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계 5: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어린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어린양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 양으로 제사를 드렸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린양이라는 말을 들으면 느낌이 올 것이다. 어린양은 제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었고, 어린양에 모든 기대를 걸고 제사를 드렸다. 어린양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제물이었고, 사람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는 제물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드리는 제물, 양으로는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완전하게 연결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어린양을 제물로 드렸고, 절기 때마다, 죄를 지었을 때마다 드렸지만, 사람을 하나님과 완전히 연결시켜주는 제물이 되지 못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어린양보다 더 완전한 제물을 마련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들이다. 그것은 우리를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양들과 어린양은 개념이 다르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동격이고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현 시대의 주인이지만 아들은 다가오는 세대의 주인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기대를 집중한다.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하나님과 네 생물과 24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있었다는 것은 어린양은 하나님과 천상의 모든 통치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미래에 대한 계획이 적힌 두루마리의 내용을 이룰 수 있는 분은 그 어린양이었다.
다른 존재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할 수 없었다. 오직 어린 양만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할 수 있었다.
(계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계 5: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계 5: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계 5: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1957년 어린이 헌장이 우리나라에 처음 생겼다. 한국 동화 작가 협회가 만들었고,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이 헌장의 내용을 잘 수행하고 있다. 1988년에 한 차례 개정이 되긴 했지만, 그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1.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
어린이는 자신들의 세대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의 주인이다. 오늘의 시대가 아버지의 시대라면 다음 시대는 자녀들의 시대이며, 시대는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2. 어린이는 인간으로서 존중하여야 하며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서 키자 작고 지혜가 부족하다고 해서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할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는 완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
3. 어린이는 튼튼하게 낳아 가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어른은 어린이에 대하여 교육의 의무를 진다.
4.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 학교에 이르기까지 어른들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5.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어린이에게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교육이나 작업을 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법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일을 시킬 때는 엄격은 감시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은 15세 미만인 청소년 또는 18세 미만이라도 중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은 근로자로 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15세 미만으로 일을 하고 싶은 경우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이 발행하는 취직인허증을 발급받아야 취직을 할 수 있다. 취직인허증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은 13세 이상 15세 미만이다. 부모가 마음대로 자녀를 취직시킬 수도 없다. 취직인허증을 받을 때는 친권자 또는 후견인 및 학교장의 서명을 받아 사용자가 될 사람과 근로청소년 본인이 함께 서명하여 신청해야 한다. 취직하려는 어린이의 서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6. 어린이는 위험한 때 맨 먼저 구출하여야 한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면 어린이는 가장 먼저 구출되어야 한다. 박근혜 씨가 징계를 받은 것은 국가 원수로서 어린 학생들이 죽어갈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뒷유리에 이런 글을 붙이고 다닌다. “아이 먼저 구출해 주세요.” 교통사고가 나서 차 안에 사람을 구출해야 될 때는, 차 안에 타고 있는 아이를 먼저 구출해 달라는 문구이다.
7.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어린이를 사용해서 구걸을 시키는 일이 많았다. 세계 역사를 보면 산업 현장에서 어린이와 여자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근로 기준법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8.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 병든 어린이는 치료해주어야 하고, 신체와 정신에 결함이 있는 어린이는 도와주어야 한다. 불량아는 교화하여야 하고 고아나 부량아는 구호하여야 한다.
굶주린 어린이가 있으면 먹여야 하는 것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이고, 병든 아이가 있으면 치료해 주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의무이다. 옛날에는 신체와 정신에 결함이 있는 아이가 있으면 병신이라고 말하며 보호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신체와 정신에 결함이 있는 어린이가 있으면 국가가 많은 돈을 들여 보육하고 있다. 불량한 어린이가 있으면 처벌 위주가 아니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화한다. 고아나 길거리를 떠도는 아이들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있다. 청소년 쉼터 같은 제도가 그것이다.
9.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도의를 존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세종대왕은 음악을 백성들을 교화의 방법으로 사용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인생을 즐기게 하고 세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게 하는 것도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10. 어린이는 좋은 국민으로서 인류의 자유와 평화와 문화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의 어린이는 우리나라의 미래의 주인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주인이다. 우리나라의 범위를 벗어나 전 인류의 삶에 관여하고 공헌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어린이는 단순히 아직 덜 자라서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주인들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 세대의 주인이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계신 미래를 완벽하게 이루어놓을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과 사람들을 이어 놓으셨다. 그로 통해 이제 곧 올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 존재가 되신다.
어린양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찬양과 기도를 받으신다. 생물들과 장로들이 어린양에게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바치고 있다. 거문고는 찬양을 의미하고 향은 기도를 의미한다. 하나님 외에는 찬양과 기도를 받으실 존재가 없다. 어린양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대접 받고 있다.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우리는 어린양의 시대에 새로운 땅에서 왕처럼 살게 된다. 하늘에서 왕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왕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지금의 땅이 망하고 하나님이 이루실 새로운 땅에서 왕처럼 살게 된다는 것이다. 왕이 아니라 왕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계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