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나의 사랑 아르벤 -118- chp.06 end

[샤이라]

나의 사랑 아르벤.

chapter.06[마녀사냥]

"아?"

갑자기 눈앞을 꽉 채우던 환한 빛이 꺼지듯 사라지더니 주위가 어두컴
컴해지고 후덥지근해졌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곤 더 놀랐다.
주위에 있는 익숙한 차들과 하얀 가로등, 그리고 한 여름의 후덥지근
한 공기. 분명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의 주차장이었다!

"도, 도대체…. 설마 돌아온 건가?!"

워낙 어이가 없어 그렇게 중얼거려 봤지만 주위는 분명히 우리 아파트
가 확실했다. 갈 때는 그렇게 특별하게 갔는데 올 때는 빛이 한순간
확 하고 나니 돌아오다니, 더구나 그게 꿈이 아닌지 품에는 제느가 막
눈을 뜨고 있었다. 아니, 눈을 떠?

"으응?"
"제, 제느야!"

분명히 몸이 빛으로 변해서 사라지는 걸 봤는데 다시 살아나다니, 설
마 그 구슬이 기적을 일으켜준 건가? 여하튼 너무나 기뻐 그녀의 이름
을 마구 불렀더니 제느의 흐릿했던 눈빛이 다시 맑아졌다. 그러더니
황당한 표정을 짓곤 벌떡 일어났다. 아아, 하느님 부처님 누구든 정말
감사합니다!

"여, 여기는?"
"다시 돌아 온 거야! 정말 괜찮은 거야 제느야? 응? 난 꼭 죽는 줄 알
았다구!"
"저, 정말요?"
"그래. 으흑. 끝이 좀 허무하긴 했지만 어쨌든 돌아온 거라니까!"

제느는 아직 얼떨떨한지 주위를 황급히 돌아보고 있었지만 나는 너무
나 가슴이 벅차 올라 그녀를 껴안고 그대로 뒹굴고 싶었다. 물론 껴안
기만 하고 뒹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감격에 벅차 있는데, 제
느는 어째 표정에 믿을 수 없다는 빛이 가득했다. 아니, 구슬까지 깨
고 했는데 아직도 뭐가 더 남은 거야?

"내, 내가 왜 여기 있죠?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설마…?"
"왜, 왜? 어쨌든 살아났으니까 다행 아냐?"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다. 왜 살아났는데 좋아하기는 망정 반응이 왜
저래? 제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다가 갑자기 두려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꼭 감았다. 그러더니 가슴에 손을 대는 것이 꼭 무엇인가
를 확인하는 것 같았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설마 뭔가 잘
못 됐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눈을 뜬 제느가
나를 홱 돌아보았다.

"제, 제느야…."
"당신이 날 살려냈군요. 지금 내 몸 안에는 내 것이 아닌 당신의 생명
력이 가득 차 있어요. 이거, 이러면 안 되요."
"뭐? 뭐가 안 되는데? 살아난 게 잘못 된 거야? 그런데 내가 살려냈다
고?"

날 멍하니 쳐다보던 그녀가 문득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안겨왔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녀의 몸
에 팔을 둘렀더니 제느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날 죽여줘요."
"뭐?!"
"끝까지 들어요."

너무나 무시무시한 소리에 놀라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 했지만 제느는
날 놔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맹수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
리가 정말 더할 수 없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
던 그녀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젖어있었다.

"신에게 있어, 다른 이의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굴욕인지
모를 거예요. 당신은 여태 인간으로 살아왔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
금 기분이 아주 나빠요. 얼마나 나쁘냐면, 인간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꾹 참고 있어요. 물론 아무 것도
모르는 당신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이 일은 꼭 해야 돼요. 날, 죽여요
. 오로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진심을 다해서 날 찌르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수 있어요."

제느는 그렇게 끝까지 속삭이고는 나를 놔주었다. 이 세상에 연인에게
자기를 죽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내가 처음일 거다. 어떻게 겨우겨
우 다시 돌아왔는데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가 있는 거지? 한동
안 머릿속이 어지러워 멍하니 땅만 쳐다보다가 제느의 얼굴을 다시 바
라보았다.

"정말, 그래야만 하는 거야? 정말…?"
"그래야 해요. 나는 당신을 이렇게나 사랑하지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요. 나라고 당신과 헤어지는 것 좋겠어요? 물론 약간의 고통은 있
겠지만 이렇게 침해받고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아요."
"하, 하지만 그러면 죽잖아!"
"인간은 죽으면 끝일지 몰라도 나는 아니에요! 뭘 망설여요? 그렇게
사랑을 잃고 싶어요?! 내가 이대로 치욕에 괴로워하는 걸보고 싶나요?
! 말해요! 내가 왜 어째서 내 정체성까지 희생해가면서 당신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 거죠!"
"제, 제느야…."

고함 지르며 울분을 토하는 제느의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바라보는 일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어떡하면
제느를 찌를 수 있다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는 사이, 제느가 예의 그 단검을 꺼
내더니 내 손에 쥐어주었다.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 손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자. 찔러요. 찌른다고 해도 원망 안 해요. 찌르지 않겠다면 이 세상
이 끝날 때까지 당신을 미워할 거예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사
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니까."
"다른 방법은…없는 거야?"
"있으면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나요? 어서 찔러요."

핏발이 선 그녀의 눈동자를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를 떨궜다.
내가 그 때 좀 더 빠르고 멍청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까지 하지 않아
도 되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 같다. 제느의 말투
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너무나 거세서 내가 찌르지 않으면 평생 원수가
될 것 같다.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라니, 그렇지만 내가 어
떻게 제느를 찌를 수 있을까!

"어차피,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당신이 그걸로 날 찌르거나 찌르지 않
아도 나는 한번 잠을 자야 돼요. 하지만 당신 스스로 나에게서 생명력
을 되돌려 받지 않는 다면 우리는 이대로 끝인 거예요. 알겠나요!"
"크윽…."

하지만 내가 어떻게 찌를 수가 있는데! 갑자기 멱살을 쥐고 목을 조르
는 제느의 얼굴을 보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녀의 핏발 선 눈을 보면
차라리 내가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때, 그녀가 내 멱살을 쥐었던
손을 놓더니 일어났다.

"나는…더 참을 수가 없어요. 이런 모욕을 받고 사느니 차라리 사라지
는 게 더 나아. 왜, 왜 당신은 날 찌르는 것이 더 좋은 거라는 걸 이
해하지 못하는 거야?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최소한의 정체성은 지
켜줘야 하는 건데 왜 찌르지 못해요!!"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라도 그런 짓은 못하겠
단 말이야! 차라리 네가 날 찔러!"
"그렇게 욱하며 말하지 마. 그런다고 해결 될 것 같아? 이렇게나 설명
해 줬잖아! 아직도 이해 못한 거야? 더 이상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
고 찔러!"
"싫어!"
"싫다고!? 왜 싫은데! 개자식! 그러고도 날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
난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의 한계로 날 보지마! 나에게 조금 해를 입
히는 게 그렇게 싫어?! 물론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찌르는 게 우리한
테 더 낫단 말이야! 선택해! 찌르지 않고 나를 잃거나 찌르고 같이 사
는 거야!"
"무, 무슨!"
"이 바보 자식! 여태까지 잘 대해주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냐?! 내가
그렇게 하찮아! 여태까지 그 감정은 다 거짓말이야?! 내가 그저 추울
때 껴안고 자는 따뜻한 인형이냐구!"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나는 인형이라고 생각 해본 적 한시도 없
단 말이야! 얼마나 소중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러니까 어서 찔러. 날 영원히 잃고 싶지 않으면 찌르는 게 좋을 거
야. 인간은 역시 우매하니, 바로 앞은 보면서도 더 앞은 보지 못하는
구나?"
"…."
"기회를 주는 거야! 사랑하지 않는 다면 이런 기회 따위도 주지 않아.
"

제느가 한 손으로 내 멱살을 쥐더니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윽…."

아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손끝에서부터 무시무시하리 만치 끔찍한
감각이 타고 올라와 마치 머릿속을 헤집는 것 같았다. 뼈와 살이 잘
리는 느낌…. 제느가 가슴에 박힌 검을 잡고 비틀거리고 있다….

"제느야! 아아아악!"

이 바보! 이 멍청이! 어째서 왜 스스로 찌르는 거야! 내 손을 잡고 가
슴에 꽂아버린 제느, 그녀를 안으니 이미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왜 그렇게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는 건데! 내 어디가
그렇게 소중해서 스스로 죽기까지 해야하는데!

"크흐흑. 죽지마. 죽지 말란 말이야! 이제 다 왔는데 여기 와서 죽으
면 어떡해. 내가 잘못 했으니까, 내, 내가 잘못 했으니까 죽지 말란
말이야…."
"일주일…."
"아? 제, 제느야?"
"엄마…."

일주일…. 단 두 마디만 말한 제느의 눈꺼풀이 스르륵 닫힌다. 일주일
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 거야? 더 말해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
뚝같았지만 그녀의 생기 한올 없는 얼굴을 보면 터져 나오는 울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창백한 그녀의 얼굴 위로 조그만 빛
덩이들이 떠오르는 것 아닌가.

"이, 이건?! 설마…."

분명히 제느는 이게 죽을 때에 몸이 사라지는 현상이라고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갑자기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빛 덩이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제느의 몸이 급속도로 투명해져 간다.

"안 돼! 안 된다고! 이러면 안 돼!"

무수히 떠오르며 사라지는 그것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손에 잡히지 않
고 덧없이 없어져만 간다. 더불어 안고 있던 제느의 감촉도 점점 사라
진다. 이대로, 이렇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거야? 정말로?

"자네…."
"응?!"

이 목소리는 설마…. 아니, 제느는 여기서 이렇게 사라지고 있는데 또
누가! 급히 돌아보니, 무더운 아파트 주차장에 놀란 눈을 한 제느가
서 있다. 아무리 보아도 도저히 눈을 믿을 수가 없다.

이건 도대체…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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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드디어 챕터6의 끝입니다. 아 정말 길고 길었습니다. 분량으로
보면 별로 많지 않지만 저절로 연공되는 이놈의 게으르니즘과
귀차니즘은 다 무언지 -_-+
어쨌건 아르벤 1부.....나 다름 없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챕터 7부터도 계속 쓰겠으나, 그건 아마도 군대를 갔다와서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7월에 군대를 가거든요 -_-;
동료 글장이 필모린 군은 군대 갔다오면 닭살 나게 못 쓴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닭살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우오오!
그럼 장미의 엘프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나의 사랑 아르벤 chapter.06 완 결.

끝까지 봐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필모린 군. 허공록 빨리 쓰시오~~

아, 그리고 도배한 점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__)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