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부슬부슬 오는 오후.
훈련을 마치고 귀대하는데 처음 보는 대위 한 분이 나를 부른다.
"어이, 너 이리와 봐."
앞으로 가니 훈련소 어디를 나왔느냐고 묻는다.
논산훈련소를 나왔다고 하니 '그러면 그렇치'하고 너 내일부터 나하고 일해야 겠다 한다.
왜 그런가 하고 우리 소대장을 돌아보니 그가 말해준다.
"비오는 날 총 꺼구로 멘 놈은 너하나 밖에 없었거든."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비오는 날에는 총을 꺼구로 메어 총구로 빗물이 안들어가게 해야 하는데 모두들 그렇치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치도 않은 ROTC 조교가 되었다.
그들은 3학년 1년차 교육생이들이였다.
일병 계급장을 달고 오라고 했지만 나는 당당하게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갔다.
훈련받는 장교후보생들이 얕본다고 했지만 그들은 사실 내가 군대를 안갔으면 나와 같은 3학년이 아닌가.
내가 조교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LMG 덕분이였다.
경기관총을 나만큼 다루는 사병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ROTC는 별로 무기에 대해 교욱을 받지 않았다.
대충 외관만 설명을 듣고 12발씩 사격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는 그게 불만이였다.
장교라면 오히려 사병보다 무기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LMG는 다른 총과 달리 탄피가 총 아래로 떨어진다.
그런데 한 교육생이 사격장에서 손을 든다.
가보니 탄피가 없다는 것이였다. 내눈에는 총 아래 탄피가 보이는데,,,,,
나는 순간 나도모르게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총구 앞에 손을 넣어 보세요."
소염기(消焰器)가 앞에 있으니 처음 보는 사람은 총구가 어딘지 모른다.
"LMG는 총구가 커서 탄피가 따라 나가는 수가 있어요."
물론 말도 안돼고 웃자고 하는 소리였다.
최소한 대학물을 먹은 사람이 그걸 못알아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탄피를 찾으러 포복을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이였다.
"사격중지!!". "사격중지!!"
통제부에서 난리가 났고 이 사실은 곧바로 연대장에게 보고가 되었다.
"감히 일개 졸병놈이 장교후보생을 능멸하다니!"
연대장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펄펄 뛰었다고 한다.
나를 잘 봐 준 대대장이 여러가지로 내 변호를 해주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일은 인사과의 홍대위가 내 편을 들어서 변호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영창가는 것은 면했다.
하지만 그 즉시 다른 부대로 6주간 보충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다.
우리 부대 맞은 편에 있는 92연대로 따블빽을 메고 찾아가니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문제는 같이 훈련을 받는 사병들이였다.
그들은 경상도에 있는 현병대 소속으로 병장에서 부터 일등병까지 일반 교육을 받으러 온 것인데
나혼자 보병으로 헌병들 틈에 끼어 6주를 견뎌야 하는 것이였다.
그때도 당당히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갔으니 그들이 보기에 어땠을지,,,,,
어찌됐던 헌병들 속에서 6주를 벼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