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매실梅實이 되어 주오
-매실과 관련된 한시 이야기
조 영 임
그대 매실이 되어달라니, 무슨 뜻인가? 매실은 매화가 지고 난 뒤 맺히는 열매이다. 오늘날에도 상식常食하는 매실의 역사는 하은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구하다. 은고종이 현자를 찾아다니다가 부암이라는 시골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농삿일을 하는 부열傅說을 만나 재상으로 천거하고 자신을 가르쳐줄 것을 청하였다. 이때 고종이 부열傅說에게 말했다.“내가 술이나 단술을 빚으려 할 때, 그대는 누룩과 엿기름이 되어주시오. 또 내가 양념을 넣어서 국을 끓이려 할 때, 그대는 소금과 매실이 되어주시오.”여기서 소금과 매실의 짠맛과 신맛은 국의 간을 맞추는 조미료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재상이 되어 국정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는 비유로 쓰인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서경』 「열명 하說命下」에 출전을 두고 있다. 훗날 부열은 은나라의 명재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서에 대표적인 현상賢相으로 기록되었다.
익히 알다시피 매실梅實은 5~6월경에 맺힌다. 그 열매는 청록색을 띠기도 하며 누런색을 띠기도 한다. 그래서‘청매靑梅’,‘황매黃梅’라고도 불린다. 청매를 쪄서 말리면‘금매金梅’, 소금물에 절여서 햇볕에 말린 것은 ‘백매白梅’, 연기에 그을려 검은 색을 띠는 것은‘오매烏梅’라고 하였다. 또 봄에 나는 것이라 하여 ‘춘매春梅’, 살구류의 열매라 하여‘행매杏梅’라는 이칭도 있다. 현대 중국에서는‘과매果梅’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또한 신맛이 난다하여 ‘산매酸梅’라고도 한다. 매실에는 삼국지의 주인공인 조조曹操와 관련된 고사가 전하고 있다. 조조가 원소袁紹와 싸우다가 사세가 여의치 않아 도망가게 되었다. 그때 부하들이 몹시 목이 말라 하소연을 하자 조조가“앞에 커다란 매화나무 숲이 있다. 그 매실을 실컷 따 먹으면 달고 신맛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조의 이 말을 들은 군사들이 매실의 신맛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입에 침이 돌아 해갈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매림지갈梅林止渴’ , ‘망매지갈望梅止渴’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매실은 이처럼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영양이 풍부하여 우리 몸에 이로운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과실이기도 하다. 매실은 독특하게도 그 자체로 신맛, 단맛, 쓴맛을 모두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신맛으로 식욕을 돋구어주고 위장 장애를 없애주며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 해독작용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미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비상상비약으로 매실청을 챙겨두기도 하였다. 더구나 항암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슈퍼푸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매실이 한시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선인들이 ‘매란국죽梅蘭菊竹’이라하여 사군자의 첫머리에 매화를 놓아 칭송하기를 다하였던 것에 비하여 과실인 매실에 대한 언급은 그다지 많지 않다. 꽃으로 주목받은 반면 과실로서는 주목받지 못한 셈이다. 그래도 몇 편을 소개해 본다.
뜨락 매화나무에 아름다운 과실 맺히니
사랑스럽고도 어여뻐라.
안개비 속에 절로 누렇게 되는데
조정調鼎은 다시 언제가 될까.
庭梅有佳實 可愛亦堪憐
自黃烟雨裏 調鼎更何年
―「매실을 읊다〔詠梅實〕」 『태촌집泰村集』
위의 시는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의 작품이다. 고상안은 조선중기의 학자로 일찍이 함창현감· 풍기군수· 함양군수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임진왜란 당시 향리인 상주 함창에서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어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이덕형·이순신 등과의 서사 기록도 남긴 바 있다. 학계에서는 현전하는「농가월령가」의 저자로 추측하기도 한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빗속의 매실이 언제나 익어서 음식을 조리할 때 쓰일 수 있을까를 노래하고 있다. 매실이 맺힐 무렵이면 비가 자주 내린다. 그 빗줄기가 자양분이 되어 매실은 하루가 다르게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다. 이때 내리는 비를 특별히 ‘매우梅雨’라 하였다. 한시에서는 이처럼 매화와 비가 곧잘 결합된다. 결구의 ‘조정調鼎’은 앞서 언급한 은고종과 부열의 고사인 “내가 국을 요리하거든 그대는 소금과 매실이 되어주시오.”를 끌어다 쓴 것이다. 여기에는 부열과 같은 명재상이 되어 나라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열망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산중에 비는 개고 해 길어 지루한데
친구가 초막집에 좋은 선물 보내왔네
소반 위엔 갑자기 매실이 올려 있고
주발 속엔 껍질 벗긴 죽순이 담겨졌네
목마름병 고쳐주는 제호탕과 맞먹는
귀한 물건 쉽게 여기고 궁한 사람 도운 거지
집안에 현부인이 있는 줄 잘 알기에
감사하단 말 대신에 외를 따서 보낸다네
雨歇山樊日色遲 故人嘉貺到茅茨
髹盤忽薦含酸子 瓷椀兼輸脫錦兒
助合醍醐淸病暍 輕抛玳瑁慰窮飢
夙知內有齊眉敬 爲摘新瓜替致辭
―「개보가 매실과 죽순을 보내왔기에 산전에서 새로 난 오이로 답례하였다[皆甫餽梅實竹筍 以山田新瓜謝之]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위의 시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작품이다. 시제에서 보이는 개보皆甫는 윤서유尹書有의 자로, 다산과는 친구이면서 사돈지간이 된다. 개보가 매실과 죽순을 보내온 것에 사례하고 오이로 답례한다는 내용이다. 소박한 물건을 주고받으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구 속에 인심 좋은 시골살이의 모습과 두 사람간의 우의를 읽을 수 있다. 위의 시에서 매실은 ‘목마름병을 고쳐주는 제호탕과 맞먹는’것으로 표현되었다. 제호탕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는 일종의 청량음료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오매육烏梅肉, 백단향白檀香, 축사인縮沙仁, 초과草果, 꿀을 넣어서 끓인 다음, 찬물에 타서 복용하면 갈증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되어 있다. 5월 단오에 궁중의 내의원이 제호탕을 제조하여 임금께 올렸다고 하니 민간에서 쉽게 마실 수 있었던 음료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사용되는 주재료가 바로 ‘오매烏梅’이다. 매실이 갈증을 해소하는 과실임을, 또한 귀한 과실임을, 그러한 과실을 보내온 개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종이창으로 조최의 따뜻함을 맘껏 들이키고
나물국엔 부열의 매실로 간 맞추기 어려워라.
애석하여라, 영균은 오미五味를 잊고서
일생토록 오직 국화만 먹었으니.
紙窓長嚥趙衰溫 菜鼎難和傅說酸
可惜靈均忘五味 一生唯得菊花飡
―「조극인에게서 매실을 구하다〔從曹克仁索梅實〕」
『소재집穌齋集』
위의 시는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의 작품이다. 노수신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호는 소재穌齋·이재伊齋이다. 시·문·서예에 능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덕행이 뛰어나고 선조의 은총을 많이 받았으나, 불행하게도 을사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진도로 이배되는 등 귀양살이를 무려 19년간 하였다. 시제에 언급된 조극인은 중종 26년 식년시에 장원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위의 시에는 여러 전고가 보인다. 우선, 기구의 ‘조최趙衰’는 진晉 문공文公이 부왕의 미움을 받아 망명생활을 할 때 도움을 준 공신이다. 『춘추좌씨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춘추 시대 노국潞國의 대부 풍서酆舒가 진晉나라 가계賈季에게 “진의 대부 조순趙盾과 조최趙衰 중에 누가 더 어진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가계가 “조최는 겨울날의 태양과 같고, 조순은 여름날의 태양과 같다.”고 대답하였다. 겨울의 햇볕은 따뜻하여 사랑할 만하지만 여름의 햇볕은 그 강렬함으로 인해 사람을 두렵게 하는 법이니, 조최가 겨울 햇살처럼 어질다는 뜻이다. 승구의 ‘부열산傅說酸’은, 부열에게 매실이 되어 달라고 한 은나라 고종의 고사와 관련된다. 따라서 기승구는 조최와 같은 어짊이 있어도 부열처럼 재상이 되어 국정을 잘 맡아 하기란 쉽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조극인의 따뜻하고 어진 마음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내포되어 있다. 전구의 영균은 굴원屈原의 자이다. 그가 지은 이소離騷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아침에는 목란의 이슬방울 받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 떨어진 꽃잎 주워서 먹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여기서 굴원은 스스로를 매우 고결한 자태를 지닌 인물로 묘사하였다. 위의 시 전결구에서는, 오미의 맛을 지닌 매실을 먹지 않고 오직 국화만을 먹었다고 하는 굴원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상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매실과 관련된 한시는 대체로‘부열의 매실’과 연결되어 그 표현이 매우 제한적으로 쓰임을 알 수 있다. 매화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서 뭇 꽃이 피기 전에 제일 먼저 그 꽃을 피웠기에 선인들이 특히 귀애하였다. 또한 그러한 산고를 겪고 나서 맺힌 매실 또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국정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재상으로 비유되었던 것이다. 문득 우리는 어디에, 누구에게 ‘매실이 되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