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팔경의 주축은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으로 선암계곡파 3 자매다. 선암계곡을 따라 차례로 배치된 이들의 아름다움이야 그 옛날 이황선생, 임제광선생, 김수증선생, 권상하선생 등이 각각 심사위원으로 나서 자기 관리구역 내 제대로 된 비경 8 공주를 뽑을 때, 이 선암계곡파 3 자매가 쪼로미 뽑혔으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최근에 여기에 새로운 공주가 하나 더 생겼으니 바로 소선암이다. 선암계곡파 가문의 일원이긴 하지만 이미 이들 선생의 눈에 들지 못한 미모에다 역사적 배경 하나 없이 우리 시대 우리들이 꿍짝꿍짝 해서 만든 늦둥이다 보니 계류과 바위가 빚어 내는 풍경이야 어디 쟁쟁한 언니들을 따를 소냐 마는 이 막내에게도 필살기는 있었으니 바로 숙박시설이다.
상선이언니, 중선이언니? 하선이언니? 언니들이 제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거기서 사람이 잘 수 있어? 없지? 아빠가 그랬어, 네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하나 없다고. 내 비록 근사한 풍경 하나 유산으로 받지 못 했지만 나에게는 자연휴양림이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날 너무 업신여기진 말아 줘. 내가 있어야 사람들이 언니들한테도 쉽게 다가가는 거 아니겠어?
상선암은 깊은 소를 가진 굴곡진 암반과 소를 건너는 다리로, 중선암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매끈한 바위와 그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과 이들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의 조화로, 하선암은 깔끔하게 치워진 층층이 암반과 그 위에 놓인 준수한 바위 몇 개로 각각 8 공주 안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선암은 우리나라 시골 어디에나 있는 밋밋한 개천이 전부였다. 썩어도 준치라고 쟁쟁한 언니들이 흘려 주는 맑은 물과 이를 코 앞에 두고 있는 휴양림 건물이 소선암의 자랑거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걸로 부족하다면? 알았어. 언니들, 내 비장의 무기를 소개하지. 야,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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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저 아래에서 건장한 남자 하나가 캠핑카(Camping Car)를 몰고 올라왔다. 바로 소선암의 남자친구 오토캠핑장(Auto Camping)이었다.
“오~ 달링(Darling) 내 사랑, 잘 잤어?”
“와이(Why)? 왜 나를 불렀어?”
“지금 울고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찡그리지 마! 사랑해! 내 이 한 목숨 다 바쳐 널 사랑해!”
머리로 안 되면 주먹! 얼굴로 안 되면 돈! 성격으로 안 되면 힘! 캠핑카가 소선암 가까이 다가오자 소선암이 반갑게 맞으며 운전석 쪽으로 다가갔다. 차에서 내린 오토캠핑장은 소선암을 번쩍 들어 빙글빙글 돌리다 내려놓았다. 소선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랑이다. 소선암의 미소에 오토캠핑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마에 맺힌 땀을 털어 냈다. 이마에 새겨진 [소선암]이라는 세 글자가 태양빛을 받은 땀과 함께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선암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마빡에다 [소선암]이라는 세 글자를 새긴 오토캠핑장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늘 소선암오토캠핑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절대 그냥 오토캠핑장이라 부르는 법이 없었다. 이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어 소선암은 늘 가슴을 펴고 다녔다.
소선암은 여자답게 자연휴양림을 품고 계곡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소선암오토캠핑장은 사내답게 계곡 초입 너른 터를 갈아엎고 앉아 계곡으로 들어오는 온갖 잡것들을 막고 있었다. 종합해 보면 선암계곡파의 구성은 이렇다. 순서는 아랫것부터다. 소선암오토캠핑장(소선암의 남자친구) – 소선암 – 하선암 – 중선암 – 상선암.
1. 소선암오토캠핑장. 본명은 오토캠핑장이다. ‘소선암’의 남자친구로 [머리로 안 되면 주먹! 얼굴로 안 되면 돈! 성격으로 안 되면 힘!]을 신념으로 살아간다. 얼마나 주먹, 돈, 힘으로 밀어붙이냐 하면 예약이 아예 안 된다. 오토캠핑장을 사용하고 싶으면 깨끔발로 가만히 앞으로 다가가서 조용히.
“자리 있나요?”
하고 물어본 후 있다면 자리를 까는 거고, 없다면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지금이야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이러고 있지만 조만간 선암계곡파가 단양 8 공주를 휘어잡고, 여자친구 소선암이 제 9 공주로 뜨는 날, 자연스럽게 주먹, 돈, 힘이 아닌 똑똑한 머리, 잘 생긴 얼굴, 좋은 성격으로 승부를 걸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날이 오면 아마 예약을 받을 것 같다. 소선암오토캠핑장이여! 지금도 그렇고 예약을 받아도 그렇고 영원히 선암계곡파의 수문장으로 남아라! 이 아름다운 선암계곡파를 문명의 이기로부터 지켜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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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토캠핑장을 통과했다면 소선암이 기다리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데 지나쳤다가는 등 뒤에서 바로 소선암이 말을 걸어 온다.
“그냥 가냐? 간이 크네.”
뒤를 돌아보기 전에 심호흡을 한 번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고즈넉이 자연휴양림을 품고서 우주보다 깊은 시선으로 노려보는 소선암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수 있다. 남자친구 오토캠핑장만큼은 아니지만 좁지 않은 공간을 갖고 있고, 맑디맑은 계곡물이 바로 코 앞에 흐르니 하루고 이틀이고 쉬었다 가지 않기 힘들 정도다. 상류의 쟁쟁한 언니들에 비해 외모가 조금 딸리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쉼표를 찍어 주지 않는 여행이 어디 여행이더냐, 그건 훈련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소선암아! 너 혹시 은영이니? 너무 똑같은 말을 하고 있어서 내 간담이 다 써늘하다, 야.”
자연휴양림은 도로에서 다리를 건너 들어가야 한다. 굳이 자연휴양림이 아니라도 근처에 여러 휴양시설이 있으니 그 중에 하나 고르면 된다. 전부 오토캠핑장의 똘마니란 설이 있는데 그보다는 소선암의 시선에 숨이 멎어 버린 이들의 영혼이라는 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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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마니 아니면 죽은 영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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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선암을 지나면 드디어 진정한 8 공주의 일원인 하선암이 기다리고 있다. 늘 주위를 깨끗이 정돈하고 있다가 찾아오는 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착한 공주다.
“오토캠핑장은 잘 있던?”
“소선암은 잘 지내?”
“너희들에게서 장회나루 냄새가 나. 담봉이와 순봉이는 잘 있어? 가들 본 지도 오래됐네.”
담봉이와 순봉이는 8 공주 중 장회나루파에 속하는 구담봉과 옥순봉을 말한다. 8 공주 안에서 선암계곡파와 장회나루파는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하선암의 위치는 계곡의 오른쪽으로만 치우치던 도로가 휙! 가로질러 왼쪽으로 넘어가는 거기에 있다. 깔끔하게 치워진 암반 위에 주사위 모양의 큰 바위가 있는 이곳만으로도 선암계곡파의 얼굴 됨됨이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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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금 더 올라가면 선암계곡파의 실세인 중선암이 있다. 깨끗한 계류와 바위 간의 아름다운 조화는 이런 모습을 띄어야 한다고 몸소 보여 주는 몸짱이다. 저 끝간 데 없이 높아진 콧대를 누가 좀 꺾어 줘, 제발……. 이 중선암을 떼서 설악산 천불동계곡이나 주전골에 갖다 놓을 순 없을까? 중선암에서 바위와 바위 사이를 많이도 뛰어다녔다. 조금만 각도를 바꿔도 그림이 확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곳이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요쪽으로, 요쪽에서 조쪽으로, 조쪽에서 그쪽으로 많이도 뛰어다녔다. 중선암을 바라보는 최고의 위치는 아무래도 아래쪽에 있는 조그만 폭포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풍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백 년 전에 새겨진 [사군강산 삼선수석]이란 문구도 있었다. 근처 4 개의 군을 아우르는 강산에 삼선계곡의 물과 바위라는 뜻인데 적고 나니까 이상하네. 중선암에는 구름다리도 있다. 8 공주 중에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이 자매 좀 누가 말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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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곡의 최상류에는 현재 선암계곡파를 이끌고 있는 맏언니 상선암이 있다. 암반의 몸매가 뛰어나고, 속이 훤히 비치는 깊은 소를 갖고 있어 뭇 남성들의 혼을 쏙 빼놓기 일쑤다. 이 소를 넘어가도록 시멘트(Cement) 다리까지 놓여 있으니 상선암을 제대로 감상한 남자 치고 걸어서 계곡을 나간 이가 없다. 원래 나무다리였던 것이 지난 수해로 떠내려가는 바람에 시멘트로 다시 놓았단다. 아랫것들은 이런 소가 갖고 있지 않으니 역시 맏언니는 맏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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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 위에 뭔가 명성을 얻기 위해 들어선 특선암이란 놈이 있었는데 그 놈까지는 아직 파악을 못 했다. 도대체 어떤 놈일까? 지레짐작컨대 아마 선암계곡파의 배다른 자매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여튼 인간이건 계곡이건 잘난 것들이 문제다. 이것들은 꼭 인물 값을 한다. 지금도 제 9 의 공주가 되기 위한 물밑작업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선암이니… 특선암이니… 난리다. 8 공주를 거느린 단양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8 공주 내에 존재하는 장회나루파와 선암계곡파의 주도권 경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해지는 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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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정말 글 잘쓰네..이렇게 재미있는 단편소설은 처음입니다...올겨울에 신춘문예에 응모 한번 해보시는것이 어떠할지...
참 글을 맛깔나게도 쓰네~!
자꾸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일도 안 하고 지금 2 편 쓰고 있잖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