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으로 말을 걸어오는 그녀
그녀 집은 우리 집과 서로 등을 맞대고 있었다. 두 집의 등에는 베란다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어서, 우리는 활짝 열린 입술로 인사를 건네곤 하는 이웃이었다.
처음 초대를 받고 그 집 현관문을 들어서다가 화들짝 놀랐다. 흡사 가구를 모시고 사는 듯 집안 가득 가구가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베르사유 궁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썼을 법한 테이블을 비롯한 온갖 가구들이 친구네 거실에서 이국적인 버섯처럼 피어있었다. 그녀 남편의 수집벽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양에서 서양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하였고, 회화에서 조각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를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눈 닿는 곳마다 값비싼 장식물들로 빼곡했다. 벽에는 사냥총이 여러 개 걸려있어서 괜히 가슴이 후루룩 떨려왔다. 그런데 그에 비해 책장에는 그저 장식용으로 몇 권이 꽂혀 있을 뿐이어서 다시 놀랐다. 카프카는 "책이란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고 했다. 하필 그곳에서 왜 카프카의 말이 떠올랐을까.
그 집에 가기 전에는 왠지 서까래와 대들보가 꾸밈없이 투박하게 드러난 집이리라 상상했었다. 그러나 그 집은 그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현란하고 화려했다. 무릇 집이란 내면에 주렁주렁 달라붙은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소박하고 편안한 곳이라야 하지 않을까.
그 집에는 혼자만의 고즈넉한 공간도 없었고 감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장소도 없었고 내면의 장식을 내려놓을 허름한 곳도 없었고, 그저 사방에 번쩍대는 장식품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순수하고 소박한 감성이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녀는 집에서의 모습이 밖에서와는 너무나 달랐다. 남편을 인사시키면서도 왠지 경직되어있었고 물건을 잘 찾지도 못하며 얼이 빠져나간 듯 뭔가 이상했다. 그녀와 달리 남편은 목소리 톤이 크고 높았다.
돌아서서 차를 만들고 있던 그녀가 무엇인가를 마시고 있었다. 옆에 가까이 다가서서 무슨 말을 하려다가 깜짝 놀랐다. 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저이는 무엇이든지 자기 본위이고 늘 독선적이야. 이제 더 이상은 못 견디겠어.”
책 읽듯이 재빨리 말하는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이 생경하고 낯설어 당황스러웠기에 그저 못 들은 척 주방을 나와 거실을 휭 둘러보았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그 집에는 온통 그 남자의 젊은 시절의 우람한 권위만 걸려있었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을 맞대고 산 집은 주인을 닮아간다고 했다. 그러나 집안 어디에서도 감성적이고 소박한 그녀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뭔지 모르지만 뭉클하니 내 심장 언저리를 뜨겁게 했다.
그녀의 맑은 이미지에는 화려한 그 집이 잘못 걸친 옷 같았다. 그 집은 그녀 남편을 닮아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 봐주지 않을 뒷모습과 같이 완고해 보였다.
우리는 자주 만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고독을 손으로 떼어 주는 사이이다. 그러나 그녀는 평소에 남편에 대한 말을 전혀 꺼내지 않아서 이런 일은 전혀 몰랐다. 가끔 모임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습관적으로 마시는 줄 몰랐다.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 저 소리 뒤편에는 /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 저 모습 뒤편에는 /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천양희 <뒤편>)
사람들은 대개 앞모습은 화려하게 치장하지만, 등은 꾸미지 않는다. 천양희 시인의 시처럼, 그녀 앞모습은 단아하고 지적이었으나 등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었다.
‘삶의 진실이라는 것은 이렇게 미세한 것이구나. 내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뿐이구나.’ 생의 이면에 괜히 겸손해지고 쓸쓸해졌다.
생의 쓸쓸함, 서글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또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안쓰러운 등.
그날 그녀의 등이 그녀의 본질임을 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그 안쓰러운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 후에 그녀 남편이 재산 증식의 목적으로 산 집은 이미 팔려버렸고, 가련한 그녀는 참혹하게도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