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몸치의 댄스일기33 (어느 초보자의 질문)
2004. 7. 18. 일요일
토요일에 동호회 정모에도 참석할 겸 오랜만에 필라로 갔다.
요즘은 뜸하지만 나의 개인연습장으로 많이 활용하는 곳이었다. 걸음마를 뗄 때부터 솔로연습 하던 곳이라서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
낯선 분들이 제각각 솔로 혹은 커플로 댄스 연습에 열중이었다.
나도 연습복장으로 갈아입고 레슨 받은 내용들을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처음 보는 남자 한 분이 왈츠 스퀘어박스 베이직에 굉장히 집착을 하며 열심히 연습하는 게 눈에 띄었다.
한참동안 무의식적으로 함께 연습에 열중하게 되었다.
내가 잠시 쉬는데 그 분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먼저 붙였다.
나는 성격적으로 먼저 이런 곳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 편이다. 누가 뭐라든지 그저 내 연습이나 열심히 하자주의자이니까.
그 분이 내게 묻기를....
어떻게 연습해야 나처럼 왈츠를 출 수 있겠느냐. 자기는 이제 왈츠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잘 안된다면서.
자기가 연습하는 모양을 내 앞에서 왈츠의 기본 연습 공식인 스퀘어박스 베이직 하는 걸 보여 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누구나 입문초보 시절에 거치는 통상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게 분명했다.
중심을 못 잡아서 비틀거리면서 몸은 구부정하게 엉덩이는 빼고 다리는 부들부들. 이제 입문했다면 어쩔 수 없이 그 정도밖에 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배우기는 배웠는데 마음 따로 몸 따로였다. 한번쯤은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니까...
속으로 난 욕심도 많네 싶었다.
근데 그 분은 내가 하는 게 폼도 나고 멋있다면서 나보고 그 요령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아직 초보자 수준에서 바란스도 제대로 못 잡아서 비틀거리고 휘청거리고 배우고 연습하고 해도 불만족스러워 죽겠는데...
누가 누굴 가르쳐준단 말인가.
난 약간 난감해서 나도 아직 잘 못하고 배우는 중이라서 그 분이 베우는 선생님께 배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분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조심스럽게 계속 말을 붙였다.
그 분은 내가 아주 오래 왈츠를 한 사람인줄 알았다고 했는다. 나는 속으로 쑥스럽고 쪽 팔렸다.
그리고 모르는 남자가 자꾸 말을 붙이는 것도 내 연습에 방해가 되고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예쁜 여성이었다면 모르겠지만... ㅎㅎㅎㅎ
변변찮은 답변을 제대로 못해주고 사실 내 입장에선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그래서 얼버무리고 내가 밥 먹으러 간다면서 피해버렸다.
밥 먹고 들어오니까 그 분이 사라지고 안 보였다.
난 내 방식대로 또 솔로 연습에 열중했다. 그리고 땀을 닦으려고 테이블로 왔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그 분이 또 다가오고 있었다.
자기도 밥 먹고 왔는데 입장료를 다시 내지 않아도 되느냐면서 말을 붙였다. 또다시 집요하게 왈츠 베이직 연습 요령을 묻고 늘어졌다.
난 속으로 약간 짜증도 났다. 또 한편으론 댄스에 미친 인간이 또 한 명 탄생하겠구나 하는 걸 직감했다.
그 분은 아예 자기가 연습하는 폼을 내게 보여주면서 연신 눈은 내게로 향하면서 이렇게 하니까 잘 안되고 이게 맞는 거야는 둥.
내가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작정을 한 듯 물고 늘어졌다.
나도 아직 병아리과지만 이 정도로 집요하게 나오니까 그냥 도망갈 수도 없었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박스 베이직을 보여주면서 난 이런 식으로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나보고 몇 년을 했느냐면서 그렇게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자꾸 말을 걸어서 사람을 난감하게 했다.
어쩔 수 없이 내 연습방식과 요령을 말해주었다.
난 몸치과라서 달리 다른 방법도 모르고 법칙도 모른다.
그냥 선생님이 자세를 잡아 주는 대로 흉내 내면서 죽어라고 연습만 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내 연습 철학은 [무대뽀 전법]이라고 알려주었다.
오로지 무식하고 단순 반복 연습만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난 나한테는 내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의 신조라고 했다.
왜냐하면 난 음악도 못타고 박자도 잘 못 듣고 몸도 말을 안 듣고 다리에 힘도 없다. 하여튼 모든 악조건을 골고루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방법도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무식하게 반복적인 몸으로 연습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해 주었다.
왈츠의 기본 연습인 [스퀘어박스 베이직]도 처음에는 정확한 체중 이동이나 모양내기에 신경 쓰지 말고 또 그럴 겨를도 없을 테고. 그게 선생님 말씀대로 처음부터 될 리가 없기 때문에 그냥 무식하게 엉터리 동작일지라도 반복적으로 연습만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다보면 다리와 발목의 힘도 길러지고 자기가 잘 못하는 동작도 스스로 자각되고 또 정확하고 예쁜 모양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몸으로 와 닿는다는 결론이다.
난 그렇게 믿어왔고 그렇게 실천하면. 오늘까지 왔다. 앞으로 계속 그럴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 분은 고맙다면서 고개를 깊이 숙이고 인사까지 했다. 난 정말로 부끄럽고 쑥스러웠다. 다른 선배 고수님들도 많이 계셨다. 전문 강사님들도 많은 곳에서 내가 그런 얘기를 하고 모르는 초보 분한테 그런 대우를 받으니까 당연히 몸 둘 바를 몰랐던 게다.
하지만 내가 그분에게 말한 내용은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만 일 년 정도만 해도 예쁜 몸동작과 댄스 체질을 만들 수 있다고 난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분은 틀림없이 댄스를 아름답게 잘 할 것 같았다. 나중에 잘하게 되면 좋은 댄스친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2004. 7. 18.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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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mp
강변마을님 여전히 열심히 연습하시는군요.... 04.07.18 23:54
답글 차칸맨
그저 연습이 최고입니다.. 그러는 도중에 시행착오식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이 나타는데.. 바로 이때가 개인렛슨을 시작할 원포인트 타임이라 여겨집니다.. 늘 열심히 하시는 자세가 부럽습니다... 04.07.19 08:32
답글 blue
...그러고 보니, 저도 개인렛슨을 시작할 시점이 벌써 지난 것 같군요. 누구 없나욤? 반반씩 부담해서 같이 받으실 분???... 모던 개인레슨, 한번도 안 받아보았는데.......ㅉㅉㅉ...........................^^* 04.07.19 0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