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 맺힌 뼈
2022년 10월 5일에 임정덕(林正德) 목사 내외가 봉평을 방문했다. 올해 제68회 남부연회에서 은퇴한 후 모처럼 강원도 길을 나서다가 잠깐 들렀다. 그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다. 어려운 교회에 부임하여 교회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느라 그의 목회는 일이 많았다. 특히 성전 건축 때문에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마를 날이 없었다. 교회들은 대부분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데 건축을 시작한다. 당연히 재정적인 어려움은 고스란히 담임자의 몫이다. 그의 목회 여정 가운데 건축은 늘 그의 삶을 힘들게 했다. 한 마디로 천신(千辛)과 만고(萬苦)의 반복적인 과정이었다. 거기에 횡령 사고까지 겹쳐 설상가상(雪上加霜), 전호후랑(前號後狼)의 이중고가 그를 짓눌렀다. 그정도는 다행이다. 때로는 법정 출두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목회 현장이 너무 힘들어 잠시 연회 총무로 자리를 옮기고 행정 부서의 실무 책임자로 일했지만 누에는 뽕잎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듯이 그는 다시 그리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전임 목회자들이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임해야 하는 교회였다. 거기서도 건축하면서 그의 고단한 여정이 반복되었다. 늘 그랬듯이 그는 건축을 잘 마치고 우직하게 10년 넘게 목회하면서 좋은 교회 이미지를 대외에 각인시켰다. 멀리서 그를 바라봤을 때와는 달리 그의 목회에는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고초(苦草)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며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그에게 은퇴 소감을 물었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대답했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목회 현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기에 몸이 망가지거나 더 이상 목회를 계속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정년 은퇴까지는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년을 채우고 명예롭게 은퇴한 것이 마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도 이루어진 것 같아서 나온 소감이었다. 힘은 들었어도 그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맛보며 그런 세월을 살았다. 그러나 그 옆에서 고단한 목회 여정을 함께 걸어온 가족들은 어떠했을까? 임 목사가 지나온 목회 여정을 이야기할 때 그의 아내는 마치 판소리꾼의 창(唱)을 도와주는 추임새(助興詞)처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춘다. 아버지의 고단한 목회를 간접 경험하던 그의 자녀들이 삐뚤어지기 직전일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임 목사는 그렇게 살면 지옥 간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들은 이미 지옥 경험을 하고 있는데 또 할 게 있느냐고 따지기도 했단다. 이처럼 목회 현장에는 고난이 바늘과 실처럼 동반되는 일이 다반사다. 주님도 그러셨으니 모든 목회자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 사도 바울은 아예 십자가가 자신의 자랑거리라고 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라디아서 6:14).
임 목사는 갑자기 자신의 가슴에 돌출된 혹을 만져보라고 내 손을 당겼다. 명치(明治) 바로 위 가슴뼈 한가운데에 딱딱한 부위가 만져졌다. 누르면 약간의 통증을 느낀다. 걱정되어 병원을 찾았더니 다행히 악성 종기는 아니었다.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지나온 삶을 물었다. 이것은 바로 힘들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라고 의외의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말하자면 강한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받다 보면 화병이 생기고 그것이 해소되지 않을 때 만들어지는 증상 같은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딱히 용어가 없지만 화병이 굳어져 몸이 보인 반응이다. 대부분 삶의 스트레스는 오랫동안 방치하면 연약한 장기에 악영향을 끼치고 결국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임 목사의 경우는 가슴에 쌓인 한이 이렇게 응어리가 되어 뼈처럼 굳어져 가슴 한복판에서 자라고 있으니 매우 희귀한 증상이다. 이 뼈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인생 경력을 알려주는 표식이요, 가슴에 쌓여 한 맺힌 사연이 굳어진 화석이었다. 임 목사는 너무 딱딱해서 뼈라고 말하는데 이 뼈를 만지면서 이런 위로를 받는다.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위하여 살아온 한평생 주님의 고난의 흔적이 내 몸에 있음이 영광이라고. 바울은 그것을 예수의 흔적이라고 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갈라디아서 6:17). 그래서 그는 편하고 쉬운 꽃길도 많았는데 굳이 돌짝밭을 거치고 가시덤불의 길을 자청했던 자신의 목회를 후회하지 않았다.
어느 목사가 길을 가다가 썩고 있는 호박을 보고 물었다. “호박아, 너도 목회했니?” 목회는 천차만별(千差萬別), 각양각색(各樣各色)의 사람을 말씀과 기도로 섬기는 사역이다. 그러니 그 현장에서 목회자는 속이 썩을 수밖에. 강한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아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결국 목회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속이 썩다가 한(恨)이 응어리로 굳어졌다는 이야기는 생소했다. 바울의 몸에 있던 그 흔적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으니 참으로 놀라웠다. 산을 지키는 나무치고 한여름날 강렬하게 쏟아지는 뙤약볕에 그을리고, 한 겨울날 세차게 부는 북풍한설(北風寒雪)에 흔들려 보지 않은 나무가 있을까? 지금의 목회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해도 그런 뼛조각이 아직 가슴에 자라고 있지 않다면 꽃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시밭길이 아님을 알고 위로를 받으며 인내의 길을 걸어야 하리.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이여! 주님의 일꾼들이여! 힘을 내시라. 주님이 도우시리라.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로새서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