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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본기(百濟本紀)] 수수께끼】(4)
[三國史記卷第二十三(삼국사기권제23)百濟本紀第一(백제본기제1)<盖婁王(개루왕)>]
○<蓋婁王>, <己婁王>之子, 性恭順, 有操行. <己婁>在位五十二年薨, 卽位.
개루왕은 기루왕의 아들이다. 그는 성격이 공손하고 품행이 방정하였다. 기루왕이 재위 52년(AD.125)에 사망하자 그가 즉위하였다.
○四年, 夏四月, 王獵<漢山>.
4년(AD.131) 여름 4월, 왕이 한산에서 사냥하였다.
○五年, 春二月, 築<北漢山城>.
5년(AD.132) 봄 2월, 북한산성을 쌓았다.
○十年, 秋八月庚子, 熒惑犯南斗(-一) .
10년(AD.137) 가을 8월 경자에 형혹성이 남두 성좌를 범하였다.
○二十八年, 春正月丙申晦, 日有食之. 冬十月, <新羅>阿湌<吉宣>謀叛, 事露來奔. <羅>王移書請之, 不送. <羅>王怒, 出師來伐. 諸城堅壁, 自守不出, <羅>兵絶糧而歸.
28년(AD.155) 봄 정월 그믐 병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10월, 신라의 아찬 길선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자 우리나라로 도망해왔다. 신라왕이 글을 보내 소환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를 보내지 않았다. 신라왕이 노하여 군사를 출동시켜 공격해왔으나 모든 성이 굳게 방어하고 나아가 싸우지 않았다. 신라 군사들은 군량이 떨어져 돌아갔다.
○論曰: <春秋>時, <莒僕>來奔<魯>. <季文子>曰: '見有禮於其君者, 事之如孝子之養父母也; 見無禮於其君者, 誅之如鷹鸇之逐鳥雀也. 觀<莒僕>, 不度於善而在於凶德, 是以去之.' 今<吉宣>亦姦賊之人, <百濟>王納而匿之, 是謂掩賊爲藏者也. 由是, 失隣國之和, 使民困於兵革之役, 其不明, 甚矣.
저자의 견해 :춘추 시대에 거복이 노 나라로 도망해왔을 때, 계문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 임금에게 예절이 있는 자를 보면, 임금 섬기기를 마치 효자가 부모를 봉양하는 것같이 하며, 자기 임금에게 예절이 없는 자를 보면, 임금 죽이기를 마치 매가 참새를 쫓는 것같이 한다. 거복을 보니 그의 뜻이 선한 데 있지 않고 악한 데 있기 때문에 그를 쫓아버리노라."
지금보면 길선도 역시 간사한 역적인데 백제왕이 그를 받아들여 숨겨 주었으니 이야말로 도적을 비호하여 탐오를 함께 하는 격이다. 이로 말미암아 이웃 나라와 화친함을 잃고 백성들로 하여금 병역에 시달리게 하였으니, 그는 대단히 명철하지 못했다.
【24. <신라(新羅)>아찬(阿湌)<길선(吉宣)>의 망명(亡命) 수수께끼】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AD.155에 <길선(吉宣)>이 망명(亡命)했다고 기록했으나, [신라본기(新羅本紀)]에는 <길선(吉宣)>이 AD.165에 망명(亡命)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1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수주(牛首州)=지금의 춘천(春川) 지방> 출신인 <길선(吉宣)>의 망명(亡命) 기사(記事)는 <졸본부여(卒本夫餘)> <구태왕(仇台王)>의 왕자(王子)로서 AD.160에 <열도(列島)>로 건너가 <호스마쿠니(秀眞國)>를 정복(征服)해서 지금의 <시마네껜(島根縣)>에 <이즈모쿠니(出雲國)>를 건국(建國)한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스사노오노미고도(素戔嗚尊)>가 됐다가, AD.166에 <열다라(十濟)>로 복귀(復歸)해서 <초고왕(肖古王)>으로 즉위(卽位)한 기사(記事)와 관련된 기록입니다.
○三十九年, 王薨.
39년(AD.166), 왕이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