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재(元堂齋)
우리 영일정씨는 시조 정습명때부터 영일에 세거를 하였으나 고려말에 정몽주(鄭夢周)가 순절
하자, 가문(家門)이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전공판서(典工判書)였던 정인언(鄭仁彦)이 아들 공
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와 함께 영천(永川) 남전촌(南錢村-지금의 도동)으로 은거(隱
居)하게 됨으로써 영천(永川)이 세거지(世居地)가 된것이며, 원당재는 판서 정광후(9대)를 모
시는 재사이다.
원당재
경신헌
원당재 내부와 현판
경진헌 현판
원당재로 들어가는 입구
*광후(光厚 :9대)선조의 묘: 지정갑신(至正甲申)1344년생, 묘제일: 4월 2째 일요일
문과아조 공조판서 가선대부(工曹判書嘉善大夫)묘
(위치: 영천동20리,북안면 원당리 산5번지卯坐)
선조의 묘소를 방문한 영천화수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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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출처: 영천화수회 & 영일정씨
출처: 영일정씨 포은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archi정(鏞和)
첫댓글 단아한 한옥도 그러하지만 편액의 글씨가 좋아서 올렸습니다!! 영천은 언제부터인가 [南曺北鄭]이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창녕曺가라서 정감이 더하는 고장이지요.
첫댓글 단아한 한옥도 그러하지만 편액의 글씨가 좋아서 올렸습니다!! 영천은 언제부터인가 [南曺北鄭]이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창녕曺가라서 정감이 더하는 고장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