 그렇게 사는 거요. 그렇게 사니까, 탐욕을 부리는 거요. 욕심을 부리지요. 그래서 저 사람하고 아웅다웅 싸움하고, 치고 받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 그러지 말고 정확하게 우주의 진리를 보고 항상 명상을 해서 분수 넘치게 살지 말고, 다음에 팔정도 이야기를 하지만 정도에 맞게 살고, 부처님이 일러주시는 공부법으로 해서 한 생 공부 잘하면, 아라한이 왜 못 되요? 보살이 왜 못 됩니까?
여러분도 지금 이렇게 늙었지만 가능하다고요. 칭명염불 타력문에 들어오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스님이 이렇게 사시오. 저렇게 사시오 하는 거요.
두 번째로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그 말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 그 말이요. 제법무아라는 것은 모든 것은 나라는 것이 없다. 실체가 없다 그 말이요.
이걸 조금 이해를 돕기 위해서 물을 끓이면 김이 나지요. 김이 물의 분자입니다. 그 분자를 깊이 살펴보면은 원소의 집합입니다. 물의 1분자는요 H2O 그럽니다. 수소 두 분자하고 산소 한 분자가 결합된 것이 물입니다. 근데 이 물이요. 이상해. 물은 불을 끄는 성질이 있잖아요. 근데 물의 본성을 들여다보면 산소라고 하는 불의 성질이 있어요. 여러분이 여자지 않아요? 여러분의 영체의 모든 것을 착안해 보면 남성적인 것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계율을 잘 지키고 공덕을 잘 지으면, 또 발원을 하면 다음 세상에 남자 몸을 받을 수 있어요. 이것을 ⟪화엄경⟫에서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震中含時方)이라고 합니다. 티끌 하나 속에도 우주가 다 들어가 있다그거요. 여러분 성품 안에, 생각 안에 온갖 것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것만 개발하면 여러분 정말로 능력 있고 부처님같이 위대한 성자도 될 수 있습니다. 원소 그러니까 수소란 놈하고 산소란 놈이 합해진 분자. 그 낱낱 원소를 들여다 보면 또 동일한 원자의 집합이랍니다. 그 원자를 살펴보면 가운데 핵이 있답니다. 그리고 중앙에 변두리로 전자가 돈답니다. 돌아요. 원자번호는 전자의 수 가지고 정해지잖아요. 핵을 보면 핵이 알맹인 줄 알았어요. 옛날 19세기까지만 해도요 과학에서는 원자를 알맹이로 보고 고정불변한 실체로 봤어요. 근데 이제 과학도 많이 발전하고 첨단으로 가잖아요. 핵을 보니까 핵 속에 핵자가 있어요. 중성자 중간자라고 하는 양성자라고 하는 핵자가 있어요. 핵보다도 더 가늘고 미세하지요. 핵자를 소립자라고 하는데 소립자를 또 분석해보니까 쿼크라고 합니다. 쿼크를 분석하면 서브 쿼크, 그걸 더 분석하면 코스몬이라고 합니다. 코스몬을 더 들여다 보니까, 최종 기본입자가 나옵니다. 그걸 보니까 공이라고 그래요. 지금 이론물리학에서는 소립자물리학에서는 거기까지 가 있습니다. 대단한 발견이지요.
근데 삼천년 전에 우리 부처님은 어떻게 보셨나?
⟪능엄경⟫에도 나오고 더 연구한 구사학에서 나오는데, 여러분이 아침에 창문을 보면 먼지가 막 돌아다니지요. 이걸 격유진이라고 해요. 격유진을 뚫어서 보면 우모진이라는 것이 나온다고. 소털 위에 앉을 수 있는 우모진. 우모진보다도 더 가는 미세한 입자가 양모진, 그 다음 토(토끼)모진, 그 다음에 수진. 수진은 물도 묻지 않고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입자를 수진이라고 그래요. 그다음에 금붙이를 뚫고 들어 갈수 있는 입자인금진, 다음에는 미진, 미진 다음에는 극미진, 극미진 다음에는 인허진, 인허진 다음에는 공(空). 그럽니다.
이건 삼천년전에 이천오백년전에 부처님이 그렇게 부르셨다 그거요. 근데 이천년이 지나간 21세기 오늘의 소립자물리학에서도 코스몬 그 다음 기본입자 그 다음 공 그럽니다. 그래서 이 세상 만물은 사실은요 혼자 있는 것이 없어요. 혼자 살 수 있는 것, 혼자 스스로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 전부 서로 서로 의지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서로 더불어 산다고 하지요. 더불어 살아요. 혼자 살 수는 절대 없어요. 그 이유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이게 제법무아입니다.
이 무아라는 것이 이제 대단한 문제가 되는데요. 아까도 내가 이야기 했지만, 나는 무아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전번에 인터넷상 나를 대변해서 나를 공격한 사람들한테 답변도 하고 하는 사람이 나한테 질문을 해왔어요. 무아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달라고. 사실은 지금 어떠한 불교학자들도 이 무아에 대해서 설명을 전혀 못합니다. 엉뚱하게 하지요. 그렇게 하면 안돼요. 생각해보세요. 무아를 그렇게 해석해 버리면요. 나라는 것도 없고 일체 실체가 없다는 것은 맞아요. 현상세계에서 한해서 그래요. 근데 그걸 본체계까지 연장해서 해석하면 크게 잘못이 됩니다. 그러게 되면요, 부처님도 없고, 지옥도 없고, 천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자 귀신도 없고, 나도 없고, 그게 말이 됩니까? 그건 허무주의입니다. 그렇게 되면요 완전히 허무주의지요. 뭐가 달라요?. 불교는 허무주의가 아니에요. 공부해 보니까 그거 아니에요.
무아라는 것은요 행위의 주체까지도 없다는 말이 아니어요. 나한테서 찌꺼기를 전부 빼버린 나가 있습니다. 이게 붓다요. 나한테서 찌꺼기, 억겁을 살면서 지은 업장, 또 업을 짖게끔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은 탐욕이잖아요. 탐·진·치·만·의, 108번뇌, 습·기 모든 것을 전부 분리 제거하고 남는 것이 나예요. 이것까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있습니다.
*소립자물리학에서: 분자 – 원자 – 핵 – 핵자 – 쿼크 – 서브쿼크 – 코스몬 – 공
불교에서: 격유진 – 우모진 – 양모진 – 토모진 – 수진 – 금진 – 미진 – 극미진 – 인허진 – 공
* 재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무상하다. 모든 것은 변한다.
*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것은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
요점정리
○ 지금의 불교는 심교이지 불교가 아니다
○ 붓다 이루려면
⚪ 보살도 완성, 삼독·업장소멸 및 기와 습 제거, 빚 갚음
⚪ 일단 아라한에 목표를 두어라 - 윤회를 벗어남
⚪ 타력에 의존하라 - 칭명염불
○ 종래불교는 일체중생 실유불성은 맞지 않다고 주장
⚪ 여래장 사상 –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
○ 부처님 가르침 : 생사해탈,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 생사해탈은 깨달음이 필요 – 본성, 삼법인
○ 부처님은 어떻게 친견할 수 있는가? - 견불요생사
⚪ 대적정 삼매에 들어가야 한다
○대반열반에 들어야 4개의 영체가 대적정삼매에 들어감
○ 제행무상: 고정불변 실체는 없다, 시간과 공간이 관련
○제법무아: 나라는 것도, 일체 실체도 없다는 것-현상계
격유진-우/양/토모진-수/금진-미진-극미진-인허진-공
⚪무아는 행위의 주체까지 없다는 것이 아니다
○ 점안은 화신이 들어가기에 청정수, 공양을 해야 한다
출처 : 2008년 10월 출판 법문집 1권 337페이지~35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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