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9.24 <내 생활 속 기계, 내 생각 속 기계>을 주제로 써 온 글을 돌려 읽으며 감상을 나누었다. 오늘은 강경란 샘이 글만 보내시고 사정상 불참하셨다. 완성된 글은 모두 5편. 각자 쓴 글을 제외하고 4편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글을 못 써 오셨지만, 자리를 빛내 준 샘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6개의 주제 중 절반을 함께 나눈 지라, 글만 보고도 누구의 글인지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글은 생각의 나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 모임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강경란 샘은 음성 지원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문체와 말씀하시는 방식이 일치되는 글이었다. 평소의 고민을 대안적 실천으로 이어가는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아줌마의 글이었다는 평이었다. 석유 에너지와 밀접한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을 기계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고의 과정으로 말한 다음 에너지 남용이 습관화된 우리를 돌아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하늘과 땅, 인간의 도를 거스르지 않기를 희망하였다.
양윤정 샘의 글은 곱씹으며 읽게 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글이었다는 평이다. 묘사력과 세련된 문체는 한 편의 시와 같아서 아무나 흉내낼 수 없다. 속도에 취해서 잃어버린 삶의 흔적을 되살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반성하게 하는 글이었다. 손편지를 쓰고 부치고 기디리는 과정, 완행 열차를 타며 느꼈던 낭만을 앗아간 ktx, 핸드폰이 없어서 약속시간 오롯하게 상대방을 위해 썼던 시간을 더듬게 해주었다.
우수경의 글은 개인적 체험을 성찰하며 적었기에 자기고백적이다. 개개인을 관통하는 시대적 흔적을 바탕으로 기계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고자 했다. 기계에 의존하기보다 삶의 주체로, 노동의 주체로, 개성적인 존재로 살아가기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다.
최성 샘의 글은 모두가 고대하며 펼치게 되는 글이다. 최성 샘의 첫 번째 글을 읽고 우리는 모두 최성샘앓이를 했다. 깨끗하고 맑은 영혼이 느껴지는 시와 같은 산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삶이 디지털 매체와 밀접한 것을 착안하고 그 중독 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책으로 해결하며 좋은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디지털 치매>, <모든 병은 몸 속의 정전기가 원인이다>에서 알게 된 정보를 알려주며, 우리 몸의 정전기를 차단하는 “접지”를 위해 광안리 바닷가를 맨발로 걸었다는 아름답고도 쉼의 궁극적인 방법을 알려주었다. 최성 샘의 가르침에 따라 당장 다음날 아침 개아들과 광안리를 맨발로 접지하였더니 너무 개운해서 낮잠까지 잤다. 다들 한 번씩 해보시길!
채상병 샘의 글은 어느 겨울날 전라남도 화순군 어시랑 마을이라는 네비 아가씨도 알려주지 않는 시골 사는 형님네를 방문한 일화를 바탕으로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기록한 것으로, 예전에 말로 들었을 때보다 글발이 빛나는 글이었다. 형님네가 땔감을 ‘손도끼’로 ‘손수’ 자르기를 선택하며 이기적으로 기계를 이용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가난하지만 행복한 농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문명의 이기와 도시의 혜택을 떠나 삶을 살아낼 용기를 기계가 앗아감을 깨닫는 내용이었다. 어시랑에 사는 형님으로 인해 당연하게 여겼던 삶과 틈이 벌어지면서 질문을 이어가는 채상병 샘의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잘 드러났으며 신성한 농사와 달리 암덩어리 같은 도시 문명을 비판하는 귀한 글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노동보다 과학의 발전이 빚어낸 기계를 신성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광고의 주술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 접지하여 우리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쉼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편리함의 이면에 잃어가고 있는 생명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과학적 현상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이권 집단에서 전파하는 과학적 우수성에 의심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과학에 대해 맹종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