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로서 이당 김은호
피우련 ・ 2023. 8. 2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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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부터 1945년 해방 시기까지 일제시대에 있었던 이당 김은호는 1919년 청년 27세 나이에 기미년 3.1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징역형을 받았는데, 체포 과정과 수사 과정에서 비참한 고문으로 평생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허약한 상태에서도 본인의 맡은 바 책임과 신념을 다하여 조선의 마지막 어진 화사로서 우리 고유의 전통회화를 유지하고 계승해야한다는 신념이 강했었기에 후진 교육에 진심으로 온 힘을 다했다.
국호가 없는 식민지국민인 상태에서 교육만이 조선의 고유한 미술과 문화를 유지하고 계승할 수 있고, 그렇게 교육이 행해져야만 결국 자생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고 그 결과로 힘있는 나라가 되길 원하셨다.
김은호의 낙청헌 화실에서 그림을 배운 제자들이 1936년 1월 18일에 결성한 후소회는 이 자리에 백윤문,김기창, 장우성, 한유동, 이유태, 조중현, 장운봉(장덕), 정도화(정홍거) 등이 참여했다.
문도들 간의 친목과 동문전을 목적으로 당시 동양화의 현실에 대한 사명감과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 후소회"라는 명칭은 위당 정인보가 지어준 것으로 공자의 회사후소에서 유래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는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제자들에게 학비를 받는 게 아니라 전액무료는 물론 장학금, 생활비까지 대며 생활이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서는 그림도 팔아주었는데 이렇게 자식처럼 키운 제자들이 100명을 넘는다.
일본의 잔혹함을 겪어야 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애국심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해방이 되기 전 서울대로는 장우성 , 홍익대 :김기창 , 이화여대 : 안동숙 , 이유태, 조중현,
서울수도사범대학으로는 김화경 등의 제자로 미술 대학 학교 설립을 하게 한다.
지금까지 한국화단의 대부분은 이당 김은호에 영향을 받은 3대 4대 제자들로 구성된다.
이당 김은호의 정신을 이어가는 후소회는 식민지 시대와 6.25사변을 겪으며 올해 87주년을 맞이했다.
해방 후 1950년 제 7회전이 열리고 이후 6.25사변 동란과 어지러운 시대 상황으로 오랫동안 열리지 못하고 1971년 2제 7회전이 열린다.
1980년 부터 안정적으로 거의 매년 회원전이 열리고 2006년 70주년 을 맞이하는 제 35회 회원전이 열리며 지금까지 그 명백을 이어가는 단체이다.
현재 역사와 시대의 격변 속에서 후소회는 창립 87주년을 맞이 하였고 52회 후소회전을 개최하며 매번 이당상과 청년작가상을 주며 한국화의 중흥을 도모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사람의 이름을 걸고 이렇게 오랜 세월 이어오고 있는 미술단체는 후소회 뿐이다 .
후소회 창립전 1936년 11. 3
(변관식, 백윤문 , 김기창 , 장우성, 한유동, 이유태, 조중현, 장운봉, 정홍거) 근대 미술의 꽃을 피운 종로는 이당선생이 창덕궁과 서화학교에서의 전통 미술의 계승과 더불어 새로운 근대 미술의 융합으로 조선 미술 교육원과 고려 미술 교육원, 그리고 그 제자들에 의해 결성된 후소회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큰 스승이다 .
그리고 그 제자들은 해방 이후 한국 화단의 중추적인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이당 김은호의 제자들의 화풍은 스승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자기 분야를 개척해 나갔다는 점에서 역시 교육의 성과가 있다.
가장 특징적인 예는 장우성과 김기창이다.
물론 이 두사람은 초기 작품에서는 스승의 영향을 받아 세필 채색화의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가나 근대 이후 장우성은 신문인화에 한 획을 긋게 되고 김기창은 새로운 표현법의 대가로 한국근대 미술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이는 이당이 그의 제자들을 교육함에 있어 철저한 기본기를 가르치되 작가적 성향을 고루 갖추도록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평생을 노력하셨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현대 화단에까지 한국 채색화의 입지를 굳건히 하게 된 것은
한국 화단의 다양성과 전통 전습을 위한 제자 교육과 노고에 있었다고 인정 해주길 바란다.
6.25를 비롯한 역사적 사건, 시대적 어려운 시간을 모두 걸쳐 매년 이당 상을 주고 제자와 또 그 제자들이 한국화의 맥을 이으며 매년 이당 상을 주고 있는 단체는 곧 88주년을 맞이 한다. 개인의 이름으로 이렇게 오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미술단체는 세계적으로 보아도 미술사에서 유일 무이하다.
20살 부터 87세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그림만 그리셨고 전통의 계승과 신문화의 근대 회화로서의 큰 장르를 형성하며 신선도, 초상화 , 인물화, 화조화, 산수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근대미술의 화려한 정리와 제자들의 교육을 통해 지금의 화단이 만들어졌다.
어려운 격동의 시대 제도권 아래서의 자신의 예술적 한계와 자신만의 재능은 제자들에 대한 교육과 국가적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로 대변되었다.
많은 젊은 미술학도와 일반 국민들이 아름다운 이당 김은호의 작품을 보다 더 많이 감상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여 교육자로서 화가로서 재해석되어 피카소, 다빈치처럼 우리 나라 미술은 이미 세계적인 화가의 나라임이 증명되길 바란다.
종로구에서 설치해준 기념시설물
종로구 권농동 161 (현재 순라길), 낙청헌 (오세창이 이름 지어줌)
이묵헌 종로구 와룡동 38번지 2
근대 미술의 발상지 “종로”
근대 미술의 시작점 “이당 김은호”
[출처] 교육자로서 이당 김은호|작성자 피우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