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랑의 노랫소리
1.
차도위로 차들... 인도위로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저렇게도 급살 맞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 저들 중에 몇몇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 가고 있을 것이며, 저들 중에 몇몇은 이별에 상처로 방황하고 있을 것이며, 저들 중에 몇몇은 운명의 코드를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다니다가 가식적인 사랑에 목을 추스른다. 과거 현재 미래... 사랑의 방식이 변하듯 진정한 사랑이 실종 돼버린 이 도심, 지금 나는 이 도심을 뜬구름처럼 발길을 옮기고 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턱대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잠시 꽃집 앞에서 멈추게 되었다. 꽃을 구입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상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언제나 꽃을 구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의 얼굴은 사랑을 시작을 알리는 그런 설렘이다. 두 번째 얼굴은 사랑을 하는 사람의 행복한 얼굴이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이렇게 내게 되묻곤 하였다.
왜 사람들은 이별을 준비할 때에 꽃을 준비하지 않는 걸까? 이별자체도 아름답게 끝을 내고 이별이란 두려움을 위로해줄 그런 꽃을 말이다. 이렇듯 우리들은 사랑의 시작과 사랑의 진행일 때에 꽃을 구입하러 꽃집을 찾는다. 정말 사랑의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생기게 하는 대목이다.
결혼 그리고 사랑....
결혼하면 기념일이 아니면 꽃 한 송이를 구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진행도 사랑에 시작도 아닌 그냥 살갗을 맞대고 사는 걸까? 의문이 아닐 수가 없다. 아내도 여자이고 남편도 남자이다. 사랑을 주고 받아야할 인간인 남성과 여성이다. 기본적인 사랑의 표현이 없다보니 지금의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
지금 당신이 꽃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꽃가게 안을 들어다봐라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낯빛을, 그리고 지금의 자신의 낯빛을, 사랑이란 자신의 낯빛을 밝게 해준다. 노화를 방지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없다. 단지 설레는 마음이 사라졌을 뿐이다. 설렘...?
지금 당신은 꽃가게 앞에 있다면 꽃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꽃 한 송이를 구입하길 바란다. 물론 한 송이면 충분하다. 나또한 한 송이이상은 과소비라고 생각한다. 꽃을 샀으면 상상을 해보길 바란다. 당신을 사랑하는 아내든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든 사랑이 시작이든 그 사람이 지금 당신이 구입한 꽃 한 송이를 받고 얼마나 행복해할지를.... 그럼 꽃 한 송이의 여유로운 따뜻하고 행복한 감정이 생길 것이다.
보잘것없는 꽃 한 송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꽃 한 송이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이다. 운명도 마음이다. 코드도 마음이다.
이처럼 꽃 한 송이와 사랑해란 말 한마디면 이 삭막해져만 가는 사회의 평화와 가정의 화목이 생기며, 더나가 국가적 평화와 발전을 가져온다.
꽃집 안으로 거전한 사내가 망설임조차 없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사내의 키는 백 구십이 조금 넘거나 안 되어 보이는 호남형의 남자다. 누굴까? 이 남자가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걸로 보아 주인공? 설마? 주인공이든 아니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호남형의 사내가 꽃집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한 치에 고민도 없이 어떤 계산도 없이 붉은 장미(열정적인 사랑)가 들어있는 장미양동이를 들고 꽃집아가씨에게로 다가가 장미양동이를 올려놓는다.
꽃집아가씨는 장미양동이를 들고 와 자신의 앞에 올려놓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호남형의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사람 왜이래 하는 표정이다.
“아가씨 여기 있는 장미 모두 포장해주시겠습니까? 물론 시든 꽃은 빼고요?”
호남형의 자신감까지 갖고 있는 이 사내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하다.
꽃집아가씨는 양동이에 장미가 이백송이가 넘게 들어있는 것을 가져다놓고 전부다 포장해주라는 말에 놀란 얼굴로 되묻는다. 아가씨는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혹 장난치는 지도... 그러나 꽃집아가씨는 사냥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손님.”
“이 양동이에 있는 장미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전부 포장해주라고 했습니다. 왜 안 됩니까?”
“아..네. 아뇨, 물론 되고 말구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바쁜데 배달도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배달 가능합니다.”
꽃집아가씨는 이백송이를 단 한번의 고민도 없이 구입한다는 호남형의 얼굴을 한 번 더 확인하며 웬 횡재라는 듯이 입을 연다.
호남형의 사내는 배달할 곳이 적혀있는 쪽지를 내민다.
“이 주소로 배달해주세요. 시간은 대여섯 시 사이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꽃집아가씨 주소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호남형의 사내를 본다.
“여기 보내는 서함이 없는데요.”
“보내는 이의 성함도 있어야 하는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럼 그대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카드는 필요하지 않나요? 기념일이라면...”
“네, 필요 없습니다. 그냥 꽃만 배달 해주시면 됩니다.”
이 호남형의 사내는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자신을 이처럼 과시하기 위해 꽃과 돈 낭비를 하는 걸까? 여하튼 이 꽃을 받을 사람은 너무나도 행복하겠다.
꽃집아가씨는 양동이에서 장미를 뽑아 손질하기 시작한다.
“꽃값이 얼마죠.”
“한 송이에 천 원씩이니까. 총 이백삼십삼 송이니까? 이십삼만 삼천 원인대요. 그냥 이십삼만 원만 주세요.”
호남형의 사내는 지갑을 꺼내고 돈을 지불하며, 눈웃음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호남형의 사내는 자신이 구입한 장미를 받은 그 사람의 얼굴을 상상했다. 장미를 받고 그 사람의 행복해할 얼굴을.
“배달료는 없습니까?”
“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가씨는 환하게 웃으며 짧게 대답한다.
호남형의 사내 나가자 이번에 키가 백칠십 정도 되어 보이고, 몸무게는 육십오 정도 생김새는 별로 비호남형이 들어온다. 그리고 꽃집을 찬찬히 살피다가 그대로 나가버린다.
비호남형의 사내는 누굴까?
나흘 후, 호남형의 사내는 꽃집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장미양동이를 들고 꽃집아가씨에게 가져다놓는다. 역시 터프하다.
“이 꽃 전부 포장해서 어제 보냈던 곳으로 배달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장미가 삼백송이가 넘을 텐데요.”
“상관없습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오늘로 나흘째인데 장미를 이렇게 많이 사서 매일같이 보내시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를 보내지 않습니까?”
“네, 그렇기는 한데... 너무 많은 양이라?”
“사랑의 질투화신이 제게 붙어있는 모양입니다.”
호남형의 사내는 씽긋 눈웃음을 만들어 보인다.
“사랑의 질투화신이라뇨?”
호남형의 사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호남형의 사내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장미란 사랑의 상징이지 않는가? 그런 상징을 모두 장악하겠다는 생각... 한마디로 누군가를 소유하겠다는 그런 심리적인 것이었다.
호남형의 사내 장미 값을 계산하고 나가자. 연이어 비호남형의 사내가 들어온다.
꽃집아가씨는 그런 비호남형의 사내를 보며 혼자소리로 중얼중얼 거린다.
“저 사람은 꽃도 사지도 않을 거면서 왜 왔담.”
비호남형의 사내는 꽃들이 놓여 있는 곳을 한참을 배회하듯 돌아다닌다. 그러자 꽃집아가씨는 꽃을 포장하다 말고 비호남형의 사내에게로 다가간다.
“어떤 꽃을 찾으시는지요. 혹시 장미라도 찾으시나요?”
꽃집아가씨 꽃도 사지 않으면서 들어오는 그가 밉상으로 느끼면서도 입가엔 보조개가 들어가는 미소를 만들어 유혹한다.
비호남형의 사내는 그런 꽃집아가씨의 유혹의 미소에도 묵묵부답채로 꽃을 찾아 주위를 돌아보다가 민들레가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어 선다. 민들레(내 사랑 당신 곁으로) 꽃 한 송이를 뽑아 들고 코끝에 가져다댄다.
민들레, 비호남형의 사내는 자신이 어린시절 민들레로 꽃반지를 만들었던 기억이 살며시 떠올린다. 그런 민들레가 꽃집에 있다. 더욱이 가영이가 좋아하는 그런 민들레가 이 곳에 있다. 이 민들레를 선물한다면 필히 가영은 행복해할 게 틀림없을 것이다.
비호남형의 사내는 단지 민들레 한 송이지만 가영이가 민들레를 받고 즐거워할 것을 상상하자 설렘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심장은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처럼 쿵쾅쿵쾅 뛰어오른다. 단지 민들레 한 송이지만 선물을 할 수 있다는 기쁨과 설렘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사랑이란 참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
꽃집아가씨는 비호남형의 사내가 묵묵부답인 채로 민들레의 향기만 맡고 있자 얹잖다는 듯이 화를 낸다.
“이봐요!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꽃을 사지 않을 거라면 나가주세요!”
비호남형의 사내 꽃집아가씨가 미각을 찌푸리며 화를 내고 있지만, 그런 꽃집아가씨가 예쁘게 보인다. 꽃을 키우는 여인이라서인지 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얼굴.... 아니면, 몸매... 둘 다 아니다. 단지 느낌이다. 단지 느낌일 뿐이다. 꽃집아가씨는 마음씨도 곱지도 않고 얼굴도 몸매도 꽝이다. 그러나 비호남형의 사내에게 꽃처럼 예쁘게 보이는 이유는 비호남형의 사내가 지금 사랑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빠지면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이처럼 사랑이란 참으로 어리석고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세살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 그 어떤 사람이든 설레게 하는 그런 힘은 사랑이다. 어떤 이는 그런 사랑의 힘을 신과 같다고 표현까지 하였다.
성질내는 꽃집아기씨의 말이 들린다. 그러나 그 성질내는 소리자체가 아름다운 천상의 새소리로 들려온다.
비호남형의 사내 그는 정신병자이다. 사랑에 빠져버린... 그런 정신병자다.
나는 가끔 이런 사랑의 빠진 사람들의 머리를 해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빠진다.
꽃집아가씨는 좀더 큰 목소리로 비호남형의 사내에게 얘기를 한다.
“이봐요! 꽃을 살 거예요? 안 살 거라면 나가주세요. 남의 가게 영업방해하지 말구!”
비호남형의 사내는 그런 괴팍하게 성질을 내는 꽃집아가씨에게 배알도 없이 희죽거리며 본다.
“이 민들레 한 송이는 얼맙니까?”
꽃집아가씨 달랑 민들레 한 송이 구입하기 위해서 나흘 동안 쉬지도 않고 가게에 들락거렸다는 게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는 눈초리로 비호남형의 사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비호남형의 사내는 꽃집아가씨가 쳐다보든 말든 히죽거린다.
“겨우 한 송이요!”
“한 송이만 팔지 않습니까?”
“천 원요!”
“천 원요?”
“네! 천 원이라구요!”
비호남형의 사내, 그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놓는다. 아가씨는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지폐를 받으며 비호남형의 사내를 한참동안 윗알로 흘긴다. 꽃집아가씨가 이렇게까지 시건방진 것도 앞에서 젠틀맨인 호남남형의 사내와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에서 비교란 있을 수가 있다. 그게 사랑이니까?
비호남형의 사내는 민들레 달랑한 송이지만 너무나도 행복했다. 휘파람까지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꽃집아가씨는 그런 비호남형의 사내, 그가 꽃집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시부렁거린다.
“참, 어떤 사람은 장미를 몇 백 송이씩이나 받는데... 어떤 사람은 겨우 민들레 한 송이라니? 참으로 세상은 불공평하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언제부터인가 사랑도 물질로 비유하는 아주 더러운 악마에게 세뇌되고 있었다. 가난하면 사랑도 하지 말라는 얘기처럼 말이다.
이 꽃집아가씨는 지금까지 단 한번의 진실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란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다. 만약의 단 한번이라도 물질을 떠나서 진실한 사랑을 해봤다면 이런 아니한 생각자체를 못한다. 진실한 사랑은 그런 것이다. 자신을 세살짜리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