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둔역 카페에 붙어 있는 옛 도시락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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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의 일요放談(도시락의 추억)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지금도 우리가 쓰는 일상어 중에 일본어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어 잔재 청산하기로 일상에서의 일본어는 많이 정리됐지만, 기술 쪽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봉제 관련 가게에는 아직도 -나나 인치- 라고 내 건 단어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되고, 건축 자재 대여
하는 곳에는 삿보도(Support의 일본식 단어)니 오비끼니 하는 용어와 마주치게 된다.
지금은 도시락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벤또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 것이다.
얼마 전에 일본에 같이 간 지인이 -오재미-란 단어를 듣고 "한국말도 오재미인데?" 하길래 그거
일본 말이야 하고 알려 준 적이 있을 만큼 알게 모르게 우리가 쓰는 말에는 일본어의 뿌리가 상당히 깊다.
벤또라 불리우던 도시락은 양은이라고 불리던 합금(구리와 아연 니켈)으로 찍어낸 제품이다.
양은이라는 단어도 뜻을 알면 재미있다. 녹이 나지 않고 반짝이는 게 은과 비슷하고,
서양에서 들어 온 은이라 해서 양은이라고 불렸다. 이와 비슷한 경우의 단어가 양잿물이다.
양잿물 하면 젊은이들은 생소한 단어이지만, 옛 여인들이 자살하려고 할 때 가장 손쉽게 구하는 독약이
양잿물이다. 양잿물은 비누가 일상화되기 전에 때를 빼는 요긴한 세제로 여인들이 다루던 일상품이라
구하기 쉬워 독성을 자살에 이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옛 분들은 볏짚이나 콩깍지를 태워 그 재를 물에 가라앉혀 비누 대신에 썼는데 이게 잿물이다.
재를 태우는 번거로움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수산화나트륨 결정체를 서양의 잿물이라 하여 양잿물
이라고 했는데 강 알칼리 성으로 마시면 식도와 내장이 상해 목숨을 잃지만, 고통이 대단하다고 한다)
도시락 얘기를 하려다 보니 주변 얘기가 많아졌다.
지금이야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우선 여자들이 도시락 반찬을 신경 쓰기 싫어
하는 탓도 있지만, 사방에 널린 게 먹거리인데 구태여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함을 피하는 탓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지금처럼 식당이나 편의점이 주변에 없어 점심은 도시락이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웠다.
밥 외에는 먹을 게 귀하던 시절이라 그렇겠지만 옛 도시락은 깜짝 놀랄 만큼 밥이 많이 담긴다.
나중에는 반찬 통이 따로 분리됐지만, 원래는 도시락 한쪽 구석에 작은 반찬 통을 밥 위에 눌러 넣었다.
문제는 반찬의 국물이 밥에 흘러 밥의 반쯤은 반찬 국물에 불었고, 책보나 가방에까지 반찬 얼룩이 지는
것도 예사로 당시에는 이런 것이 흉도 아니었다.
(후일 병에든 외제 식품을 먹고 병을 반찬 통으로 아껴 쓰며 국물이 새지 않아 신기해했다)
커다란 도시락통에 가득 담긴 밥 한쪽에 작은 반찬 칸에 담긴 반찬은 빈부차를 들어내는 척도였다
우선 도시락 반찬은 국물이 없어야 한다. 부잣집 아이들은 고기 장조림이나 달걀부침, 등 고급 식자재
를 담았고, 중산층 아이들은 멸치 볶음, 콩자반, 감자볶음 등을 싸 왔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보리밥에
김치가 도시락의 주메뉴였다. 김치가 먹을 때는 맛 있지만, 도시락의 경우 냄새가 심해 모두가 꺼렸다.
점심을 먹을 때 비슷한 메뉴의 도시락끼리 모여서 먹어도 가난한 아이들은 외톨이인 경우가 많았다.
펼쳐놓은 도시락 반찬 중, 김치를 반기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는 이들이 많아졌다.
소운도 점심이 마땅치 않거나 그렇다고 거르자니 그럴 때 편의점을 찾는 경우가 있다.
학교 옆 편의점에는 꼬맹이들이 밖에 펼쳐놓은 간이탁자에서 왁자지껄 점심 먹는 것을 보게 된다.
대게의 경우 컵라면이나, 떡볶이에 삼각 김밥을 먹는 것 같다. 햄버거를 먹는 아이들도 종종 보인다.
도시락도 여러 종류가 보여 몇 번 사 먹어 보았는데, 소시지나 햄 종류가 주메뉴이고 맛도 별로였다.
우선 도시락 반찬은 국물이 흐르는 것은 피해야 하고, 무엇보다 밥이 맛있어야 한다.
일본을 도시락의 천국이라고 하듯 종류도 많고 특히 밥이 찰지고 맛있어서 반찬이 필요치 않았다.
편의점 도시락의 밥은 뜸이 덜 든 맛이거나 쌀이 좋지 않다는 식감이 금세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왜 나쁜 것은 빨리 배우면서 좋은 것은 외면하는지 딱한 노릇이다.
일전에 구둔역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다.
시대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폐역을 이용해 문화 공간으로 가꾸려는 젊은이들 이야기였다.
구둔역 간이 카페에서 옛 도시락을 소개하는 반가운 문구를 보았기에 언젠가 먹어보고 소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삶은 달걀과 사이다까지 더해, 옛 정서를 자극하는 반가운 메뉴가 도시락이다.
먹거리가 지천으로 널린 지금, 새삼스레 무슨 도시락 타령이냐 하실지 모르지만 어렵던 시절에 먹던
음식은 쉬이 잊기가 어렵다는 게 사람의 정서이다. 시골 장터에 가면 아직도 올챙이 국수나 메밀전병이
팔리고 있고 간이 탁자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장터의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옛 추억으로 먹는 음식도 있고 그 대표적 음식의 하나가 도시락이다.
구둔역의 도시락은 정성의 손맛이 느껴진다는 평이다.
한국 음식이 세계화, 표준화되는 데 가장 큰 장애 요인이 손맛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같은 재료를 써서 만들어도, 만든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맛이 다른 것이 한국의 음식이다.
구둔역 도시락은 구둔역을 문화공간으로 가꾸는 주역이신 분이 손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신다.
좋은 음식에 길든 요즘 입맛을 만족하게 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지만, 힘들고 어렵던 시절을
이겨낸 우리의 정서가 담긴 옛 음식을 맛본다는 추억의 가치는 맛으로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계로 대량 생산한 음식이 아닌, 하나하나 손수 만들어 담아낸 음식에서 소박한 옛 추억을 돌아
보는 것도 보람된 일이라 하겠다.
* 주방에서 옛 도시락 만들기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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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도시락과 다른 점을 들라면, 밥을 눌러 담지 않았다는 점, ㅎㅎ,
![](https://t1.daumcdn.net/cfile/cafe/9957543359D836E41A)
* 반찬은 상황에 따라, 소시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 꼬맹이 손님을 위한 도시락인 듯,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4333359D836E414)
-년 중 가장 먹거리가 풍요로운 한가위,
긴 연휴까지 더해 기름진 음식에 식욕도 많이 떨어지셨을 것이다. 오히려 소박한 음식이 입을
개운하게 하지 않을까?
이 글은 구둔역 문화 공간이 활성화되기를 지원하는 의미에서 쓴 글로 광고가 아닙니다.
첫댓글 초등학교 5,6학년 당시 서울 관악구 변두리인 난곡에 살면서
십리 쯤 떨어진 독산동 문성초등학교에 도보로 통학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가난한 난곡에 살던 학생들 중 많은 수의 학생들은 허접한 도시락을
갖고다녔으며 일부 짓궂은 녀석들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 이미 쉬는 시간에
남의 도시락을 조금 씩 집어먹어 배를 채우는 경우도 있었지요.
지금은 살찐다고 잘 안먹는 계란이나 소세지 등은 그 당시엔 거의
최고급 반찬으로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만 싸갖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겨울엔 석탄난로 위에 아이들의 금속제 도시락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타지 않도록 쌓는 위치를 변경한 후 점심 때 꺼내먹었습니다
그렇게 난로에 데워 먹는 도시락 중 아래층의 것들은 누런 누룽지처럼
눌러붙어 여기에 보리차나 물을 부어 먹으면 아주 맛있는 물누룽지가 되었지요.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주는 급식을 먹고 집에서는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먹거나 부모와 함께 비싼 경양식 레스토랑을 이용하겠지만 70 년 대 초반
서울 변두리 학교의 초등학생들 중에는 너무 가난하여 식사를 못하거나
180 원에 불과한 수업료를 못내던 아이들, 그리고 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던 친구들도 생각이 납니다.
아마도 우리네 일부 장년들이 이렇게 욕심이 많고 먹는데 집착하는 건
당시에 너무도 못살던 가정형편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마음 만 바빠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옛날에는 갈탄 난로를 교실에 많이 피웠지요,
그때도 주먹께나 쓰는 아이들은 도시락 위치가 제일 좋은 곳
차지였고, 뒷전에 밀리던 아이의 도시락은 겨우 냉기나 면했지요,
저는 오징어 채나 콩자반, 멸치볶음을 많이 싸가지고 갔습니다.
그때도 부잣집 아이들은 소고기 장조림에 달걀말이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나마 도시락을 못 싸 오는 아이들도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까만 꽁보리밥에 김치를 싸오던 아이들은 아이들 틈에 끼지 못하고
혼자 떨어져서 점심을 먹곤 했습니다. 가난에 대한 상처가 많았을 듯 싶습니다.
요즘은 너무 잘 먹어서 오히려 병이 생길 지경이니 참 세월이 좋아졌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탈지 분유(드럼통에 들어있음)와 보리로 죽을 끓여서 애들에게 배식 했습니다.
그게 맛 들이면 아주 고소한게 맛이 좋았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급식소를 했습니다.
우유덩어리를 가지고 다니며 애들에게 주던 생각이 납니다.
옥수수 가루로는 범벅을 해 먹었는데 맛이 없긴 했습니다.
도시락에 보리밥과 깨 소금을 싸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논이 없는 곳이라 보리 조 콩을 주 작물로 농사를 지어서
쌀밥은 부자집이나 먹을 수 있어서 도시락 싸 가는것도 힘들었지요
까끔 강냉이 죽을 주다가 좀 지나서 강냉이 빵을 주더군요
별미라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 반미 하는 분이 많긴 하지만, 사실 미국이 먹여 살린 셈이지요
탈지 분유와 옥수수 가루, 밀가루를 미국에서 무료로 대 주었으니까요,
옥수수 가루는 황금떡이라 했지만, 맛은 참 없었습니다.
shake it 조건반사
"도시락 "이라고 하니, 도시락을 가지고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하여 남들은 도시락을 먹을때, 혼자서
수도가에 물로 배를 채웠던 초딩때의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오네요
그러셨군요,
저도 회비를 제 때 내지못해 매일 학교에서 집으로 되돌려 보내곤 했습니다.
회비 가져 오라고, 아침에 이미 회비 때문에 한바탕 울고 난리 치고 왔는데 집에 가본들,
그런 아이들끼리 모여 산에 가서 놀다가 늦게 학교에 가서 집에 아무도 없다고 거짓말 하곤 했습니다.
그리운 시절
옛날 도시락집에 가서 도시락을 시켜 먹는데 무지하게 짰더라는....
어머니가 싸 준 도시락을 책가방 가운데에 세로로 찔러넣고 학교에 가는데 도시락 양쪽으로 그나마 책을 빽빽히 넣어가면 다행이지만 달랑 책 한두권 정도 넣어가는 날에 도시락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열려서 가방바닥에 있던 음식물과 연필가루 등의 흔적들이 배겨들어 도시락을 열었을 때 밥의 한쪽면이 볼록이 솟아 있고 연필의 검정색이 스며들어 있었던 적이 기억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