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熱河日記)
조선 정조 때에 박지원(朴趾源)이 청나라를 다녀온 연행일기(燕行日記).
26권 10책. 필사본. [간행경위] 간본(刊本)으로는 1901년 김택영J00158(金澤榮J00158)이 ≪연암집 燕巖集≫ 원집에 이어 간행한 동 속집 권1·2(고활자본)에 들어 있고, 1911년 광문회J49745(光文會J49745)에서 A5판 286면의 활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간행한 신활자본 ≪연암집≫ 별집 권11∼15에도 전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유편도 있고 1956년 자유중국의 대만대학(臺灣大學)에서 동 대학 소장본을 영인한 것도 있다. [내 용] 1780년(정조 4) 저자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일대를 견문하고 그 곳 문인·명사들과의 교유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각 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강록〉은 압록강으로부터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으로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잡지〉는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간에 겪은 일을 필담(筆談) 중심으로 엮고 있다. 〈일신수필〉은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는 병참지(兵站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관내정사〉는 산하이관에서 연경(燕京)에 이르는 기록이다. 특히 백이(伯夷)·숙제(叔齊)에 대한 이야기와 〈호질 虎叱〉이 실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막북행정록〉은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이다. 〈태학유관록〉은 열하의 태학(太學)에서 머무르며 중국학자들과 지전설(地轉說)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구외이문〉은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환연도중록〉은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6일간의 기록으로 교통제도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금료소초〉는 의술(醫術)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옥갑야화〉는 역관들의 신용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허생(許生)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뒷날에 이 이야기를 〈허생전〉이라 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거론하였다. 〈황도기략〉은 황성(皇城)의 문물·제도 약 38종을 기록한 것이다. 〈알성퇴술〉은 순천부학(順天府學)에서 조선관(朝鮮館)에 이르는 동안의 견문을 기록하고 있다. 〈앙엽기〉는 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주요명소 20군데를 기술한 것이다. 〈경개록〉은 열하의 태학에서 6일간 있으면서 중국학자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황교문답〉은 당시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하여 소견을 밝혀놓은 기록이다. 〈행재잡록〉은 당시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것이다. 그 중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취한 정책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반선시말〉은 청나라 고종이 반선(班禪)에게 취한 정책을 논한 글이다. 〈희본명목〉은 다른 본에서는 〈산장잡기〉 끝부분에 있는 것으로 청나라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에 행하는 연극놀이의 대본과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찰십륜포〉는 열하에서 본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망양록〉과 〈심세편〉은 각각 중국학자와의 음악에 대한 토론내용과 조선의 오망(五妄),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곡정필담〉은 주로 천문에 대한 기록이다. 〈동란섭필〉은 가악(歌樂)에 대한 잡록이며, 〈산장잡기〉는 열하산장에서의 견문을 적은 것이다. 〈환희기〉와 〈피서록〉은 각각 중국 요술과 열하산장에서 주로 시문비평을 가한 것이 주요내용이다. ≪열하일기≫는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 北學議≫와 함께 “한 솜씨에서 나온 것 같다(如出一手).”고 한 평을 들었다.
주로 북학을 주장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고, 당시에 정조로부터 이 책의 문체가 순정(醇正)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으나 많은 지식층에게 회자된 듯하다. [의 의] 종래의 연행록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열하일기≫는 박지원의 기묘한 문장력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당시의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한 조선 후기 문학과 사상을 대표하는 걸작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熱河日記解題(민족문화추진회, 1983), 熱河日記의 敍述原理(李鐘周, 韓國學大學院碩士學位論文, 1982), 熱河日記의 文學的硏究(姜東燁, 建國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82).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충남대학 도서관 소장 연암 수택본(手澤本) 26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열하일기서(熱河日記序)><도강록(渡江錄)>:서문은 필자 미상이나, 풍습 및 관습이 치란(治亂)에 관계되고, 성곽·건물·경목(耕牧)·도야(陶冶) 등 이용후생에 관계되는 일체의 방법을 거짓없이 기술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또 <도강록>은 압록강에서 랴오양[遼陽]까지 15일간(1780.6.24∼7.9)의 기행문으로 중국인이 이용후생적인 건설에 심취하고 있음을 서술하였다.
권2<성경잡지(盛京雜識)>: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까지 5일간의 기록으로, 특히 <속재필담(粟齋筆譚)><상루필담(商樓筆譚)><고동록(古董錄)>은 흥미 있는 내용이다.
권3<일신수필(馹隨筆)>:신광녕(新廣寧)에서 산하이관까지 9일간의 기록으로, 그 서문 중의 이용후생학에 대한 논술이 독특하다.
권4<관내정사(關內程史)>:산하이관에서 연경까지 11일간의 기록으로, 여기 수록된 한문 고대소설 <호질(虎叱)>은 연암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의 하나이다.
권5<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연경에서 열하까지 5일간의 기록으로, 열하에 대하여 소상히 기록하였고, 그곳을 떠날 때의 아쉬운 심경을 그렸다.
권6<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열하에 있는 태학(太學)에서 6일간 지낸 기록으로 당시 중국의 명망 있는 학자들과 더불어 나눈 한·중 두 나라 문물제도에 관한 논평 및 지동설(地動說)·달세계 등에 관한 토론이다.
권7<구외이문(口外異聞)>:구베이커우[古北口] 밖의 기문이담(奇聞異談)을 적은 것으로, 반양(盤羊)에서 천불사(千佛寺)에 이르는 60여 종의 이야기이다.
권8<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열하에서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는 도중 6일간의 기록으로, 대개 교량·도로·방호(防湖)·방하(防河)·탁타(駝:庭園師)·선제(船制) 등에 관한 논평이다.
권9<금료소초(金蓼小)>:주로 의술(醫術)에 관한 기록으로 《연암집(燕巖集)》에서는 이를 <보유(補遺)>라 한다.
권10<옥갑야화(玉匣夜話)>:이본(異本)에 따라서는 <진덕재야화(進德齋夜話)>로 된 것도 있다. 여기 수록된 <허생전(許生傳)>은 연암 소설뿐만 아니라 한국 소설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권11<황도기략(黃圖紀略)>:황성(皇城)의 구문(九門)에서 화조포(花鳥鋪)까지 38종의 문관(門館)·전각(殿閣)·도지(島池)·점포(店鋪)·기물(器物) 등에 관한 기록이다.
권12<알성퇴술(謁聖退述)>:순천부학(順天府學)으로부터 조선관(朝鮮館)에 이르기까지 역람한 기록이다.
권13<앙엽기(葉記)>: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20개의 명소(名所)를 두루 구경한 기록이다.
권14<경개록(傾蓋錄)>:열하의 태학(太學)에서 6일간 머물며, 그곳 학자들과 응수한 기록이다.
권15<황교문답(黃敎問答)>:황교와 서학자(西學者)의 지옥(地獄)에 관한 논평이다. 끝에는 세계의 이민종(異民種)을 열거하는 가운데 특히 몽골과 아라사 종족의 강맹(强猛)함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권16<행재잡록(行在雜錄)>:청나라 황제의 행재소(行在所)에서의 자세한 견문록이다. 여기서 특히 청나라의 친선정책(親鮮政策)의 연유를 밝혔다.
권17<반선시말(班禪始末)>:청 황제의 반선(班禪)에 대한 정책을 논하고, 또 황교(黃敎)와 불교가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권18<희본명목(戱本名目)>.
권19<찰습륜포(札什倫布)>:찰습륜포란 티베트어(語)로 ‘대승(大僧)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열하에 있을 때의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권20<망양록(忘羊錄)>:음악에 관하여 중국 학자들과 서로의 견해를 피력한 기록이다.
권21<심세편(審勢編)>:당시 조선 사람의 오망(五妄)과 중국 사람의 삼난(三難)을 역설한 기록이다. 북학(北學)에 대한 예리한 이론을 펼쳤다.
권22<곡정필담(鵠汀筆譚)>:중국 학자 윤가전(尹嘉銓)과 더불어 전날 태학(太學)에서 미진하였던 토론을 계속한 기록이다. 즉, <태학유관록> 중에서 미흡하였던 이야기인 월세계·지전(地轉)·역법(曆法)·천주(天主) 등에 대한 논술이다.
권23<동란섭필(銅蘭涉筆)>:동란재(銅蘭齋)에 머물 때 쓴 수필이다. 주로 가사·향시(鄕試)·서적·언해(諺解)·양금(洋琴) 등에 대하여 쓴 것이다.
권24<산장잡기(山莊雜記)>:열하산장에서의 여러 가지 견문기이다. 특히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상기(象記)> 등은 가장 비장하고 기괴하게 묘사되었다.
권25<환희기(幻戱記)>:광피사표패루(光被四表牌樓) 아래서 중국 요술쟁이의 여러 가지 연기를 구경한 소감을 적은 이야기이다.
권26<피서록(避暑錄)>:열하의 피서 산장에서 지낸 기록이다. 주로 조선과 중국 두 나라의 시문(詩文)에 대한 논평이다. 한편 연암의 후손에 의하여 최근 <양매시화(楊梅詩話)>가 새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양매서가(楊梅書街)에서 중국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한시화(漢詩話)로서, 당시 옮겨 쓰려다가 우연히 누락된 것으로 짐작된다.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국판 286면 활자본으로, 32년 박영철(朴榮喆)이 6책 활자본으로, 48년 김성칠(金聖七) 국역본이 정음사(正音社)에서 각각 나왔으며, 56년 타이완[臺灣]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사본(寫本)을 영인(影印) 출판하였다. 또 최근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국역총서(古典國譯叢書)》 18∼19책으로 간행된 26권 2책의 이가원(李家源) 국역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