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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5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예수님 안에 거하라. / イエス様につながっていなさい。
본문; 요한복음 15:1-10
요 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10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1. 「わたしはまことのぶどうの木、わたしの父は農夫である。2. わたしにつながっていながら、実を結ばない枝はみな、父が取り除かれる。しかし、実を結ぶものはみな、いよいよ豊かに実を結ぶように手入れをなさる。3. わたしの話した言葉によって、あなたがたは既に清くなっている。4. わたしにつながっていなさい。わたしもあなたがたにつながっている。ぶどうの枝が、木につながっていなければ、自分では実を結ぶ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あなたがたも、わたしにつながっていなければ、実を結ぶことができない。5. わたしはぶどうの木、あなたがたはその枝である。人がわたしにつながっており、わたしもその人につながっていれば、その人は豊かに実を結ぶ。わたしを離れては、あなたがたは何もできないからである。6. わたしにつながっていない人がいれば、枝のように外に投げ捨てられて枯れる。そして、集められ、火に投げ入れられて焼かれてしまう。7.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につながっており、わたしの言葉があなたがたの内にいつもあるならば、望むものを何でも願いなさい。そうすればかなえられる。8. あなたがたが豊かに実を結び、わたしの弟子となるなら、それによって、わたしの父は栄光をお受けになる。9. 父がわたしを愛されたように、わたしもあなたがたを愛してきた。わたしの愛にとどまりなさい。10. わたしが父の掟を守り、その愛にとどまっているように、あなたがたも、わたしの掟を守るなら、わたしの愛にとどまっていることになる。
지난 주일까지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이기적인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향임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회개를 반복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은혜를 매일 누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회개함으로 우리의 이기적인 자아는 죽고, 자기중심적인 내면은 비워지는 것입니다. 비워지면 비워진 만큼 나의 내면세계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충만의 능력이 우리 각자의 현실적인 삶에서 실제로 체감되고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감동과 감격이 회복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성도라고 부릅니다. 또한 기독교인, 크리스천이라고 호칭합니다. 기독교인이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지요. 기독교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종교를 뜻하는 말이니까, 기독교인이란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애초에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스스로를 제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 12:49-50)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서도 처음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제자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새롭게 부르는 말이 등장하는데요. 사도행전은 그 사실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6)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그 말씀을 따르기 시작한 제자들에게 주변의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의 사람(그리스도에게 매인 사람들)이라는 뜻의 호칭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분명히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그 무엇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보통의 보편적인 종교인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무엇인가 고유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른 종교인들과는 독특하게 구별되는 고유한 명칭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단지 여러 가지 종교들 중에 하나인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종교적인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가치를 따르는 명확히 다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복음을 믿으면 우리는 분명히 세속과는 명확히 다른 가치관을 따르게 됩니다. 만일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의 시간과 장소를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도 보통의 일반적인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과 구별되고 있지 않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후 13:5)
우리가 스스로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가... 시험해 보고 확증할 때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 여부가 기준이 된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증거와 기준은 앞으로 다시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함께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선은 우리에게 당신 안에 머물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4절 앞부분을 개역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면 이렇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 15:4a)
이 말씀은 1차적으로 내 안에 예수님께서 거하시는가의 여부는 우선적으로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일본어 성경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는 つながっていなさい。즉, 연결되어 있으라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원어 성경의 표현을 찾아보았습니다.
(메이나테 엔 에모이) 라고 발음을 하구요... 내 안에 머물라.. 혹은 기거하라..
이렇게 직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이어지는 구절에 보니까...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된다고 할 때에도 이 거하다는 뜻의 “메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말로 ‘거하다’는 말과 일본어의 ‘연결되다’는 표현으로 번역된 말의 본래 뜻은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가 서로 하나가 되어 함께 공존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뜻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와같이 우리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동거하는 삶으로 말미암아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을 명실상부한 그리스도인답게 지켜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상태, 즉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함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상생활을 순조롭고, 복되게 살고 싶다면 당연히 그리스도와 친밀히 교제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복스럽고, 든든하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과 연결되어 주님과 친밀한 일상생활을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해서 애를 쓰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항상 연결되어 동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생활하는 데에는 교회의 규범을 잘 지키고, 습관을 잘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교회의 규범과 습관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행동을 무의미하게 따라 흉내 내는 것은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으로의 자유와 능력은 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를 이어서 교회를 다니고, 몇 번이나 성경을 통독하고, 세속적인 그 어떤 것과도 거리를 두고, 심지어 속된 그 어떤 것과도 접촉을 금하고 해도 넉넉한 삶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짓눌린 삶을 살거나, 타인을 억압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종교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종교적인 규범과 율법을 지키는 일에 모든 삶을 쏟아 부은 이들이 곧 바리새인들과 같은 이들이었잖아요.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의 외식을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7)
회칠한 무덤이란... 외부의 인테리어는 석회를 발라서 매우 하얗고 깔끔하게 치장하였지만, 결국 그 용도가 무덤에 불과하기에 그 내부 공간에는 죽음의 뼈와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것이 곧 외식하는 종교인의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삶일까요?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손질하시고, 가꾸시는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혹은 그 포도나무가 살아 있는 것처럼 함께 살아 있는 가지처럼 사는 것이지요. 열매를 맺는 삶인 것입니다. 생명수 물기가 통하여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생명수의 물기가 통하지 않고 말라 버린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 안에 이런 역사를 이미 시작하셨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여기서 너희는 곧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구요. 그리스도인들 안에 착한 일, 즉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일을 “예수의 날”까지..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종말의 날”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루실 것을 믿는다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바울에게 성령의 감동을 통해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성경의 약속은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자 안에 성령의 모습으로 살아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육신의 감각으로 느끼기 위해서 애쓰고 몸부림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믿음이나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어떤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믿으시라는 권면은 부담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그저 믿음으로 반응하라는 뜻이지요.
다시 말해 비록 몸으로 느껴지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된 것을 그저 믿는 마음으로 수용하고 따르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믿는 마음, 이것을 마음의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마음의 무게중심을 두고 행동하는 것이 믿는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적인 것은 육신적인 것으로 판단하거나 감각하거나 혹은 증명할 수 없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단지 육신적인 것으로만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3)
따라서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가 아닌가를 기분이나 감정에 의해서만 느끼려고 애쓰다가 느껴지는 만큼만 인정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임재하심을 믿을 수 있을 것일까요? 가장 우선적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내면세계에 담고 기억하고 있을 때 임재하심을 알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우리가 감정적으로, 혹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우리의 몸이 그분을 체감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생각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이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인데요. 이 약속을 따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머무르며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문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과 친밀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주님께 관심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막 떠오르고, 기억이 날까요? 자신은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있는 성경은 거들떠도 안보고 매일 드라마나 혹은 재미있는 영상, 유익한 정보 영상, 남들의 성공담, 혹은 일상생활의 노하우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도 갑자기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막... 암송이 되고 떠오르고 할까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를 대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을 들고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기적처럼 베풀어 주실 수는 있어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기만 하면 막무가내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통째로 머릿속에 넣어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한국의 어떤 목사님은 자신을 예수 믿게 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나가서 기도하는 부인을 잡으러 교회에 갔다가 성경을 읽고 회심했다고 간증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외국의 어떤 대적자는 성경의 오류를 파헤치겠다는 일념으로 성경을 진지하게 정독하다가 회심하여 역사에 남을 위대한 소설인 벤허라는 작품을 쓰기도 하지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예수님의 말씀과 진지하게 동행하면 반드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놀라운 일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지요. 어쩌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래서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돠는데요. 예수님과 동행하면 자기 욕심대로, 자기 주관대로 살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에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 안에 머물 때에만 우리는 우리다움을 회복하여 사람다워집니다. 아름다워집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행복을 얻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 사랑하는 능력을 체감할 수 있게 됩니다.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이런저런 조언들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방법들을 구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그런 심리적인 방법들에 매여 사는 경우를 봅니다.
하지만, 여러분 분명히 알고 계셔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살다 보면 결국 문제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친밀하게 주님 안에 거하는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자유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이들에게 와서 거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 중에 그 내면에 예수님께서 거하시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아직 회개하지 않아 죄사함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고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회개하고 죄사함을 얻어 구원받아 영생의 소망으로 사는 이들이라면 주님은 분명히 성령님으로 내주하여 동행하는 사람인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자주... 수시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 안에 거하는 일상을 하루에 하루만큼 살아가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천국의 문 앞에 도달한 자신의 모습에 감격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과 친밀하게 동행함으로 누리는 참된 자유와 열매가 풍성한 일상을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주님의 임재하심 안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종교적으로 애쓰고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을 친밀하게 가까이 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순종할 때 자연스레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신실하게 되고 두려움과 염려의 공격이 미약해지다가 마침내 소멸되어 버린 일상의 기적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세운 인생의 집은 그 어떤 홍수와 폭풍에도 쓰러지거나 쓸려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참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자신을 거하게 함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예수님과 동행하는 감격스런 일상을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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