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신학교 다닐때 농번기가 되면 모내기 봉사를 했다. 한번은 경기도 일산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주선으로 일산에 가서 모내기를 한적이 있었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말이 있다. 그토록 모내기 하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내기 때의 하루는 겨울의 열흘 맞잡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시간도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일손이 부족하기에 농사일을 잘 모르는 우리도 젋다는 이유로 농번기에 모내기 봉사활동을 간 것이였다. 나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모내기 하는 것이 매우 서툴렀다. 그러나 봉사활동이기에 열심히 했다. 매꼬 모자를 쓰고 논으로 들어갔다.
농부가 양 끝에 줄잡이로 균형을 잡아 모심는 줄을 처 놓으면 우리는 그 줄에 맞게끔 모를 심었다. 모판이 있는 모를 논에다 옮겨 심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모를 모판에서 떼어내어 한손에 잡고 오른 손으로 떼어내는 것도 숫자가 들쑥날쑥했다. 농부들은 거의 정확하게 떼어 내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모를 심는데 몇 줄만 심으면 얼마나 허리가 아픈지 모른다. 모를 심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농요는 흥겹게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꼭 필요하다.
* 듬성듬성 꽃더라도 삼배출짜리로 꽃아주오
* 울울창창 자란벼는 장잎이 청청 영화로다
* 고개숙여 패인벼는 농부님네 희망일세
* 연년오는 호세월에 농부님의 대풍일세
* 덕산덕문 큰 방죽에 연밥 따는 저 큰애기
연발 줄밥 내 따 줄게 이 내 품에 잠자주오
후렴 =야기도~ 허하나~~~저허~ 저기도~ 또 하나“ (진천용몽리농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농요를 모르기 때문에, “아리아리, 아리아리 아라리요” “옹해야 어쩔시구 옹해야” 흥겨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찬송가도 부르며 모를 심었다. 그런데로 농부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기회요, 농부들을 돕는다는 생각에 마음 뿌듯하기도 했다.
순간 모심기를 중지하고 점심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점심 먹으라는 소리가 천사의 음성처럼 들렸다. 아줌마들이 점심 먹을 음식을 장만하여 머리에 이고 온 것이다. 논두렁에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는 그 맛은 정말 꿀맛이였다. 음식만 맛잇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 한 폭의 그림이였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거머리가 붙은 종아리를 손바닥으로 내려 치면서 모심기는 계속 되었다. 줄을 잘 맞추어 모를 심어야 하고, 모 숫자를 잘 조정하여 심어야 하고, 옆 사람과 보조를 잘 맞추어 심어야 하고, 꾀 부리지 말고 심어야 하고, 노래를 부르면 함께 불러야 하고, 끝내는 것도 함께 끝내야 한다. 헌법책에는 그런 규범이 없지만 농부들의 모심기 방법대로 잘 맞추어 해야 한다. 혼자 잘난척 해서도 안되고 서툰 사람은 도와주고 일러주면서 해야 한다. 모심기에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발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머리를 끄덕였다.
저 멀리 다른 논에서 농부들의 모를 심으며 부르는 농부가가 들여온다. 모를 심다가 나는 허수아비처럼 우뚝 서서 농부들을 바라보며 노래에 귀를 기우려 본다.
"얼럴러 상사디야, 어여루 상사디야, 한일자로 늘어서서, 입구자로 심어갈제,
이내 말을 들어보소, 어에어에 에헤루 상사디야“
오늘도 일산 쪽으로 바라보며 그 옛날 젊은날의 모심기를 생각해 보며 미소를 짓는다.
첫댓글 봄을 맞이하여 12편의 글을 써 보았습니다. 모내기를 마지막으로 봄의 글을 마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샬롬!
여름편을 기대합니다~~ 목사님의 글은 늘 현장감이 있고 생생해서 독자들이 좋아합니다. 건필하소서~~~
중학교 때 모내기 한 나절 하고 허리 아파서 고생했읍니다. 밥이 거저 들어오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그래도 다같이 어울려 흥겹게 모내기를 하면 힘이 덜 들겠지요.
저도 모를 심어봅니다. 우리 신자들과 같이---"모심기에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발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머리를 끄덕였다." 좋은 글에 감사 드립니다. 늘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