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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11. 10.~11.(수~목) - 음력(10. 6.~7.), 일출 07:01~일몰 17:20
●산행지: 영월지맥 1구간(신대리-화동1리)
●산행코스: 신대리-봉복사-덕고산-삼계봉-신대리갈림길-1,065m봉-1,107m봉-태기산갈림-풍력발전기(no.14)-군부대입구-군부대서문-백덕지맥분기점-974.4m봉-들메지 임도-(송전탑(no.174)-762.9m봉-방개골고개-651.4m봉-말영재
●먹거리: 생수1.5리터, 옥수수호빵, 떡, 양갱, 단백질바, 칼로리발랜스2, 자유시간2, 핫브레이크, 하리보3, 사탕30
●준비물: 텐트, 핫팩4, 바람막이외투, 조끼, 폴라텍, 경량우모, 침낭커버, 은박매트2,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팔토시, 말방울, 세라컵, 비닐우의, 매트리스,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30
●거리: 약 23.8Km (접속 6.2km)
●소요시간: 25.48h
●누구랑: 나홀로
●경비: 횡성12,300, 택시5,500, 아침7,000, 어죽탕9,000, 윈주3,500, 동서울10,800
●날씨: -4~9, 첫눈 설산산행
●산행경과:
* 11. 10.(수)
- 11:10 : 신대리종점
- 11:19 : 봉복사
- 13:04 : 헬기장
- 13:50 : 폐헬기장
- 14:39 : 1,087.8m봉
- 15:00 : 덕고산(德高山, 1,125m)
- 15:26 : 삼계봉(三界峰, 1,105m)/ 삼군봉(횡성군 청일면, 홍천군 서석면 → 평창군 봉평면)
- 15:51 : 신대리갈림길(1,072m)/ 군계삼면봉(평창군 봉평면, 횡성군 청일면 → 둔내면)
- 16:?7 : 태기산성갈림봉(1,080m)
- 17:37 : 태기산풍력발전기
- 18:16 : 태기산(泰岐山, 1,260.9m)군부대입구
* 11. 11.(목)
- 09:00 : 백덕지맥분기점(1,100m)/ 군계삼리경계면(평창군 봉평면 무이리, 횡성군 둔내면 태기리 → 삽교리)
- 10:17 : 들매지 임도(819m)/ 면계삼리봉(둔내면 삽교리, 태기리 → 청일면 신대리)
- 11:14 : 방개골고개(629m)
- 12:47 : 말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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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148.2km)
신대리-0.5km-봉복사-5.1km-덕고산-0.6km-태기산갈림길-2km-삼계봉-5km-태기산-1.8km-백덕지맥분기점-(들매지임도)3.5km-방개골고개/임도-2.9km-말영재
* 구간거리
- 삼계봉~횡성휴게소 40.7km (접속 6.2km)
-. 신대리~백덕지맥분기점 14km
-. 삼계봉~백덕지맥분기점 6.6km
-. 백덕지맥분기점~넘은재(하마암) 10.3km
-. 백덕지맥분기점~꼬부랑재 15.1km
-. 백덕지맥분기점~넘은재 9km
-. 꼬부랑재~횡성휴게소 11.6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하늘아래첫집팬션(033-345-7652): 큰성골계곡 접속 3.7km
- 봉복사 입구: 약수터
- 신대리갈림길~삼계봉 편도 600m
- 횡성군 버스: 명성교통(033-343-4410)
- 횡성택시: 033-920-4549
- 방개골임도: 5분 아래 지화 능이버섯 음식점
- 둔내 콜택시: 033-344-8008, 친절콜: 010-4113-2580, 개인: 033-342-0408
* 서울에서 삼계봉 가는 길
- 청량리역~횡성역 ktx: 05:32, 06:22, 07:22, 08:22, 09:22, 11:22, 13:22,~19:22, 21:52, 12,300, 0.58h
- 횡성군 농어촌버스: 만세공원~신대리 06:25, 10:25, 13:30, 14:05, 16:45
(노선: 만세공원-횡성군청-북천로터리-횡성읍사무소-개전리-옥동리-구방리-...)
* 둔내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둔내버스터미널~횡성: ~14:05, 14:40, 15:50, 16:50, 17:25, 18:30, 19:20, 19:40
- 둔내버스터미널~원주: 14:38, 17:38
- 둔내역~청량리역: 14:21, 16:04, 17:14, 19:19, 22:02, 22:46
* 원주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원주~동서울터미널: 16, 16:20, 16:40, 17, 17:20, 17:40, 18, 18:20, 18:40, 19, 20, 20:30, 21, 7,700~10,800
- 원주역~청량리역: 14:48, 15:27, 16:36, 17:44, 18:41, 19:52, 20:19, 21:34, 22:35, 0.46~1.09h, ~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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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지맥이란?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의 구목령과 덕고산 사이 삼계봉(1,065m)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평창강과 섬강의 수계를 가르며 횡성의 태기산(1,261m), 덕고산(705m), 봉화산(670m), 풍취산(699m), 원주의 매화산(1,085m), 치악산 비로봉(1,288m),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 제천의 감악산(954m), 감악봉(886m), 석기암(906m), 용두산(871m), 왕박산(598m), 단양의 가창산(820m), 삼태산(876m), 영월의 국지산(626m), 태화산(1,027m)을 거쳐 영월군 김삿갓면(옛 하동면)의 각동리에서 남한강으로 가라앉는 약 13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가창산:제천-영월-단양의 삼군봉), 태화산(단양-영월 경계)
♤ 영월지맥 개념도
♤ 영춘지맥(寧春枝脈)이란
삼계봉(1,065m)은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등 3개 군으로 나뉘고, 북으로 홍천강(내촌천)이, 맥길 동쪽편에는 북에서 남으로 주천강이 발원하여 평창강으로 합류하고, 맥길 서쪽에는 북에서 남으로 섬강(계천, 桂川)이 흘러 한강에 합류하는 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다.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은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 후 각각의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장곡현~구목령~삼계봉 구간 11km를 합하여 총 272여km를 "영춘지맥"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이를 지맥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나라 지맥 중 가장 긴 지맥이라 할 수 있겠다.
♤ 영춘지맥 개념도
- 영월의 태화산에서 춘천의 춘성대교에 이르는 영춘지맥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5대 지류 중 남한강 남쪽의 달천을 제외한 남한강의 평창강과 섬강, 그리고 북한강의 소양강과 홍천강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영월의 국지산에서부터 평창강의 서쪽 벽을 이루는 영월지맥은 치악산 남대봉에 이르러 평창강과 섬강의 경계를 이루고 남한강과 북한강의 경계인 한강기맥에 이른다. 구목령에서 남쪽으로 태기산, 덕고산, 봉화산, 매화산, 치악산 비로봉, 감악봉, 용두산, 태화산을 거쳐 영월의 남한강에서 마친다. 한강기맥을 벗어나 북한강 수계로 들어서면서 춘천지맥은 소양강과 홍천강의 경계를 이루다가 춘천의 대룡산에서 소양강을 작별한다. 이어 춘천의 봉화산을 지나 한치고개 위까지 홍천강의 북쪽 벽이 된다. 즉, 불발현에서 북으로는 응봉산, 백암산, 소뿔산, 매봉, 가리산, 대룡산, 봉화산 그리고 새덕산을 지나 춘천의 춘성대교에서 그 맥을 북한강에 넘긴다.
-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기슭의 검용소에서 시작한 골지천이 오대산 우통수에서 오는 오대천을 만나 내려가면서 어천. 용탄천. 지장천. 창리천 석항천 등을 받아들여 동강이란 이름으로 영월에 이르고, 평창군 용평면 윗삼거리 계방산 기슭에서 시작하는 평창강은 영월군 서면에서 태기산 자락에서 오는 주천강을 만나 서강이란 이름으로 영월에 이르러, 동강과 서강이 합류하여 남한강이라고 불리면서 영월군 하동면 대야리에서 태백산과 구룡산의 물줄기를 모아 내려온 옥동천을 받아들여 강원도 도계를 벗어나 충청북도에 접어들고, 금강산댐을 지나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강은 춘천의 의암호에서 향로봉과 설악산 그리고 오대산과 계방산의 물줄기들을 모아 내려온 소양강과 합류하여 서쪽에서 오는 금산천과 덕두원천, 동쪽에서 오는 공지천. 팔미천. 강촌천. 서사천 등 작은 지류들을 끌어안으며 춘성대교에 이르러 경기도 도계에 접하게 된다. 위 두 물줄기를 에워싸는 산줄기를 살펴보면 밖으로는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춘천의 경계인 월두봉에서 북배산. 화악산. 도마치를 거쳐 한북정맥에 이르고 한북정맥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 백두대간을 만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을 지난 후 소백산 국망봉을 오르기 전에 백두대간을 벗어나 형제봉을 거쳐 마대산에 이르러 남한강 건너의 태화산을 마주보고, 안으로는 강원도 영월과 충청북도 단양의 경계인 태화산에서 삼태산. 가창산. 용두산. 치악산. 매화산. 태기산을 거쳐 한강기맥에 이르고 한강기맥 1,052봉에서 뱃재로 내려선 후 응봉산. 백암산. 소뿔산. 가리산. 대룡산. 연엽산. 봉화산을 거쳐 춘성대교 앞으로 내려가 북한강 건너의 월두봉을 마주본다.
- 남한강이 강원도계와 만나는 영월의 태화산 자락 각동리에서 북한강이 강원도계와 만나는 춘천의 춘성대교에 이르는 한강기맥의 두 지맥(영춘지맥은 이의 약칭이며 산줄기 체계와는 무관함)은 한강기맥 구간 11km를 포함하여 총 272km에 이르고 있으며 이 산줄기는 유역면적이 1000㎢가 넘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5대 지류 중 달천을 제외한 남한강의 평창강과 섬강 그리고 북한강의 소양강과 홍천강 등 4개 강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즉, 영월의 국지산에서부터 평창강의 서쪽 벽을 이루는 이 지맥은 치악산 남대봉에 이르러 평창강과 섬강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한강과 북한강의 경계인 한강기맥에 이르고 한강기맥을 벗어나 북한강 수계로 들어서면서 소양강과 홍천강의 경계를 이루다가 춘천의 대룡산에서 소양강을 작별하고 춘천의 봉화산을 지나 한치고개 위까지 홍천강의 북쪽 벽이 되고 있다. 이 지맥을 종주하면서 국지산에서 북릉을 타면 평창강의 끝에 이르고, 치악산 남대봉에서 남릉을 타면 백운산을 거쳐 섬강의 끝에 이르며, 대룡산에서 북서릉을 타면 봉의산을 거쳐 소양강의 끝에 이르고, 봉화산 지나 춘성대교로 가다가 한치고개 지나서 남서릉을 타면 홍천강의 끝에 이르게 되어 한강기맥과 함께 이 산줄기를 종주하게 되면 한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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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지맥을 지나는 동네
* 홍천군(洪川郡)
백두대간의 서사면에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로 동쪽으로 백두대간의 연봉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지세가 동부는 높고, 서부로 갈수록 점차 낮아진다.도내에서도 특히 산이 많고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다. 홍천읍·화촌면·두촌면·내촌면·서석면·동면·남면·서면·북방면·내면 등 1개읍 9개면 105개리가 있다. 동북부에는 백두대간이, 동남부에는 한강기맥이 뻗어내려 해발 1,000m 이상의 전형적인 산지지형을 이룬다. 구룡덕봉(九龍德峰:1,388m)·약수산(藥水山:1,306m)·응복산(膺伏山:1,360m)·두로봉(頭老峰:1,422m)·오대산(五臺山:1,563m)·계방산(1,577m) 등이 동쪽 경계를 이룬다. 중부에 아미산(峨媚山:961m)·백우산(白羽山:895m)·공작산(孔雀山:887m), 서부에 매화산(梅花山:752m)·금확산(金確山:655m)·종자산(種子山:581m) 등이 솟아 있고, 서쪽 끝에는 영춘지맥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경기도 가평군과 자연경계를 이룬다. 하계망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홍천강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 유역과 내린천(內麟川)을 중심으로 한 동부 유역이 그것이다. 홍천강은 서석면 생곡리 미약골산에서 발원하여 내촌천이라고 불리면서 흐르다가 북부 중앙의 매봉(800m) 기슭에서 발원한 장남천(長南川)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흘러 북한강에 유입한다. 한편 내면 명개리 망월봉에서 발원한 소양강은 계방천이라고 불리며 북서류하다가 자운천 등과 합류하여 내린천이라고 불리면서 인제군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하천이 일대의 기반암을 침식하여 홍천읍·내촌면·동면·북방면·화촌면을 포함하는 홍천분지를 이루었다. 분지 내에는 5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하천 연안에는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벌력천현이었다가, 신라의 세력 확장에 따라 벌력천정을 설치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녹효현으로 개칭되어 삭주도독부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 940년(태조 23)에 홍천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홍천현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동안에도 유지되었다. 별호는 화산이었다. 1945년 8·15해방이 되면서 38°선 이남에 있던 인제군의 인제면 등 3개면을 홍천군에 편입했으나, 6·25전쟁 때 인제군이 수복됨에 따라 1954년에 남면과 인제면을 다시 인제군으로 환속했다. 1963년에 홍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풍천리가 홍천군 북방면·화촌면으로 편입되었고,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에 편입되었다. 한편으로는 홍천군 내면 미산리가 인제군에, 남면 상창봉리는 횡상군으로 이속되었다. 1983년 남면 상오안리가 홍천읍으로 편입되었고, 두촌면 천치리는 천현리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5년 북방면 성동리 일부가 화촌면 구성포리로 편입되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평창군(平昌郡)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 군으로 백두대간과 한강기맥 분기점에 위치해 1,000m 이상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횡계리 일대에는 목축업이 활발하다. 평창읍·대화면·대관령면·미탄면·방림면·봉평면·용평면·진부면, 계촌 출장소 등 1개읍 7개면 1개 출장소 89개 동리가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군청길이다. 부족국가시대에는 예맥국의 영역이었다. 삼국시대에 들어 고구려(또는 신라라고도 함)의 영역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백오현(白烏縣)이 되었다. 고려초에 지금의 이름인 평창현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초인 1392년(태조 1)에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의 비 효경왕후 이씨의 고향이라 하여 평창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평창의 별호는 노산(魯山)이었다.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의 분기점에 위치하고 있는 동북쪽의 오대산(1,563m)을 비롯해 1,000m 이상 되는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의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험한 산들이 군내 전역에 남북으로 연이어 있으며, 남부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약간 낮은 편이다. 백두대간이 뻗어내린 동쪽에는 선자령(仙子嶺, 1,157m)·고루포기산(1,238m)·장군바위(1,140m)·노인봉(老人峰, 1,338m)·발왕산(發旺山, 1,458m)·옥녀봉(玉女峰, 1,146m)·박지산(博芝山, 1,394m)·가리왕산(1,561m)·청옥산(靑玉山, 1,256m) 등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연이어 있으며, 대관령(832m)이 위치하고 있다. 한강기맥이 지나는 북쪽과 서쪽에는 보래령(寶來嶺)·회령봉(會靈峰, 1,309m)·흥정산(興亭山, 1,277m)·태기산(泰岐山, 1,261m)·청태산(靑太山, 1,200m)·계방산(1,577m)·사자산(獅子山, 1,120m)·백덕산(白德山, 1,350m)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도암면 횡계리 주변을 비롯한 군의 일부 중앙부에는 고위평탄면이 발달해 고랭지농업과 축산업이 이루어져 주민의 생활근거지가 되고 있으며, 백석산(白石山, 1,365m)·백적산(白積山, 1,141m) 등이 솟아 있다. 남쪽에는 무동산(舞童山, 633m)·노성산(魯城山, 400m)·옥녀봉(玉女峰, 590m)·삼방산(三芳山, 980m) 등의 1,000m 이하의 산들이 솟아 있다. 계방산에서 발원하여 군의 남북을 관류하여 남한강에 합류하는 평창강은 속사천으로도 불리며 남류하다가 봉평면에서 흥정천, 대화면에서 대화천, 방림면에서 계촌천과 합류하여 평창읍에 이르러 심하게 곡류하며 영월군에 흘러든다. 두로봉(1,421.9m)에서 발원한 오대천은 진부면을 지나 명주군에 흘러가며, 군의 동북부를 흐르는 송천은 황병산(黃柄山, 1,407m)과 선자령의 분수계를 기점으로 심하게 곡류하면서 도암면을 관류하여 정선군으로 유입한다. 군내를 흐르는 대부분의 하천들은 감입곡류하천으로, 주변에는 좁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남부에는 석회암지층이 분포하여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했다. 2007년에는 도암면의 명칭이 대관령면으로 변경되었다.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평창올림픽은 아시아에서는 3번째,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이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횡성군(橫城郡)
횡성군은 대한민국 강원도 서남부의 군으로 한우와 안흥찐빵 등이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군의 경계는 동쪽은 평창군, 서쪽은 양평군, 남쪽은 원주시와 영월군, 북쪽은 홍천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군청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읍하리에 있다. 지형은 백두대간의 오대산에서 분기한 한강기맥이 군의 동부를 남서방향으로 뻗어 동·남·북부가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완경사를 이룬다. 북쪽에 수리봉(960m)·발교산(髮校山, 998m)·태의산(台議山, 675m)·오음산(五音山, 930m), 동쪽은 운무산(雲霧山, 980m)·봉복산(鳳腹山, 1,022m)·태기산(泰岐山, 1,261m)·청태산(靑太山, 1,180m)·사자산(獅子山, 1,120m)이 있다. 남쪽에는 매화산(梅花山, 1,084m)·치악산(雉岳山, 1,288m)·향로봉(香爐峰, 1,043m), 남태봉(南台峰, 1,182m)·배향산(拜向山, 808m)·삿갓봉(1,030m), 서쪽에는 성지봉(聖地峰, 791m)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군내 산지의 특색은 봉복산을 제외한 모든 산이 군계와 접하고 있어 군역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고도는 낮은 곳이 횡성읍의 해발 110m이고, 둔내면은 평야지가 해발 500m의 고대지로 되어 있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적 특색을 나타낸다. 모든 수계는 남한강계(南漢江系)에 속하고, 크게 섬강(蟾江) 수계와 주천강(酒泉江) 수계로 나뉜다. 갑천(甲川)은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청일면 감천리·유평리를 지나 초현리와 갑천면과의 경계에서 계천(桂川)과 합류한다. 수리봉에서 발원한 계천은 남쪽으로 흘러 갑천과 합류되기 전까지는 유동천(柳洞川)으로 불린다. 계속 서류하다가 태의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여 온 대관대천(大官垈川)과 합쳐져 섬강이 되어 남류하여 금계천(錦溪川)과 합류한다. 죽림산에서 발원한 전천(前川)는 서류하여 횡성읍에서 섬강과 합류하고, 섬강은 남서류하여 원주시로 흘러든다.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은 둔내면의 자포곡리, 둔방내리를 지나 남류하여 안흥면 안흥리를 지나 강림면 강림리에서 동남쪽으로 꺾여 월현리에서 영월군 수주면으로 흘러든다. 고구려시대는 횡천현(橫川縣) 또는 어사매(於斯買)라 하였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황천현(潢川縣)이라 개칭되었고 삭주(朔州)의 영현(領縣)으로 되었다. 고려시대에 다시 횡천현으로 개칭되어 춘주(春州)의 속현(屬縣)으로 되었다가 뒤에 원주(原州)의 속현으로 바뀌었다. 1389년(공양왕 1)에 비로소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횡천이라는 명칭은 군의 젖줄인 섬강이 남북으로 흐르지 않고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기 때문에 가로의 뜻인 ‘橫’자를 쓰게 된 데서 유래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감무가 현감(縣監)으로 개칭된 예에 따라 현감이 파견되었다. 다음해에는 홍천(洪川)과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횡성현(橫城縣)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2000년 1월 12일갑천면 부동리를 갑천면 삼거리에 통합하였으며, 2002년 1월 10일횡성읍 마산리 일부를 횡성읍 읍상리에 편입하여 1읍, 8면 174행정리, 110법정리, 761개 반을 관할하고 있다. 5·6번 국도가 교차하고 우천면, 안흥면을 통과하는 42번 국도가 있다. 영동고속도로가 군의 중앙을 횡단하고 중앙고속도로가 종단한다. 횡성군은 독자적으로 군내버스를 운영하지 않으며 원주시내버스가 횡성을 연장하는 형식으로 운행한다. 2017년에는 경강선이 군내를 관통하여 횡성역, 둔내역이 신설되고 서울과 횡성을 40분에 이어 줄 수 있게 되어 서울로의 접근이 편리해졌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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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봉, 영월지맥을 하기위해선 짧은 어프로치가 어디인지 궁금하네요.^^
가을비가 그치고 약속이나 한듯 기온이 급강하 하였습니다.
등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침낭을 넣지 않았는데 긴 밤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네요.
삼계봉에 접속하는 방법으로, 봉복사 주차장에서 덕고산을 거쳐 약 5.1km를 산행하는 방법과, 시누대팬션에서 한남대계곡을 거쳐 접속하는 등로(약 4km), 하늘아래첫집팬션에서 큰성골계곡을 거쳐 북쪽 방향으로 약 3.7km를 접속하는 방법 등이 있는 것으로 사전 조사되었는데, 그 중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야 하지만 가장 접속거리가 짧은 하늘아래첫집펜션에서 출발하는 등로로 접속할려다 최종 부뜰이운영자님 가신 봉복사 덕고산 길을 따르기로 합니다.
첫날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여섯시가 되기 전에 해가 지고, 아침 일곱시가 되어야 날이 밝던데....
08:22분 KTX로 횡성으로 가서, 신대리 가는 10:25분 버스를 이용하여 신대리 종점에서부터 출발하려 합니다.
그리고 둘쨋날 횡성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며 물과 먹거리를 보충해야 합니다. 과연 치악산을 넘어갈 수 있을지...
도상거리 136km인데 실거리는 150km가 나옵니다. 짐이 가볍다면 싸리치재까지 욕심을 내보겠는데 어려울것 같습니다. 세 구간으로 잡아야 할려는지 일단 출발해 봅니다.^^
삼중고에 시달렸습니다.
우선은 적설이 이 정도 일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고아텍스도 가져오지 않고, 체인젠도 준비 하지 않고, 신발도 헤진것을 마지막으로 골랐는데....
띠지도 하얀 눈이 묻어 보이지 않고, 산죽밭은 눈이 쌓인 채로 얼어붙어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트랭글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따라가기를 해도 어쩐 일인지 기록정보를 가져오는데 실패했다고 네트워크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시도하라는 메시지만 뜹니다.
그야말로 오감을 작동하여 냄새만 맡고 찾아가야 했습니다. 눈이 쌓여 삼각점과 이정표는 확인하기 어려운 게 많았고, 트랭글도 작동되지 않아 태기산성갈림봉이 어딘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알바를 한 지점에서 다행히 건너편에 보이는 태기산 풍력발전기를 보고 능선을 짐작하고 띠지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 내려와 다시 시작했습니다.
태기산 임도 주위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울타리가 쳐져 있어 뛰어넘어야 했습니다. 배낭 던지고 스틱 던지고,, 급하니깐 넘어가지더군요.ㅋ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몇번을 넘어졌는지 모르겠네요. 엉덩짝엔 금이가고 예상치 못한 눈길 산행에 무리가 따랐는지 장단지 앞뒤로, 종아리로 쥐가 나서 눈밭에 뒹굴어야 했습니다.
태기산 정상에 도착하여 일단 국통사 팻말이 있는 정문에서 좌측을 올라가보니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내려와 우측으로 갈려다가 정문 인터폰을 누르니 작동이 안되네요. 인터폰에 상황실 일반전화번호가 있어 눌렀습니다.
군인 두명이 내려왔는데 등산하다 길을 잃었다고 추워서 얼어죽겠다고 바람좀 잠깐 피하면 안되냐고 하니깐... 안된답니다. ㅋ~
우띠~ 나도 국통사에서 근무했다고 여기 원주 51대 3중대에서 파견나와있지 않느냐고 걸쳐보았지만,,,
사정이 딱하지만 군사시설이라 문을 열어드릴 수 없답니다.
흐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더 이상 얘기하기도 힘듭니다. 그럼 우째 내려가야 하냐니깐... 되돌아 내려가서 황소 있는데서 좌회전하여 1시간 정도 내려가면 된다고 알려주네요.
양구두미재를 가기 위해선 이쪽 옆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하니... 눈이 많이 쌓여 불가능하다고 임도를 따라 돌아서 내려가야 한답니다.
태기산 정상에는 다른 세상이 있었습니다. 사람 잡아먹는 바람이 서식하고 있더군요. 투덜투덜 털레털레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임도를 따라 내려섰습니다. 조금만 내려서도 바람이 없으니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여기서 그냥 후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고온 텐트가 아깝기도 하고... 일단 하룻밤 보내보기로 하고 자릴 폈는데....
아~ 추워 디지는 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핫팻 네개 가져간거 허리에 붙이고 배에 붙이고 양 다리에 붙여보았지만 긴긴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장거리를 가겠다고 잔뜩 벼르고 왔는데...
앞서 가신 해피마당쇠님을 영월 도착하기 전에 추월할 수도 있지않겠냐고 생각했는데...
밤에 소피보러 밖에 나오니 눈이 또 오네요.
텐트도 여름 텐트라 결로현상으로 안에 맺힌 이슬이 한방울씩 떨어지다가 기온이 떨어지니 서리로 변합니다.
안되겠다 후퇴하자... 이건 무영객님 스톼일이지 내 스톼일이 아니야! 내 사전에 중탈이란 말은 없다 이런 식의 무모한 말을 하지 말자고....
늦게까지 퍼질러 자다가 군부대 울타리를 통과할 수 없겠단 판단으로 임도를 따라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임도를 따르는데 오르막길이 나오고, 풍력발전기가 앞에 보이네요. 앗! 옆을 보니 ASF철망 안쪽으로 철문이 하나 있는게 부뜰운영자님 산행기에서 본 천왕봉운영자님이 열고 나가면 된다는 그 문이었습니다. 지형적으로 봐도 정상 군부대를 우회하여 내려서면 이곳으로 나오는거구나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올라서니 역시 선답자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팔랑개비가 나옵니다.
아니 여기가 양구두미재 아니야... 아하!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무영객님 띠지가 지켜서 있는 백덕지맥 분기점에 이르러 잠시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화동리까지 가야 다음 구간 이어붙이기가 좋을것 같았습니다.
날씨도 좋고, 시간도 많고, 그리고 내리막길에다가 가면서 적설도 점점 잦아들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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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봉(1,065.8m봉)을 출발할 때는 좌측이 평창군 봉평면, 우측이 횡성군 청일면으로 갈려 남쪽으로 잠시 달려 신대리 갈림길에서 우측이 횡성군 둔내면으로 바껴 동쪽으로 달리고, 태기산성 부근에서 남향으로 이어지다 백덕지맥분기봉에서 온전히 횡성군 둔내면 안으로 들어서서 남서향하여 들메지임도까지 진행하고, 이 임도에서 우측이 청일면과 만나 이후 우 청일면, 좌 둔내면으로 나뉘어 방개골 임도 이후까지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평창군과 횡성군을 경계지으며 ‘역C자’ 형태로 진행하는 셈이다. 방개골 임도에서 좌측이 횡성군 둔내면, 우측이 횡성군 청일면으로 갈려 남동향 또는 남향으로 달리다가, 삼면계인 검두골 임도에서 우측이 횡성군 청일면에서 갑천면으로 바뀌어 남향으로 이어지다가 느릅재 직전봉에서 서향으로 바뀌어 칠송고개 이후까지 이어진다. 칠송고개까지 올 때는 위(북) 갑천면 아래(남) 둔내면으로 나뉘어 와, 칠송고개에서 온전히 둔내면 관내로 들어서서 잠시 이어가다, 강원도 축산기술연구센터를 벗어나는 지점의 군삼각점이 있는 산불초소봉에서 우천면(隅川面)과 만나 좌 둔내면 우 우천면으로 갈려 고들고개까지 진행하고, 이 고들고개에서 다시 둔내면 관내로 들어서서 덕고산(德高山)까지 이어진다. 덕고산에서 안흥면과 만나 맥길은 서향으로 바뀌고 위(북) 둔내면 아래(남) 안흥면으로 나뉘어 영동고속도로까지 이어지고 이 곳에서 안흥면 관내로 맥길이 이어져 봉화산 전위봉까지 이어지고, 이 곳에서 우천면과 만나 봉화산까지 진행하고, 봉화산에서 다시 안흥면 안으로 들어서서 아래태오지 임도 이후까지 이어진다.
입구에 약수가 있고 약수터 우측으로 임도가 있습니다. 거기서 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 산으로 달라붙으면 능선에 금새 오를 수 있습니다. 봉복사 뒤쪽에 봉복산이 있고 그게 덕고산으로 이어진다는건 한강기맥을 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부뜰운영자님은 새벽이라 캄캄해서 임도를 따랐지만 저는 능선이 눈에 보였습니다.
♤ 봉복사(鳳腹寺)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 산138번지에 있는 봉복사는 덕고산(현재 태기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횡성군에 있는 현존 사찰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 또한 큰 사찰이다. 봉복사의 창건연대는 이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사지(寺誌)에 따르면, 647년(신라 선덕여왕 16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덕고산 신대리에 창건하고 삼상(三像)을 조성하여 봉안한 뒤에 오층석탑을 조성하고 봉복사(鳳腹寺)라 하였다. 652년(진덕여왕 6년)에 낙수대(落水臺, 천진암(天眞庵) 등의 암자를 지었고, 669년(문무왕 9년) 소실되어 동왕(同王) 11년과 12년에 원효조사(元曉祖師)가 중건(重建) 하였다고 한다. 1034년 (고려 덕종 3년)에는 도솔암(兜率庵), 낙수암(落水庵)이 소실되었다. 1747년(조선 영조 23년)에는 서곡선사(瑞谷禪師)가 중건하였으나 1907년(대한제국 융희 원년)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봉복사(鳳腹寺)의 사찰명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범우고(梵宇攷)에는 ‘奉福寺在德高山’으로, 횡성읍지(橫城邑誌)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奉福寺在縣北七十里五房’으로, 관동지(關東誌)와 관동읍지(關東邑誌)에서는 ‘鳳腹寺在縣北七十里五房今爲單房’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봉복사(奉福寺)로 불려지다가 ‘봉복사(鳳腹寺)'로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찰 주변에는 맷돌 등 석조물과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다. 와편은 수지문(樹枝文)과 기하학적 문양의 평와편(平瓦片)으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봉복사와 관련해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원래 봉복사는 아랫마을 봉복사탑이 위치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 1백여명의 스님이 수행하며 10여개의 산내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던 봉복사가 화재로 소실이 됐다. 원효스님이 중창을 하기 위해 재목을 마련해 마당 한켠에 쌓아두었다. 불사가 시작되기 전날, 덕고산 산신령이 원효스님의 꿈에 나타나 “사찰의 자리가 이곳이 아니라”고 일렀다. 스님이 꿈에서 깨어보니 산더미 같던 나무들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밤새 산신령이 소를 시켜 나무를 옮겨 놓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자리에 다시 봉복사가 중창됐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6·25전란을 겪으면서 화려했던 옛 영화를 뒤로한 채 지금은 대웅전과 요사채, 산신각만이 덕고산을 지키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횡성지역 의병부대의 주둔지 역할을 했다. 밖에서 봤을 때 골짜기가 많아 찾기 힘들었고, 골짜기가 깊어 쉽게 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긍호의 의병부대가 근거지로 삼았으며, 이를 토대로 의병장들이 연합하여 제천, 충주 등지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봉복사(鳳腹寺)는 한자로 봉황새의 배를 의미한다. 봉의 머리를 의미하는 설악산 봉정사에서 시작해 이곳 횡성 봉복사로, 그리고 여주 봉미산 신륵사로 이어진다.
♤ 덕고산(德高山, 1,125m)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이정목과 모 산악회에서 걸어둔 표지판이 깨진 채 떨어져 있다. 성골계곡을 사이에 두고 태기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삼한시대 말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새로 일어나는 신라군에 쫓겨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군과 싸웠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덕고산은 고시지명이 아니며 산경표와 대동여지도 현재의 백과사전에도 나오고, 청일면 신대리 봉복사(鳳腹寺)의 사찰명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奉福寺在德高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정작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지명고시, 지형도)에는 없다. 봉복사 입구에도 “德高山鳳腹寺” 표석이 있다. 『산경표』에서는 태치산(泰峙山 또는 일명 덕고산)으로 표기가 되어있고 『대동여지도』에는 덕고산(德高山)과 태기치(泰岐峙)로 따로 기재되어 있으며 1:50,000 지형도에는 산 높이만 되어있는 덕고산은 그 산자락에 천년고찰 봉복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봉복사에는 덕고산봉복사(德高山 鳳腹寺)이 편액이 걸려있어 덕고산이라 불리는 것이다.
♤ 삼계봉(三界峰/1,105m)/ (횡성군 청일면, 홍천군 서석면 → 평창군 봉평면)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횡성군 청일면 그리고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삼계봉(三界峰)이란 명칭은 고시지명은 아니고, 초창기에 한강기맥을 답사하고 신산경표의 저자이신 박성태님이 명명했다고 한다. 삼계봉은 홍천, 평창,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나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셋의 경계가 되는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이곳 삼계봉에서 우측 태기산쪽으로 영월지맥이 분기되며, 청량봉까지 한강기맥과 영춘지맥이 같이 간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횡성군 청일면 그리고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이며, 이곳에서 영월지맥이 분기하여 영월 태화산까지 도상거리 136km 산줄기가 남한강에서 마감한다.
영월지맥 분기점인 삼계봉(1,065m)은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 3개 강이 갈리는 곳이나 그 이름이 없었는데,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에 셋의 경계가 되는 봉우리란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한강기맥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경계를 가로 짓는데, 한강기맥의 남쪽 지역은 남한강 수계이다.영월지맥은 한강기맥 삼계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해서 평창강과 섬강의 수계를 가로 짓고, 치악산 남대봉에 이르러 평창강 지류인 주천강과 섬강의 지류인 제천천 경계를 이루다가 영월 태화산을 지나 남한강에서 그 맥을 다한다.
- 태기산 4.5km, 구목령 3.72km이다.
♤ 신대리갈림길(1,072m)/ 삼면봉(평창군 봉평면, 횡성군 청일면 → 둔내면)/ 삼계봉 600m
영월지맥 삼계봉 최단거리 접근로이며, 신대리에서 영월지맥 마루금에 올라 삼계봉을 왕복하는 지점으로 많이 이용된다. 신대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산죽군락지 오름길이 나오고 한차례 밀어올리면 1,072m봉에 안착한다. 1,072m봉에서 내려서면 완만한 안부능선이 나오고 조금 진행하다가 오르면 무명봉을 넘어 내려섰다 오르며 3개의 군이 만나는 삼계봉에 도착한다.
♤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新垈里)
태기산 신대리 마을은 예전에는 셋터마을 또는 복조리마을로 불리다가 글자표기가 정착되면서 신대리(新垈理)로 지명이 통일되었다.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난을 피하여 덕고산(지금의 태기산)에 입산하여 성을 쌓고 은거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패망하게 되었다. 이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잔여병사들이 모여서 터를 닦고 새로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하여 셋터, 신대리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 1,080m봉/ 태기산성지(泰岐山城址)
태기산성지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무이리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산성으로, 태기산 서쪽에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가 있어 군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태기산은 옛날에 덕고산으로 불려 《세종대왕실록》지리지에는 덕고산성(德高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둘레 1022.4m, 높이 1.5m로 샘이 있고 군창 5간(間), 관청 2간이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돌로 쌓은 성이 1095.9m로, 안에 우물이 있었으나 오랜 풍상을 겪는 동안 황폐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기산에는 태기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전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때부터 산성이 축조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태기왕은 신라초기의 왕 박혁거세에게 밀려 이곳 천하의 요새 태기산에 입산하였다. 태기산은 하부가 괴암석벽으로 되어있어 산에 오르기가 쉽지가 않은반면 상부는 고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샘물이 있어 농사가 가능하여 장기체류가 용이하다. 이러한 장점을 이용하여 돌로 성을 쌓고 군대를 재정비하고 재기에 꿈을 키웠다. 반면 추적군은 구리봉(지금의 갑천면소재지 앞산)에 진을 치고 적지에 척후병을 보내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날 척후병으로부터 중요한 정보가 전해졌다. 드디어 참모회의가 열리고 전투명령이 떨어졌다. 공격명령은 수비가 약한 뒤를 우회하여 기습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추적군 참모회의가 한참 열리고 있을 때 태기왕 진영에서는 적군들의 군영에 별다른 이상징후가 보이지않자 앞 경계병만 남기고 모두 잠자리에 들어 깊은잠에 빠지고 말았다. 군사들이 피로에 지친 잠은 세상일을 잊은채 좀처럼 깨어날줄 모르고 산채에는 적막감에 쌓여있었다. 이때 추적군 현지군영에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워놓고 그 손에는 횃불을 들어 군사들의 이동이 없음을 위장하여 놓고 야행을 하여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 단잠에 빠져있었던 태기왕 군영은 대적한번 제대로 하지못하고 쫓겨 패로의 길을 가야했다. 태기왕은 대패를 거듭하면서 태기산성에서 약50Km 떨어진 평창군 봉평면 멸운리에서 그 운명을 다했다. 군사들이 진을 치고 태기왕의 군사가 먼지와 피로 얼룩진 갑옷을 냇가에서 씻어 입었다하여 갑천(지금의 갑천면) 지명이 유래되었다 한다. 급하게 쫒기다 왕의 말 지르매가 떨어졌다 하여 지르매재, 멸망한 곳을 멸운리, 옥쇄를 빼앗긴 곳을 옥골 등등 지명이 있으며 공격 소식을 듣고 지원군이 오다가 패망 소식을 듣고 한탄을 하였다 하여 한탄대, 한탄하며 돌아가다 어두워진 골을 어두원골 등 태기산성을 기점으로하여 많은 애환이 담긴 지명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고 다만 구전문화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 태기산 풍력발전기
태기산 풍력 발전기 단지는 2008년 10월 28일 포스코건설이 시공한 2MW급 20기, 총 발전용량 40MW/h 규모로, 이는 연간 98,300mwh를 생산하여 횡성.평창지역 25,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라 한다. 선자령, 매봉산과 함께 강원도가 역점 추진하는 친환경 무공해 재생에너지 사업이라고 한다. 풍력발전기 타워의 높이는 80m, 타워 지름은 하부 4m, 상부 2m이고, 날개의 길이는 40m라고 한다.
- 8번 풍력발전기 우측 옆에 태기산 정상석이 있다. 도로 따라 바로 진행하면 보지 못한다. 어차피 군부대 때문에 태기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므로 군사도로를 따라 계속 군부대 정문까지 진행한다.
♤ 태기산(泰岐山, 1,260.9m)
태기산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횡성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본래는 덕고산(德高山)이라 불렀는데,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에 대항하던 곳이라 하여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갑천도 원래는 주천(酒泉)이었으나 태기왕이 박혁거세의 추격을 받아 산으로 들어올 때 더러워진 갑옷을 씻었다 하여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이 지역 일대의 지명은 태기왕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산 정상에는 길이 약 1㎞의 태기산성과 태기산성비가 있다. 태기산성은 해발 750~1,000m 정도 되는 고지에 축성되었는데 산세가 급하고 낭떠러지가 많아 천연적 은폐물의 역할을 하는 요새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태기왕은 이런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욕을 다짐하며 산마루에서 약 500m 정도 남쪽으로 내려와서 둘레가 3,653척이나 되는 성벽을 구축하고 정예 병사를 육성하는데 노력하는 한편, 산성 안에 전답을 개간하여 군량을 보충하였다. 4년의 세월이 흘러 신라군은 공격이 가능한 지형을 찾아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 방면을 통해 자연림으로 위장하고 정상을 차지한 뒤 일제히 공격하니 결국 역부족임을 깨닫고 태기왕은 남은 병사들을 인솔하고 서문(西門)을 통해 지르매재를 넘어 율무성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산성 주변에는 허물어진 성벽과 집터, 샘터가 남아 있다. 산성 주변에는 허물어진 성벽과 집터, 샘터가 남아 있다. 태기산에는 횡성군내 현존하고 있는 사찰 중에 가장 유서가 깊은 절로 647년(신라 선덕여왕 16)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봉복사가 있다. 봉복사는 불교의 3대교구 본사인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에 소속된 말사이다. 태기산은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지승」, 「1872년지방지도」, 「여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갑천면에 소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육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태기산은 산세도 웅장해 멀리 대관령부근의 오대산, 원주의 치악산 등지에서까지 그 모습을 뚜렷이 가늠해 볼 수 있다. 횡성군 둔내면소재지에 이르면 멀리 북동쪽 방향으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태기산의 전경이 바라보이고 이곳은 11월 중순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4월말까지 설경이 유지되는 곳이다.
- 군부대 m/w통신시설물이 가까이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본래의 태기산 정상은 국통사가 자라잡고 있어서 갈 수 없기 때문에 일반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인 곳이다. 다만 태기산 표지석은 정상 아래에 설치해 두었다.
- 군부대 정문에서 좌로 올라가 인증하고, 다시 통신부대 정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서 펜스를 따라 진행한다. 먼저 진행한 선답자들의 발길이 무성한 잡풀 사이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펜스가 좌측으로 휘어져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분기점 반대편에 ASF울타리 공사를 하며 분기점 산패는 날라간 모양입니다.
♤ 백덕지맥분기점(1,100m)/ 군계삼리경계면(평창군 봉평면 무이리, 횡성군 둔내면 태기리 → 삽교리)
평창군 봉평면과 횡성군 둔내면의 면계에서 둔내면으로 접어드는 지점이다. 백덕지맥분기점 도로를 따르다 백덕지맥분기점 산패가 있는 곳에서 검은 차양막을 넘어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백덕지맥은 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 4번풍력발전기 30m 우측편 전신주 방향 산죽군락지가 있는 등로로 내려서며 진행한다.
♤ 백덕지맥(白德枝脈)이란
백덕지맥은 영월지맥의 태기산(1,259m) 남서쪽 1.3km 지점에서 남으로 분기하여 동쪽으로 평창강, 서쪽으로 주천강의 분수령을 이루면서 양구두미재(980m), 청태산(1,194.2m), 술이봉(897m), 오봉산(1,126.2m), 문재, 사자산(1,180m), 당재, 백덕산(핏대봉, 1,350m), 신선바위봉(1,089m), 여림치, 다래산(746.5m)을 지나 주천강이 평창강에 합류하는 영월군 한반도면 선암마을 합수점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54.8 km 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최고봉인 백덕산(白德山, 1,350m)을 비롯하여 사자산(1,180m)과 1,000m급 여러 개의 고봉들이 주류를 이루며, 지맥 끝점인 선암마을에는 평창강의 물굽이가 우리나라 지형을 만들어 내어 한반도지형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고봉인 백덕산 이름을 따서 백덕지맥(白德枝脈)이라 부르며, 주천강(95.4km)의 우측, 평창강(149.4km)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
♤ 백덕지맥 개념도
♤ 양구(兩鳩)두미재(980m)/ 경찰전적비/ 백덕지맥
양구두미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서 평창군 봉평면으로 넘어가는 6번국도의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다. 양구두미재는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수도권에서 강릉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한다. 태기산의 8부 능선에 위치한 고개로 마을 사람들은 양구데미라 불렀다 한다. 옛날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듣고 용한 지관을 통해 아버지의 묘를 쓴 곳이 바로 이 고갯마루였는데 한참이 지나도 재산이 늘어나지 않자 선비는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들어냈는데 땅 속에서 두 마리의 황금 비둘기가 나와 고개 너머로 날아가버렸다 한다. 그 후로 이 고개를 양구(兩鳩)데미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양구두미재는 강원 영서 내륙의 고개답게 높이도 꽤 높은데 고갯마루의 정상은 대관령보다 높은 해발 980m고지를 통과한다. 하지만 횡성 땅 둔내면 일원이 해발 500m이상의 고원지대라서 둔내면에서 바라본 태기산은 그리 높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잘 다듬어진 고갯길은 누구나 쉽게 넘을 수 있다. 고개 정상에는 송신 중계소가 있고 신기하게도 고개 정상에 솟는 샘이 수질이 뛰어나 이 길을 지나는 차량들이 물을 길어 간다. 12월로 접어들면 날씨가 더 내려가면서 아침 일찍 고갯길을 넘거나 구름이라도 덮히는 날은 온 산이 하얗게 설화로 장식되어 환상적인 모습으로 장식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서쪽 아래 구두미 마을이 보인다. 옛지도에는 구두미마을을 ‘九斗味’로 표기했다.
♤ 횡성군 둔내면(屯內面)
횡성군 둔내면은 동쪽으로 평창군 방림면, 서쪽으로 청일면과 갑천면, 남쪽으로 안흥면, 북쪽으로 평창군 봉평면과 각각 접해 있다. 둔내면이라는 지명은 둔창(屯倉)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둔창이란 둔전(屯田)에서 수확되는 곡식을 저장하는 곳으로 둔내면 둔방내리에 둔창이 있었다. 언제 설치되었는지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둔전(屯田)은 고려 후기에 설치되어 조선시대에 성행하였으므로 둔방내리의 둔전도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둔내면 둔방내리 둔창에서는 주민에게 매년 양곡 300섬 씩을 대여하였는데 그 규모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둔창이 있는 곳이라 하여 둔창내(屯倉內)라 부르다가 발음상의 편리를 위해 창(倉) 자를 빼고 둔내(屯內)라 부르게 된 것이 그대로 굳어져 면명을 둔내면이라 칭하게 되었다.
♤ 974.4m봉/ 삼각점봉
완만한 등로길이 이어지다 1077m봉에서 내림길이 시작된다. 970m봉은 허리높이의 산죽밭이다. 산죽밭을 내려서면 무명봉이 나오고 잠시후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974.4m봉에 도착한다.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974.4m봉은 우회 등로길이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수 있는 지점이다.
- 4등삼각점(봉평 451/ 2009 재설)이 있다.
♤ 들매지 임도(819m)/ 삼리봉(둔내면 삽교리, 태기리 → 청일면 신대리)
들매지 임도로 내려서기 직전 830.2m봉이 둔내면 태기리, 삽교리, 청일면 신대리의 삼리봉이다. 들메지란 횡성군 둔내면 태기리에 있는 자연부락인데, 들메지의 지명유래는 진한(辰韓)의 태기왕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에게 축출되자 이곳 태기산에 쫒겨 들어와 성을 쌓고 후일을 도모할 때, 아라왕비를 위해 매화를 심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830.2m봉에서 내려서면 임도길에 접속하고 좌틀하여 10m쯤 진행하면 U자 임도옆 넓은 공터에 도착한다. 왼편으로 500m만 따르면 6번국도와 만난다. 마루금은 공터에서 우측편 1시방향 소로길로 진행한다.
무명봉을 업다운으로 진행하며 송전탑 설치공사로 인한 임도를 따른다. 임도길에서 뒤돌아보면 태기산의 정상부가 이따금씩 조망된다.
♤ 방개골고개(629m)/ 방가곡(芳佳谷) 임도
들메지임도에서 약 1km 진행한 175번 송전철탑이 있는 767m봉에서 지맥의 좌측이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에서 화동리로 접어든다. 방개골 고개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 방개골에서 청일면 신대리 성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지명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화동리에 있는 방가곡(芳佳谷: 방가골이라고도 함)이라는 평촌 북쪽에 있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다.
- 하늘아래첫집펜션에서 출발하면 14.4km 거리이다.
♤ 횡성군 둔내면 화동리(禾洞里)
화동리는 태기산의 남서쪽 자락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인데, 남쪽에 화동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 고야골, 방가골, 정문거리, 벌아우, 평촌, 무사골, 버덩마을, 고시곡, 흐르목 등이 있다. 화동리란 지명의 유래는 이 곳에 괴화나무(홰나무)가 있어서 괴화골이라고 하다가, 변하여 고야골 또는 화동(禾洞)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지명 유래로 태기왕이 피난을 왔을 때 식량이 부족했는데 화동 골짜기에서 볍씨(禾)가 나와 농사를 짓게 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 방가골고개 아래에 화동2리 마을이 있다.
방개골 고개에서 우측 임도길로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묘지가 나오고 임도길에 설치되어 있는 파란 그물망을 따라 진행한다. 임도길 버리고 좌측편 관찰사남공병철 영세불망비 뒤편 능선으로 진행하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진행해도 무방하나 좌측편 의령남씨 기독교 가족묘지옆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 관찰사남공병철 영세불망비(觀察使南公秉哲 永世不忘碑)
방개골에서 임도로 진행하면 임도 좌측편으로 비석이 하나 설치되어 있는데 관찰사를 지낸분의 영세불망비다. 관찰사라 함은 지방행정의 감찰을 맡은 행정조직의 수반으로 요즘의 행정직제를 따진다면 도지사에 해당되는 직책이다. 선정비(善政碑) 또는 송덕비(頌德碑)라고도 하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는 재임하던 지방관이 떠날 즈음에 백성들이 힘을 모아 그 선정의 공덕을 잊지 않기 위하여 세우는 기념비이다. 조선시대 지방관의 경우 이임할 때 백성들이 합심하여 세우는 경우도 많았지만, 반대로 지방관이 강제로 세우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651.3m봉 갈림삼거리
임도갈림길 통과후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하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한차례 밀어올리면 651.3m봉 갈림길 삼거리봉에 도착한다. 삼거리봉에서 마루금은 좌측방향 내림길로 내려가지만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651.3m봉은 마루금에서 우측방향으로 약50m 벗어나 있다. 651.3m봉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갈림길 삼거리에 되돌아와 경사지 내림길로 진행한다.
- 삼각점봉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고, 등로 중앙에 마모되어 식별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있다.
말영재(末影峙), 여기까지가 태기산 그늘이란 뜻일까요? 좌측으로 둔내 화동1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비포장 임도로 희망버스 정류장이 아주 가깝습니다.(0.3km) 우측으로는 계천에 내려서면 신대리버스종점에서 하늘아래첫집으로 들어가는 도로와 만납니다.
♤ 말영재(569m)/ 화동1리
말영재는 둔내면에서도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화동마을의 무사골 위에 위치하고 있는 고개로, ‘술(酒)이 내(泉)를 이룬다’는 주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태기산 정상에 항상 떠다니는 흰구름이 장관을 이뤄 시인묵객들로 부터 태기백운(泰岐白雲)이라 불리기도 했다. 수려한 계곡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화동저수지를 비롯해 인근에 보광휘닉스파크, 허브나라, 이효석문학관, 성우리조트, 둔내 자연휴양림, 청태산 자연휴양림 등 사계절 관광지가 위치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개 아래에 화동리(禾洞里)가 있다. 화동 꽃마을 뒤편 태기산에는 아직도 태기왕이 신라군을 맞아 싸우기 위해 건설한 태기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 말영재 주변에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와 좌측편으로 가족공원 묘지가 있고 마루금은 말영재를 직진으로 능선을 올라 진행한다. 방개골고개에서 2.9km 거리이다.
첫댓글 운영자님 영월지맥 1구간 수고하셨습니다~
영월지맥 1구간을 눈산행으로 시작이 하셨내요~
산행하시다 나무을 잘못 건드려 떨어지는 눈벼락은 공포에 대상이죠~
눈산행에 고생하신 산행기에
영월지맥 한여름에 거닐던 시절을 그려봅니다~
감사 합니다~
항상 안.줄산을 응원드립니다~()()()
법광선배님!
횡성시장 순대국집에서 밥을 먹는데 아줌니가 그러네요.
바깥아저씨가 73세 이신데 태기산꼭대기에서 벙커작업을 하며 군대생활을 마쳤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 51대대 3중대 선배였습니다.
태기산 꼭대기 군부대 건설의 역사가 거기서 나오더군요.
그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 후로도 가끔 태기산을 올라가셨더라고....
제가 군생활 시절에는 태기산근무자가 술을 사러 한밤 중에 마을을 내려갔다오다가 동사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근무지이탈이니 별다른 항의도 못하고 유야무야 처리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선탑을 한번 나갔어야 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태기산 파견지에 올라가지 못한게 후회스러웠답니다.^^
아이구야 폭설에 고생하셨겠네요.
우리는 새벽에 복봉사에서 능선으로 길을 찿을 수 없어서 임도로 올라갔습니다.
삼면봉에서 키를 넘기는 산죽밭에 눈길 상상만해도 끔찍합니다.
퐁라라운영자님 고생하신덕분에 설경 구경은 잘했습니다.
네 부뜰운영자님!
산죽밭에는 눈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길이 더 미끄러워 길 양쪽의 산죽을 밟고 지나는게 더 편했구요.
낙엽이 쌓인 급사면은 오르지를 못해 한참이나 낑낑 댔습니다.
영하 온도라 눈이 녹지않아 물기가 없어 다행이었습니다만 그게 더 미끄러웠습니다.
차가 없었던 시절 봉복사는 그야말로 하늘 아래 위치한 사찰이었습니다.
횡성도 골짜기인데 거기서 갑천을 넘어 청일면에서도 맨 골짜기에 있었으니....
글구보니 갑천저수지 수몰민였던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새로운 영월지맥에 들면서 호된 신고식을 하였네요
생각보다 많이 내린 눈에 강한 바람 그리고 고어텍스도 체인젠도 없이 힘겹게 올라 태기산 국통사 후배 초병에게 또 거절까지 당했나 봅니다.
여러가지 대중교통편을 궁리하다 쉽지 않아 화동리에 애마를 두고 택시로 하늘아래첫집으로 가 새벽부터 올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하셨다니 빠른 치유 바라며 올 들어 처음으로 많은 적설량 속에 어렵게 진행한 영월지맥 첫 구간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칠갑산선배님!
이번 가을모임에 뵙게되어 벌써부터 반가움이 앞섭니다.^^
이틀 걸은 거리가 짧아서인지 조만간에 또한번 산행 계획을 잡아보고 있습니다.
둔내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원주 T/G로 나와 단구동 버스터미널로 향하며,
횡성휴게소 근처의 지맥길과 멀리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치악산을 바라보았답니다.
군 시절, 봉평과 박달재까지 차량점검을 이유로 드라이브를 다녔던 추억도 소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운영자님
폭설에 영월지맥 길 힘든 역정이었네요.
늦가을은 아직 머물고 있지만 그곳은 폭설로 별천지를 만난 느낌입니다.^^
다가올 겨울 멋을 충분히 만끽했다고 해야 할련지요?
힘들고 어려웠지만 멋진 추억으로 남을 듯 싶습니다.
구간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장님!
미처 예상치 못한 난제를 만나 중도 포기하려던 길이었는데, 그나마 한구간이라도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한편으론 다가온 겨울을 어떻게 넘어설지 여간 걱정이 아니랍니다.
가을 모임을 앞두고 모처럼 반가운 만남의 자리를 마련키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모습이 눈에 훤합니다.
모쪼록 그동안 글로 소식 주고받았던 산우님들 한데 어우러지는 자리로 흡족하게 치뤄지길 바라겠습니다.^^
예전엔 설경에 참 멋지다는 생각뿐이었다면
자식따라 나선 이후론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이번처럼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라면 난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
준비한 핫팩은 뻔하고 저리 춥다니 내 몫까지 아들에게 붙여줄 것이고
매서운 텐트 안이니 최대한 품을 크게 하여 안아 잠시 눈이라도 붙히게 해야 할 것이며
강풍이면 내 겉옷 벗어 더 껴입힐 것이고
미끄러운 길, 눈 쌓인 산죽길을 만나면 자식 앞서 진행하며 손잡아 끌며 몸으로 눈을 쓸고 길을 만들어 줘야 되고...
그렇게 부자의 산행을 대입해 포스팅을 읽다보니 ㅠ
그런 힘든 난관을 헤쳐가는 라라님 모습이 제 일처럼 와 닿습니다.
고생하셨고 수고많았습니다.
열렬히 응원드립니다.
백두대간 화령재를 지나다보면 효자 정재수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내막은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였습니다만 설을 쇠러,,,
보은의 큰집으로 고개를 넘어 장거리를 가던 중에 그만 눈발에 쓰러진 아버지를 껴안고 함께 동사한 이야기랍니다.
당시 반공소년 이승복과 함께 교과서에 실려 전국에 효자로 공인되었지요.
부모자식간에 천륜은 내리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중고시절에 지나면서 아버지의 밀착 교육을 큰 결실로 잘 보듬어 낼 수 있는 자식으로 성장하리라 기대됩니다.
이드니, 겨우니 모두 사랑스런 며느리 얻어 위에 태백산대선배님 처럼 남부러울거 없는 흡족한 인생이기를 기원합니다.^^
허이구...고생 많으셨습니다
완전 악전고투의 어려운 환경속에서 개척해 내시었네요
눈이 와 길도 안비고, 네비는 작동이 안되고, 울타리는 처져있고...
점입가경.... -_-';;
길은 보이지 않는데 가야할 마음만 있는 ....
거기에 여름텐트안에서 ..밤새 얼마나 떠셨을까요
위험했습니다 진짜.....
그저 안타까움만 아려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월지맥 1구간 짧으나마 완주하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장하셔요~
진짜 고난을 극복해낸 그 마음에 진심의 박수 쳐드리며 ...
앞으로는 좀 더 수월하게 걸어내시기를 응원해드립니다.
힘내십시오 ^^
나케님 감사합니다.
영월지맥 다음번엔 매화산-치악산이 버티고 있고, 그 다음구간은 감악산-석기봉이 버티고 있고,
가창산을 넘어 단양으로 넘어들면 마지막으로 태화산이 버티고 있네요. 산넘어 산입니다.^^
그나저나 이번 모임에 얼굴 뵈주실건지... 달필 산행기로 펜이 많으니 꼭 나타나시리라 기대합니다.^^
못 먹는 술이나, 나름 즐기시는 나케님이신거 같아 한잔 나눌까 은근 기대했는데 아... 글쎄 일이 있다니~
뛰어가서 후다닥 대신 해치워 주련만 그런 일은 아닌거 같고...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을 잇는 하뱃재에서 태기산까지 이어가는 길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리 텐트를 지고 비박을 하면서 가신데다,눈 산행과 추위로 아주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앞으로도 가시는 산길마다 무탈하게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덩달이선배님!^^
바쁘신 일정을 쪼개어 모처럼 용안 보여주신다니 한층 더 뜻깊은 자리가 성사되는것 같습니다.
162지맥을 완주하신 선배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주시니 영광된 자리이구요.
반갑게 뵙고 인사올리겠습니다.^^
강원도는 벌써 겨울로 접어 들었네요
태기산에는 설국이 펼쳐지고 있고 풍라라님 고생은 보이지 않고
멋진 풍경에 감탄만 절로 나네요
저는 예전 영월지맥 첫구간 집안 잔치로 인하여 나홀로 하늘아래첫집펜션에서
삼계봉으로 해서 넘은재까지 산행을 했네요
그때 낙수대폭포 방향으로 해서 빙돌아서 분기봉으로 올라 많이 걸었지요
태기산에 오르니 차박 하는 사람도 보이고 나홀로 산행을 하게 되었지요
그때 3년전 가을이었는데 지금 겨울 풍경이 아름답네요
혼자 산행하면서 추위와 싸우며 텐트 속에서 야생으로 핫팩으로 견디며 오직 진념 오기 용기 끈기
지맥을 하시는 풍라라님 무엇으로 표현 해야 할까요?
물론 이제 겨울산은 변수가 있다지만 이렇게 일찍 눈 쌓인 적도 드물지요
태기산이 겨울 산행지이고 일반인도 많이 가는 곳입니다
얼마전 백덕지맥 양구두미재에서 분기봉에 오르는 지맥 산패도 없어 버렸네요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대단한 체력에 다시 감탄 합니다
완주 그날까지 홧~팅 입니다^0^
와룡산선배님!
올핸 다른 해에 비해 눈이 좀 많을련지요.
예상치 못하게 설국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저도 하늘아래첫집으로 갈까하다가 거리가 같게 나올 바엔 능선이 좋겠다 싶더군요.
말영재에서 더 갈까도 싶었지만 희망버스 정류장 위치를 알 수가 없어 그쳤습니다.
아침에 양두구미재에서 올라오는 분들 손에 사진기 하나씩 들려있더군요.
나무에 하얗게 쌓인 눈과 상고대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모두가 작품사진이 될듯한 장관이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저에게 너무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냐며 많은 것을 버리라고 가르치는것 같더군요.
짧은 거리가 크게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아 다음 주에 한번 더 뛰어도 될성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산행기를 읽는데 안타까움이 태풍처럼 덮쳐왔습니다.
아무리 설경이 아름다운들 생존만큼 의미가 있겠으며
아무리 산이 좋다한들 일상만큼 중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겨울에 비박을 계획하면서 침낭을 준비하지 않았다니,
얼어 죽겠다고 작정하지 않은 다음에야 어찌 가능한 일일까요.
그 춥고 긴긴 밤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가슴이 아려옵니다.
저도 한겨울 텐트치고 자기를 밥 먹듯 하던 때가 있었지요.
요즘은 비박용 장비가 워낙 잘 나와 옛날 같지는 않다지만
그래도 밤이 되면 발 시리고 코에 고드름 달리기 일쑤지요.
‘추워 디지는 줄’ 알았다는 말이 귀에 앵앵거립니다.
지나고 나면 웃을 수 있지만 지옥 같았을 긴긴밤이여.
그날의 반성은 아무리 통렬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의 경험이 앞으로의 산행에 보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범산선배님!
똥벼락님과 에마리오님 등등 산파고파 회원님들 모시고 아산 동막골 계획함 세워주시죠.^^
전번 동막골 모임에서 먹다먹다 막걸리가 절반이나 남아가지고 두고오는데 아까워서 발이 안떨어졌습니다.ㅋ
무게때문에 여러가지를 고민하다가 옷가지를 좀 많이 가져간다 했는데요.
다행히 기온이 영하 5~6도 이하는 벗어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추우면 나와서 쪼그려뛰기도 하고 그랬을텐데...
제 코고는 소리에 놀란 외에는 그런대로 잘 보냈습니다.
원래 코를 안고는데 배개가 마땅치 않았던 모양인지 삑~ 쒸이이잌~하는 소리에
밖에 짐승이 가까이 와있나 하고 상반신에서 하반신으로 온몸에 전율이 싹 지나가더군요. ㅋ~
매트 두개를 반 잘라 돼지본드로 붙이든지 좀 길게 제작을 해얄랑가봅니다.^^
한바퀴만 둘러도 괜찮을것 같은데 이게 좀 짤뤄가지고 언젠가는 당기다가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계획엔 영하로 내려가지 않네요.
겨울옷 두툼한 것을 추가로 가져갈까 합니다.
침낭은 무거워서 허리가 휘는 바람에 한겨울 아니면 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똥벼락님은 아직도 산에서 살고 계시네요....꽤 오래된 홀대모회원이신데....똥벼락님은 그의 백두대간을 날아다녀셨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눈이내린 강원도 산에는 가능하면 입장하지 않는게 좋습니다...퐁교수님도 얼릉 하산하시어 철기시대 농경생활로 들어서세요..
산에 다녀봤지 등산화 밑바닥만 신나게 닳아집니다...
산은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 보는것입니다..정상을 밟으면 안되요...ㅎㅎ
도깨비선배님!
이번 동막골모임에 남해고구마 가지고 올라오십시요.^^
고기 굽고 나면 불이 아까울 정도로 잉걸불이 아주 기가막힌데요~~ ㅎㅎ
똥벼락님은 그땐 20대, 지금은 40대라 아제 반열에 들어서리,,,
저도 아주 오래전부터 똥벼락님 띠지를 봐가지고 저보다 한참 어른인줄 알았어요.
조금 있음 퇴물 소리 나올 나입니다.^^
다음엔 매화산 치악산이 기다리고 있는데 걱정이랍니다. 감사합니다.^^
똥벼락님은 그때 대간하실떄 전문가용 비디오카메라 어깨에 매고 촬영하시면서 대간을 하셨어요...엄청난 ㄴ주력으로 대간을 주파 했습니다..
고구마는 8월달에 다 팔고 없습니다...
영월지맥 덕고산 태기산 눈이 많아요 영월지맥 입문과 1구간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추위에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도 한강기맥 구목령 덕고산방향 겨울 산죽밭 눈산행 산죽이 쓰러져서 길을 찾기가 어려워 초코파이 먹고 함내어 겨우 탈출하고 구목령에서 멧돼지 만나서 피하고 겨울 강원도 산행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세르파대장님!
어제 통화해서 반가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릴께요~~
사실은 태기산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이제 봄되면 산행하겠다고 했는데, 맘이 싹 변하여 내주에 또 가기로 했습니다.^^
영월 입문, 뒤풀 사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