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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소설가협회에서 발간한 "소설로 읽는 진주" <진주, 너여서 아름답다>에 수록된 소설가 표성흠 선생의 단편소설 "청동기식 연애"를 올립니다.
단편소설 청동기식 연애 표성흠
……대평리 일대는 평화로운 시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적이 침입을 했지요. 대평리에서 나는 진귀한 보물인 옥을 탐낸 도적 떼들이었습니다……. 설상가상이라 홍수가 나 촌장은 죽고……, 옥을 찾아오지 않으면 마을 주민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도적들의 협박에……, 어린 대평이는 옥을 찾아 산중을 헤매게 되는데……. * 3D로 상영되는 만화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는 또 다른 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 “청동기박물관에서 만나요.” 채희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장난삼아 받아들였다. 청동기박물관은 진주에서도 20km나 떨어진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거기까지는 무리다. “말만 들었지 가본 일은 없어요.” “에게, 진주 살면서 아직 청동기박물관을 안 가봤단 말예요?” “워낙이 역사엔 취미가 없어서요.” “그러면 뭐가 취미에요?” 채희는 따지듯 물어왔다. 그러면서 3번 국도를 타지 말고 내동면을 지나 하동 방향으로 가는 내평리에서 우회전하면 진양호를 따라 올라가는 호반 도로가 펼쳐진다는 설명이었다. 학교에서 출발하면 굳이 복잡한 시내를 통과할 필요 없이 한적한 강변로를 달릴 수 있다 하였다. 그러면서 채희는 도로의 이름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홀수 번호는 남북으로, 짝수 번호는 동서로 연결된다는 것과 동그라미를 친 도로는 국도, 사각형은 지방로, 그리고 왕관 같은 것을 둘러쓴 도로는 고속도로라는 것 등이었다. “진양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자전거 코스예요.” 그 정도 바이커는 돼야 자기를 만날 자격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다가 해석됐다. 그날 그는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교정을 한 바퀴 돌고 있던 중이었다. 자전거가 아주 비싸다는 것이어서 조심스러웠지만 그 친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산악자전거반 회원을 늘릴 요량으로 쾌히 시승을 허락한 터였다. “이거 비싼 자전거인데?” 자전거끼리 부딪쳐놓고 값에 대한 이야길 먼저 꺼냈으니 천부당만부당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상대는 아무런 내색 없이 ‘손해배상 청구해요’ 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이번 일요일 어때요? 그거 고쳐가지고 오면 손해배상 다 해 줄게요’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세운 약속장소가 청동기 박물관이었다. 채희는 그렇듯 ‘앗싸!’한 여자였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애당초 약속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갔다.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타는 대신에 같은 모델의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다. 으스대고 싶기도 했지만 때마침 향토장학금이 내려온 터라 한꺼번에 쓰고 볼 참이었다. 그리고는 어디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일 먼저 꼽은 것은 어차피 때워야할 군대였고 다음은 아프리카였다. 어디를 택하든지 이놈의 학교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짧고 굵게 살리라. 그게 그때의 신조였다. ‘멋지게 한 판!’ 이라는 생각으로 새 자전거를 구입해 타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진양호를 따라 올라갔다. 단언컨대 죽을 힘을 다 내어 올라온 터였다. 엉덩이에 불이 확확 나고 거친 숨을 토해내느라 마스크가 다 젖었다. 그런데 그녀, 채희라는 건방진 계집은 차를 몰고 나타나 깔깔거리며 웃어재꼈다. “이런……, 이를 어쩌나? 엉덩이에 불께나 났겠네……용.” 그래도 밉지 않은 그녀와의 첫 데이트였다. 그날 둘은 당연히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채희는 정말 똑 소리나도록 귀엽고 매혹적인 여자였다. 자전거를 탑재할 수 있는 짚차를 몰고 왔고 애물단지 자전거는 차 지붕위로 올라갔다. “너 왜 그리 순진하니?” “…….” “자전거도 새로 샀다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채희는 대답 대신 그의 입을 막고 ‘그렇게 날 좋아해?’ 하였다. 그것으로 말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탐색전도 필요 없었고 더 이상의 후회도 없었다. 그들은 곧장 그녀의 아버지가 부재중인 별장에 틀어박혀 이틀인가 사흘인가를 뒹굴었다. 그랬던 채희가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강의실 근처를 얼찐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개의 남자들은 단 한 번의 정사로도 상대를 구속하려 든다. 어느 개똥철학자의 말이다. 그런가하면 여자는 사랑 없는 행위에 대해선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도 개똥철학이다. 그는 한동안 개똥철학에 시달렸다. 말 그대로 청춘의 한때였다. 새로운 여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청동기박물관을 가보자 하였다. “여기 처음이 아니신가 봐요?” “예. 몇 번 왔었지요.” 그러면서도 처음 왔던 때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질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개똥철학이 아니라 진짜철학으로, 여자란 자고로 질투덩어리란 관념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질투를 자극 시킬 때 쯤이면 이미 갈 데까지 다 간 상태다. 가도 좋고 있어도 좋을 때, 그럴 즈음이면 질투를 유발 시켜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만남 초기에 벌써 질투 샘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어디서 이런 개똥같은 철학이 또 생겼을까. 그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개똥철학을 되뇌며, 여자는 밑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곱씹었다. “정말로 이 대평리 일대에 옥이 났을까요?” 3D 만화영화를 보고난 그녀의 첫 질문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강가에는 옥이 나올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대평리가 어디 여기뿐이었겠어요? 가까이 지리산도 있잖아요.” 지리산을 포함시킨다면 옥 아니라 금덩어리라도 나올 만하다는 가설을 전개시켜나가는 그였다. 선생을 하다 보니 늘어나는게 구구한 가설이며 그를 입증하려 동원하는 얼토당토않은 증거들이다. 이론은 하나의 가설을 설정해놓고 그 근거를 대는 일이다. 거기에는 보편타당성이 따라야 한다. 그는 편견과 고집을 늘어놓으면서도 그게 보편타당성을 지니면 학설이 된다고 우긴다. 이름하여 잡학철학이다. 그는 부쩍 이 잡학철학에 사로 잡혀 머리가 뒤엉켜 있다. 그러니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여자는 복잡한 걸 싫어했다. “됐어요. 옥이 나면 어떻고 안 나면 어때요?” 그녀는 팔목을 살며시 잡아 자기 팔을 감는 것으로 분위기를 돌렸다. 남자는 여자가 팔을 감을 때 이성을 잃게 된다. “이 빗살무늬 토기는 정말로 여기서 출토된 것일까요?” 빗살무늬를 아는 정도라면 괜찮다. 교양이 있어도 보통 있는 게 아니다. 아니면 역사를 전공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 사이에는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의 시·공이 흘렀는지 모른다는 이야길 한다. 이 정도 교양이라면 결혼을 전제로 만나도 될 성 싶다. -이제는 직장도 든든한 걸로 잡았으니 장가갈 생각도 해야지. 집에만 가면 듣는 소리다. 교직이 무슨 든든한 직장이라고요? 하면서도 그 역시 자부심을 갖는 밥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터라, 허투루 만날 수 없는 데이트다.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체력이라면 나무랄 데 없고, 교양도 이 정도면 됐다. 그날 이 후 그녀와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그런데도 배필이란 하늘에서 점지해주는 것이라서 그런지 그녀 역시 바람과 함께 사라져갔다. 그녀가 남긴 말은 정말 인상적이다. 어머머, 저를 그런 대상으로 만났어요? 저 돌싱이에요. 돌싱이 뭔데요? 그것도 몰라요? 돌아온 싱글이란 말이죠. 돌싱 중에서도 나 같은 사람은 화돌싱이거던요. 화돌싱은 또 뭔데요? 화려한 돌싱이란 거죠. 화려한 돌싱?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헤어지면서 돈을 두둑이 받아낸 여자를 화돌싱이라 한다 했다. 돌싱 중에 뭐가 가장 화려한 돌싱인 줄 알아요? 결혼 하자마자 배우자 죽고 아파트와 보험금 챙기는 여자라 했다. 이건 완전히 꿩 먹고 알 먹는 거 아녜요? 내가 바로 그런 경우에요. 그러니 작업 걸 생각은 말라는 그녀였다. 그래도 냄새는 좋은 여자였다. 세 번째 여자와는 토기보다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다. 아예 자전거 같은 것은 집어던진 지 오래니까 당연히 같은 차를 타고 왔다. “석기시대 움막과 청동기시대 움막이 뭐가 다른지 아세요?” 금방 여러 가지 움막집을 보고 나온 뒤였다. “응, 그건 말이지요…….” 그가 설명도 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가로챘다. 꼭 하나밖에 부를 줄 모르는 노래를 빼앗길까봐 먼저 노래방 마이크를 잡는 음치와 같은 재빠른 행동이었다. “석기시대는 땅 밑을 파서 집을 지었고요, 청동기시대를 지나면서부터는 차츰 구릉으로 올라왔다는 거예요.” 안내판에 적힌 설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니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아이구, 그러세요?’ 하고 싶지만 이 앵무새의 속셈을 재빨리 읽어내는 그였다. 맞선을 몇 번이나 봤으며 청동기식 데이트를 한 지가 벌써 몇 번짼데 그걸 모를까. 이 정도야 누워서 떡먹기다. “저는 아직 움집도 없어요.” 그러니 지하건 지상이건을 따질 계제가 아니라는 은근슬쩍 비유적이기도 하고 솔직한 고백을 던져본다. 여자가 더 빨리 알아듣는다. “집은 내게도 있어요.” “그렇지만 요즘 여자들 아파트 평수보고 결혼 한다던데요?” “에이, 설마?” 그녀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집이 땅 위에 있건 땅 아래 있건 그건 상관없다던 여자 역시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이었다.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는 아예 그 일을 포기했다.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럴 바에야 제 발로 굴러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자. 없으면 그만이고……. 그는 차츰 중후해가는 자신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는 자신을 발견하면서도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지 뭐. 그는 화돌싱보다 더 화려한 싱글을 누리고 살았다. 잡일이 너무 많다고 아무리 불평불만을 해대는 선생노릇이었지만 방학 있겠다, 놀토 있겠다, 이보다 더 여유 있는 직장은 없을 것이라며 낚시에다가 등산에다가 그것도 모자라 유럽여행에다가 백두산 등반에다가 해외로 눈을 돌려 시야를 넓혀가는 동안 그는 완전히 화화돌돌싱싱의 생활을 즐겼다. 그때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로 반쪽 인생을 살 뻔했다. 그날은 별 할 일도 없고 해서 촉석루에 올라 포구락무를 구경하고 있었다. 포구락무는 옛날 선비들이 기생들 불러 앉혀놓고 놀 때 하던 놀이라는데 마침 무슨 촬영인가가 있어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 “뭐해요?” “모르겠어요. 영화촬영은 아닌 것 같은데.” 자리를 비켜나며 하는 남자의 말이다. 배우가 영 낯선 걸 보니 영화는 아니라는 남자가 섰던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던 그는 깜짝 놀랄 장면을 발견했다. “아니, 삼촌이 저기는 어떻게?” 그의 외삼촌이었다. 허구 헌 날 옆구리에 책이나 끼고 살던 간서치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무슨 촬영? 촬영기사의 카메라 옆에 붙은 로고를 보아하니 중앙에서 내려온 방송국임은 틀림없겠는데 삼촌이 주인공이다. 기생을 재연하고 있는 한복 차림의 여인이 춤을 추다 말고 삼촌에게 공을 건네고 삼촌은 그 공을 동그란 구멍 속으로 던져 넣는다. 공이 들어가면 상급을 받고 공이 구멍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눈가에 먹칠을 하는 벌칙을 받는다. 별 궁상맞은 놀이도 다 있었구나 싶어 자리를 피해 나오려는데 발을 꾹 밟는 사람이 있다. “왜 남의 발은 밟고 그래요?” 하려는데 이게 누구야, 채희다. “아는 아자씨?” 채희는 아직도 상큼 발랄 그 자체였다. “여기서 뭐해? ……요오?” “구경하고 있잖아. 그런데 채흰 어쩐 일이야?” “나? ……도, 구경하고 있잖아……용?” 그런데 그녀는 구경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촬영 팀과 함께 내려온 구성작가로서의 채희였다. “진주냉면을 소개하는 프로야.”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사흘째 진주에 머물고 있다. 아직도 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어. 너 본래 진주 애 아니었잖아? 너 있는 줄 알았었더라면 나 어젯밤 독수공방 하지않는 건데. 채희는 아직도 여전한 말투다. 그간의 속앓이 같은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말투다. 진주냉면. 채희와 함께 먹으러 갔던 적이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속설을 믿고 단단히 벼르고 갔었는데 마침 그날은 손님이 별로 없어 주문 즉시 먹을 수 있었다. 육수 맛이 일품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잘근잘근 씹히는 고명의 소고기부침이 더 맛있었다. “기억 나? 그때 먹던 진주냉면.” “그럼, 기억나지.” 채희만 만나면 어쩐지 휘둘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기분 좋은 흔들림이다. 아예 거기 푹 빠지고 싶은 블랙홀이기도 하다. 그동안 모든 남성들을 이렇게 빨아들였을까? 의구심도 잠깐, “진주냉면이 그렇게 유명한 줄은 나도 몰랐어. 음식 프로를 맡고나서 보니까 그게 그렇게 자랑할 만한 명물이더라구.” 하는 채희다. 진주냉면은 평양·함흥냉면과 더불어 삼대냉면으로 꼽힌다. 촬영은 이제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한바탕 포구락무를 추고난 기생들과 어울린 삼촌이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진 교자상 앞에 앉아 기생들과 더불어 음식을 먹는 선비 노릇을 한다. 냉면을 먹으며 ‘맛있다’ 를 연발하는 러시아 아가씨도 출연시켰다. 방송에서는 한 장면 한 컷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단다. 연출자의 기획의도에 따라 움직여진다. 한 컷 한 컷이 모여 편집됨으로 지금 찍는 장면을 봐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전체적 스토리를 모른다. 방송에 대한 채희의 설명이다. “이건 오프닝 멘트야.” 이제부터 진주냉면의 실체를 찾아 냉면집을 갈 거란 이야기다. “그때 그 집 알지?” 다섯 시 반에 냉면 먹는 장면을 촬영할 거니까 그리 오면 출연시켜줄 거란 채희다. 왜 저리 당당하지? 그것도 좋잖아, 네 삼촌하고 함께 한 장면 나오면 그것도 가문의 영광 아니겠어? 영광은 무슨 영광? 그러면서도 그는 진주냉면집을 찾아 갔다. 삼촌과 마주앉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식객 1로 등장했다. 그는 냉면 한 그릇 먹는 데에도 여러 번의 NG가 나고 거듭거듭 촬영해야 하는 고충도 보았다. 그때마다 작가는 리포트가 해야 할 대사를 수정해주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한 자 한 장면도 그저 되는 것은 없었다. 화면에 나오는 거의 모든 대사들은 작가의 의도대로였다. 채희는 그런 방송작가가 돼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잠시 얼떨떨한 기분으로 진주냉면집 촬영을 마쳤고, 마친 게 아니라 지나가는 식객 1로 등장해 ‘진주냉면 육수 맛이 끝내줘요’ 하면서 엄지를 추켜세우는 모션을 취해 주는 것으로 맡은 바 조역을 담당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겨우 냉면 한 그릇 얻어먹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일약 스타가 돼 학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기까지 했다. 식객 1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그러면서도 반 전체 학생들에게 초코파이를 한 개씩 쏘아야 했다. 그게 TV의 위력인가? 바야흐로 매스컴의 시대인 것이다. “이를 어쩌지? 난 또 올라가 봐야 하거든?” 그 이후 그야말로 간간히 바람처럼 스쳐 지나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데 지난 봄방학 때였든가? 느닷없는 문자가 하나 날아들었다. -만날래? -어디서? -촉석루. 이날은 포구락무가 없었다. 평일에는 공연이 없다했든가? 뜨문뜨문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남강을 내려다보며 걷거나 간 크게도 강물 가운데 있는 의암까지 폴짝 뛰어 건너가서는 있는 똥 폼을 다 잡고 사진을 찍거나 물에 빠지는 모션을 취하고 돌아오거나 하고 있었다. 거기가 어디 장난하는 곳이냐? 독도가 지네들 땅이라고 우겨대는 일본의 꼬락서니를 보면 의암은 머리에 이고 있어도 모자랄 민족기상의 상징물이다. 감히 그런 신성한 장소에서 장난질이라니, 도대체가 민족 얼이라는 게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것들인지 없는 것들인지 모르겠다. 그것도 잘 차려입은 것들이 저러는 데에는 할 말이 없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약속시간이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해질 무렵까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 한통 없이 그녀는 그대로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아마도 그 빨간 쿠페를 몰고 오다가 그랬지 싶다. 그날의 보도를 보면 천정을 개방한 채로 달리던 빨간색 쿠페가 시속 140킬로 이상을 달리다가 그대로 가드레일을 받고 운전자는 공중으로 붕 날아 근처 강바닥까지 튕겨져 나갔다 했는데, 안전띠도 하지 않은 채 그것도 고속도로도 아닌 지리산 중산리에서 나오는 왕복4차선 확장도로에서 그 속력을 냈다는 건 자살행위였다는 기사였다.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달렸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녀는 항상 제비처럼 날고 싶어 했다. -난 제비처럼 살고 싶어. 그녀의 지론이었다. 남을 의식하며 살 필요 없다 하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그뿐이라 하였다. 함께 이 만화영화를 보던 날, 그녀가 그랬었다. * 불이 켜졌다. 학생들이 우르르 일어나 안경을 반납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계단을 오를 때는 조용조용…….” 말소리도 조용조용한 조 선생이 학생들을 감독하고 있다. 그는 이제 이쯤에서 자리를 떠도 될 일이라 생각했지만 해설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착실히 아이들 뒤를 따른다. 어쩐지 조선생의 냄새를 맡고 싶기도 했다. 조 선생의 냄새는 머리칼에 스며있는 샴푸의 냄새나 샤넬의 향기가 아니라 몸 그 자체에서 나는 체향이었다. 전에도 그런 걸 느꼈지만 아까 버스에서는 그런 걸 더욱 진하게 느꼈다. 느낀 정도가 아니라 빨려 들어가고 싶었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른다. ……여러분, 선사시대와 청동기시대를 구분 짓는 중요한 단서가 뭐예요? 아는 학생 있어요? 중구난방으로 여기저기서 제멋대로의 답을 내놓는 철부지들을 데리고 놀던 해설사가 문득 그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화살을 돌려 ‘저 선생님한테 물어볼게요.’ 하고 화살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은 1년에 몇 번씩 이곳에 들리세요. 이제는 웬만한 문화 해설사들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박물관 박사님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해설사는 능숙하게 자기 할 일을 그에게 떠넘겼다. “최 선생님 뭐하세요? 해설사가 박물관 박사님이라잖아요.” 그는 조 선생의 최촉에 하는 수없이 이렇게 얼버무렸다. “선사시대는 수렵과 채집생활을 했지만 청동기시대 들어오면서부터는 농사와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사시대에는 부족생활을 했지만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차츰 국가형태를 이루었지요.” 그는 부족생활에서 국가건립의 변천과 사냥과 채집에서 농사와 축산으로의 발전을 그 특성으로 들었다. 선생 아니랄까봐서 아무런 유머도 없는 교과서식 그대로였다. “맞아요. 훌륭하세요.” 해설사는 여기 진열된 커다란 토기는 곡식 저장용이며 돌칼이나 뗀석기 같은 것들은 짐승들을 잡기 위한 도구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해설사의 해설방식도 많이 늘었다. 처음 왔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봐온 터여서 말을 할 때 정면을 보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보던 버릇까지 훔쳐봤던 그였다. 그만큼 자주 온 청동기박물관이었다. “그 조 선생이란 사람 참하더라.” 어머니가 먼저 반하셨다. 어쩌다가 아버지 칠순 잔치에 교직원들 몇몇을 집에 데리고 갔었는데 그 자리에서 내린 어머니의 평점이었다. 이젠 보는 처녀마다 당신의 며느리 감으로 합격인지 불합격인지를 점치고 결정짓고 점수 매기는 게 당신의 일이요 취미가 돼 버린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처녀 선생한테 바로 대놓고 ‘우리 아들이 어떠냐?’고 물었으니, 동병상련을 겪고 있는 조 선생 역시도 속마음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 같은 아홉수다. 이 아홉을 넘기면 이제 정말로 끝이다. 아무리 직장이 좋고 일이 좋다지만 이건 아니다. 이왕 갈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결정을 지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이 좋은 기회다. 그러한 그녀에게 질투심을 유발시켜야 한다. 질투는 바윗덩이 같은 여자라도 움직이는 지렛대다. 프로이드는 모든 게 리비도에 비롯된다 하였지만, 그는 질투에서 비롯된다는 ‘개똥잡학철학’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억측학설’이다. 리비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남자고 여자는 질투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속설이 있다. 여자의 콧바람을 이길 남자는 없다. 여자의 콧김은 세상을 날려버리고도 남는다. 지금 저 조용조용한 조 선생이, 그가 다른 여러 여자들과 이 박물관을 드나들며 속삭임을 나누었다는 것을 알면 그 조용함은 태풍으로 변할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을까? 그는 이번 현장학습을 그러한 실습의 작업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너 혼자 편하겠다고 오늘 낼 하는 네 아버질 저렇게 실망 시킬 수 있겠니?” 어머니의 고언이었다. 파충류는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잔다 했다. 포유류는 거기다가 한 가지 더 보태 가족애가 있다 했다. 포유류의 특성은 연민에 있다. 다 같은 포유류이고 다 같은 동물이지만 인간에게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두 갈래로 선함과 악함으로 갈래가 진다. 이 둘은 본시 하나이면서도 둘이요 둘이면서도 하나가 된다. 때문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영원한 문학의 주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다시 조용조용한 조 선생의 뒤로 다가가 그 신선 발랄한 냄새를 맡아본다. “여러분 진주를 관통해 흐르는 강이 뭐예요?” “남강요.” “맞았어요. 여기가 남강 상류예요. 인류 문명은 어디서부터 발달했어요? 강변이에요. 왜요? 농사짓기 좋은 비옥한 흙들이 떠내려 와 쌓이기 때문이죠. 나일강 유역이 그렇고 황하강 유역도 그래요. 여기 대평리 일대에서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굴된 것도 그래서예요.” 문화 해설사는 신바람이 나서 학생들을 데리고 움집을 향했다. 보통은 실내에서 끝나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야외학습까지 책임질 모양이다. 그는 잠시 학생들을 떠나 호숫가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인간의 도리 중 하나는 종족을 보존시키는 일이다. 그런 도리를 다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인류의 번성은 없었을 것이다. 채희는 그런 그의 지론을 비웃었고 그 돌싱은 그게 옳다 하였다. 이제 어머니의 소망은 단 하나 당신들의 제상을 차려줄 후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그런 고리타분한 목적으로 자식의 결혼을 종용할 것인가 말이다. 결혼의 상대를 그러한 희생양으로 삼을 순 없지 않은가. 이마를 내려 비추는 햇살이 눈부셔 손차양을 하고 가득한 호수를 바라본다. 거기 깔깔거리며 서로 다른 웃음을 웃고 달아 나는 여자들이 있다. 그는 돌팔매질을 힘껏 해 물수제비를 뜨는 것으로 그 허상을 깨뜨렸다. “여기 오니까 생각나는 게 많으신가 보죠?” 학생들에게 자유시간을 준 조 선생이 그의 곁으로 다가오며 묻는 말이다. “누구누구하고 왔었어요?” 그 중에 여자도 있었어요? 어떤 여자들이었죠? 조 선생의 질문공세다. 아까 오면서 버스 안에서 한 그의 잡학개똥철학이 유효했나? “박물관에서 만나자던 여자들도 있었나요?” 그는 그러면서 조 선생이 팔을 걸어올 줄로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았을 뿐더러 더 이상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다가가야 한다. “애들 점심시간 주죠.” “그러죠, 뭐.” 무미건조하고도 사무적인 대화다. ‘얘들아, 점심 먹어라’ 하고 되돌아서려는데, “도시락 함께 싸왔어요.” 하고 그를 돌려세우는 조 선생이었다. 그 힘은 팔을 휘감는 것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그는 꼼짝없이 그 힘에 이끌려 되돌아섰다. 채희와도 여기서 김밥을 먹었다. 돌싱과도 먹었고 그 후 다른 여자들과도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늘 여자들이 도시락 준비를 한 건 아니었다. 그도 가끔씩은 초밥이며 닭다리 같은 걸 사온 적이 있었다. 와인까지는 없다 치더라도 캔 맥주가 있는 날은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식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와인 잔이 놓여졌다. 게다가 하얀 보자기까지 깔려 있다. “제 손으로 담은 거예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야외용 탁자 거기 어디쯤엔가 채희의 장난스런 낙서가 적혀 있을 것이었다. forever라썼던가? 그러나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질 않은가? 모든 것은 바람,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조 선생이 달걀지단을 붙여 넣은 김밥을 꺼내놓는다. “이것도 손수 만들었어요?” “만들긴요?” 사왔다는 이야기다. 이젠 집에서 김밥 따윌 말지 않는다. 그런데도 와인과 잔을 마련했다. 대단한 센스다. “저 움집 말에요…….” 조 선생은 선사시대 굴혈과 움집의 차이에 대해서, 그 연대추정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하늘 높이 올라간 고층아파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파트 한 층 올라가는데 며칠이 안 걸리지만 따지고 보면 그 한 층 올라가는데 천 년 이상은 걸렸다는 계산법이다. “높이만 계산 대고 그 넓이에 대해서는 안 대봤어요?” 그는 99칸 짜리 집에 대해서, 옛날 한옥에 대해서, 그 평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궁전인 자금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금성은 방이 999개라지만 사실은 888개란 이야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결국 주거공간의 평수를 늘이기 위해 갖은 수고들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결론이 모아졌다. 거기 비해 유목민들의 생활은 훨씬 자유롭다는 이야기를 했고 현대판 유목민인 집시들은 행복할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조 선생도 거기 동의를 했다. “그렇다면 최 선생님은 몇 평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활동영역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평수 보다는.” “그러니까 그 최소한의 구역이 어디서 어디까지냐니까? 요…….” 그는 무언지 모르게 근접해갈 수 있는 거리감을 재고 있었다. 이런 소박한 여자라면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아니다, 그걸 재고, 다는 것은 저쪽에서 할 일이지 이쪽에서 할 일이 아니다. 아니다, 서로가 맞춰나갈 일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한 사람 몫만 더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는 열 평 원룸생활을 하고 있다. 조 선생도 집엔 와 봐서 안다. 조 선생 역시 같은 평수의 원룸에 산다. 그걸 합하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거주문제는 해결이다. 입고 먹고 쓰는 일은 둘이 버는 벌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 저축도 될 것이고 아이들 교육문제나 노후문제도 해결이 난다. 이보다 더 무난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 이쯤에서 무언가 결정을 지을 때도 됐다. 그동안 두 사람 성격이나 지향점이나 여러 가지 결혼조건들을 나름대로 따져보고 또 저울질도 해본 두 사람이다. “조 선생 우리 그만 결혼해요.” 이렇게 해버릴까? 아냐, 그런 일은 이런 자리에서 하는 게 아니지. 꽃다발이라도 들고 찾아가 무릎을 꿇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친구야, 그대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탈이야. 그는 김밥을 먹다말고 온갖 생각을 다 한다. 이 점에 있어선 조 선생도 마찬가지다. 처음 강변학교로 전근을 왔을 때부터 뭔지 모르게 끌리는 점이 있었던 최 선생이었다. 교과목이 비슷하다는 것 자체가 우선 취향이 같다는 해석이 가능하겠고, 무엇보다도 그의 시골집을 갔다 온 이후로는 더욱 마음에 끌리는 데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붕에 하얗게 피어있던 산국이 인상적이었다. 조상대대로 살던 집이라 했다. “청동기시대엔 결혼을 어떻게 했을까요? 혼인식을 하기는 했을까요?” 그는 뜬금없이 혼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멧돼지라도 잡아놓고 잔치를 했을 것이다. 온 동네 사람 불러 모아 잔치를 벌였을 것이 아닌가. “했겠죠? 걸판지게 먹고 놀지 않았을까요?” 조 선생은 인도에서 본 피로연 장면을 이야기한다. 호텔 정원에서 연사흘 동안 잔치를 벌였는데 오가는 호텔 손님에게도 하나 빠짐없이 대접을 하더란 경험담이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축의금으로 내놓고 실컷 얻어먹었죠!” 그러면서 조 선생은 잔을 들어 내밀었다.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치고 밥을 먹었다. 호반새가 먼 산 그림자를 타고 포물선을 긋는 것이 보였다. 한 학생이 ‘어울려요!’ 하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어느새 도시락을 까먹은 학생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얘들아, 물가에는 내려가면 안 된다.” 조 선생이 일어나 주의를 준다. 참으로 자상한 어머니 같지 않은가? 이 정도 여자라면 모자람 없는 아내감이다. “조 선생, 저와 결혼해 주실래요?”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이 입속을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 ……고생, 고생 끝에 옥을 찾아온 대평이는 인질로 잡혀 있던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영웅이 되었지요. 도적들은 물러가고 다시 태평성대를 맞이한 대평리 마을 사람들은 대평이를 촌장으로 모셨다지 뭡니까. ……당연히 연아 아가씨는 대평이를 남편으로 맞아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입니다……. 3D영화가 끝나자 아이들은 우르르 쏟아져 나갔지만 그는 아직 비몽사몽간이다. 간밤에 마신 술이 이제야 취하는 느낌이다. “그러니, 내…… 어지간히 마시라 했잖아요?” 그는 아직도 게슴츠레하게 뜬 몽롱한 눈으로 어깨를 두드려 깨우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조 선생이었다. “아예 코를 그리면서 자요. 잠꼬대까지 하고.” “내가 잠꼬대를 했어요?” “그 여자,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주 간절하게 청혼까지 하시더군요?” 조 선생의 비아냥대는 소리가 싫지 않은 그였다. 그녀 역시 듣기 싫지 않은 잠꼬대였던 모양이다. 조 선생이란 호칭은 넣어서 불렀을까? “학생들은요?” “점심시간 줬어요.” 그는 편광안경을 벗어 안경바구니에 담고 햇살 쏟아지는 잔디밭으로 나간다. 조 선생이 그 뒤를 따른다. 그 손에 하얀 보자기로 싼 도시락이 들려 있다. 꿈에 본 그대로다. 예언가는 자기 예언을 이루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한다는 말이 떠올라 그는 돌멩이를 하나 집어 호수를 향해 힘껏 물수제비를 뜬다. * * [작가 노트]
청동기박물관의 존재 이유
진양호 상류 대평리에 청동기박물관이 있다. 잔잔한 호수를 곁에 끼고 있는 천혜의 쉼터며 학습장이다. 그런데도 늘 한적하다. 진주 사람들이 그만큼 애용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뜻도 되겠고 외지 사람들에게 홍보가 안 된 탓이기도 하다. 이 정도 장소에 이 정도 시설이면 관광 상품으로서도 충분할 텐데 왜 실효를 거두지 못할까. 뭐가 잘못됐는지 문제점을 짚어 봐야할 것이다. 주변에 위락시설이 없다. 달랑 박물관 하나 있어가지고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차제에 박물관도 살고 진양호도 살리는 길을 모색해 본다. 수상 레저시설도 갖추고 유람선을 띄운다. 수상스키가 달리고 카약이 뜨고 보트가 달리는 진양호가 되면 박물관도 살고 경기부양도 될 것이다. 팔각정 밑에 선착장을 만들고 여유롭게 호수를 가로질러 고산정 아래 배를 대면 박물관 구경은 덤으로 하 게 된다. 진양호는 이름만 국민관광지이지 어디서 무슨 관광을 할 것인가? 유람선 띄운다고 물 오염되는 것 아니다. 물은 휘저어야 산소통합이 잘 된다는 설도 있다. 나는 전국 유명 관광지나 문화유적지 소개하는 기사를 수십년 써온 때문인지 어디를 가면 꼭 터무니없는 현장개발의 꿈을 망상하게 된다. 청동기박물관 안팎을 걷다보면 도대체 왜 이런 곳이 이렇게 낙후된 채로 던져져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은 청동기박물관의 존재 이유를 상기시키는 목적으로 쓴다. 아울러 진주의 먹거리와 진주관광 1번지 격인 진주성의 현 실태도 짚어보았다. 어차피 이 작품은 진주홍보 책자를 위한 목적소설이다. 이 소설의 스토리보다는 작품 노트에 적힌 망상이 누군가의 눈에 띄기를 바란다. * *
표성흠 1946년 거창 출생 중앙대학 문예창작과, 숭실대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0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9년 월간 <세대> 지 신인문학상 소설 당선 시집 『농부의 집』, 『은하계 통신』, 『네가 곧 나다』 창작집 『선창잡이』, 『매월당과 마리아에 관한 추측』, 『열목어를 찾아서』 장편소설 『토우』(전 6권), 『월강』(전 3권), 『소설 오다 쥬리아』(전 2권), 『놀다가 온 바보고기』, 『지비실 사람들』, 『양귀비』, 『초선이』, 『뿔뱀』 등 모두 10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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