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원구 수락산 무장애 숲길 걷기
◇ 노원평蘆原坪 전투 대첩비 : 노원구 상계동 천상병공원
- 임진왜란 중의 서울지역에서 왜군에 승리한 전투
노원평 전투는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 3월 25일 ~ 27일까지 사흘 동안 군량 확보를 위해 마들평야 일원[노원평]으로 진출한 수많은 왜군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선조실록」, 「징비록」, 「연려실기술」 등의 사료에 의하면, 노원평 전투로 마무리되는 한성 탈환 작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이끄는 의승병과 경기방어사 고언백高彦伯 군사, 황해 및 3도 방어사 이시언李時言 군사 등이었다.
조선군은 3월 25일에 왜군이 양주 방면으로 나올 것이라고 미리 알아 내어 노원평, 누원樓院(도봉동), 우관동牛串洞(우이동) 등에 군사를 숨겨놓고, 3월 26일에 왜군들이 나타나자 좌우에서 공격을 가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어서 3월 27일 또다시 많은 왜군이 나타나 수락산 일대를 약탈하자, 고언백의 군사와 사명대사 유정의 의승병들이 높은 곳에서 화살로 공격하자 왜군은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유성룡 선생이 쓴 『징비록』에는 왜군에 포로로 잡혀 있다가 탈출한 군사의 증언을 인용하여 사흘간의 노원평전투에서 왜군이 입은 피해는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산성 전투보다 적지 않다고 평가하였다.
노원평전투는 전과戰果뿐만 아니라 그 후의 전투상황이나 동아시아 국제질서 형성에 미친 영향 등을 고려하면 역사적 의미가 임진왜란의 어느 전투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 수락산 무장애 숲길 : 노원골 ~ 한옥어린이집(상계 주공(아) 1301동 앞)
- 2022년 6월에 개통한 장애인, 보행 약자들을 위한 순환 산책로
수락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영유아, 임산부, 장애인 등 보행약자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수락산 등산로 입구인 노원골에 무장애 순환산책로로 노원구청에서 2021년 12월에 착공하여 총 1.68km 규모로서 3단계에 걸쳐 조성되었다.
산책로 전 구간을 폭 1.8m 이상, 경사도 8% 이하의 완만한 목재 데크길로 조성해, 유모차나 휠체어 사용자들도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다.
이 길은 2022년 6월 30일부터 개방하였다. 구간 내에는 휴게데크 1개소, 쉼터 4개소, 데크참 23개소를 설치해 주민들이 곳곳에서 쉴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야간에도 안전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데크를 따라 보행 조명등을 설치하였다.
노원골~상원중(0.77km)의 1구간은 유아숲체험장(2,500㎡ 규모)과 이어지도록 설계되었다. 이곳에서는 산책로 입구 경사를 활용해 아이들이 밧줄 오르기, 데크 슬라이드, 타잔놀이대, 네트 오르기 등을 즐길 수 있도록 시설했다.
◇ 범바위 굿당 : 노원구 동일로 242 바길 58
- 영험한 호랑이 모양의 큰 바위가 있는 굿당
범바위 굿당은 1980년 경에 이곳에 들어선 약 40년 전통을 가진 수락산의 명물이다.
이 굿당이 위치한 곳은 수락산 기슭의 약 400평 정도로 넓은 편이다.
입구에는 「사단법인, 한국 토속문화진흥협회 노원구 본부」, 「비영리법인, 전국 굿당 총연합회 수락산
범바위 굿당」, 「사단법인, 토속문화 진흥협회 민속굿 제례지정 연구원 범바위굿당」이라는 현판이 씌어 있다.
이 굿당 내에는 영험하다고 알려진 호랑이 모양의 큰 바위가 있어서 인근의 주민들이 기도하는 터로 찾아 오고 있다.
이 굿당 한 가운데에는 각종 색깔의 천을 두른 서낭나무가 있고, 산신령, 용왕신 등의 조각상을 모셔놓고 있다. 굿당에는 특실 2개, 중간방 2개, 작은 방 2개 등 모두 6개의 방이 있다.
◇ 수락산 보루(堡壘) : 노원구 상계동 산 95 / 사적 제445호)
- 삼국시대에 적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작은 군사 시설
▲ 수락산 보루는 어떤 문화재인가? : 국가에서 지정한 사적 제445호, ▲ 수락산 보루의 규모는? : 아차산 일대 보루군 924,599㎡중의 25,827㎡ ▲ 수락산 보루는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는가? : 삼국시대 (6세기)
◐ 어떤 점을 알고 보아야 할까? : ‘아차산 보루군’ 중의 하나로 5세기경 고구려가 쌓은 방어시설 |
수락산 보루(水落山 堡壘)는 일명 ‘수락산 상계동 보루’로 둘레 100m~300m의 산성보다 규모가 작은 성으로 ‘아차산 일대 보루군’ 중의 하나이다. 보루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적은 군사로 넓은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시설의 하나이다. 현재 중랑천과 아차산, 용마산 일대에 보루가 집중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보루는 고구려가 5세기 후반에 한강유역을 차지한 후 양원왕 7년(551)에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유역을 빼앗기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3국의 역사를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루에서 나오는 유물이나 성을 쌓는 방법 등으로 보아 3국시대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 수락산 보루는 한강유역을 지키는 것보다 고구려군이 평양에서 한강에 이르는 가까운 길을 지키기 위해 작은 군사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설로 볼 수 있다. 즉 고구려군은 개성을 거쳐 호로고루성을 지나 임진강을 건너 386번 국도를 따라 의정부→수락산 보루→봉화산→아차산에 이를 수 있도록 보루를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루를 만드는 방법은 산의 비탈진 면을 ‘ㄴ'자로 깎아낸 뒤 바닥을 다지고, 돌을 쌓아 군사들이 지키는 곳으로 하였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아차산 보루, 용마산 보루, 시루봉 보루, 수락산 보루, 망우산 보루 등 17여 개의 보루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그 중 10여 개가 고구려의 보루로 보이는데 현재 남한 내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관련 유적이다. 보루는 대개 400m 간격으로 만들어져서 만일 한 보루가 적의 공격을 당하면 다른 보루에서 협공하여 막아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보루의 발굴 작업으로 삼국, 특히 고구려 국경지대 군사시설의 구조와 성격, 국경 방위 체계, 군사 조직 등이 밝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구려가 남쪽으로 내려 온 과정이나 한강유역을 둘러싼 삼국간의 다툼과 그 발전과정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