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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브레이2402철5권09
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브레이어(Bréhier, 1876—1952)
- 제5권. 18세기, Le XVIIIesiècle273-506
제09장, 18세기 중기(1740-1775) (연속): 정신의 이론 (연속), 보브나르그
- Deuxième Période (1700-1740) (suite): Théorie de l’esprit (suite): Vauvenargues 377-382.
1절 생애와 작품들 – La vie et les oeuvres 377
뤽 드 클라피에, 보브나르그 후작(Luc de Clapiers, marquis de Vauvenargues, 1715-1747)는 1715년에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정열적으로 고대 도덕론자들, 플뤼타르크와 세네카를 읽었다. 1733[열여덟]년 이래로 왕국 군대의 장교였다. 그는 이탈리아 원정(1733-1736)에, 그러고 보에미아 원정(1741-1743)에 참가하였다. 1745년[서른]에 엑스로 돌아왔는데, 병들어서 거의 실명할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파리로 가서, 거주했다. 그는 후작 미라보를 사귀고 나아가 볼테르(Voltaire, 1694-1778)와 마르몽텔(Marmontel, 1723-1799)과 사귀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출판된 유일한 작품은 인간 정신의 인식 입문(Introduction à la connaissance de l’esprit humain, 1746)이며, 뒤에 덧붙여진 작품은 「몇몇 시인들에 관한 비판적 반성들(Réflexions critiques sur quelques poètes)」이었다. 1747년[서른둘]에 그가 세상을 뜬 후, 입문(Introduction 1746)의 재판에는 「반성들과 격률들(Réflexions et maximes)」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계속되는 판본들은 1797년, 1806년, 1821년, 1874년에도 나왔다. 이 여러 판본들은 각각은 쓴글 들을 중에 새로운 것들을, 또는 이미 알려진 글들 중의 새로운 판본들을 선보인 것이다.그러나 거기에는 초고들(des ébauches)이 있으며, 특히 군인 경력 과정에서 쓰여졌던 것이다. (377)
2절 정신의 전형들에 대한 학설 – La doctrine des types d’ésprit
철학 사가들은 종종 보브나르그의 사유의 중요성과 깊이를 잘못 알고 있다. 보브나르그는 체계를 세우는 자이다. 오직 상황들은 그에게 분리된 사유들의 형식을 제기하도록 강요되었을 뿐이다. 그는 인간 정신의 정합적 용어에 이르고자 원했다. 그는 다음을 알고 있었는데, 그의 세기에서 토론하기 위한 그의 취향과 더불어, “순수한 호기심의 과학들”에 대한 그의 정열은, 가장 중요한 주제들에 관한 모순적인 단정[주장]들 앞에서 완전히 무차별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378)
보브나르그는, 그가 과학적 운동을 전수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신의 연구에서 우리가 꽁디약과 흄에서 만났던 뉴턴의 이상에 주의를 기울였다. “너비의 정신(l’esprit étendu)은 존재들[현존자들]을 이것들의 상호 연관들 속에서 고려하고 있다. 그 정신은 한 눈에 사물들의 모든 줄기 가지들을 파악한다. 정신은 이것들을 이것들의 근원에 맞게 그리고 공통의 중심 속에 재통합하며, 그리고 이것들을 동일한 관점 하에 놓는다.” 그가 또 다시 말하기를 “나는 모든 시대와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작가(un écrivain)를 좋아한다. 그리고 많은 효과들에 거의 적은 원인들과 연관시키는 작가를 좋아한다. 작가는 여러 세기의 편견들과 풍습들을 비교한다. 화가들과 음악가들의 예들을 들어보면, 작가는 나에게 우아한 아름다움들과 예술들의 밀접한 연결을 알게 해준다.” (378)
그러나 일종의 보편적 연쇄 잡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 당대에는 보편적 연쇄의 관념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보브나르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류가능성 없고 접근가능한 방법의 현존을 믿지 않았다. 아주 반대로 (그리고 파스칼의 성찰로부터 유래해야만 하는 하나의 논평이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전형들끼리 서로서로 배제하는 정신의 전형들만을 단지 정상적으로 본다. 전형들의 각각은 자기의 성질들이 정신일반의 성질이기를 원한다.즉 생생한 정신, 침투하는 정신, 정의로운 정신, 깊이 있는 정신, 시적 정신, 추론하는 정신과 같은 그 많은 정신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고, 모든 합의를 금지하는, 다른 방향들을 표시한다. 예를 들어 세계의 대중들의 생생한 정신은, “그 정신의 어두운 오솔길들”에서 따라갈 수 없는 깊이 있는 정신을 경멸한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이 있다. 깊이 있는 대중들 사이에, “각자가 자기 대상들을 선호하기에”, 합의 없음이[불화가] 있다.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합의 없음은 있는 것은, 왜냐하면 불화란 각각이 창조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는 “사람들이 스스로 함께 참여하는 것”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 주체의 모든 면들을 동시에 포용할 수 있는 정신은 전혀 없다.그리고 보브나르그는 예로서 그의 시대의 정치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예술[기예]의 발전과 상업의 발전을 찬미하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난이 없다고 한다. (378)
사람들은 도달해야할 좁은 길과, 피상적인 너비의 관점 사이에서 마치 선택을 강요당한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전체의 약간을 아는 정직한 사람을 생각한다. 이렇게 안다는 것, 그것은 “거의 항상 소용 없게 그리고 가끔은 해롭게 아는 것이다.” 우리 세기가 매 시대마다 인식들을 이어 받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자들(그러한 자들 중에, 빠스깔이 있지 않는가?), 인간 정신의 연약함에 주의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대상들이 관점을 혼동하게 한다. 너무 많은 낯선 인식들이 우리의 판단을 짓누른다‥… 매우 적은 대중들이 타인의 정신을 유용하게 이용할 줄 안다‥… 견해들의 효과는, 정신의 힘들을 저 너머로 다양하게 펼쳐져서, 모순들을 생산하고, 원리들의 확실함을 흔들리게 한다. (379)
따라서 보브나르그의 목소리는 이 시대에 공통하는 이상들에 반대하여, 빛들 세기[계몽기]의 확산에 의한 진보에 반대하여, 높아진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진보라기보다 “야만”이다. 그의 시대에 공통하는 주제인 지성들의 이런 평등에 그는 천재의 예외를 대립시킨다. 그 천재는 혼자서 양립할 수 없는 습관적 정신의 전형들을 조합할 줄 안다. 그 천재는 데카르트 또는 파스칼처럼 상상작용을 부여받은 철학자이며, 라신(Racine, 1639-1699) 또는 몰리에르(Molière, 1622-1673)처럼 확고한 판단을 부여받은 시인이다. 정신의 통일성은 출발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천재의 매우 드문 예외이다. 그러나 “마치 정치에서처럼 지성적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의해서 숙명적으로 인민이로 되어 있다.” (379)
모든 방법으로 환원할 수 없는 권능의 이상은 지걱 삶의 이상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삶의 이상이다. 우리는 무엇인가?우리들은 “우리들 자신들과 구별되지 않는” 우리의 정념들이다. 모든 정념들은 [그 각각이] 우리 성격의 차례(le tour, 순번)이다: 즉 야망은 유일한 것이 아니다. 야망은 인간들에 따라서 악덕도 선덕도, 고귀함도 비천함도 된다. 사랑은 대상에 메여있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들이 기꺼이 스스로 형상화하기에 마음에 드는 관념에 메여있다. 그래서 그것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관념과 같은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선호하며, 아름다움은 우리들의 특성 속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특성을 표현한다. 정념은 무엇보다 우리가 증가하고 원하는 “권능의 감정” 속에, 그리고 우리가 억누르고자하는 “낮추고 예속하는” 감정 속에, 그 기원을 갖는다. 원초적 감정들은 명랑함인데, 명랑의 근원은 권능의 일상적 감정이며, 우울과 불안은 권능없는[무능한] 감정들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얼마나 스토아주의가 잘못인지를 본다. 스토아주의는 정념들 저 너머에 자유의지를 구별한다. 의지는 “진자의 움직임에 관하여 시간들을 표시하는 침이다.” 우리들 행위의 동기들은 사유의 극단적인 속력의 원인을 가끔은 회피한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사유들과 우리의 감정들에 의해서, 다시 말하면 우리들 자신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작동들의 규정작업에만 있다. 왜냐하면 한 번 더 “자기의 사유들 또는 자기의 감정들을 구별하는 광기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념들의 온건함을 설교하는 학설은 또한 거짓이다. 그것은 손상을 입은 위에 금주(la sobriété)를 설교하는 것이다. 병든 환자에게는, 그를 싫어하게 하는 축하연의 미묘함이 무엇 중요성이 있는가? 결국 라 로슈푸꼬의 이기주의는 거짓이다. 정념은, 이것은 강하게 되자마자, 우리 개인을, 우리 안락(commodité)을, 우리 편안(bien-être)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라 로슈푸꼬의 자신애(amour-propre, 이기심)를, 사람들이 자기 바깥에서 자기 행복을 찾는, 그리고 권능의 의지의 훈련 속에서(만일 보부나르그가 니체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거의 마찬가지이며) 자기애(l’amour de soi, 이타심)와 대립된다. 그러한 중에 위대한 영혼들의 매우 강한 자극제들 중의 하나가 있는데, 즉 영광의 사랑이다. 이 영광의 사랑은 우리의 심장들 속에 자연적 권위를 불어넣고, 우리에게 작업[노력]하게 자극한다. 구두쇠[인색]의 감정도 있는데, 그러한 것은 “우리 존재를 증가하게하고, 떠받들고, 강화하도록 우리를 선동하는 탐욕스런 본능이다.” 고유성의 관념을 지배하는 부성애도 있다. 그리고 우리 존재의 불충분성을 깨우치게 하는 우정도 있다. (380)
그러나 덕목은 정념에 대한 일종의 문화에 대립되어 나타나지 않는가? 도덕론 속에서 덕목을 정의하고자 애쓰지 말자. 덕목은 “그 토대에서 선”하다. 덕목은 선과 연관에서만, 말하자면 정의에 의해서 사회적 장점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 선과 연관에 의해서만 덕목일 뿐이다. 그런데 이 선 자체는 그 자체로 의지의 대상이 아니며, 그 선이 의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왜냐하면 종교가 보상들을 보장해주기 때문이고” 그리고 “체벌의 가증스런 두려움”의 덕분이다. 망드빌(Bernard Mandeville, 1670-1733)이, 악덕들이 있는 그대로서 사회에 유용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허영 또는 인색함은, 만일 그것들이 절제든지 금지든지 다른 덕목들과 혼합되었을 경우에만 유용하게 쓰인다. 만일 덕목이 오직 사회적 이익만으로 정의 된다면, 그것은, 덕목이란 우리 절제의 필연적 결과이라고, 또는 덕목이란 우리 자체의 사랑 속에 그 근원이 있다고, 말하는 덕목에 반대하는 논증이 아니다. 왜냐하면 결과들 만ㅇ이 여기서[사회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380)
따라서 사람들은 다음을 안다. 보브나르그는 도덕론이 마치 인간의 내속적 가치들과는 어떠한 연관도 없는 것으로서 생각했다. 그는 이것을 정식화하여 말했다. “덕목과는 멀어져있는 위대한 성질들이 있다.” 영혼의 위대함이, 즉 운수를 물질화하는 데 있고 또한 다른 인간들 위에 군림하는데 있는, 권능의 발휘가 있다. 이런 발휘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깍가내림도 없이, 카틸리나(Catilina, 전108–전62) 같은 이나 케사르(Jules César, lat. Caesar, 전100-전44)같은 이를 범죄자가 되게 한다. 우리의 도덕적 가치와 구별되는 영웅주의는 그 인간의 진실한 가치를 만든다.그리고 또한 천재로서 그 인간은 편협한 평가를 넘어서, 그리고 통속적 지성에 남아있는 겉보기의 모순들을 넘어서 자리매김 되었다.
이리하여 꽁디약과 흄처럼, 보브나르그는 어떤 점에서 보다 자연적이고, 보다 깊이 있으며, 정신의 초월적 이법보다 더 내밀한 정신의 근원과 규제자를 찾았다. 그 초월적 이법은 17세기 사상가들에 따르면, 이법 바깥에 자연을, 즉 감정, 정념, 믿음을 두었다. 1739년 3월 1일에 미라보 후작에게 쓰기를, “나의 모든 철학은 나의 심장 속에 그것의 근원을 갖는다. 철학이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철학이 자기에게 반대하여 무장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당신은 믿습니까? 이법에 전혀 힘입지 않는 자연적 철학은 이법의 법칙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속하는 철학은 그 철학 자체이외에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철학은 독립적으로 고유하게 있으며, 이법의 멍에가 철학에게는 편견의 멍에 보다 더 감당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381)
동상 위에 감각적 인상들이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꽁디약의 동상, 자신 속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믿음들을 뒤따라가는 흄의 인간, 모든 규칙들이 자기와 자기 정념의 충실성일 뿐인 보브나그르의 영웅 등은 동일한 류의 개념작용들이며, 이것들을 살아있게 하는 정신과는 아주 다르다. 흄과 마찬가지로, 보브나르그는 자연 종교의 비판자이다. 이 비판자는 초월자를 향하여 가게 되는 그 자체로서 이법을 우리에게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자의론(Traité sur le libre arbitre, 1744)」이 실려 있는 그가 남긴 단편들에서, 그는 목적론에 반대하여 깊이 있는 말을 써놓았다. “존재를 갖는 모든 것은 질서를 갖는다.” 이 주제는 이런 질성의 저자에 관하여 모든 탐구를 끝맺는다.
이러한 것은 종종 잘못 알려진 한 사상가의 매섭고도 고상한 학설이다. 1806년 판본에서는 이 사상가에게 “위안을 주는 부드러은 철학”이라고 평하였다. 볼떼르와 다른 작가들은 이 사상가에게서 스타일에 관하여 꼼꼼한 토론들에 쓰일 소재를 발견했다고 한다. (381) (4:34, 57OKF)
# 참고문헌 - Bibliographie 382.
Vauvenargues(1715-1747), Oeuvres, éd. Pierre Varillon, 3. vol., Paris, 1929.
Paléologue(1859-1944), Vauvenargues, Paris, 1890.
G. Zieler(s.d.), Vauvenargues, ein Vorgänger Nietzsches, Hambourger Korrespondent, 1907, no 9. [Zeitschrift f. Lit. Kunst und Wissensch. Beilage des Hamburger Korrespondentur, 1907.]
A. Borel(1885-1968), Essai sur Vauvenargues, Neuchâtel, 1913.
J. Merlant(1875-1919), De Montaigne à Vauvenargues, Paris, 1914.
May Wallas(s.d.), Luc de Clapiers, marquis de Vauvenargues, Cambridge, 1928.
R. Lenoir, Les historiens de l’esprit humain, Paris, 1926.
Le Breton, Vauvenargues et Fontenelle, Journal des savants,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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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 보브나르그(Luc de Clapiers, marquis de Vauvenargues, 1715-1747) 프랑스 작가, 도덕론자, 금언작가, 철학자.
1859 빨레올로그(Maurice Paléologue, 1859-1944) 프랑스 외교관, 역사가, 수필가.
1860 르 부르똥(André Le Breton (1860-1931), ENS출신, 문학박사, 프랑스 문학 교수, 프랑스 문학사 전문가.
1875 메를랑(Joachim Merlant, 1875-1919) 프랑스 대학교수, 작가. 이름이 판테온에 들어가 있다(일차 대전에 프랑스를 위해 죽은 작가 560명). De Montaigne à Vauvenargues, essais sur la vie intérieure et la culture du moi, 1914
1885 보렐(Antoine Borel, 1885-1968), Essai sur Vauvenargues, 1913, 쮜리히 대학 박사학위논문
1890 르느와르(Raymond Lenoir, 1890-1972) 철학교수자격, Les historiens de l’esprit humain, 1926)
?-? 질러(Gustav Zieler, s.d.), 독일 문학비평가(?) 「보브나르그, 니체의 선구자(Vauvenargues, ein Vorgänger Nietzsches, 1907)」
?-? 월라스(May Wallas ou May Graham Wallas, Luc de Clapiers, marquis de Vauvenargues (The University press, 1928). / 참조, 월라스(Graham Wallas, 1858-1932) 영국 심리학자. 사회학자, 파비안 학회. 영국 사회주의자. - 이 월라스에는 1928년 작품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57ONA)
(5:25, 57OK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