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설하면서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혼미(昏迷)에 혼미를 거듭하고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 중생들의 삶이 날이 가면 갈수록 피폐(疲斃)에 피폐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생들은 삶이 윤택(潤澤)해지기를 기원(祈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삭막(索莫)할대로 삭막해지고 각박해진 환경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계를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부른다. 사바세계는 중생들이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야하는 괴로움이 많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세상만사(世上萬事) 일체번뇌의 무명(無明)을 여의고 지혜를 닦아 진리(眞理)를 구하여 부처의 길을 가고자 세간(世間)을 떠나 수행의 길을 선택하는 출세간(出世間)에 비유해서 범부의 삶을 살아가는 속세간(俗世間)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흔히들 속세(俗世)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속세는 중생들의 마음이 탐(貪)진(嗔)치(癡) 삼독(三毒)에 물들었음을 말한다. 욕망의 마음이 불꽃처럼 치성(熾盛)한 사회를 말한다. 세속의 삶은 시대적, 공간적,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생의 삶’ 자체가 중생이라는 인(因)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이라는 연(緣)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특히, 인간들의 삶은 항상 부족함에 빠져있다. 인간들은 항상 구(求)하고자하는 것에 제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불평불만에 허덕이고 있다. 이를 불교에서는 구득불고(求得不苦)라고 하여 사고(四苦)팔고(八苦)중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의 우리사회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이유도 바로 이 구득불고에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유사 이래로 가난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왔다.
민족역사 반만년 세월을 먹을거리가 없어 못 먹고, 입을 거리가 없어 못 입고, 편히 쉴만한 곳이 없어 못 쉬고, 못 자고, 보호 없이 살아온 것이다. 이를 절대가난이라고 한다. 절대가난 시절 우리나라의 인구분포도는 농촌인구가 80%이고 도시인구는 20%를 차지했다. 80%의 절대다수 농촌인구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延命)하였다. 가을철 수확한 양식(糧食)으로 근근하던 극빈자들은 양식이 떨어지는 봄철이 되면 먹을거리를 찾아 산으로, 들로, 바다로 헤매고 다녔다. 이를 춘궁기(春窮期)라고도 하고 보릿고개라고 하는데 이때는 초근목피로 연명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보살피는 자비심(慈悲心)이 살아 넘치던 시절이었다. 나 먹을 것도 모자라는데, 내 식구(食口)들 먹을 것도 절대 모자라는데도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고 배려했던 시절이였이다.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은 희망이 살아있는 희망가난이였다. 비록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도 허리띠 졸라매고 자식들을 잘 키워 자식들이 고시(考試)에 합격하면, 자식들이 공부 잘해 출세하면 당장 그 부모들도 신분이 확 달라지고 덩달아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경(農耕)시절에는 정보보다는 오랜 경험이 필요했던 사회이다. 당시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사람들도 공장에서나 상점에서 익힌 경험(기술)을 바탕으로 각계각층의 경험을 살려 조그마한 공장이나 상점을 차려 성공의 발판을 마련해 성공을 거두고 그 부모들을 봉양했던 시절이다.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는 희망이 살아있는 절대빈곤 희망빈곤 시절이었다.
헌데 요즘의 빈곤은 좀 다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시기하고 질투하고 투쟁하고 좌절하는 상대빈곤이다. 인구분포는 급격히 역전되었다. 80%를 차지하던 농촌인구는 20%로 격감하고 20%의 도시인구는 80%이상으로 급증했다. 삶의 터전 역시 급변했다. 경험에 의해서 살아가던 농경시대의 생활양식은 경험보다는 정보에 의존하는 도시형 생활양식으로 급격히 변화한 것이다. 경험은 인터넷으로도 취득할 수 있는 정보로 바뀐 것이다.
현대인의 삶의 방식은 얼마나 좋은 고급 정보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취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의 가부(可否)는 정보의 질(質)과 양(量)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좋은 고급 정보들은 인맥(人脈), 학벌(學閥), 사회인연(人緣)에 의존한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학벌과, 인맥과, 사회인연이 없다면 별 볼일 없어 낙오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안타까운 시절이 도래(到來)한 것이다.
이 시대적 빈곤을 절망적(絶望的) 빈곤이라고 한다.
절망빈곤은 말 그대로 절망하고 좌절하여 스스로 생(生)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자살사고 사건들이 많이 발생시킨다. 삶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절대빈곤시절보다는 확실히 윤택(潤澤)해졌는데 나 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과 비교하다보니 상대적 좌절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쌓아온 농경시대 경험으로 살아가던 우리 중생들이 분초(分秒)를 타투는 최첨단 정보화 시대로 변화하는 과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과 절망의 길로 떠밀려 벼랑 끝으로 떨어지고만 것이다. 상대빈곤과 절망빈곤에서는 초근목피로 연명할 수도 없다. 연간 12조억원에 달하는 음식물쓰레기로 꿀꿀이죽을 만들어 먹을 사람도 없다. 실직(失職)하고 실패하면 바로 벼랑 끝 절망이다. 아니, 취업을 못해도 절망이다. OECD가입국 중에서 수치스럽게도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는 급성장한 경제상황과 급신장한 민주화의 영향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말 그대로 이유에 불과할 뿐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진짜 이유는 국제화, 세계화 운운하면서 무분별하게 서양문화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전통문화, 고유문화를 말살했기 때문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를 외치는 서양문화는 잘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신분상승을 위한 발버둥이다. 남을 짓밟고라도 나 혼자 잘살면 된다는 경쟁우선주의 서양 문화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문화는 조고각하(照顧脚下)의 더불어 잘살자는 자비(慈悲)문화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상부상조의 문화이다. 이 상부상조의 따뜻한 전통문화가 살벌하고 각박한 서양의 경쟁문화로 변질되어버린 것이다.
서양문화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으로 행동을 근거로 하는 이성(理性) 우선의 합리적(合理的)문화이다. 그러나 우리문화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과 관련되고 서로 얽혀 생각하고 행동하는 감성(感性)을 우선시하는 정서적(情緖的)문화이다. 끈끈한 정(情)을 뿌리로 한 상부상조의 우리의 전통문화가 논리적이고 이성을 뿌리로 하는 서양의 각박(刻薄)문화, 경쟁문화에 빅딜 당한 것이다. 남에 대한 배려 없는 무한 경쟁의 각박한 인심은 오늘날의 냉정(冷情)하고 살벌한 사회와 국가를 만든 것이다.
세상 인심이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우리의 전통문화만은 꼭 지키고 계승해야한다. 우리의 정서문화의 근원(根源)은 오랜 세월 신앙해온 불교문화에 있다. 특히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의 가르침에서 그 뿌리를 찾아 볼 수가 있다.
헌데 안타깝게도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불교신앙이 흔들리고 있다. 무한경쟁 각박한 인심 속에 종교가 흔들리고 있다. 무한경쟁 속에 사찰들도 예외는 아니다. 신도 확보 차원에서 기상천외의 불교가 생겨나고 언론의 힘을 빌려 마구잡이식 포교활동으로 정법(正法)불교, 정법수행은 위축되고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拘縮)하나 양화는 악화를 구축하지 못한다.’는 경제학자 그레샴의 법칙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깡그리 무너지고 우리의 정법불교가 서서히 잠식당하는 현실 앞에서 재가법사의 한사람으로서 더 이상 외면하고 방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분연히 일어나기로 했다.
우선 대한불교 법사회의 소위경전인 나무묘법연화경을 선택했다. 그중에서 한국 불자님들이 가장 친숙해하고 가장 많이 신앙하는 관세음보살님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해석하기로 한 것이다. 아주 쉽게 풀어서 해석하기로 했다. 때마침 대한불교 법사회 소식지 법수레에 연재되는 영광도 가졌다. 이번 출판은 2012년 9월부터 2년6개월의 비교적 긴 세월이 소요되었다. 또 한때는 글쓰기를 중단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한평생을 통하여 가장 존경하는 선지식 미천당 목정배박사님의 열반(涅槃)으로 인하여 정신적 공허감에 빠져들고 의욕상실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나, 웅봉법사의 평생서원(誓願)인 정법불교 정법수행에 채찍과 박차를 가해주시던 참(眞)스승님이셨다. 재가불교의 올바른 제자리 찾기와 재가불교의 올곧은 수행 환경의 정착화에 한평생을 다 투신하신분이시다. 의기투합(意氣投合)했던 참(眞)스승님을 잃은 아픔과 외로움이 너무나 크게 몰려왔다. 그러나 털고 일어나야만 했다. 재가불교 정착화이라는 큰 화두(話頭)앞에 나, 웅봉법사는 촌각(寸刻)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마무리하고자 한다. 제대로 된 재가불교의 정착화는 나, 웅봉법사의 필생(筆生)의 서원이자 숙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도 그 길을 가고자 한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 다소의 부담을 안고 출판을 감행하기로 것이다.
중생구제라는 큰 서원과 함께 출판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서원하고자 한다.
원이차공덕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
그리고 다시 한 번 불러보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