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강의 <왜 마을공동체인가?> - 변강훈 선생님 강의내용을 요약 정리합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도시는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대량생산 구조에서 대량판매 구조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으로 짜여 있다. 도시에서의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촌 구조의 사람들이 안정되게 들어와 살아야 하지만, 날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하는 도시빈민으로 존재한다. 그곳에서 안정되게 살 수 있는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만 일정기간의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도시는 시간이 지나면 바꾸어야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유럽은 그 기간을 백년을 보지만 우리의 경우 30년을 그 주기로 본다. 흔히 말하는 재개발, 재건축은 냉정하게 이야기 하면 도시 재생 사업이라고 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도시 전체의 재생 사업 방식은 국가가 재원을 조달하기가 힘들어 이윤 추구를 최대가치로 여기는 기업에게 이 역할을 맡긴다. 하지만, 이익집단인 기업의 도시 재생 사업은 이윤에 부합하는 집단들은 남긴 채 그렇지 못한 선주민들을 강제 집단 이주라는 방식으로 소외시키고 있다.
현재 도시 재생사업은 철학이 부재하고 토목구조로만 나아가려한다. 이것은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쾌적한 삶과 지속가능한 삶은 아니다. 정주 개념이 아닌 형편이 나아지면 떠나는 이주 개념으로서의 마을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을은 하루의 노동으로 고단해진 몸을 누이는 하숙집의 의미로만 존재할 뿐이다.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개념과 마을 만들기가 필요하다.
도시 재생사업에서 <공동체 복원>이라는 주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공동체는 추상적인 의미이다. 가령 공동체를 명확하게 하려면 종교, 사상 등으로 이어져 있어 폐쇄적일 수밖에 없고 사람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 공동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것만으로 공동체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동체란 감동과 동질성이 있어야 한다. 실제적으로 그러려면 내부가 공정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서로 간 신뢰가 쌓인다.
그렇다면 도시에서의 공동체는 어떻게 고민해봐야 할까?
나의 대한 정체성, 너의 대한 존재감이 정확이 만나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산은 우리만이 먼저 앞선다. 나와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주체성이 없고 너라는 대상자는 없고 우리만이 있는 곳이 부산이다. 나와 너라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부산에서의 주요 과제(마을 공동체 만들기)이다.
과거 간디는 “ 대량생산구조에서 한 번에 천 만 개의 상품을 만들 수 있다면, 천 만 명이 한 개의 상품을 마을에서 만들면 될 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듯이
대량생산이 아니라 대중생산의 관점으로 봐야한다. 우리가 직접 소비자,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프로슈머와 같은 의미이다. 내가 생산하고 내가 소비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생기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 혼자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을 넘어 다른 생산자 소비자와 협력관계가 되어야 하고 그 협력관계가 확대되어야 한다. 개인화 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철저히 개인을 고려하지 않는 구조이지만, 내가 나를 책임지는 사회. 생산자이며 소비자인 프로슈머 형태에서는 협력 구조를 가질 수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새로운 공동체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프로슈머란 개념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유형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마을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공동체 개념의 마을을 만들어 내려면 마을에서 경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아무런 의미 없는 하숙집 같은 개념만이 있을 뿐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들이 필요하다.
마을변화 핵심의 중심은 나, 각각의 나들이 우선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를 돌아보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자기 주체성(내가 우주의 중심이며 마을의 중심이라는 유일한 주도자라는 개념)의 파악 후에 내가 존재한다는 가치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나를 확인한 후에 너를 발견하고 그 후에야 나를 위해서는 네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을 지키는 방법은 너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굳이 우리까지 갈 필요는 없다. 나의 성장이 이루어지려면 너하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내는 작업들이 초기 단계의 마을 만들기 작업이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가 사회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공동의 목표, 사회적 가치들을 담으며 마을을 지속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불어 공동의 경체활동(공동의 돈벌이)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마을 안에서 꾸준히 학습해야 한다. 마을 안에서 스승과 제자가 존재해야 한다. 마을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지혜와 경험을 활용하여 서로 간에 스승과 제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전문성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학위로 무장하여 한 분야의 몰입한 바보들이 아니라 삶의 전문성을 갖춘 진정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기본자산과 누적된 경험, 지식, 지혜로 누적된 자산, 이런 나와 너의 자산이 궁극적인 자산이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 가치를 알아보고 전문가들을 마을 안에서 찾고 활용해야 한다.
마을 안에 다양한 자원들을 활용하여 상호학습을 하면 자연스럽게 평생학습의 구조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에서 지식 습득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 외부에서 돈을 주고 학습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소비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 자신을 소진시켜서야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형태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마을 안에서 어떻게 상호 유기적으로 협력과 유지가 되어야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마을활동가, 촉진자, 코디네이터라 불리는 사람들이 양성되고 있다. 공공적 역할을 하는 사람, 한 사회가 안정되고 장기적으로 가려면 공공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이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이 한 분야가 되어야 한다. 공공분야는 소비가 아니라 자산이다. 공공분야는 국가의 몫이다. 공공의 대한 부분이 축소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국가도 책임지지 못한 안전, 복지, 미래의 문제를 누가 할 것인가? 그것이 마을, 우리의 이웃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시스템(진정한 의미의 마을 공동체)은 공공의 부분이 축소되는 현재에 매우 필요하다.
그래서 마을안의 활동들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마을 사업이 이루어지는 곳은 열악한 곳이 대부분이다. 필요한 곳에 들어가는 인력들은 직업적 접근이 아니라 철학을 가지고 제대로 훈련된 역량의 인력이 들어가야 한다. 열악한 마을의 사람들은 나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역동적이 못한 삶만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마을 만들기의 핵심은 자신을 들어내 보지 못한 주민들을 들어낼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공동체 만들기는 체계적으로 짜여 지고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장기전으로 갈 수 있는 있다. 주민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토양을 토대로 꾸준한 훈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열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첫댓글 너무너무 정리를 잘해 주셨네요~^^ 진정한 공동체 살리기는 어떠해야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