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월피정 자료
【성규 머리말】 정독 I
귀 기울여 들음, 새로운 창조의 시작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수도원에 살며,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분투하는 이들’(성규1,2)입니다. 때문에 베네딕도 수도원에서는 끊임없이 규칙서가 읽혀집니다.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 읽는 이의 영혼의 상태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듯, 계속적인 규칙서의 독서는 베네딕도회 수도자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해석해서 새로워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2회에 걸쳐 규칙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Lectio Divina하듯이 천천히 읽어보고자 합니다.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은〔머리말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이 제목은 성경의 두 시작을 연상케 합니다.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를 소개하는 창세기의 시작, 그리고 요한복음의 시작:“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겼다.”(요한,1-3) 요한복음은 창조의 동인(動因)이‘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수도생활의 교부들에게 수도삶은 두 번째 세례,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를 의미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이‘머리말의 시작’이라는 제목을 통해 한 수도승을 세상과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자신 안에서 새로운 재창조에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창조는 무엇보다도 말씀을 듣는 것, 말씀을 위한 경청으로 시작함을, 머리말의 첫 단어에서 보여주십니다. “들어라, 오 아들아 Obsculta, o fili”
1. 능동적인 들음
규칙서 머리말의 첫 구절은 베네딕도 성인의 고유의 말씀입니다. 이 첫 말씀에서 성인은 규칙서 전체에서 발전시킬 베네딕도회 수도자의 영적인 여정을 분명하고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스승의 계명을 경청하고, 네 마음의 귀를 기울이며 어진 아버지의 훈시를 기꺼이 받아들여 보람있게 채우다”(머리말 1)
무엇보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마음이 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지적으로 귀를 막을 수도 있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 듣는 것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들었다 해도 우리 안에 있는 많은 욕구들, 두려움들, 또는 교만으로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황폐하게 메마를 수 있습니다. 한편 말씀이 이 모든 시험들을 통과해서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물을 주고, 주변의 땅을 일궈주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이 모든 여정을 베네딕도는‘보람있게 채우다’라고 표현하는데, 동사‘채우다’는 라틴어 ‘comple 완성하다’는 의미로서,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실행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들은 말씀을 완성해야한다고 하십니다.
머리말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귀기울여 들음’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외치시며 훈계하시는 말씀에 귀기울여 들을 것이니”(9절),“그분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의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10절),“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라”(11절),“아이들아 와서 내말을 듣거라, 주님을 두려워함을 가르쳐주겠노라”(12절)
베네딕도는 초대받은 수도승의 영혼을 잠에서 깨우듯 긴박하게 말씀하십니다. 즉, 귀기울여 들음은‘날마다’매순간 이루어져야 하며, 단단하고 완고하고 고집 센 마음이 아닌 낮추인 마음으로 들어야하고, 교회와 형제들 공동체 안에서 주의 깊은 경청이 이루어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경청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지존하신 분 앞에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임을 경청의 훈련생이 되려는 이들에게 성인은 반복해서 설명하십니다.
2. 수도생활의 본질: 말씀의 실천
한편 베네딕도는 수도승들에게 말씀을 진실한 마음으로 듣고, 우리 안에서 받아들여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다시 반복합니다:“주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우리 행실로써 당신의 이 거룩한 훈계에 마땅히 응답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머리말 35) 말씀을 우리의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셨던 것처럼, 말씀의 실행은 수도승의 전 존재를 마음 깊은 곳으로 돌려 주님과 일치에로 인도하고, 이는 삶의 폭풍들 또는 격류들이 그를 위협할 때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견고함과 단단함을 준다고 하십니다:“나의 이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큰 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쳐도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머리말 33-34) 삶에서 닥쳐오는 폭풍은 그리스도라는 바위 위에 지어진 집만이 견디어 낼 수 있음을 성인은 강조합니다.
3. 들음에서 실천을 위한 순명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실천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떤 판단의 근거로 우리가 정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지 아니면 반대로 자신의 환영에 넘어지는지를 분별할 수 있을까요? 베네딕도에게 이 판단의 근거는 바로 순명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계명들에 대한 거룩한 순명 아래서 분투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과 몸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머리말 40) 말씀에서 실행으로의 과정은 순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인은 규칙서의 다른 장(5장,68장,71장)에서 자주 이 주제로 돌아가는데, 여기 머리말 40절에서는 순명이 무엇보다 확실한 준비를 전제로 하는 기술임을 이야기합니다. 즉, 순명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자세로 진실한 몸과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러한 순명이 항상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순명이 우리를 넘을 수 없는 벽과 부딪히도록 이끌 것이기 때문에,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데 우리의 본성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은총으로 도와주시기를 기도로 간구해야 한다고 베네딕도는 다음의 구절로 이어가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은 이것을 할 수 있기에 너무도 부족하니, 주님께서 당신 은총으로써 우리를 도와주시도록 간구하자.”(머리말 41) 하느님의 은총이 도래하는 순간, 하느님이 우리 배의 키를 잡는 순간, 지금까지 나의 삶은 내가 지배해 왔지만 이제부터 내가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수도생활이 시작될 수 있음을 성인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도생활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서, 자신의 한계에서, 두려움에서, 헛된 망상에서 자유로워질 때 수도자는 하느님께로 돌아갈 것이며(머리말 2),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부어주신 선하심(머리말 6) 발견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이로써 수도자의 삶과 영혼은 새롭게 창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 나눔>
1. 성 베네딕도께서 수도승은 매순간 마음을 열고 하느님 앞에서의 경외심으로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 안에서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실천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 머리말 6절에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 안에 주어진 선(善)에 따라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내 안에 고유하게 부어주신 선(善)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