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다면 먼 광천 땅 오서산 입구에 두 번이나 내려갔다. 몇 년 전이더라? 오로지 오서산 등산 하나 때문에 광천까지 내려갔다가 등산로 입구에서 산불조심 아저씨한테 딱 걸리는 바람에 정작 산에는 발 한 번 못 디밀어보고 돌아왔었다. 어찌나 억울하던지……. 설마 산을 빙 둘러가며 모두 막았을까 싶어 뒷구멍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은영이가 한사코 거부했다.
'참! 안성 서운산에서 똑같은 경우를 당해 뒷구멍으로 올랐었지… 그 때 이상한 벌레와 뱀들의 천국을 만나 엄청 고생하고…….'
그 때 솔직히 나도 많이 떨었었다. 산에서 길 없는 길을 간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인 것 같다. 물론 위로만 가면 정상이고, 아래로만 내려오면 평지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한 것 같다. 그리고 2009 년 6 월 초, 다시 한 번 오서산에 도전했다. 물론 오서산 하면 억새로 유명하니 늦가을이 제격이겠지만 어디 멋대로 낼 수 있는 시간이고, 항상 허락하는 은영이의 변덕이던가 말이다. 2009 년 6 월 초 그 날은 은영이의 운동하고픈 욕망과 몇 년째 묵힌 내 욕망이 맞아떨어져 오랜만에 희희낙락하며 등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출발이 희희낙락하면 뭐 하나… 중간에 대판 싸워서 따로 올라갔는데…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비밀! 여기서 얘기하면 그 즉시 은영이와 내가 고개를 못 들고 다닌다.
서해안고속도로 광천나들목을 빠져 나오자 우려했던 바와 달리 도로표지판에 [오서산]이란 석 자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아무렴 광천지역 여행안내서에 무슨 팔경의 제 1 경으로 이 오서산이 등재돼 있던데 이 정도는 적혀 있어야지. 덕분에 헤매는 것 하나 없이 한 번 만에 찾아갈 수 있었다. 처음 등산 계획을 잡을 때는 보령 쪽 성연저수지 등산로가 더 짧은 것 같아 그리로 가려 했지만 도로표지판에 적힌 [오서산]을 보고 정암사 등산로로 급선회했다. 아무래도 크게 적힌 곳이 주 등산로가 아닐까 싶다.
광천을 왼쪽 옆구리로 관통해 나와 개천을 따라 조금 달리다 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끝까지 올라가니 거기에 오서산 등산로 입구인 상담마을이 있었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상담마을 아랫동네 이름이 뭐게요~? 바로 중담마을입니다. 그렇다면 중담마을 아랫동네 이름이 뭘까요~? 아마 하담마을일걸요? 확인은 못 했지만 아마 마을이 있다면 하담마을일 겁니다. 하담마을이 없는데 상담마을 아랫동네가 중담마을일 리 없죠. 나는 천재야… 천재. 광천 번화가에서 상담마을까지는 최근에 깐듯한 왕복 2 차선 도로가 깨끗하게 나 있었다. 우리는 상담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을 시작했다.
아주 여유롭고 한적한 상담마을을 지나 정암사로 향했다. 상담마을을 통과하면서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진짜 흙벽 시골집들에 반했다. 물론 직접 들어가서 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무로 틀을 잡고 흙으로 벽을 채운 100% 진짜 시골집을 구경하고 나니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거야, 그지?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사람에 치이고 사회에 지쳐 막연히 누군가에게 푸우우우우욱 기대고 싶을 때… 그럴 때 이런 집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런 흙벽을 쓰다듬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평온해질까? 어린 날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살포시 웃음지으면 이제 다시 사회로 나가 깨질 대로 깨져도 그럭저럭 견딜만할 텐데 말이다. 이런 고향이 내게는 없어졌다. 거기에는 아파트(Apartment House) 단지가 들어섰고, 이름도 대구 지산범물지구다.
상담마을은 그냥 휘~ 지나가면 별 것 아닌 농촌마을이었지만 꼼꼼히 들어다 보니 마늘을 말리고 있는 마당과 장미가 만발한 길가 화단과 밀인지 보리인지 뭔가 익어가는 들녘과 아무렇게나 서 있는 경운기와 예사롭지 않은 시골집과 갑자기 주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지 살림살이가 모두 그대로인 채 잡초가 무성해진 빈 집과 …… 어느 것 하나 속 깊은 제 이야기 하나씩 간직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다 재미있는 걸 하나 발견했다. 바로 [상담노인회관]이다. 이건 절대 [노인상담회관]을 잘못 쓴 게 아니다. "상담마을 노인회관"이란 뜻이지 절대 "노인상담 전용회관"이란 뜻이 아니다. 웃기죠?
< 노인상담회관... 아니, 상담노인회관 >
상담마을을 벗어나자 제법 우거진 숲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 높은 산도 아니고, 평평한 서해가에 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심산유곡 느낌이 날까? 조금 깊이 들어가자 햇볕까지 잘 들지 않아 음산할 정도였다. 그런데 새로운 길을 내려 함인지 아니면 펜션(Pension)을 지으려 함인지 군데군데 나무들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곳이 있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내 마음이 괜히 찌리리~ 하다. 산소 몇 기가 차지하고 있는 숲 속 넓은 공간도 마음에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숲은 근처 동네를 잘 만나야 하는 것 같다. 이곳 오서산(791m)과 상담마을의 관계는 자연보호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닌 것 같다.
깊은 솔숲 아래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으악! 갑자기 시원스럽게 뚫린 시멘트(Cement) 도로가 나왔다. 어떻게 충청남도의 내로라하는 산 3 분의 1 중턱에 이처럼 멋진 도로가 닦여 있을 수 있을까? 한 켠에는 주차장까지 번듯이 마련되어 있었다. 고 노무현님 말씀대로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다. 행여 산을 다치게 할까 봐 조심조심하며 낸 임도가 아니라 숫제 그냥 뻥 뚫어 놓은 도로였다. 진짜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다. 이 도로는 또한 삼거리까지 갖추고 있었다. 한쪽은 상담마을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 다른 한쪽은 정암사로 올라가는 길, 나머지 한쪽은 오서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곧장 올라가는 길이었다. 이러다 신호등까지 달겠다, 야. 이 시점에서 은영이가 짜증을 낼 법도 한데 다행히 가만히 있었다. 이런 곳에서 내가 만약 짜증을 내면 당연히 훼손된 자연 때문이고, 은영이가 짜증을 내면 그건 이까지 차를 몰고 올라올 수 있었는데 끼적끼적 억지로 힘들게 걸어서 올라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만약 차를 끌고 정암사 바로 아래 요기까지 올라가려면 상담마을 입구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상담마을 주차장을 왼쪽으로 끼고 올라가야 된다. 그러면 조금 두르긴 해도 정암사 바로 아래 요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등산로로 치자면 한 3 분의 1 정도 단축시킬 수 있는 거리다. 그리고 여기서 우회전해서 정암사 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계속 직진하면 오서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다. 일반 차가 올라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로는 나 있었다. 절대로 정암사 쪽으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안 된다. 올라가다 보니 정암사 바로 아래에 이런 안내판이 서 있었다.
[ 차를 세우지 마세요. 견인합니다. 절대 세우지 마세요. 등산객 여러분, 여기 세워진 차를 보시면 아래 전화번호로 신고해 주세요. 바로 견인 조치하겠습니다. ]
정확히 이 문장은 아니었지만 뜻은 이런 뜻이었다. 그러니 만약 정암사 등산로를 택했다면 정암사까지 올라가지 말고 그 아래 삼거리에 있는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 두고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주차장 입구에는 [정암사까지 300 m]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우리는 상담마을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등산로라고 적힌 왼쪽 상담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고생만 실컷 하다 결국 다시 돌아 나와 상담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등산을 시작했다. 흑흑흑… 솔직히 좀 억울했다. 만약 오른쪽으로 들어갔더라면 알게 모르게 등산로 3 분의 1 정도는 가뿐하게 줄였을 텐데 말이다. 나, 너무 이중적인 것 아니니?
정암사에 대해선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찾는 이의 마음을 편히 만들어주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름이 있는 절도… 역사가 깊은 절도… 큰 도량의 절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세한 것 하나하나에 모두 신경을 써 놓은 모습을 보고 이렇게 잠시 머물다 가기가 참 아쉬웠다. 한… 이틀 정도? 그렇게 머물며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절이었다. 절집만 겉핥기로 둘러봄으로써도 그 곳에 가득 찬 불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정갈하게 손보는 곳인데 속이 알차지 않을 리 없는 법 아닌가? 우리 같은 뜨내기 손님을 위한 약수터가 따로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실제로 산 속에 있는 절에서 약수를 마시지 않고 떠나니 마음이 괜히 허전했다. 시멘트로 포장된 등산로와 정암사를 이어주는 길 중에 돌계단처럼 보이는 게 있는데 그건 사람이 다니는 계단이 아니라 수로다. 멋도 모르고 계단인 줄 알고 올라갔다가 고생만 실컷 했다. 다 올라간 지점에서 물 떨어지는 구멍만 있지 사람이 올라가는 길이 없어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만약 위에서 구정물이라도 버렸다면? 으~ 상상도 하기 싫다.
< 돌계단이 아닙니다. 수로입니다. >
정암사 경내를 돌아본 후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정암사 등산로 전체를 놓고 볼 때 상담마을에서 정암사까지는 그저 맛보기고, 정암사부터 능선에 올라설 때까지가 진짜 등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도전정신이 확! 들도록 가파르고 메마른 등산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겨우내 부족했던 운동이 여실히 증명되도록 몸에서는 땀이 뻘뻘 나고, 입에서는 숨이 헐떡거렸다.
‘그래, 다 덤벼라! 바로 이 짠맛이었어! 다 덤벼!’
오기가 발동했다. 오히려 겨우내 운동을 꾸준히 했던 은영이가 나보다 덜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뽕이다. 설마 이걸 믿으신 건 아니시겠죠?
중간중간에 보이는 바위가 참 특이했다. 결 따라 쪼개져서 날카롭게 삐쳐 나와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소나무의 키가 낮아지는 것도 신기했다. 상담마을에서 정암사까지의 소나무들은 모두 쭉쭉 뻗어 있더니 위로 갈수록 그런 소나무는 없어지고 키 낮은 해송의 면모를 갖춘 소나무들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도 올라갈수록 키가 더욱 낮아졌다. 낮은 키에 가지치기까지 제때 안 해준 이 소나무들로 등산로가 다소 칙칙하게 보였다. 중간중간에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는 엉엉엉… 아래가 전혀 안 보였다. 시원한 서해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그 놈의 운무 때문에 서해는커녕 바로 아래에 있는 논밭도 안 보였다. 참 아쉬웠다. 그리고 올라가는 동안 개똥도 군데군데 보였다. 똥 굵기와 양으로 볼 때 아마 정암사에서 본 그 큰 개일 것 같은데 이렇게 개를 끌고 산을 다니면 안 된다던데… 개를 데리고 산을 다니면 그 주위에 있는 많은 산짐승들이 경계를 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개가 다니는 길 주변으로는 산짐승들이 사라진다고 했다. 갑자기 궁금해지네, 절에 사는 개는 채식만 하려나?
능선 바로 아래 널찍한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조금 더 올라가니 히야~ 거짓말 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소백산만큼 넓고 평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느 산 정상과 다른 멋진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억새가 한창인 늦가을이었다면 정말 장관이었을 것 같다. 능선 중간에 자리잡은 오서정 또한 멋졌다. 이렇게 산 정상부에 인위적인 건물이 들어서 있다는 게 못내 눈엣가시긴 했지만 그래도 멋있는 걸 멋있다고 인정하는 것 또한 사나이가 지녀야 할 덕목 중에 하나이니 멋있긴 멋있었다. 오서정에서 보는 오서산의 풍경도 멋있었지만 이렇게 오서산 정상부의 풍경에 녹아 들어있는 오서정의 모습 또한 멋있긴 마찬가지였다. 이게 바로 뭐 눈에는 뭐밖에 안 보인다는 좋은 예가 아닐까? 미인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듯 미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이 또한 얼마나 좋겠냐고. 이게 맞는 말인지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다. 은영이가 옆에서 빵을 만든다고 저러고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오서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통신탑과 오서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등산로 표지판에도 그렇고, 등산 지도에도 그렇고 그 곳이 정상이 아니던데 이렇게 떡하니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니? 아마 진짜 오서산 정상이 보령에 있기에 홍성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홍성 안에서의 최고점에다 안내석을 세워둔 게 아닌가 싶다. 진짜 오서산 정상은 오서정에서 1 Km 쯤 더 가야 한다고 안내판에 분명히 되어 있었다. 어쨌든 은영이에게는 이게 좋은 구실이 됐다. 여기도 정상이니 바로 돌아가잔다. 잔머리 하고는… 그래, 저기 보이는 저 정상에 갔다 온 셈치지 뭐… 우리는 그렇게 오서산 정상을 1 Km 남겨두고 발길을 돌렸다. 여한이야 어찌 없겠냐 마는 그 1 Km 와 가정의 행복을 맞바꿨다.
그리고 이 오서산 정상 표지석에서 내려다보니 정상부 바로 아래까지 도로가 나 있었다. 산에 이렇게 도로를 막 내놔도 되나 모르겠다. 이 도로는 상담마을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와 산허리를 동강내며 정암사 아래 300 m 지점을 통과한 후 이렇게 정상부 턱밑까지 뚫려 있는 도로다. 까딱했다가는 우리도 등산한다고 와놓고 유람만 하다 돌아갈 뻔 했다. 이 도로뿐만 아니라 오른쪽 보령에서도 도로 하나가 꾸물꾸물 정상부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어디까지 올라오는지는 산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올 것 같았다. 진짜 산에다 이렇게 금을 쭉쭉 그어놔도 되나 모르겠다. 스님을 포함해서 오서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분께는 욕 들어먹을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도로가 막 나 있으니 마음이 안 좋았다.
내려올 때는 중담마을로 곧장 내려가는 등산로를 이용하다 중간에 시멘트 도로와 만나는 부분에서 상담마을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이게 좀 돌아가는 길이었나 보다. 원래 등산을 할 때 하산이라고 하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야 되는데 이쪽 길은 급경사가 많고,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몸도 마음도 다소 지쳤다. 험한 길이라서 그런지 하산길 내내 우리 둘밖에 없었다. 그나마 운무가 많이 걷혀 있어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상담마을과 중담마을의 원경이 힘들어 하는 우리에게 마약이 돼줬다. 올라갈 때는 진하게 탄 냉커피(Coffee)가 마약이더니 내려올 때는 이런 경치가 마약이 되주네……. 그렇다고 서해까지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게 상담마을에 내려섰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라 막상 상담마을에 내려서고 나니 오랜만에 한 등산이라 기분이 상쾌하기만 했다.
오서산을 오르내리던 중에 지고 있는 꽃을 많이 봤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풀과 나무가 봄날의 한창 시절을 보냈으니 이제 하나 둘 꽃을 내려야지? 한껏 발산한 젊음의 과실이자 의무인 열매를 키워낼 차례다. 그러므로 꽃을 내리는 대신 녹음을 짙게 드리워 영양분을 마구 찍어냄으로써 열매를 튼튼하게 키워내야 한다. 이렇게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가 보다. 물론 게 중에는 이제 막 한창인 종도 있었지만 조금씩 날짜만 달리할 뿐 이치는 똑같다. 봄날을 그리며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꽃을 피워 젊음을 즐기고, 녹음을 짙게 드리워 열매를 키워내고, 씨앗을 퍼뜨리고, 다시 겨울을 나고, …… 이제는 지는 꽃도 예사로이 안 보이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그러나저러나 우리의 봄날은 언제고, 겨울은 언제야?
첫댓글 산은 잘 못가는 관계상 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서해의 낙조가 억새풀에 스며든다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