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인식이 반영된 또 한 편의 패러디-최원현의 수필 ＜세월을 닦으며＞를 중심으로

[늘샘]

현실의 인식이 반영된 또 한 편의 패러디

최원현의 수필 <세월을 닦으며>를 중심으로

박양근/부경대 교수(영어영문학과/평론가)

최원현의 <세월을 닦으며>는 현실의 인식이 반영된 도 한 편의 패러디이다. 칫솔로써 가족애의 농담(濃淡)을 다룬 이야기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 가는 실존적 자아에 대한 갈등과 해법도 엿보인다. 당연히 기승전결의 구조를 취할 수밖에 없다.

칫솔을 들었다. 헌데 내 칫솔을 빼냈는데도 통에는 여전히 네 개가 아닌가. 우리 집 식구는 네 식구인데 하나 더 있는 칫솔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동 367쪽)

작가 특유의 구성력이 돋보이는 기(起)다.

칫솔이라는 평이한 생활용품으로 인륜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끌어낸 기법이 노련하다. 게다가 향가인 <처용가>의 서사구조를 따온 듯한 인X도 주목할 만하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수적(數的) 잉여가 빚어낸 혼돈을 다룬다.

“동경 밝은 달에/밤들이 노닐다가/들어 자리를 보니/다리가 넷이러라.” 처럼 <처용가>에서는 여분의 다리 개수가 문제였다. <세월을 닦으며>에서는 칫솔 숫자가 가족보다 한 개 많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화해라는 질서의식에 다다르는가. 처용은 잉여의 혼돈과 뺏김의 허탈감을 ‘심적 여유’로 극복하여 악신을 감복시켰다. 최원현을 대리한 화자는 어떠한가?

먼저 승(承)에서 회상조의 무소유를 제시한다.“어린 날 손가락으로 소금을 묻혀 이를 닦고” “수학여행에서 친구와 함께 칫솔을 쓴”시절에는 소유욕이 없었다. 그런데 자식들이 커가자 그들의 칫솔에 비위가 상한다.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의 열도”가 식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마저 끼여든다. 그 반성이 결미에서 소금으로 이를 닦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렇듯이 소금은 사회적 자아를 일깨우는 일종의 각성제다. 처용이 노래로 심적 갈등을 풀었다면 화자는 이를 닦는 것으로 마음을 닦는다.

어쨌든 이 글은 소금이라는 과거지향성과 칫솔이라는 현실의식을 합쳐 가족애의 회복을 꾀하려는 시도의 글쓰기다.

전(轉)은 화자의 자격지심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좋아하면 그의 소유물을 사용하고 싶어한다는 고종사촌 동생의 일화를 끼워 넣었다. 칫솔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사실 규명을 떠난 공유지정(共有之情)의 예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 일화는 다소 인위적인 장치였다. 구성의 질서화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주제를 제시한 단락은 예상대로 결부(結部)에 자리한다. 남은 칫솔의 의미를 풀어 보려는 취지였다.

남은 칫솔 한 개는 공유의 칫솔? 그래, 비위생적이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본의 아니게 서로 서운하거나 못마땅하고 화가 날 대는 이 남은 칫솔을 공유의 칫솔로 해서 한 가족임을 확인하고, 직접 말하기가 멋쩍을 대도 이 칫솔을 쓰며 속마음을 나누면 어떨까.(동 369)

처용의 경우처럼 잉여에 대한 ‘심적 여유’가 형성되었다. 화해와 관용이다. 문제는 잉여의 본질적인 가치였다. “이 (여분의) 칫솔을 공유하여 속마음을 나눈다.” 고 한들 가족간의 굴곡진 감정이 해소될지 평지는 의문을 품었다. 각 식구는 제 칫솔을 사용함으로, 그것은 각자의 영역과 입지를 나타냄으로, 공유의 칫솔은 일시적인 편의에 그쳐버린다.

그러므로 여분의 칫솔을 포함하여 칫솔 한 개를 더 버리면 했다. 4명의 가족이 3개의 칫솔을 함께 사용할 때 무언의 가족애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취지이다.

왜, 화자는 가족애를 남은 칫솔에 결부시키려 애쓰는가. 화자가 유년기였던 때는 결핍의 시대였다. 지금은 잉여의 시대다. 전자는 추억에, 후자는 현실에 접근한다. 화자는 처용의 결정을 이해하고, 부족함으로 정을 키워온 과거의 세대에 속한다. “조금의 시간적 여유에 따랍붙은 온갖 상념”을 질서화 하기에는 소금이라는 결핍이 가져다준 추억과 애착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칫솔 통의 칫솔처럼 식구들 저마다 활짝 웃는”삽화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잉여라는 문제의 해법이 굴절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