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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적당한 거리
안류현
지구가 생명으로 넘쳐날 수 있었던 것은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를 포함한 다양한 이유 덕분이라고 한다. 이 ‘적당한 거리’를 생각하니 나와 태양의 거리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만약 태양이 가까이 다가왔더라면 지구는 물론이거니와 지구생명체인 나는 뜨거운 열을 버텨내다가 결국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멀어졌더라면 한낮에 충분히 달궈지지 않은 토양에서 한기가 올라와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매순간 경험했을 것이다.
이 적당하고도 서로에게 충분한 거리감이란 공간에서도 필요하다. 너무 멀어지면 왠지 불안하고 소외된 느낌이 들고, 또 너무 가까우면 답답한 느낌이 든다. 대학에서 휴가기간을 얻어 집에 다녀왔을 때, 옆집과 가깝게 붙어있는 집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내내 살고 있을 때도 답답하긴 했지만, 대학에서 공간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종종 걸음으로 화장실과 세면장을 오가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집과 옆집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공양을 하러 절에 갈 때면 너무 거리가 멀어진 느낌에 과제가 밀렸을 때는 그 시간이 아까워서 대학에서 끼니를 대충 해결하기도 한다.
사람사이에서도 적당한 거리라는 것이 필요하다. 예전에 나는 한 친구에게 유난히 집착했다. 선물을 보내거나 자주 연락을 하는 등의 애정공세와 유사한 짓을 했는데 그 친구는 그런 내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왠지 편안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를 끊을 수 없게끔 만들려고 했던 무서운 마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자, 그 친구와 거리를 두었다. 거리를 좁힐수록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나는 늘 그 친구의 표현을 기대하고 답례를 기대하며 참 피곤하게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서로에게 해 준 따뜻한 위로와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오랫동안 친구일 수 있었던 것인데, 내가 그 친구에게 집착하듯이 그 친구가 나만 신경써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지금은 아주 가끔 연락을 하고 만나지만, 그럼에도 서로 잘 사는지 걱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은 꾸준하기에, 이 마음만 있어도 괜찮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상대가 나에게 집중하지 않아도, 더 좋은 관계에 집착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서로가 자기 자리에서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만 있다면 괜찮지 아닐까? 그 친구에게 너무 집착했던 마음보다 지금처럼 드문드문 연락하며 만나는 관계에서 마음이 편안하고 관계에 만족하게 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과 아주 멀어졌을 때는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관계에서 멀어짐을 경험했을 때는 가까워지려 노력했을 때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적이 많았다. 멀어진다는 건,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많은 사건과 마음이 겹쳐 멀어진 것이므로 그럭저럭 이해하게 된다.
관계에 있어서 내 마음이 가장 편안했을 때는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과 서로 따스한 마음을 주고받았을 때였다. 그런 관계에서 나는 안정된 느낌을 받았다. 나를 너무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상대도 그런 자신을 지키는 관계를 편안하게 생각한다. 이 관계에서 태양과 지구의 거리감을 떠올리게 되었다. 태양이 따뜻하게 비추는 지구, 지구는 그런 태양과의 거리로부터 생명이 태어나기에 안락한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