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들이 음악을 연주하다가 일제히 웃통을 벗어제켰다. 티브이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런걸 대비해서 평상시 운동을 했는지 다들 몸이 균형이 잡혀 있었다. 특히 보컬을 맡고 있는 록밴드 가수의 근육은 이소룡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웨이트 트레이닝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연지는 부끄러운듯 겸연쩍게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외국 록밴드 같이 공연하네요. 저도 이런건 처음이라 뭐라 말하긴 좀 그런데 열정 하나만큼은 대단하네요. 설마 밑에 옷까지 벗는 것은 아니겠죠. 하하.'' ''어머!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이런걸 보기가 부끄럽긴 하지만 한편으론 멋있네요. 배나온 사람도 없고.'' ''평소에 몸관리를 하나봐요. 저걸 보니 저도 운동하고픈 욕망이 막 기지개를 켜네요.'' ''현씨도 운동하면 참 멋있을 것 같아요. 키도 크시겠다 게다가 날씬하시고 거기에 근육까지 붙으면 저기 밴드분들보다 나을 것 같은데요.'' ''평소에 몸관리를 하나봐요. 저걸 보니 저도 운동하고픈 욕망이 막 기지개를 켜네요.'' ''현씨도 운동하면 참 멋있을 것 같아요. 키도 크시겠다 게다가 날씬하시고 거기에 근육까지 붙으면 저기 밴드분들보다 나을 것 같은데요.'' ''정말요? 연지씨가 그렇게 얘기하시니 이거 운동 좀 해야겠는데요. 하하.''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기분이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생각이 드는 것이 이제 연지는 나를 좋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록음악을 공연하는 라이브 까페에서 한참을 있다가 나와서 나는 연지를 집근처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녀의 집근처에 '목화다방' 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까지 그녀를 바래다 주었고 일주일 후인 다음주 토요일날 오후 2시에 '목화다방' 에서 만나기로 하고 연지와 헤어진 후 시간을 보니 밤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난 또 한참을 걸어 지하철을 탄 후 청량리에서 버스를 타고 사촌형네 집으로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서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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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와 만나는 그 다음주 토요일을 기다리느라고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을 잘 모를 정도였다. 분명이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밤되면 다시 사촌형 집으로 왔는데 그것외에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똑같은 일상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특별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 한가지 있긴 있었다. 재수 학원에서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자습시간에 갑자기 아무말 없이 몸을 돌려서 내 책상위에 과자와 사탕을 놔둔 것이었다. 순간 난 적잖이 당황했다. 평상시 전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재수학원 같은 반 여학생이 나에게 말없이 과자와 사탕을 주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곰곰히 생각하니 그건 관심의 표시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성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여학생은 내게 프로포즈 한 것이다. 그럼 내가 그녀에게 과자와 사탕 잘 먹었다 얘기하면서 데이트 신청만 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때 난 연지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받고도 그 여학생에게 말을 걸고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여학생도 얼굴이나 몸매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얼굴은 보통보다 예뻤으며 몸매는 꽤 좋은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학생이 먼저 프로포즈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여학생을 그때 사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원에서 매일 보고 공부도 같이 하며 밥도 같이 먹으면서 연지와는 다른 사랑이 싹 텄을 것이다. 내가 대학로에서 연지를 먼저 만나지 만나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여학생은 나중에 다른 재수생과 커플이 되었다. 매일 둘이 붙어 다니는 걸 보면서 연지와 그 여학생 둘다 사귈걸 그랬나 하는 심리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마침내 애타게 기다리던 토요일이 다시 왔다. 나는 사촌형 집에서 일찍 나와 재수학원에 가서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 책을 펴놓고서 연지와의 만날 시간을 기다렸다. 어느덧 시간이 가까워졌고 나는 시간에 맞추어 학원을 떠났다. 내가 목화다방에 도착한 것은 1시 55분 경이었다. 연지는 아직 오지 않고 있어서 난 조용하고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잠시 후 화사하게 가을 코스모스 처럼 화사하게 웃으면서 연지가 들어왔다. 목화다방에서는 간단하게 차만 마시고 나는 그녀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갔다. 서울극장에서 상연하는 배우 최재성이 나오는 '작은 고추' 라는 복싱영화였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연지와 함께 경양식 집에 들어가 돈까스를 시켰다. 돈까스가 나온 후에 맥주 3병을 시켜 그녀와 같이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배가 몹시 고파서 허겁지겁 돈까스와 맥주를 비웠다. 그런데 평소보다 술을 적게 마신 상황인데 갑자기 내가 그녀에게 거짓말 한 사실을 떠올렸다. 건국대에 다닌다는 불필요한 거짓말을 한것이 목에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난 진실을 그녀에게 말하기로 결정했다. 조금 마신 술이지만 술기운이 올라오면서 마음 속에 진실의 문이 열려버렸다. 나는 사실대로 그녀에게 다 얘기 했다. 건국대가 아니고 강원대 축산학과를 다녔으며 전공이 맞지 않아 다시 대입시험을 준비중이고 지금 서울에서 재수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처음에 그녀는 많이 놀라는 눈치였으나 곧 안정을 찾고 나를 질책하듯히 말했다. "그럼 처음부터 사실대로 얘기하지 그게 뭐 그렇게 숨길 일이라고 그러셨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분이라는 걸 아니까 그걸로 제가 문제 삼지 않을게요." 내 생각과는 달리 연지는 나의 거짓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맞은 편에 앉아 있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감동을 했다. "연지씨! 정말 고마워요. 저는 무척 걱정을 했거든요. 처음에 괜한 거짓말을 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었어요." "괜찮아요. 하지만 앞으로는 저에게 거짓말 하시면 안되요. 그럼 진짜로 안만날 거예요." "하늘에 두고 맹세하는데 절대 거짓말 하지 않을게요." 레스토랑을 나왔을때 난 연지의 손을 잡고 다정한 여인이 되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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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시험이 2주일 밖에 안남았기에 연지하고 시험끝나는 주 토요일에 맘모스 백화점 시계탑 앞에서 낮 12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입시험을 다시 봤다. 그러나 별로 시험을 잘 보지 못해서 기대했던 대학은 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냥 아무 대학이나 갈까? 차라리 전문대를 갈까? 하는 갈등 속에서 며칠을 지냈다. 그런 와중에도 연지와의 약속은 마음에 새기고 그날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연지를 만날 토요일 날이 왔다. 나는 정선 집에서 아침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청량리역이 11시 5분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서 설레이는 마음을 가지고 시계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나는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어떻게 된일인지 그때 나는 약속장소가 맘모스 백화점 앞 시계탑이 아니고 청량리역 시계탑 앞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청량리역 시계탑 앞에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연지를 기다렸다. 시간이 12시가 되어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좀 늦게 오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며 애가 타게 그녀를 기다렸지만 12시 30분이 되어도 오후 1시가 되어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던 시절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상황이지만 그 당시에는 핸드폰은 고사하고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오후 5시까지 연지를 기다리다가 결국은 그녀를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너무나 애가 타고 마음이 메어지는 듯 했다. 그때였다. 문득 이쪽에 시계탑이 두군데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는 맘모스 백화점 시계탑으로 미친듯이 달려갔다. 하지만 연지는 그곳에 없었다.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내 입으로 청량리역 시계탑은 혼잡하니 맘모스 백화점 시계탑에서 만나자고 해놓고 그 중요한 걸 착각해버렸던 것이다.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난 온몸에 힘이 쭉빠지고 스스로 책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너무 시간이 많이 자나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돌이킬 방법도 없었다. 그녀의 집 전화번호도 몰랐기 때문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난 근처 생맥주 집에 가서 자책을 하면서 술을 마시다 밤 10시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 집에 내려와 있으면서 대입시험 성적을 보니 생각보다 너무 안좋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성적에 맞추어 아무 대학이나 과를 결정하기 보다는 그냥 군대나 가자로 마음의 결정을 하였다. 부모님은 당연히 실망을 하셨지만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새로 공부해서 대학을 가던가 아님 괜찮은 직장에 취업을 하던지를 양자택일할 생각이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과 자격지심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군대가기 전에 마음에 맞는 친구와 서울에 가면서 일을 하면서 연지를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너무 어이없는 상황이어서 그런 미련이 남았다. 물론 한창 창춘이고 혈기왕성한 나이가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것도 있었다. 연지를 찾으러 서울로 올라가서 그녀를 찾는 벽보도 붙이고 지하철 성신여대 근처에 있는 스탠드빠의 웨이터도 하고 대학로 신문지국에서 배달도 하면서 그녀를 찾기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하였지만 결국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사랑이란 것은 때로 우연히 다가왔다가 이렇게 어이없이 끝나게 만드는 심술가득한 속성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다. 결국 난 그녀를 단념하고 대학로에 쌓여있던 마음 속 추억의 낙엽들을 쓸어내야 했다. 이따금 대학로를 생각하며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연지를 떠올릴 뿐이었다.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랑은 비록 그 대상이 내 옆에 없더라도 생의 어떤 부분을 그림으로 그리며 아름답게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다. 어디선가 젊은 날의 기억을 담은 바람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