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능성구씨 초간보에는 누가 시조인지 기록을 하지 못했다.
1) 구존유는 단지 1代로만 기록하였다.
2) 후대에 족보를 만들면서 구존유를 시조라 칭했다.
3) 능성구씨 초간보 작업 진행 주도자들은 창원구씨이기 때문에 시조(始祖)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4) 능성구씨 초간보은 구인, 구사심, 구사맹, 구봉령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5) 능성구씨 초간보는 서문과 발문이 없다.
2. 구존유는 어느 시대의 인물인지?
1) 중국 송(宋) 나라에서 서기 1224년 신안주씨 주잠외 7학사들과 고려로 귀화했다고
기록한 내용도 있고
2) 고종실록에는 서기 1212년에 귀화했다는 기록이 있으면
3) 주잠의 출생과 졸년 : 1194년 생 ~ 1260년 졸
4) 구존유의 출생과 졸년 : 1164년 생 ~ 졸 미상(능성구씨시량공파보 서문에 기록)
5) 신안주씨족보에 기록 내용
1981년 신안주씨 족보에 기록 내용 : 구존유는 주여경의 사위로 기록
2007년 신안주씨 족보에 기록 내용 : 주잠의 사위로 기록
☞ 주잠과 구존유의 출생 연도를 검토하면 구존유는 주잠보다 30세가 많다
6) 구존유는 고려인인지 중국 남송인인지 아니면 가공인물인지 알 수가 없다.
3. 구존유의 관직 검토
1) 능성구씨 초간보에는 벽상삼한삼중대광검교상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사전에 기록을 따르면 [역사] 고려 시대, 문산계(文散階)의 정일품(正一品) 품계.
삼중대광(三重大匡)이나 벽상삼한(壁上三韓)이라 이르다가 1362(공민왕 11)년에
둘을 합하여 이 이름으로 하였다.
벽상삼한삼중대광의 품계 1362년에 만들어진 품계이다.
이 기록으로 보면 구존유는 1362년 이후의 사람으로 추정한다.
2) 신안주씨 족보에는 검교상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4. 구존유의 배위 기록
1) 능성구씨 초간보에는 배위의 기록은 없다.
5. 구민첨은 구존유의 아들이 아니다
1) 구존유의 출생 연대와 구민첨의 출생 연대를 검토하면 구민첨이 구존유보다 나이가 많다.
면양복씨족보(면천복씨족보)를 보면 알 수가 있다.
2) 효종실록(1657년)에 구민첨을 능주구씨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3) 능성현이 서기 1632년에 누구의 고향이라 하여 능주로 변경되었다.
6. 능성구씨 초간보는 엉터리이면 구존유는 가공인물이 되어 버렸다.
1) 능성구씨 족보가 엉터리 되게 된 것은 창원구씨이면서 능성구씨로 둔탁한 인물들이
주도가 되어 능성구씨 족보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2) 특히 고려시대 인물들은 대부분 능성구씨 족보에 등재되어 있고,
창원구씨 중시조 이하에서도 능성구씨로 둔탁한 문중과 사람들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