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완숙의 말]
★"천주라면 하늘과 땅의 주인일 것이다. 이 종교의 이름은 옳다. 그렇다면 그 교리는 진리일 것이다."
.”이미 이 학을 배워 믿었으니 죽으면 천당에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형벌을 받아 죽더라도 조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주신부님은 당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면서까지 우리의 영혼을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우리는 그은혜와 사랑을 보답하기는 커녕..."
★강완숙은 내포 출신이므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으로부터 교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생애결정적 전환점-1891신해박해
자발적 신자 옥바라지하다 구금, 남편(홍지영)도 이에 집안다스리지 못한죄로 추궁당함, 이후 강완숙쫓겨남.
이에 시어머니와 아들 홍필주, 자신 소생 딸 홍순희를 데리고 서울 남대문 안 창동(지금의 남창동)으로 이주함. 홍필주가 아버지 곁에 머물지 않고 계모인 강완숙을 따른 것은 오로지 천주교 신앙 때문이다.
★강완숙의 세례
1794년 12.23일 주문모신부가 입국하여 서울에 도착하자 1795년 주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으며 여성 최초로 회장에 임명되어 여교우를 보살피는 일을 부여 받았다.
★사형장의 여권 신장
사형수의 옷을 벗기는 규정을 여성들에게는 쓰지 말아달라는 강완숙의 마지막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가장 먼저 형을 받음.
-강완숙(사형수에게 옷벗기는 관례가 있었으나 강완숙은 여자의 자존심을 지키게 해달라고 청하여 받아들여짐.
(처형자 중 가장 먼저 목을 베임)
★명도회
한국천주교 초기에 주문모신부에 의 세워진 평신도 교리 연구 및 전교단체. 집회 장소는 6군데(육회) 홍필주.홍익만(홍필주의 장인).김려행.현계흠.황사영의 집이었다. 그들은 매달 첨례 때마다 참석했고, 육회는 3~4, 5,6명으로 구성됨. 초대회장:정약종 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