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다르고 올 해 다르고
예부터 전해 오는 말에 “작년 다르고 올 해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인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건강도 나이 따라 더 나빠진다는 의미입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선인들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경험을 시도 때도 없이 절실하게 느낍니다.
요즘 신문의 부고 난을 보면 저명인사들의 대부분이 75세에서 85세 전후에 유명을 달리합니다. 거의가 지병으로 사망합니다. 이런 부고를 접할 때마다 내 나이 81세를 저울질해 보면서 죽음이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문턱에 섰음을 실감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 건강상태를 생각해 보면서 죽음이라는 단어에 강한 자기부정을 하는 걸 보면 생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한 사람인가 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인생을 연구하는 철학자도 절대적 존재인 신에 의지하는 종교인들도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려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습니다. 아침 먹으라는 아내의 수없는 재촉에도 이불깃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등교하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잠투정을 합니다. 기력 즉 진이 몸에서 하루가 다르게 빠져나가나 봅니다.
나는 5년 전 쯤에 동에서 운영하는 체력단련장에 나가 매일 40분씩 런닝머신에서 걷기를 하는 등 약 2년 동안을 간단한 운동을 해왔는데 3년 전에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럼증 때문에 지금까지 불명의 병마와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대학병원은 다 찾아다니며 정밀검사를 했는데 의사들마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노인성 병은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진단만 하고 처방이 없습니다. 처방이 없다는 의미는 치료약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지럽다 보니 제일 겁나는 것이 낙상입니다. 이 나이에 낙상하면 뼈가 부스러져 금방 죽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돈이 필요해서 단장에 의지하고 아내와 함께 왕복 50분쯤 걸리는 은행에를 갔습니다. 걸어서 다녀오면 하루운동은 한 셈이라는 계산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데 중간에 은행에서 휴식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50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걷기가 어제따라 어찌나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없는지 그만 중간에 의자에 앉아 쉬고야 말았습니다. 보통 평소에 1시간쯤 걸을 때는 쉬는 경우가 없었는데 어제는 너무나 다리가 아프고 유난히 숨이 찼습니다.
나는 40여 년간 피워온 담배 때문에 폐쇄성폐질환(폐기종)에 걸려 숨쉬기에 늘 불편을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던 해에 담배를 끊고 18년 째 기도를 넓혀주는 흡입기로 치료를 해 오고 있습니다. 이 질환은 꽈리처럼 생긴 폐 조직에 탄력성이 떨어져서 오므렸다 폈다 하는 기능이 망가져 들여 마신 공기를 다시 내 뿜지를 못해 공기를 순환시키지 못함으로써 산소공급 부족으로 숨을 잘 못 쉬는 고약한 불치의 질병입니다. 그래서 산소 공급부족으로 조금만 걷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하면 숨이 가빠 어떤 때는 질식할 것만 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내 폐 기능은 현재 45%밖에 안 됩니다. 이 병에는 폐렴이 가장 위험합니다. 실제로 급성폐렴으로 2016년에는 1개월, 2017년에는 10일간 입원도 했습니다. 병이 심해지면 코에다 산소기를 꼽고 호흡을 해야 합니다. 산소통을 끼고 마지막 삶을 살아 갈 가 봐 솔직히 겁이 납니다.
이 외에도 신경계통, 신장 기능, 전립성비대증 등 다섯 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글자 그대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입니다. 그래도 나이가 좀 젊었을 때는 그런 대로 견디며 지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저항력이 약해져 각종 병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요즘은 몸을 추스르기가 매우 힘듭니다. 바깥출입도 삼가게 되고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오라고 합니다. 움직이기가 힘들어서입니다. 매월 열리는 대학동창회에 못 나간지도 5개월이 됩니다. 삶의 질이 떨어지면서 모든 의욕도 살아져 꼼짝 않고 자꾸 눕고만 싶어집니다. 활동량이 줄어들고 몸이 약해지니 제일 소화기능이 뚝 떨어져 잘 먹지를 못합니다. 그런데도 아랫배만 자꾸 나옵니다. 이게 삶인가 싶어 인생에 대한 회의도 깊어지고 건강에 대한 공포증으로 신경만 날로 날카로워져 아내에게 자주 신경질도 냅니다.
호스피스 간호사로 생활했던 경험을 기록한 브로니 웨어의 [죽을 때까지 가장 후회하는 것 다섯 가지]에 따르면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후회는 다음 다섯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 평생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 둘째 일만하고 살았던 것. 셋째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넷째 친구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던 것. 다섯째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안했던 것 등입니다. 여기에 나보고 두어 가지를 더 꼽으라고 하면 여섯째 젊어서 건강을 챙기지 못한 것. 일곱째 여행을 맘껏 다녀보지 못한 것. 여덟째 자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 등을 들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 때 그렇게 했어야 하는 데~”하고 후회하는 사항들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주제들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실행할 수 있었던 평범한 생활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알고도 실천을 하지 아니했으니 인생을 헛산 셈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는 거대한 담론에서 추론하는 해답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인식 보다 실존적이고 형이하학적인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해답은 간단합니다. 인생이란 죽음을 향해 달리는 외길 기차와 같은 것입니다. 달려야 쓰러지지 않는 자전거와 같이 쉼표도 없이 전력 질주하여 삶의 종착역에 다다르기 위한 죽음의 여행입니다. 어찌 보면 죽기 위하여 살아간다는 역설이 인생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왜 그리도 험난하고 고통스럽고 눈물겨워야 하는가? 한 90세 쯤 살다가 고통 없이 아내와 같은 날 죽는 그런 행복한 삶은 없는 것인가?
100세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끼는 후회는 오래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요소인 건강과 재화를 챙기지 못한 점입니다. 늙어갈수록 필요한 것은 바로 돈과 건강입니다. 그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 없는 게 현실이며 진실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요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한 게 숨길 수 없는 본질이요 해답입니다. 돈과 건강은 상호 필요한 보완재입니다.
사람들은 늙고 나서야 제대로 사는 법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버스 지나간 뒤에 손을 드는 경우와 같습니다. 작년 다르고 올 해 다른 게 노인들의 건강상태입니다.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다가 죽고 싶은 욕심에서 여기서 붓을 놓고 단장에 의지하여 1시간 쯤 동네를 돌고 와서 이 글을 카페에 올려야겠습니다.지산 (2018.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