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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라7장11~28절
제목 : 지상의 왕을 움직이신 하늘의 왕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통하여 에스라의 귀환 공동체가 안전하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 공동체를 재건하도록 조치하십니다.
1.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11~26절)
1) 조서의 발신자와 수신자 소개(11절)
“[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
본절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12~26절)의 서론으로 조서의 수신자와 발신자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일종의 도입 구절입니다.
이 조서에는 에스라가 수행해야 할 사명 내지는 그의 공적 역할이 명시되어 있습니다(12절 이하).
계명의 말씀. – 여기의 '계명'(미츠오트)은 '~의 위에 놓다' 혹은 '임명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차와'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약 성경에서 언약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요구 사항들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출 24:12에서는 십계명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 – 제사장이라는 직함은 1-5절의 계보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아무튼 본절에서 에스라는 페르시아의 공무를 담당하는 관리로서, 또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동시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2) 조서의 내용(12~26절)
(1) 인사말(12절)
“[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
본절에서부터 26절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 – 이 같은 자기소개는 자신이 내리는 조서의 권위를 증대시키기 위한 의도를 보여줍니다.
'모든 왕의 왕'이라는 칭호는 앗수르나 바벨론 왕들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는데 이런 호칭은 원래 왕들에 의해 다스려졌던 기존의 나라들을 정복한 정복국의 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에스라에 대한 호칭은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은 페르시아 정부내에서 에스라가 갖고 있던 공식 직함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2) 에스라가 귀환을 허락 받음(13절)
“[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조서를 내리노니. – 문자적으로는 '명령을 반포하다'를 의미합니다.
우리 나라. – 이것은 아닥사스다가 통치하던 전 지역을 가리킵니다.
아닥사스다 당시에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 전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Fensham).
심지어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애굽의 남부에서도 상당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 유다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포로 귀환 민들을 언약 공동체 전체, 곧 이스라엘 열 두 지파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습니다(Edwin Yamauchi).
본서와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에스라와 관련된 기사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24회 등장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도 강조됩니다.
반면에 에스라 자료(Ezra material)에서 '유다'라는 용어는 단지 네 차례만 나오며 그것도 단지 지리적 용어로서 언급되었을 뿐입니다(14절; 9:9 ;10:7, 9).
(3) 에스라의 임무(14~26절)
첫 번째 임무는 예루살렘과 유댜의 형편을 살피는 것입니다(14절).
“[14]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예루살렘과 유다에 정착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 - '네 손에 있는'은 '에스라가 손에 들고 있는'의 의미가 아니라 다만 '에스라가 항상 가까이하고 있는'의 의미일 것입니다.
양피지 두루마리에 기록되었을 모세 오경은 그 부피가 엄청났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그는 아닥사스다에게 귀환을 허락해주기를 요청했을 것입니다.
즉, 에스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지를 살필 필요성을 느꼈음이 분명합니다(Fensham).
페르시아 정부의 입장에서도 팔레스틴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서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는 피정복민들의 반란이 잦았던 관계로 골머리를 앓았었기 때문입니다.
일곱 자문관. – 이들은 페르시아 왕들에게 조언을 하던 고위 관리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에 대해서 에 1:14은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냄을 받았으니. – 이것은 에스라의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이 표면적으로는 페르시아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왕과 자문관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성심으로’ 예물을 바칩니다(15절).
“[15]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왕과 모사들이'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심을 쓰는 것은
- 피정복민들을 선무(宣撫)하여 정치적 소요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며,
- 피정복민의 신으로부터의 진노를 피하기 위한(23절 ; 6:10)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신 이스라엘 하나님. – 이 같은 언급은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1:5 및 5:14, 16 그리고 6:12 등의 '예루살렘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일 것입니다.
‘성심으로’로 번역된 네다브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라는 의미로 다들의 봉헌이 자발적임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지원은 에스라로 하여금 바벨론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은금과 예물을 가져가도록 하는 것입니다(16절).
”[16]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본절에서는 에스라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할 재물을 충당할 수 있는 두 가지 출처를 말하고 있습니다.
봉헌자들 중 상당수는 귀환하지 않고 바벨론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을 것입니다.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 – 에스라가 바벨론 백성들로부터 얻을 변상 예물을 가리킵니다(1:4).
백성과 제사장들이...드릴 예물. – 여기의 '백성과 제사장들'은 에스라와 함께 팔레스틴으로 귀환하려고 했던 무리들을 가리킵니다(7, 13절).
제1차 귀환 때에도 바벨론 땅에서 귀환한 모든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많은 현물들을 하나님께 바쳤었습니다(2:68, 69).
① 이 은금과 예물은 앞으로 예루살렘 성전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사는 용도로 사용될 것입니다(17절).
”[17]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간 재물의 제1차적 용도가 하나님께 대한 제사와 관련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제와 전제. - '소제'에 대해서는 레위기 2장을 '전제'에 대해서는 민 15:5-7절을 참조하라.
② 아닥사스다 왕은 이 일에 있어 유다인들의 자율권을 보장합니다(18절).
“[18]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
나머지 은 금. – 성전의 보수 및 장식을 위해 예비비로 남겨진 돈을 말합니다(Rawlinson, Schultz).
너의 형제. – 에스라와 같은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3:2).
하나님의 뜻을 좇아 쓸지며. – 이것은 결국 '나머지 은 금'을 오직 제의용(祭儀用)으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하는 명령으로 이해됩니다(Williamson).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이방인들의 헌신을 언급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우주적인 의미를 강조합니다.
세 번째 지원은 아닥사스다 왕의 성전 유지와 관련됩니다(19~20절)
① 왕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성전 예배에 사용될 그릇들’을 내어줍니다(9절).
”[19]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이 그릇들은 아마 1차 귀환 때 일부 남겨두었던 기물들이거나 (스1:7~11) 왕의 개인적인 하사품이었을 것입니다(스8:26~27).
섬기는 일(팔한) -'예배하다' 의미를 갖는 동사 '펠라흐'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네게 준. – 여기서 '준'(미트야하빈)은 '짐지우다' 혹은 '맡기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예하브'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아닥사스다의 에스라에 대한 신임을 엿보게 해줍니다.
② 왕은 추가적으로 성전 운영에 사용된 물품들을 ‘궁중창고’, 즉 국고에서 지원할 것을 약속합니다(20절).
”[20]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이 같은 명령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사업비용은 그 지역에서 충당되어야 한다는 제정 원칙(6:8)과 완전히 부합됩니다(Fensham).
네 번째 지원은 유브라데 강 건너편 관리들로 하여금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도록 한 것입니다(21~24절)
① 에스라가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라 합니다(21절)
”[21]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본절에 언급된 아닥사스다의 조처는
- 성전 제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하기 위한 비용,
- 귀환하는 에스라의 일행이 귀환 도중에 필요한 식량 등의 조달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합니다(Fensham).
강 서편 모든 고직(庫直)이. – 이들은 바벨론을 출발하여 유다 땅으로 가는 에스라가 경유하게 될 지역의 재정관리들을 말합니다.
② 그들이 공급할 물품들입니다(22절)
”[22]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
은은 일백 달란트. – 한 달란트는 약 34kg에 해당합니다.
밀은 백 고르. – 1고르 혹은 1호멜은 220l정도입니다.
포도주는 백 밧. – 1밧은 22l 정도 됩니다.
소금은 정량 없이. –강 서편 쪽은 사해 등지에서 소금이 풍부하게 생산되었습니다.
비록 고대에 소금이 귀한 것이기는 했으나 다른 것에 비해서는 생산량이 많아서 저렴했던 물품인 관계로 원하는 만큼 제공되었습니다.
한편, 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와 번제의 제물에 뿌려졌습니다(겔 43:24).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은 순결하게 체결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소금 언약'이라고 불리웠습니다(민 18:19 ; 대하 13:5).
③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왕실과 제국에 임하기를 바란 것으로 보입니다(23절).
”[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전을 위하여. –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희생 제사가 원활히 드려지기를 위하여'의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신 것. –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입니다.
삼가(아드라즈다) - 이것은 '어떤 일을 조심스럽고도 성실하게 하다'의 의미를 갖는 페르시아어 '드라즈다'에서 온 아람어로서, 특별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주의 깊고 경건한 마음 자세 및 행동거지를 가리킵니다.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 신의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신으로부터 왕 개인과 가족 및 제국에 '진노'가 내려진다는 생각은 고대 중근동에서는 대단히 보편적이었습니다(Fensham).
④ 강건너편 관리들을 통한 아닥사스다 왕의 지원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의 종사 자들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을 포함합니다(24절).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다리오 왕의 '가다타스비문'에는 '아폴로 신의 구별된 제사장들에게서 세금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는 엄중한 경고문이 새겨져 있을 정도입니다.
레위 사람. – 레위 지파 중에서 성전 제사와 관계있는 무리들입니다(2:40).
노래하는 자들...문지기들. – 이들 또한 레위 지파에 속합니다(2:41, 42).
느디님 사람. – 원래는 혈통상 이방인이었으나 여러 이유와 기회에 따라 이스라엘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2:43)입니다.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 – 여기의 '혹'은 '그리고'로 번역해야 합니다. 한편,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은 '느디님 사람'들보다 신분이 더 낮은 자들로서2:55에서는 '솔로몬의 신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가 하게 될 핵심 임무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사법적인 기능과 교육적인 역할입니다(25절)
”[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
아는 자(야드예이). - 이 '아는 자'는 특정 분야에 대해 질적.양적으로 상당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에스라'는 종교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 문제에 관한 권한까지도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위임 받았던 셈입니다.
한편, '삼아'(메니)는 '분리하다' 혹은 '임명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메나'의 파생형으로서 적재 적소에 인재를 세우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⑥ 아닥사스다 왕은 끝으로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임할 엄한 처벌을 경고합니다(26절).
”[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명령. – 곧 '율법'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바르게 실행되도록 하며 혹은 실행되고 있는 지의 여부를 감찰하는 책임을 가진자가 '유사'인 듯합니다(25절).
왕의 명령. –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실의 이익도 대변해야 하는 책임을 맡았었습니다.
바로 이 책임을 감당키 위해 세운 직분이 '재판관'이었습니다(25절).
페르시아에서는 심지어 왕들조차도 자신의 명령을 변개하거나 국법을 범치 않았다는 점에서, 왕명(王命) 거역자에 대한 징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단 6:15).
여기서 ‘왕의 명령’은 페르시아 제국의 법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의 율법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은 하나님께 속한 일(하나님의 명령)은 사법권을 갖고 있는 자들의 권한입니다.
에스라는 제사장과 학자로서 이 두 가지 기능을 행사하도록 위임 받았습니다.
2. 에스라의 찬양(27~28절)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끝나고 다시 히브리어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이제부터 에스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이 부분은 ‘에스라 회고’라고 불립니다. 에스라 회고는 9장까지 이어집니다.
1) 에스라는 왕의 호의와 관대함에 대해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응대합니다(27절).
“[27]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조상들의 하나님. – 하나님께서 자고이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항상 선하게 인도하시며 보호하셨던 사실을 암시하는 말입니다(신6:3;13:6;수18:3;삿2:12).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 이러한 문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베푸신 큰 은혜와 그분의 위대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시편 등의 여러 문맥에서 흔히 나타납니다(대상29:10,20 ;시 16:7 ;26:12; 34:1 ;63:4 ;145:10).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 여호와께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섭리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문구입니다(1:1 ; 5:5).
'아름답게 할'에 해당하는 '레파에르'는 '꾸미다' 혹은 '찬미하다' 등의 뜻이 있는 동사 '파아르'의 강조형으로서 사람이나 인물을 외적으로는 근사하게 꾸미며 내적으로는 명예를 더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시편과 이사야서의 후반부에서도 여러 번 나옵니다(시 149:4 ; 사 55:5 ; 60:7, 9, 13).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동사의 주어는 공히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사야는 종말론적인 문맥에서 '성전'을 본 동사의 목적어로 삼고 있습니다(사 60:7, 13).
바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을 이미 알고 있었던 에스라가 그 예언이 자신의 시대에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이사야가 종말론적으로 성전에 대해서 사용한 동사를 자신도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Fensham).
그렇다면 여기의 '아름답게 할'은 구체적으로는 성전 제사가 율법대로 제대로 이루어짐을 가리킬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에스라로 하여금 왕과 대신들 앞에서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28a절).
“[28]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본절에서 에스라는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최초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위 '에스라의 회상록'(Ezra Memoirs)이라 불리는 부분(본절-9장)의 특징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 - '방백'(사르)은 에 1:3에 따르면 중앙 정부의 관리라기보다는 제국의 각 지역을 관장하는 외직(外職)에 있던 자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 문자적으로는 '은혜를 크게 더하도록 하셨도다'의 뜻입니다.
여기서 '은혜'(헤세드)는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변치 않으며 풍성한 사랑과 자비를 주로 가리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신적 섭리에 따라 감동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베풀어지는 호의를 가리킵니다.
한편 '얻게 하셨도다' (히타)는 '늘이다' 혹은 '펼치다'의 의미가 있는 동사 '나타'의 사역형입니다다.
따라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들을 감화하시어 에스라에게 각별한 호의를 베풀도록 강권하셨음을 가리킵니다(27절).
아하수에로 왕 당시 하나님이 왕후 에스더에게 베푸신 은혜를 에스라에게도 베푸신 것입니다(에5:2).
3) 하나님이 예루사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여건을 마련해주셨습니다(28b절).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하나님 여호와의 손 – 여기의 '손'은 구약 성경에서 '권능' 혹은'능력'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출 6:1 ; 9:3 ; 삼하 8:3 ; 사 59:1).
내가 힘을 얻어(히트하자크티) - 이것은 '굳게 하다' 혹은 '강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하자크'의 재귀적 사역형입니다.
따라서 이 동사는 스스로 마음을 담대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민 13:20 ; 삼상 4:9 ; 왕상 20:22: 겔 7:13).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 '이스라엘'은 당시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두머리'(로쉬)은 한 가문의 '가장' 혹은 '족장'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1:5 ; 2:68 ; 대상 8:10 ; 대하 1:2).
그리고 '모아'(카바츠)는 군사 혹은 종교 등의 특별한 목적의 수행을 위한 소집 행위를 가리킵니다(삿 12:4 ; 삼상 7:5 ; 왕하 6:24 ; 대하 24:5).
에스라는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었으므로’(스7:6, 9, 8:18,22,31),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증거합니다.
전체 단락에서 사용된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명칭, 곧 ‘하늘의 하나님’(12,21,23절), ‘예루살렘 성에 거하시는 하나님’(14,17,18,25,26,28절), ‘이스라엘의 하나님’(15절), ’조상들의 하나님‘(27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제국의 권력을 가로질러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선한 뜻을 품고 그 뜻을 이루려고 애쓰는 주님의 백성을 놀라운 방법으로 도우십니다(11~24절).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거룩한 공동체를 건설하겠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길은 멀었고 (약1,440km), 곳곳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으며(8:31), 도착해서 부딪혀야 할 사람들과 해결해야 할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닥사스다 왕을 통해 에스라의 길을 순적하게 만드십니다.
왕은 칙서를 내려 에스라가 구하는 것을 신속하게 처리해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려는 선한 뜻을 가지고 결심하면, 주님도 선한 손을 드셔서 우리를 돕겠다고 결심하십니다.
지금, 나부터 마음을 정하고 결심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 아닥사스다는 스스로를 ‘왕의 왕’이라 칭했지만, 하나님은 그 ‘왕의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만왕의 왕’이십니다(12절).
세상을 호령하는 왕이나, 지금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강대국의 통치자들도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온 세상 역사를 이끌어가십니다.
3) 에스라에게 율법을 잘 아는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우라고 하십니다(25,26절).
그들의 임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으로 재판하고, 그 율법을 근거로 징계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동체는 율법이 중심이 되고 기준이 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말씀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갑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호의를 베풀고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닥사스다 왕이지만, 정작 에스라는 그 왕을 움직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27,28절).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도움의 근원지는 도움을 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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