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가 있는 풍경
손진숙
식탁 위에 살구가 봉긋이 놓여 있다. 시 외곽에 밭을 경작하는 지곡언니가 따다 준 것이다. 햇빛과 달빛을 듬뿍 받아 둥글고 노랗게 잘 익었다. 두 해 전이던가, 풀을 뽑아 주러 갔을 때 밭 둘레에 의젓하게 서 있는 살구나무들을 본 적이 있다. 그 나무에 열려서 익은 살구다.
살구 봉지를 받았을 때는 약간 덜 익은 것도 있었다. 소쿠리에 담아 식탁 한쪽에 두었다. 잘 익은 녀석들을 우선 골라먹고 남겼더니, 이삼일 후부터 다투어 매혹의 빛깔과 말랑한 과육을 자랑했다. 반으로 가르니 겉과 속이 똑같이 노랬다. 씨만 가려내면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 반쪽을 입에 넣으니 상큼하고 향긋한 맛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어릴 때 나는 살구를 무척 좋아했다. 살구꽃이 볼그레하게 피면 내 마음도 덩달아 볼그스름하게 피어났다. 새파란 열매가 달리면서부터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노르스름하게 익는 열매가 눈에 띄면 날마다 살구나무 밑을 살피러 다녔다.
우리 집 뒤란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를 빠져나가면 오솔길이 나오고 몇 발짝 걸으면 뽕나무밭이었다. 그 옆에 비스듬히 펼쳐진 대밭의 대나무들을 요리조리 피해 내려가면 좁고 얕은 개울이 흘렀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지대였다. 그 개울 건너편 가파른 언덕에 늙은 살구나무가 개울물에 제 몸을 비추며 후덕하게 서 있었다.
살구나무는 철이 되면 농익은 살구를 쉼 없이 떨어뜨렸다. 젖먹이가 배고프면 어머니 젖가슴에 파고들 듯 먹을거리 가 궁하면 살구나무 아래로 찾아 들었다. 매번 군입정하기에 섭섭지 않을 만큼 치맛자락에 싸 올 수 있었다.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
살구나무가 있는 언덕 위 산기슭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오두막이 한 채 있었다. 뒷등에는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산자락이 받쳐 주지 않으면 뒤로 무너질 것 같은 모양새였다. 오두막집의 방 한 칸에는 원촌영감이 혼자 살고 있었다. 원촌영감에게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다. 형산강 너머 오금리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 난이가 친척 할아버지라며 가끔 다녀가곤 했다. 난이는 나보다 두어 살 많고 키도 껑충 컸다.
언제부턴지 돌네가 곁방에 더부살이를 들었다. 우리는 원촌영감은 할배라고 불렀지만 돌네는 할매라고 부르지 않았다. 돌네의 머리가 파뿌리처럼 세고 이마가 땅에 닿을 듯 등이 꼬부라졌지만 아이들은 “돌네야!”라고 불렀다. 장난꾸러기들은 돌네가 보이기라도 하면 “돌네야! 돌아라. 밀네야! 밀어라.”라며 놀려댔다. 돌네는 듣는지 마는지 달팽이처럼 느리게 가던 길을 갔다.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닌다 해서 돌네라고 불렀는지, 돌이라는 이름과 연관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돌네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어쩌다가 볼 수 있었다. 작달막한 체구가 ㄱ자로 구부러져 호미를 연상시켰다. 반 굽은 허리보다 긴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다녔다. 가다가 지치면 우리 집 사립문 앞에서 쉬었다 가곤 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달라고 하여 떠다 준 적도 있고, 가끔 사립을 밀고 들어와 쌀을 달라고 하여 놋그릇에 퍼다 준 적도 있었다.
그날도 길을 가다 힘이 들었는지 우리 집 사립짝 앞에 앉아 쉬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머리가 너무 헝클어져 있었다. 나는 얼른 얼레빗을 찾아 곱게 빗어 묶어 주었다. 어찌나 엉켰던지 빗이 제대로 내려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놀라신 듯했다.
“그 머리를 어떻게 빗겼니?”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재차 물으셨다. 어머니는 비위가 약해 도저히 못한다는 일을 나는 별 거부감 없이 할 수 있었다. 내 할머니 머리나 별반 다름없이 생각되었다.
원촌영감이나 돌네는 내가 살구를 주워가도 혼내지 않았다. 산 밑 외딴 오막살이 주변에 얄랑거리면 원촌할배와 돌네는 문 앞에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원촌할배랑 돌네도 말랑말랑한 살구를 좋아했을지도 모르는데.
보리가 누렇게 익는 철이면 살구도 노랗게 익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이면 살구가 우두두 떨어져 있었다. 줍는 맛에도 먹는 맛에도 신바람이 났다. 태풍 뒤 나의 관심은 오직 혀끝에 와닿는 살구 맛에 쏠려 있었다.
언니가 가져다준 살구와 옛 고향 마을의 살구나무에 열렸던 살구는 모양과 색깔에서 차이가 났다. 고향의 살구는 작고 색깔이 더 짙었으며 꼭지 부분에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맛과 향도 더 진했다. 토질도 품종도 바뀌어 이제 예전과 같은 맛을 다시는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살구만 변한 게 아니라 내 입맛도 변해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에는 살구나무가 있는 풍경이 한 폭 정겨운 그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도 나는 계집아이가 되어 살구나무가 있는 풍경 속을 살금살금 거닐어 본다.
《에세이피아》2017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