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NDF거래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현행 외국환거래법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며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외국환거래법이
핀테크(Fintech; Financial Technology)의 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모양입니다. 모 핀테크 업체가 영국의 ‘트랜스퍼 와이즈’와 비슷한 ‘트랜스퍼’란
솔루션을 내놓았으나 외환거래법 위반 문제가 걸려 실행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신문에 나온 ‘트랜스퍼’란 솔루션의 기본 개념은 이렇습니다.
“서울에 사는 기러기 아빠 A 씨는 미국에 유학 중인 자녀 B에게 생활비 113만 원을 보내려 한다. 미국에서 일하는 C 씨는 한국에 있는 어머니 D에게 용돈 1000달러를 보내고 싶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1130원 정도이므로
113만 원과 1000달러는 똑같은 가치다. 그러므로
한국에 있는 A 씨가 D에게 한국에서 113만 원을 주고, 미국에서는 C
씨가 B에게 1000달러를 주면 모두가 원하는
거래가 이뤄진다. A 씨와 C 씨 둘 다 환전할 필요가 없고
은행을 통해 송금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위의 거래는 가장 전형적인 ‘환치기’ 수법을 말합니다. 국내와 해외 간에 탈세, 횡령 또는 자금세탁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는 거래입니다. 외국환거래규정에는 2천 달러 이하의 거래에 대해서는 상호 채권 채무가 있을 경우 실제 자금을 주고받지 않고 이를 상계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러기 아빠 A와 미국에서 일하는 C씨는 서로 간에 아무런 채권/채무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은행원들은 이걸 말할 때 ‘채발당’, 즉, 채권 발생
당사자이냐 아니냐는 식으로 말합니다. 따라서, ‘트랜스퍼’가 하고자 하는 거래는 상기 규정에 허용되어 있는 거래가 될 수 없습니다. 외국환거래법을
다시 들여다 봤더니 위의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매 건별로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이렇게 지급하고 저렇게 수령하겠다는 신고를 해야 되더군요. 법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면, “거주자가 해당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자와 지급 또는 수령을 하거나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거주자가 그 거래의 당사자인 비거주자와 지급 또는 수령을 하는 경우 (외국환거래법 제16조 3호)” 입니다.
외환거래에 있어서 통상적인 것은 주로 외국환은행에 신고하거나 신고 없이도
거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이 통상적인 범주를
벗어나면 위의 사례처럼 한국은행총재에게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고, 이 보다 더 비통상적인
것은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외국환은행을 넘어서는 것들은 신고나 허가 신청을 하면 쉽게 허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는
그렇게 해도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잘 허용 안해주기 위해 규정을 만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더구나 기재부장관에게
신고하기 위해서는 세종시까지 가야 되니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한편, ‘트랜스퍼’를 운용하는 회사도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됩니다. 내용을 다시 해석하면, A씨는
C씨에게 원화를 팔고 달러를 샀으며, 역으로C씨는 A씨에게 달러를 팔고 원화를 샀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이 외환거래를 중개하고 그 대가로 각각으로부터 수수료를 1% 씩
받습니다. 이런 업무를 외국환거래법은 ‘외국환중개업무’라고 규정하고 이를 취급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장관이 정하는 엄격한 기준, 즉, 자본금 50억원 이상(외국환거래
중개시), 관련 전산 시설, 전문가 2인 이상을 갖추고서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인가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외국환중개회사가 되었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예로 든 A씨와 C씨처럼
개인 상호 간의 외환거래 중개는 전혀 허용되지 않습니다.
외국환중개회사는 은행, 증권회사
등 국내외 금융회사 상호간의 외환거래를 중개하도록 허용되어 있지 개인과 관련된 어떠한 외환거래도 중개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관련된 외환거래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외국환은행을 경유해야 합니다.
결국 ‘트랜스퍼’가 합법적으로 실행되려면 외국환거래법부터 시작해서 시행령과 규정을 전부 고쳐야 됩니다. 외국환거래법을 담당하는 기재부와 한국은행의 직원들은 매우 뛰어난 인재들이라 간단한 용어 몇 개 바꾸거나 집어넣어
쉽게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외국환중개회사를 통한 외환시장 통제에 익숙해진 우리 외환당국이 ‘트랜스퍼’가 ‘빅 브라더’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불허할 수도 있겠지요.
말이 나온 김에 외국환중개회사에 대해 좀 더 얘기 하겠습니다. 외환딜러들은 외국환중개회사를 그냥 ‘외환브로커’라고 합니다. 신문에서도 외국환중개회사란 긴 이름보다는 외환브로커라는
쉽고 편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외환브로커는 국내사 4개, 해외사 6개로 10개사가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초의 외환브로커는
서울외국환중개㈜입니다. 이 회사의 전신은 은행간 외환거래를 독점적으로 중개해오던 금융결제원의 자금중개실이었습니다. IMF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 2000년에 떨어져 나와 설립되었습니다. 그 전인 1998년 11월 은행간 자금중개를 주로 맡았던 한국자금중개㈜가 외환브로커
업무를 인가받아 외환브로커 업무를 시작하여 자금중개실과 경쟁체제를 갖추었습니다. 그 후 현재까지 2개의 신규 국내 브로커회사가 설립되었고, 외국브로커들도 6개사나 국내에 진출하였습니다. 이들 브로커들이 취급하는 상품을 보면,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가
현물환거래의 중개를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외국브로커들은 파생상품의 중개에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1993년에 ‘외환시장 하부구조 구축을 위한 연구’의 TF팀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재무부의 의뢰로 금융연구원의
J박사님과 서강대의 K, J 두 분 교수님 주도하에 저를
포함한 몇 개 은행의 실무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이 TF팀의
목적은 우리나라에 외환브로커 제도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외환시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자율규제
기구와 행동규범(Code of Conducts) 제정, 외환시장의
경쟁력 제고, 관련 기관의 전산화 등의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과거 자료를 검색해보니 당시에 제시했던 상당 부분이 현실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방안들이 IMF외환 위기 전에 본격적으로 추진이 되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금융결제원의 자금중개실이 외환거래를 독점할 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 하나 있습니다. 외환당국이 외환브로커들의 외환중개 상황을 실시간으로 그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겁니다. 어느 은행이 얼마의 달러를 팔고 사는 지, 어느
가격대에 얼마나 대량 매도나 매수 주문을 내놓고 있는 지, 그런 주문은 은행의 투기 물량인 지 아니면
어느 기업의 대량 주문에 따른 것인 지 등을 말입니다. 외환당국은 외환브로커를 외환시장을 관리하는 굉장히
중요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외국환거래법에 의거 한은총재가 이들에 대한 업무감독권을 갖고 세세한
것까지 필요한 사항을 정할 수 있습니다. 명분은 외환 수급 상황의 감안한 스무딩 오퍼레이션이나 외환위기
발생의 사전 파악이나 방지에 있을 겁니다. 그래서 ‘빅 브라더’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너무 지나친 것일까요? 몇 백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을 시절처럼 골방(?)에 틀어박혀 시시콜콜 시장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하는 지 의문입니다. 이런 방식의 외환시장 관리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트랜스퍼’라는 핀테크는 정교하게 짜놓은 외환관리 체제에 흠집을 내는 행동으로 간주되어 이를 허용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은 송금방식에 의한 수출입거래가 훨씬 많아 환치기를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자금을 해외에 떨어트릴 수 있습니다. 환치기 수법은 보이스 피싱 조직들이 아주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횡령이나 보이스 피싱 조직을 단죄하기 위해 외환관리법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사실 ‘트랜스퍼’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영국처럼 활발하게 이용될 지는 의문입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자금이체와 결제 시스템에 있어서는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어서 굳이 ‘트랜스퍼’가 아니라도 큰 불편없이 해외송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용면에서도 ‘트랜스퍼’가
요구하는 1%와 별 차이 없이 말입니다.
어쨌거나 ‘트랜스퍼’ 가 외환당국으로 하여금 외국환중개회사에 대한 정의, 인가 방식, 업무 규제 등을, 더 넓게는 외국환거래법 자체를 되돌아보게 하는
신선한 기회가 되고 이를 통해 외환관리에 대한 패러다임의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으면 합니다. 그래서 보다
자유로운 외환브로커 시장 진출입이 가능하도록 하여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창출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은행들도 더욱 비용이
적게 들고 편리한 소액송금 서비스를 개발해야겠죠!
첫댓글 핀테크와 환치기 등을 쉽게 재미있게 그리고 정책적 의미가 있게 설명 해주셧습니다. 다음 글 계속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