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진리의 발견 (다른)
저자: 마리아 포포바
발제: 결락 (김명훈)
장소: 김해 다어울림 생활문화센터, F4/워킹룸2
일시: 2022년. 11월 25일. 금요일 저녁 7시.
회원님들, 잘들 지내시는가요? 인사말에 진심을 담아서 다시 안부를 묻습니다. 정말 잘 지내시는 건가요? 부디 별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혼자서 꿋꿋이 살아 남아야 하는 세상인 건 오롯이 혼자 깨달아야 할 이치였는데,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드러나니 비통하고 비통합니다. 국민이 국가의 민폐가 되는 세상, 각자도생의 시대, 참 개탄스럽습니다. 정말 이럴 줄 몰랐을까요? 각박하네요.
모두 홀수가 되는 계절, 11월입니다. 출근길에 사람들의 등 뒤에서 쏟아지는 간 밤의 잔영이 노오란 잎사귀보다 먼저 발에 밟힙니다. 떨어질래야 떨어뜨릴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는 울먹한 단꿈들이 발 끝에 이리저리 채이며 굴러가다 낙엽 더미에 묻힙니다. 어제보다 지구는 더 무거워 졌겠지요. 이제 곧 이불을 걷어 낼 세상의 모든 주름도 점점 짙어 졌겠네요. 그러나 눈썹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려야 간신히 보이는 눈동자를 감싼 제 눈주름만 할까요? 내 것만 더 짙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돈을 벌 수 있는 노동자입니다. 속칭 '노가다'라고 하지요?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누가 물으면 인생 유전이라느니 소설 몇 권을 쓰니 마니하는 쾌쾌 묵은 농이나 하기에는 제 인생이 아깝지요. 크고 작은 선택을 통해서 각자는 자기 길에 들어섭니다. 들어 선 이상, 샛길이든, 지름길이든, 이정표 없는 거리든, 삼각지 로타리?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서 엎어져 노숙을 하든, 네온이 불타는 거리에서 너를 만나든 말든 걸어야 할 길이 생기고, 낙엽송 고목을 말 없이 끌어 안고 울고만 있어야 할 일도 생기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길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지만 꼭 살아서 늙어 죽겠다는 생명력, 그 생명력은 이제 사명이 되었지요.
'미타쿠예 오야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는 인디안 인사말입니다. 언뜻 그럴싸하지만 막상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자연 다큐멘터리를 떠올려 보세요. 그 무수한 생명들이 상호 생존하기 위해 어떤 표효를 하고 날개짓을 하는지... 세계인구가 60억이라면 60억 개의 길이 생기지만, 60억 개의 길은 단 하나의 창백하고 푸른 별, 지구에서 만들어 진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의미는 두 발로 서 있는 두 뼘의 땅이 있어야 가치가 있다는 걸 우리는 명심해야 겠습니다.
11월 텍스트는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입니다. 호기심에서 출반한 길이 사명이 되고, 재미로 출발한 길이 불굴의 의지가 되어 멋 모르고 걸어 왔던 길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마리아 포포바는 그 부여된 가치를 진리라고 부릅니다. 포포바는 준비되어 있었고 진리와 무관하게 길의 초입에 들어섰던 사람들은 호흡을 뱉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진리의 지평선을 주시하고 있었을 겁니다. 순위는 무의미합니다. 모두 60억 분의 1이었다가 1분의 1이된다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일까요. 옳은 것일 까요? 참된 것일까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요? 저에게 진리는 걸어 왔던 길을 되돌아 보는 일이고, 남아 있는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다짐입니다. 그 길의 끝에 아마도 여러분이 있을지 모르지요. 지구는 둥굴어서 발자욱의 방향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향해도 결국 한 방향으로 가는 셈이니까요. 미타쿠예 오야신.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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