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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삼각관계 그의 말은 매우 달콤한지라 도홍영은 매우 즐거워했다. 그녀는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나도 훌륭한 조카를 얻게 되어 여간 즐겁지 않구나."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물었다. "너의 사부는 누구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저희 사부님은 바로 천지회의 총타주이며, 성은 진씨이고 이름은 근남 이라고 하지요." 도홍영은 진근남이라는 명성이 쟁쟁한 인물에 대해서도 처음 듣는 터였 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너의 사부님이 천지회의 총타주라면 무공도 대단히 뛰어날 것같구나."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나 저는 사부님을 따른 지 얼마되지 않아 어떤 무공을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참, 고모님, 고모님이 저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도홍영은 망설였다. "네가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았더라면 물론 나는 내가 배운 바를 모조 리 전수해 주겠다. 그러나 너의 사부님의 무공은 우리 일파의 무공과 십중팔구 다를 것이다. 따라서 배우게 된다면 오히려 해가 될 것이다. 네가 볼 때 너희 사부와 나를 비교해서 어느 누구의 무공이 더 고강한 것 같으냐?" 위소보가 그녀에게 무공을 전수해 달라고 한 것은 그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아무렇게나 해본 말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도홍영이 정말 그에게 무공을 전수하겠다고 응낙하고 나서게 된다면 그는 오히려 달리 구실을 찾아서는 사양을 했을 것이다. 무공을 배우게 된다면 오대산은 일시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그의 성격은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참을성있게 무공 같은 것을 배울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녀의 그와 같은 질문을 받자 그만 이 기회를 놓칠세라 말했 다. "고모님, 고모님 앞에서 저는 그야말로 거짓말을 할 수가 없네요." 도홍영은 말했다. "어린애는 물론 솔직한 것이 좋단다."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사부님이 한 사람의 무공이 매우 뛰어난 사람과 손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삼초만에 그를 제압했는데 그 사람은 졌다는 데 대해 서 선뜻 승복했습니다. 고모님은 아마도 저희 사부님에 미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도홍영은 미소했다. "그렇다. 나 역시 훨씬 미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궁녀로 가장한 남자와 겨루게 되었을 때 만약 네가 그의 등에다가 일검을 찔러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장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너의 사부라면 어찌 그토록 쓸모가 없겠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나 그 가짜 궁녀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여전히 두 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도홍영은 얼굴 근육이 갑자기 몇 번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눈초리에는 두려운 빛이 떠올랐다. 그러한 눈동자로 그녀는 멍하니 앞을 보며 넋을 잃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불렀다. "고모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도홍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못 들은 것 같았다. 위소보가 다시 물었다. 도홍영은 그제서야 몸을 흠칫하더니 말했다. "아니......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팍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땅바닥에 떨어 뜨렸다. 위소보는 수레에서 뛰어내려 채찍을 집어들고는 나는듯 다시 수레 위에 올랐는데 그 신법이 매우 민첩했다. 그는 자기의 멋진 솜씨에 도홍영이 몇 마디 칭찬의 말을 해주기를 바랬 다. 그런데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얘야, 너는 안정이 된 이후에 무공에 대해서 고된 수련을 쌓아야겠다. 지금의 재간으로서는 궁 안에서 태감노릇이나 하는 것은 썩 좋겠지만 강호에서 떠돌아다니기에는 너무나 뒤떨어져 전혀 무공을 모르는 사람 보다 못할 지경이다." 위소보는 온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대답했다. "네."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내 무공이 형편없다 하지만 어째서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 못 하다는 것일까?) 도홍영은 그 점을 내다본 듯 설명했다. "네가 만약 무공을 전혀 모른다면 상대방이 가볍게 너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무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상대방은 네가 반격할 것을 방비해서 손을 쓰자마자 사정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큰 야단이 나지 않겠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만약 흑점이나 열고 뒷통수나 때리는 좀도적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어 떻습니까?" 도홍영은 어리둥절해져서는 일시 대답할 바를 몰랐다. 잠시 후에야 그 녀는 말했다. "그 말도 억지는 없구나. 강호에서는 좀더적들이 아마도 무공의 고수들 보다 더욱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약간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듯했다. 오른쪽 앞편에 한 그루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우리는 저기서 좀 쉬었다 가자구나. 노새가 풀을 좀 뜯도록 하자." 그리고 그녀는 수레를 몰아 나무 아래에 이르러서 수레를 멈췄다. 두 사람은 뛰어내려 어깨를 나라히 하여서는 나무 뿌리 위에 앉았다. 도홍영은 잠시 넋을 빠뜨리고 있더니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 위소보는 그녀가 누구에 관해서 묻는 것인지 몰라 고개를 쳐들고 그녀 를 바라볼 뿐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한 사람은 상대방이 대답하기를 기다렸고 다른 한 사람은 상대방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그저 쳐다보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도홍영이 다시 물었다. "너는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냐 못 보았느냐?" 위소보는 그녀의 그와 같은 태도를 보고 은근히 겁이 났다. (고모는 더위를 먹었나, 아니면 도깨비를 만난 것일까?)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물었다. "고모님, 누구를 만났다는 것입니까?" 도홍영은 말했다. "누구냐고? 그...... 그 여자로 가장했던 가짜 궁녀 말이다." 위소보는 더욱더 두려움을 느끼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고모님은 그 가짜 궁녀를 만났습니까? 어디서...... 만났습니까?" 도홍영은 그제서야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그날 밤 태후의 방에서 내가 그 가짜 궁녀와 싸우게 되었을 때 너는 그가 입을 열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느냔 말이다." 위소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음,고모님은 그날 밤의 일을 묻는 것이군요. 그가 말을 했던가요? 저 는 들은 적이 없는데요." 도홍영은 다시 깊이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의 무공에는 훨씬 뒤떨어지기 때문에, 그가 저주를 할필요도 없었다." 위소보는 전혀 아리송하기만 해서는 권하는 말을 했다. "고모님, 그를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우리에게 죽음을 당해서 살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도홍영은 말했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죽임을 당해서 살아 남을 수가 없지." 그 한 마디의 말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말 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그 와 같은 말을 하는 표정에는 내심 무척 두려운 듯한 빛을 드러내고 있 었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고모님의 무공이 좋기는 하지만, 도깨비를 두려워하는구나. 한 사람을 죽였을 뿐인데 이토록 마음을 가라앉히지도 못하다니, 더군다나 그 가 짜 궁녀는 내가 죽인 것이지 고모님이 죽인 것이 아니지 않은가. 고모 님은 늙은 갈보를 죽인답시고 반쯤 죽였을 뿐 끝내는 살아나게 되었으 니 정말 형편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때 도홍영은 입을 열고 말했다. "그는 이미 죽었으니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겠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죠. 설사 그가 귀신이 된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도홍영이 말했다. "귀신이고 귀신이 아니고 그것은 상관이 없어.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 가 신룡교 교주 좌하의 제자가 아닌가 하는 점이야. 그렇다면...... 그 렇다면...... 음, 태후가 그를 사형이라고 불렀으니 그럴 리가 없어. 결코 그럴 리가 없어. 그의 무공을 보더라도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아. 그렇지 않니? 너는 정말 그가 손을 쓸 때 입술을 달싹이는 것을 보지 못했겠지?"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하는 그녀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위소보 가 그녀의 짐작이 틀림없다는 것을 실증해 주기를 잔뜩 기대하는 눈치 같기도 했다. 위소보는 어찌 가짜 궁녀의 무공수법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고모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가짜 궁녀의 무공 은 그럴싸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손을 쓸 때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고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모님, 신룡교의 교주는 도대체 어 떤 녀석입니까?" 도홍영은 재빨리 말했다. "신룡교의 홍교주(洪敎主)는 신통력이 대단한 사람이며 무공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너는 어째서 그를 어떤 녀석이라고 칭하느 냐? 얘야, 아무리 그의 등뒤라 하더라도 그에게 죄를 짓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홍대교주의 제자나 사손들이 네가 만약에 한 마디라도 불경스 러운 말을 해서 그 말이 그의 귀에 들어간다면 너는...... 한평생 끝장 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가까운 곳에 신룡교 교주의 부하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위소보는 물었다. "신룡교 교주가 그토록 무섭습니까? 설마하니 그가 황제의 권력보다 더 큰 권력을 쥐고 있다는 말입니까?" 도홍영은 말했다. "그의 권력은 황제만 못 하다. 하지만 네가 황제에게 죄를 지었다 하더 라도 도망쳐서 숨으면 황제는 반드시 너를 잡아낸다고 할 수 없을 것이 다. 그러나 신룡교의 교주에게 죄를 짓게 된다면 이 세상 끝까지 간다 고 하더라도 몸 누울 곳을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렇다면 신룡교는 우리 천지회의 사람들보다 더 많고 세력이 크다는 것입니까?" 도홍영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르다, 그건 달라. 너희 천지회는 반청복명이라는 대업을 내세우고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광명정대하니까 강호의 호걸들은 모두가 존경하 는 터이지만 신룡교는 크게 다르단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니까 고모님의 말씀은 강호의 호걸들이나 사람들이 신룡교에 대해 서 무척 두려워한다는 것입니까?" 도홍영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나는 그저 사부에게서 약간만 들었기 때문에 강호의 일에 대해서는 아 는 것이 너무나 적단다. 우리 사조부는 그와 같은 무공으로도 신룡교 제자의 손 아래 죽음을 당하셨단다." 위소보는 대뜸 욕을 했다. "제기랄, 그렇다면 신룡교는 우리의 큰 원수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그 를 두려워합니까?" 도홍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신룡교가 전수하는 무공이 천변만화하기 때문에 무 섭기 이를 데 없지만, 더욱더 감당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들 교안에 많은 저주와 주문이라는 게 있어, 적을 상대하게 될 때 그 주문을 외우 게 되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하게 하는 동시에 그들 자신은 싸우면 싸울수록 더 용감해진다고 하더군. 사조부께서 양남기 기주의 저택에서 경서를 훔칠 때 몇 명의 신룡교 제자들과 격전을 벌이게 되었 는데 분명히 우세를 차지했다더구나.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입을 뭐라고 중얼중얼하자 사조부께서 펼쳐낸 검풍과 장력이 갈수록 약해지 고 끝내는 아랫배에 일장을 얻어 맞고 몸에 중상을 입었다더군. 우리 사부님께서는 당시 옆에 있으면서 친히 목격을 하게 되었다더구나. 사 부님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서 도우려고 했으나 주문 읽는 것을 듣게 되자 전신이 시큰해지고 그저 꿇어 엎드려서는 투항할 생각밖에 없었고 전혀 투지를 일으킬 수 없었다고 그러더군. 그러나 사조부가 상처를 입 자 그 사람은 다시 주문을 외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부님은 즉시 용기가 크게 불어나 달려들어서는 사조부를 가로채서 도망을 쳤다는 거 야. 사부님은 이일이 끝난 후 그와 같은 사실을 상기하고는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더군. 그렇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천하에서 가장 위 험한 일은 신룡교의 제자들과 손을 써서 싸우는 일이니 될 수 있으면 피하라고 당부하셨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 사부님은 여자이니까 간이 적어서 상대방이 뛰어난 것을 보고 놀 라 투항할 생각을 했겠지.)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쩍 물었다. "고모님, 그 사람이 어던 주문을 외웠는지 들어 보신 적이 있읍니까?" 동홍영은 말했다. "나는...... 나는 들어 본 적이 없단다. 나는 그 가짜 궁녀가 신룡교의 제자가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자꾸만 너에게 그가 손을 쓸 때 입을 열 지 않았느냐 또는 입술을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자꾸 묻게 된 것이란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고 보니 그랬었군요." 그리고 그는 당시 침대 아래서 듣고 본 바를 떠올려 본 이후 입을 열었 다. "전혀, 그런 적은 없었읍니다. 고모님은 들었읍니까?" 도홍영은 말했다. "그 가짜 궁녀는 무공이 나보다 훨씬 탁월했기 때문에 나는 전력으로 상대하느라고 주의의 모든 사실에 대해서 전혀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 지. 그러나 내가 그와 한동안 싸우게 되었을 때 갑자기 마음속으로 두 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저 도망칠 생각밖에 나지 않더군. 그 후에 생 각해 보니 매우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단다." 위소보는 물었다. "고모님, 무공을 배운 이래 몇 사람과 손을 써 보았읍니까? 그리고 몇 사람을 죽여 보았읍니까?" 도홍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고 한 사람도 죽여 본 적이 없단다." 위소보는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후 고모님이 몇 사람 더 죽이게 된다면 다시 손을 써서 싸우게 되었을 때 두려움은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 도홍영은 말했다.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과 손을 쓰고 싶은 생각도 없고 더욱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태평무 사하게 그 여덟권의 사십 이 장경을 찾아내어서는 청나라 오랑캐들의 용맥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나로서는 만족하겠다. 아, 하지만 양남기 기주의 그 사십 이 장경은 십중팔구 신룡교의 손 아래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니, 다시 신룡교의 손에서 빼앗으려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거의 불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구나." 그녀의 얼굴은 이미 변장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안색이 어떤지는 알 수 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초리에서 여전히 그녀가 마음속으로 두려 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고모님, 그대는 우리 천지회에 가입하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그리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고모님은 그토록 두려워하시는데 우리 천지회에 가입하게 된다면 사람 이 많고 세력이 크니 신룡교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지.) 도홍영은 약간 어리둥정해져서 물었다. "너는 어째서 나보고 천지회에 가입하라고 그러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천지회의 주목적은 반청복명에 있읍니다. 그야말로 고모님의 사조부나 사부와 똑같은 마암을 가지고 있죠." 도홍영은 말했다.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 일은 장래에 다시 논하기로 하자. 이제 나는 황궁으로 되돌아가야겠다. 너는 어디로 갈 생각이냐?" 위소보는 의아하다는듯 물었다. "그대는 다시 황궁으로 돌아간다구요? 늙은 갈보가 두렵지 않읍니까?" 도홍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궁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궁 안에서 세월을 보내야만이 두렵지 않을 것 같구나. 바깥 세상의 일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나는 본래 마음속의 비밀을 내가 관 속으로 가지고 가게 될까봐 두려워했는데 이제 너에게 털어놓게 되었으 니 설하 태후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게 되었다. 더군다 나 황궁이란 곳은 넓은 곳이니 내가 아무 곳이나 찾아 숨어 버리게 된 다면 태후는 좀처럼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읍니다. 고모님은 궁으로 돌아가십시요. 이후 반드시 고모님을 찾아 뵙겠읍니다. 지금은 사부의 지시로 볼일을 보러 가야 합니다." 도홍영은 천지회의 일에 대해서 묻기가 거북한 듯 말했다. "장래에 네가 궁 안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어떻게 나와 만날 작정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제가 황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쓰레기를 불태우는 곳에다가 바위 들을 모아 놓고 그 바위들 위에 한 자루 나무 막대를 세워 두겠읍니다. 그리고 그 나무 판대기에는 한 마리의 참새를 그려 놓죠. 그렇게 하면 고모님은 제가 돌아온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날 밤 우리들은 바 로 그 쓰레기 태우는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지요." 도홍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게 하기고 하자. 애야, 강호에는 풍파가 험악하니 모든 일 에 있어서 조심하도록 해라."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모님, 고모님도 조심하십시요. 태후라는 늙은 갈보는 심지가 악 독하니 결코 그녀의 속임수에 넘어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 다." 두 사람은 수레를 몰아 어느 고을에 이르게 되었다. 위소보는 따로 수 레를 빌었다. 그런 연후 두 사람은 동서로 혜어져 작별을 했다. 위소보 는 도홍영이 수레를 몰아 동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 끊임없이 돌아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진짜 나의 고모님이 아니지만 정말 나에게 잘 대해 주시는구 나.) 위소보는 수레 안에서 눈을 감고 한숨 잤다. 해질 무렵쯤에 갑자기 말 발굽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한 필의 말이 뒤에서 질풍과 같이 쫓아 오는 기척이 들렸는데 그 기척은 곧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어떤 한 남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부, 수레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소년이 아니오?" 위소보는 바로 유일주의 음성인 것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마부 가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레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웃으며 말했 다. "유형, 그대는 나를 찾는 것이오?" 그러고 보니 유일주는 온 머리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흙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는 위소보를 발견하자 부르짖었다. "좋다. 내 끝내 너를 쫓아왔구나." 그리고 말을 몰아 수레 앞에으로 돌아와 세우더니 호통을 내질렀다. "빨리 기어내려왓!" 위소보는 그의 표정이 곱지 못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유형, 내 무슨 일에 있어서 그대에게 잘못하여 그대의 화를 돋구었소 이까?" 유일주는 손에 들고 있던 말채찍을 휘둘러서 수레를 끄는 노새의 머리 를 힘주어 내치쳤다. 노새는 아픈지 큰 소리로 부르짖어며 벌떡 앞발을 쳐들었다. 그 바람에 수레가 뒤로 벌렁 나자빠질 뻔 했으며 마부는 하 마터면 땅으로 떨어질 뻔 했다. 이렇게 되자 마부도 곱지 않은 소리로 호통을 내질렀다. "대낮에 귀신이라도 보았단 말이오. 왜 이리 시비를 거는거요?" 유일주는 호통을 내질렀다. "나는 그저 시비를 걸고 싶다." 그리고 말채찍을 다시 휘둘러서는 마부의 채찍을 감싸쥐더니 잡아 끌었 다. 그 바람에 마부는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다. 유일주는 잇 따라 채찍을 휘둘러 차부를 때리면서 소리쳤다. "나는 바로 이렇게 시비를 걸고 싶단 말이다." 그 마부는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 다. 그리하여 그는 입으로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할것없이 마구 욕을 해댔다. 유일주의 채찍은 더욱더 거칠고도 심하게 채찍질을 가하게 되 었고 한번의 채찍질이 가해질 때마다 피가 튀었다. 위소보는 그만 놀라 멍해져서는 생각했다. (이 차부는 그와 아무런 원한이 없다. 그가 마부를 이토록 매섭게 치는 것은 바로 나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터인데 그 는 마부를 다 때리고 나면 십중팔구 그와 같은 매질을 나에게 할 것이 아닌가! 이것 참 야단났구나.) 그는 신발목에서 비수를 뽑아 들고 노새의 엉덩이를 살짝 찔렀다. 노새는 깜짝 놀라서는 맹렬히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노새는 큰 수 레를 끌고서 곧장 길을 따라 급히 달렸다. 유일주는 차부를 버리고 말 을 몰아 달려오면서 부르짖었다. "이 녀석, 사내라면 도망가지 말아라!" 위소보는 수레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부르짖었다. "이 녀석, 사내라면 쫓아오지 말아라." 유일주는 힘을 다해 말에다 채찍질을 가하여 급히 뒤쫓아왔다. 노새는 매우 빠르게 달렸으나, 역시 커다란 한 대의 수레를 끌고있는 형편인지 라 한동안 잘 달렸지만 잠시 후에 유일주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다. 위소보는 비수를 유일주에게 던지고 싶었으나 십중팔구 맞지 않게 될 것이고 오히려 몸을 방비하는 예리한 비수만 잃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 해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호통을 지르며 노새를 급히 달려가도록 재촉했다. 헌데 별안간 귓가에 세찬 바람이 지나가면서 오른쪽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르는 것이 아닌가. 어느덧 그는 한 채찍에 얻어맞은 것이었다. 그는 급히 머리를 수레 앞으로 움츠렸다. 그리고는 수레의 휘장틈으로 보니 유일주의 말머리가 이미 수레 옆에 거의 다가온 상태였다. 그저 다시 몇 걸음만 달린다면 유일주는 위로 올라올 것 같았다. 다급한 김에 지혜가 생긴다고 그는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한 덩이의 은자를 힘주어 던졌는데, 바로 유일주의 말의 왼쪽 눈에서 선혈이 튀었다. 눈알이 깨지면서 대뜸 눈이 멀게 된 터이라 비 스듬히 산등성이 쪽으로 달려갔다. 그 말은 고통스러움에 몇 번 펄쩍펄 쩍 뛰어서는 유일주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유일주는 데구르르 몸을 굴리더니 곧 일어났다. 그 순간 말은 이미 숲속으로 달려들어가 힝하고 몇 번 울부짖었다. 그리고 더 멀리 도망을 치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그 광경을 보고 껄껄 웃으며 부르짖었다. "하하하, 유형, 말을 탈 줄 모른다면 내 그대에게 권하는 것이지만 자 라나 한 마리 잡아서 타도록 하시오." 유일주는 대노해서 진기를 돋우고 급히 수레 쪽으로 달려왔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급히 노새에게 빨리 달리라고 재촉을 했다. 그리고 유일주를 돌아보니 그는 이미 수레와 겨우 이삼십 장의 간격밖에 되지 않은 곳에서 성큼성큼 달려오며 끊임없이 쫓아오고 있었다. 좀처럼 그를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위소보는 즉시 비수를 꺼 내 다시 노새의 엉덩이를 살짝 찔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효과가 났 다. 노새는 몇 번 훌쩍훌쩍 뛰더니 갑자기 머리를 돌리고 유일주 쪽으 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틀렸다, 틀렸다. 너 이 말새끼는 배은망덕하게시리 나의 추한꼴을 보 려고 하는구나." 그는 힘주어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노새는 이미 성질을 낸 터라 어찌 그의 말을 들어먹을 수 있겠는가. 위소보는 형세가 불리하자 재빨 리 수레에서 뛰어내려서는 길 옆에 있는 숲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러나 유일주는 성큼 한달음에 쫓아와서는 왼손을 뻗쳐 어느덧 그의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위소보는 오른손의 비수를 뒤로 찔렀다. 유일주 는 오른손을 그의 팔을 따라 아래로 낚아채듯 하면서 행운유수(行雲流 水)라는 일초로 어느덧 위소보의 손목을 움켜잡았다가 곧이어 그의 팔 을 비틀더니 비수의 끝이 위소보의 목을 겨냥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이 좀도적아! 그래도 뻣뻣하게 굴테냐!" 그리고 왼손으로 철썩철썩 하며 위소보의 따귀를 두 대 갈겼다. 위소보 는 손목이 바스러지는 듯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비수가 무쇠를 무우 자르듯 하니 만큼 목을 자르는 것쯤은 두부 자르듯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헤벌레 웃으며서 말하였다. "유형, 좋은 말로 합시다. 모두 한집안 사람이 아니오. 어째서 이토록 손을 쓰는 것이오?" 유일주는 침을 탁 하니 그의 얼굴에다 뱉으며 말했다. "툇, 누가 너를 한편이라고 생각한다더냐? 너는...... 너는...... 너 같은 좀도적은 감히 황궁에서 교묘한 언변으로 나의 방사매를 속이고 또...... 또...... 너와 한 침대에서 잤지? 이...... 이...... 나 는...... 나는...... 반드시 너를 죽이고 말테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는 푸른 힘줄이 돋아나게 되었고 두 눈에서는 금방 이라도 불을 뿜을 것 같았다. 그리고 왼손에 주먹을 쥐고는 위소보의 안면을 겨냥하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그제서야 그가 화를 내는 것이 바로 방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았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았을까 하는 점에 대해 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형세는 위기일발이 었다. 유일주가 조금 더 화를 내게 되고 손에 반 푼 어치의 힘만 주게 된다면 자기의 목에는 그만 구멍이 뻥 뚫릴 참이라 웃으며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소저는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내 어찌 감히 그녀에게 무례한 행 동을 한단 말이오. 방소저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그대 한 사람밖에 없었 소. 그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만을 생각하고 있었소." 유일주는 대뜸 화가 가라앉는듯 물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그리고 비수를 뒤로 약간 몇 치 정도 움츠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바로 그녀가 나에게 그토록 그대를 살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궁에서 밖으로 내 보낸 것이 아니겠소. 그리고 그녀는 그대가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오." 유일주는 갑자기 또 화를 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너 이 개새끼, 나는 너의 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네가 나를 구해도 좋 고 나를 구하지 않는 것도 좋다. 그런데 어째서 나의 방사매를 속여서 는 너에게...... 너에게 시집을 가 마누라가 되겠다고 응낙하도록 했느 냐?" 그리고 그는 비수를 앞으로 몇 치 정도 더 뻗어냈다. 위소보는 말했다. "쳇! 언제 그런 이리 있었단 말이오? 그대는 누구에게 들은 것이오? 방 소저와 같이 수화폐월의 미녀라면 오로지 그대와 같이 준수하고 뛰어난 영웅에게만 시집갈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겠소!" 이렇게 되자 유일주의 화는 삼 푼 정도 더 가라앉게 되었다. 비수를 다 시 몇 치 정도 움츠리면서 말했다. "너는 잡아떼자는 것이냐? 방사매는 너에게 너의 마누라가 되겠다고 응 낙을 했다며?"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유일주는 물었다. "뭐가 그리 우습느냐?" 위소보는 웃으며 대답했다. "위형, 내 그대에게 묻겠소. 태감 노릇을 하는 사람이 마누라를 거느릴 수 있소?" 유일주는 그저 치솟는 노기를 누를 수 없어 급히 달려온 것이지 줄곧 위소보가 태감이라는 사실과 태감이라면 마누라를 맞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제 위소보에게 깨우침을 받게 되자 그만 흐뭇해져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 의 손목을 놓지 않고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째서 나의 방사매를 속여 그녀가 너에게 시집을 가겠 다는 약속을 하도록 했느냐?" 위소보는 되물었다. "그 한 마디의 말은 어디서 들은 것이오?" 유일주는 말했다. "나는 친히 방사매와 소군주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도 거짓이란 말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그녀들 두 사람이 스스로 한 말이오, 아니면 그대에게 한 말이오?" 유일주는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그녀들 두 사람끼리 한 이야기이다." 원래 서천천은 방이와 목검병 두 사람을 데리고 석가장으로 가고 있었 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오립신, 오표, 유일주 세 사람과 만나게 되었 다. 오립신 등 세 사람은 청궁에서 혹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근골은 상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신은 매를 맞아 살갗이 터지게 되고 성한 곳 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수레를 타고서 역시 석가장으로 가서 조섭을 하려던 차였는데 그만 길에서 만나게 된 그들은 만나게 되어서 한바탕 기쁨을 주고받았 다. 그런데 방이는 유일주에 대하여 표정이 옛날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었 다. 만나게 되었을 때 그저 유사형이라고 한번 불렀을 뿐 그 이후에는 줄곧 냉담한 태도를 보였으며 유일주에 대해서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유일주는 몇 번이나 그녀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는 마음속의 말 을 털어놓으려고 했으나 방이는 언제나 목검병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 다. 유일주는 다급하도 또한 울화도 치밀어 바짝 다그치게 되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방이는 냉정히 말했다. "유사형, 이제부터 우리 두 사람은 사남매의 정분밖에 없는 것이지, 그 외의 일은 아무것도 들먹이지 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해요." 유일주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건...... 그건 또 무엇 때문이지?" 방이는 냉랭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일주는 그녀의 손을 잡고 급히 말했다. "사매, 그대는......" 방이는 힘주어 그의 손을 떨쳐 내면서 호통을 내질렀다. "좀 점잖게 구세요." 유일주는 그야말로 크게 창피를 당하게 되었다. 이날 밤 그는 객점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음은 소용돌이치기만 했다. 그리하여 그는 살그머니 일어나 방이와 목검병이 거처하는 방의 창문 아래로 다가갔다. 아니나다를까 두 사람 이 아직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목검병은 물었다. "그대가 그와 같이 유사형을 대한다는 것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겠어요?" 방이는 말했다. "하지만 별도리가 없지 않아. 그가 일찌기 상심해서는 일찍 나를 잊어 버리게 된다면 덜 상심하게 될거야." 목검병은 물었다. "그대는 정말로...... 위소보라는 애에게 시집을 갈거예요? 그는 그토 록 어린데 그대가 어찌 그의 아내가 된단 말이에요?" 방이는 말했다. "그대 자신이 그 꼬마녀석에게 시집을 가고 싶어서 나에게 사형을 잘 대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야?" 목검병은 급히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렇다면 그대는 빨리 위 오라버니에게 시집을 가도록 해요." 방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맹세도 했고 저주도 한 것을 그대는 잊었나요? 그 날 나는 다음 과 같이 말했어. '천지신명께서 보살피소서, 계공공이 만약에 유일주를 편안무사하게 구원해 준다면 소녀 방이는 공공에게 시집을 가 처가 되 겠으며, 한평생 남편에 대해서 지조와 정절을 지키겠습니다. 만약에 두 마음을 품는다면 저는 만겁의 지옥으로 떨어져 다시 환생할 수 없을 것 입니다.' 그리고 나는 또 말했지. '소군주가 바로 산증인이에요.'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대 역시 잊지 못할거에요." 목검병은 말했다. "그 말은 물론 했어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저 그가 장난 삼 아서 맹세를 시켰을 뿐이지 정말로 그렇게 나오리라고는 볼 수 없어 요." 방이는 말했다. "그가 정말로 그랬든 거짓말로 그랬든 우리 여자된 사람들은 친히 한평 생을 그에게 허락한 이상 결코 그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는 거예요. 어 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을 지아비로 섬겨야 하는 거예요. 더군다 나...... 더군다나." 목검병은 물었다. "더군다나 뭐에요?" 방이는 말했다. "나는 자세히 생각해 보았어요. 설사 우리가 한 말을 번복할 수 있더라 도 그가...... 그가 우리 두 사람과 한 침대에서 자고 같은 이불 속에 서 잠잔 사실은......" 목검병은 킥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위 오라버니는 정말 짓궂어요. 그는 또 영렬전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목왕야께서 세 대의 화살로 운남을 평정하시고 계공공은 두 손으로 가인을 안도다.' 사저, 그는 정말 그대를 안았으며 또 그대의 얼굴에 입맞춤하지 않았어요?" 방이는 한숨을 내쉬며 더 말하지 않았다. 유일주는 창밖에서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오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아니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땅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 같아 그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때 방이는 다시 말했다. "기실 그는 나이가 어려서 말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고 점잖치 못했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는 정말 잘 대해 주었어요. 이번에 헤어지게 된 후 언 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네요." 목검병은 다시 킥 하고 웃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사저, 그대는 그를 생각하고 있군요." 방이는 말했다. "그래요. 나도 그를 생각하고 있어요. 나는 몇 번이나 그를 초청했으며 우리와 함께 석가장으로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는 자꾸 만 중요한 볼 일이 있다고 했어요. 사저, 그가 말한 것은 거짓일까요, 아니면 참말일까요?" 방이는 말했다. "그는 나이가 그렇게 어린데 혼자서 간다면 길에서 나쁜 사람들을 만나 게 될지도 몰라요. 어떻게 하면 좋죠?" 방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본래 서 나으리에게 말해서 우리를 호송하지 말고 그를 호송해 달라고 할 참이었으나 서 나으리께서 내 말을 반드시 들으려고 할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던거예요." 목검병은 말했다. "사저, 나는...... 나는 생각컨데......" 방이는 물었다. "뭐예요?" 목검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이는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의 몸에 상처가 있어서 애석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와 함 께 산서성으로 갈 수 있었을거예요. 이제 오사숙과 유사형들과 만나게 되었으니 우리로서는 그를 찾아갈 수도 없어요." 유일주는 거기까지 듣게 되자 그만 머리가 어지러워지게 되었고 쿵 하 니 이마를 창틀에 박게 되었다. 방이와 목검병은 일제히 놀라 외쳤다. "뭐야?" 유일주는 그야말로 질투의 불길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미친 듯 속으로 부르짖었다. (내 가서 그 녀석을 죽이고 말겠다.) 그리고 그는 앞마당으로 나가서는 한 필의 말을 끌고 객점의 대문을 열 어 젖힌 후 말에 올라 질풍과 같이 달렸다. 그는 위소보가 산서성으로 간다고 했으니 서쪽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날이 밝을 무렵 그는 산서성으로 가는 길을 물어 본 이후 큰 길을 따라 뒤쫓아 오게 되었고 홀로 가는 수레가 있기만 하면 다짜고짜 물었다. "수레 안에 앉아있는 사람은 소년이 아니오?" 위소보는 유일주와 소군주와 방이가 말하는 소리를 틀림없이 훔쳐 들 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아는 것에는 한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유형, 그대는 그대 사저의 커다란 속임수에 넘어갔소." 유일주는 물었다. "어떤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것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방소저는 나에게 말한 것이 있소. 그녀는 그야말로 그대에게 화를 잔 뜩 내게 해야겠다고 했소. 왜냐하면 그녀는 온갖 정성을 다해서 그대를 구하고자 했지만 그대는 반 푼 어치도 그녀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하 는 것이외다." 유일주는 다급해져 말했다. "언제...... 그런일이 있었다는 말이오? 내가 어째서 그녀를 마음에 두 지 않는단 말이오?" 위소보는 되물었다. "그대는 그녀에게 은비녀를 선물한 적이 있지 않소? 은비녀 끝에는 한 송이 매화가 새겨져 있는 것 말이외다." 유일주는 말했다. "그렇소. 그렇소. 그대가 어떻게 아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녀가 궁중에서 혼전을 이루게 되었을 때 은비녀를 잃어 버리게 되었 소. 그리하여 그녀는 다급해져서는 그녀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준 물건인데 어떻게 하더라도 잃어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찾아와야 한다고 했소이다." 유일주는 그만 멍청해져서는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녀는 그토록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가!" 위소보는 말했다. "그야 물론이오. 설마하니 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소?" 유일주는 물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소?"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이토록 나의 손목을 비틀어 잡고 있으니 아파서 어떻게 말을 하란 말이오." 유일주는 말했다. "좋소." 그는 이미 마음이 수그러지게 되어 위소보에 대한 말투까지도 변한 상 태였다. 거기다가 이제 방이가 자기에게 그토록 깊은 정을 가졌음을 알 고 화가 풀려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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