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게시판에 가야할지, 근현대 게시판에 가야할지 고민 좀 했으나(근현대 게시판은 1900년대 이전인데, 말하고자 하는 장작림은 1800년대 중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살던 사람), 군벌 시대가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동양사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근현대 시기, 중국은 그야말로 날뛰는 천마처럼 소용돌이치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역사의 흐름을 전개 하고 있었습니다.
태평천국의 난 시절, 과거 만주를 누볐던 팔기의 군사들은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무리들이 된지 오래였습니다. 1년동안 갑옷을 입는 시기가 단지 의식적인 행사를 벌일때 뿐인 경우도 많았고, 적군이 쳐들어오면 달아나기 일쑤에 벌벌 떨며 숨어다니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군대로 싸움이 될리가 만무합니다.
청나라 군대는 이미 무능해진 조직이었습니다. 태반이 아편을 빨아제끼고 있었고, 적을 공격하라고 하면 도망을 치거나, 일부러 느릿느릿 진군해서 적이 그곳을 떠나길 기다리거나 하는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번번하게 벌어졌습니다. 태평천국군이 남경을 점령할 때까지 큰 손실을 입은 것은 두번 이었는데, 그때 맞서 싸운 적은 강충원(江忠源)의 초용(楚勇)이라는 의용군이었지 정규군이 아니었습니다.
강충원은 호남 신녕 사람으로 거인 출신인데, 흠차대신 새상아의 부탁을 받아 현지에서 의용군을 모집하고, 호남의 옛 이름인 초를 타서 초용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정규군이 참패를 하거나 싸움을 회피하며 추한 모습을 보일때, 비정규군인 초용만이 전과를 올렸습니다. 청 정부도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단련(團練)을 한번 키워보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거인에 불과한 강충원조차 강력한 초용을 조직했다. 더 높은 고위 관료가 손을 대면 더욱 강력할 군대가 만들어질 것이다. 청 정부는 그리 생각했습니다. 이에 선택된 인물이 다름아닌 증국번(曾國藩)입니다. 증국번은 명령에 따라 친구와 아우인 증국전(曾國筌)과 더불어 의논한 끝에 장사 순무 장량기와 함께 단련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단련, 이라고 말해도 본질은 쓸모 있는 군대를 만드는것. 정규군은 전혀 도움이 안되기에 완전히 새로운 부대를 만드는것이 목표였습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군대를 조직하게 됩니다.
증국번이 제기한 정규군의 결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지휘관과 병졸 사이에 인간적인 유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점을 비판했습니다. 증국번은 이 결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먼저 총사령관인 자신의 밑에 간부로 자신의 문하생들을 채용했습니다. 또한 그런 간부들도 당연히 주위에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을 기용했습니다. 여하튼 서로 속마음을 터놓은 사람들이어서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었으며, 당시 상황에선 꽤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 의용군은 호남의 다른 이름인 湘에서 이름을 따서 상군(湘軍)으로 불렸습니다. 조직이나 기관의 구성 체계가 아닌 인간적인 유대로 움직이는 부대였습니다. 그 말은, 쉽게 말하겠습니다. 상군은 청나라의 부대가 아닌 증국번의 군대라는 소리입니다.
잠시 증국번이 아버지의 상을 입게 되어 3개월간 총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조정에서는 그를 대신할 지휘관을 보냈으나, 상군은 명령을 따르지 않아 힘만 반감되었습니다. 위로는 증국번이지만, 아래도 마찬가지라 소대장급에서도 전사하거나 어떤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면 그 소대는 당장 움직임을 멈추는 일이 왕왕 벌어졌습니다. 후임 대장이 와도,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지 않으면 전투 단위로서의 힘이 훌쩍 떨어지는 것입니다.
훗날 이홍장은 이와 비슷하게 회군(淮軍)을 조직합니다. 이 부대들은 확실히 기존의 정규군에 비해서야 강력했지만, 오직 증국번의, 그리고 이홍장의 부대일 뿐입니다. 망해가는 청 왕조 따위에는 목숨을 걸고 싸운 부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내 스승, 또는 스승의 스승을 위하는 일임으로 싸울 뿐이었습니다.
바로 군벌(軍閥) 이었습니다.
이홍장은 훗날 북양대신(北洋大臣)을 겸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북양군벌이라는 이름이 쓰이게 됩니다.
원세개(Yuan Shikǎi)와 채악(蔡鍔)
중국의 근대 군벌은 증국번의 상군에서 시작하여, 이홍장의 회군이 북양군벌이 되었고, 그것을 원새개가 이어받았습니다. 증국번이든 이홍장이든 스스로 저마다 철학이 있었지만 원세개는 오직 정치괴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권모술술의 화신으로 자신의 이익을 항상 기준점으루 두고 행동했습니다. 자기 부하도 경계한 것입니다.
이 당시 북양의 삼걸로 불리던 인물로 단기서, 풍국장, 왕사진과 조곤, 노영상, 이순, 이장태 같은 북양무비학당 출신 인물들, 그리고 원세개 집안에 신세를 진 서세창과 복벽을 외친 장훈 등이 모두 그의 인맥에 있는 인물이었는데, 이 가운데 모두가 공헌할만한 원세개의 후계자는 없었습니다. 원세개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견제할만한 인물이 없게 조절한 탓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탓에 원세개 사후 중국 천하는 북양군벌 출신들의 난립으로 어지럽게 됩니다.
원세개는 곧 황제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며 그 본색을 드러냈고, 호남 출신 채학이 이에 대항했습니다. 그 유명한 양계초(梁啓超)의 시무학당에서 배우고,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서 유학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원세개가 군주제를 준비하는것을 보고, 물래 북경을 탈출하여 일본과 베트남을 걸쳐 운남으로 들어가 원의 토벌을 위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공화국을 옹호하는 군대임으로, 이것은 호국군(护国军)이라 불리었습니다.
운남, 귀주, 사천등을 호국군이 휩쓸었고, 광동과 광서가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절강, 섬서, 강서, 호남, 신강까지 그 기세가 파급되었습니다. 이윽고 원세개의 주변에서도 반대의 소리가 높아져, 마침내 그도 군주제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6월 6일, 그는 야심에 가득찬 인생을 마감합니다.
채악은 궐기 당시부터 후두결핵에 시달렸고, 혁명을 성공시킨뒤 일본에서 요양을 했지만 11월 후쿠오카에서 죽었습니다. 채악이 죽은 뒤, 운남 사천의 군대는 군벌화 했는데, 이 가운데 그 유명한 공산당의 영웅, 홍군의 아버지 주더(朱德)도 있었습니다. 훗날의 주더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시절의 그는 아편에 중독되었으며 사치스런 생활을 즐겼습니다.
원세개의 사망 후, 온갖 군벌이 활거하게 됩니다. 대총통은 여원홍이 맡았으나, 실권은 단기서가 장악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들의 뒤를 열강들이 원조하여 정세는 한층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단기서. 풍국장.
단기서의 배후에는 일본이 있었습니다. 데라우치 내각이 단기서 정권에 준 차관은 5억 엔을 넘었고, 철도, 삼림, 광산부터 인지세까지 모두가 담보로 잡혀 있었습니다. 무기도 현물로 대였으며, 재정 고문과 정치 고문, 훈련을 지도하는 장교들도 급파되었습니다.
풍국장의 뒤에는 영국과 미국이 있었습니다. 굳이 한 나라로 따지자면 영국입니다. 그가 여러 해 동안 남경, 상해 등 영국의 세력권인 장강 하류 지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신지에 따라 단기서를 안휘파(安徽派), 그리고 환계(晥系)라고 불렀고, 풍국장을 직례파(直隷派), 그리고 직계(直系)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리고 직, 환계의 대립이 심화될 무렵, 저 먼 동삼성(만주)에서는 또 다른 세력이 꿈틀거렸습니다.
만주의 패왕 장작림, 그가 세력을 떨쳤고, 다시 그의 뒤에는 일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그나 일본이나 서로를 이용해먹기 위하였을 뿐입니다. 바로 이 세력이 봉천파(奉天派), 봉계(奉系) 군벌 입니다. 그가 움직이면서 직, 환 대립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장작림이란 사람을 단적으로 설명하자면, 수호지에 나오는 호걸 비슷합니다. 뭔가 대범한 면모가 있고 호탕한 면모가 있는데, 영웅적인 풍모와는 거리가 멀고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잔혹무도한 짓도 벌일 수 있죠. 사람을 죽이건 살리건 훔치건 부수건 당연한듯이 행동하면서, 이익이 되면 누구라도 배신하고 갈아탈 수 있는 인물입니다.
장작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짤막하게 나마 알 수 있게, 관련된 일화를 몇개 보겠습니다.
1.어느날 자정 사복을 입고 혼자 어슬렁 거리며 장군부로 가던 장작림보초가 장작림을 보고 소리를 침."거기 서라!"어디서 개가 짖나 같은 심정으로 장작림은 그냥 가는데 보초는 열 받아서 총으로 겨누고"죽고 싶으냐? 서지 않으면 쏘겠다!""이놈아, 내가 장작림이다!"보초는 당연히 저놈이 구라치는 줄 알고 역정"장작림이고 나발이고 꺼져 임마! 골로 보내 버리기 전에!""허허, 젊은 친구가 기개가 제법 있구만."그래서 장군부로 가는건 포기하고 교단으로 와서 여단 참모 곽송령을 부르는데곽송령은 무슨 큰일이 있는 줄 알고 중대 병력 출동시켜서 같이 도착그런데 정작 시킨일은 보초 한명 데려오라는 일이었고보초는 뭣도 모르고 들어오다가 장작림 얼굴을 보고 상황 파악이 되서 멘붕"이 쉑히, 장작림이고 나발이라고? 나를 정문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다니!""저, 저는 중대장님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무슨 명령?""야간 보초를 설 때에는 위의 명령 없이는 누구든지 장군부 출입을 하지 못한다는 명령입니다.""음, 물론 그래야지!"그러더니 보초의 이름을 묻고(이덕표라는 이름) 명령을 내린 중대장은 곧바로 대대장 진급 시켜주고이덕표에게는 따로 2천원 주고 소위로 올려줌그리고 심지어 적당한 처자와 소개 시켜서 결혼까지 시켜주고이덕표는 그 후로 말단 보초에서 연대장까지 올라감2. 직예군의 사단장이었던 호육곤이라는 인물은 제2차 직봉 전쟁 중 장작림의 봉군에 사로 잡힘.어떻게 되나 하고 가만히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데어느날 장작림이 호육곤을 부름그런데 정작 부른 장작림은 업소 호육곤은 혼자서 바보같이 가만히 앉아있었는데느즈막히 장작림이 과피모(위의 사진과 같은 형태의 모자)를 쓰고 물 담배를 빨면서 나타남그러더니 호육곤은 쳐다도 안보고 아무말도 안하고 앉아서 담배만 계속 피워대더니갑자기 입을 염"이름.""아, 호육곤입니다.""소속.""직군이었습니다.""계급.""사단장입니다."이런식으로 몇번 묻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성질을 내면서 욕을 함"이 자식! 너는 대흘탐(길림성 요원시) 놈이잖아! 대흘탑 놈이 오패부한테 붙어 산해관을 넘어 진격하다니, 네녀석 고향은 어쩔 셈이냐? 너 이 자식, 사단장을 했다지? 내가 여기서 사단장 자리를 마련해 주마! 이 놈아, 내가 여기 가장이나 다름없는데 네깟놈들을 푸대접 하겠느냐? 가서 다시는 고향 땅 어지럽히지 말아라."그러고 포로였던 호육곤을 사단장 시켜줌3. 2차 직봉 전쟁에서 자기 사돈인 조곤을 상대로 전쟁을 치루게 된 장작림아주 예전부터의 관습에 따라 싸우기 전에 적을 비난부터 하기 위해서 장작림은 늙은 비서에게 말해서 조곤의 죄상을 폭로하는 전보를 작성하도록 함그런데 늙은 비서는 워낙 꼼꼼하게 문구를 다듬는지라 전보 문구가 작성이 늦어짐본래 공격하려던 시간은 다가오고 장작림은 계속 비서실로 와서 독촉을 하고나중에 성질까지 내면서 빨리 하라고 성화를 냄늙은 비서가 참다 참다 열받아서 붓을 내던지면서 욕함"그렇게 바쁘면 다른 사람 더러 하라고 하던가, 나는 못하겠소!"그 모습을 본 장작림은 갑자기 미안해하더니 사과함"에이, 알았소, 알았소. 천천히 쓰시구려. 내 다시는 채근하지 않겠소."4. 장작림의 셋째 부인이었던가, 아무튼 그 부인의 가까운 가족이 죄를 지었는데격노한 장작림은 사형을 명했습니다.셋째 부인의 언질도 있고 해서 부하들은 처형을 미루면서 장작림의 기분이 좋아지길 기다렸고,어느날 장작림이 크게 웃고 하면서 기분이 좋아 보이자 넌지시 용서를 구했습니다.그런데 한참 기분 좋게 있던 장작림은 갑자기 안색을 싹 바꾸면서 소리쳤죠."뭐? 이 자식. 내 말을 거역해? 네가 대신 죽고 싶으냐?"결국 부하들은 별 수 없이 그 사람을 총살했고, 그 부인은 머리 깎고 떠나버립니다.
5.
장작림이 관병에 쫓겨 도망갈 데가 없어, 한번은 배다른 어머니의 집에 숨었습니다. 그 어머니 또한 가난했습니다.
장작림은 한동안 그곳에서 두부 만드는 일이나 하면서 도왔는데, 어느날 밖에서 장작림을 잡으러 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엄동설한인데, 장이 얆은 옷만 입고 입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하나밖에 없는 나귀를 주었습니다.
"얘,나귀를 몰고 가지 그러니. 노상에서 타고 갈 수도 있고, 가다가 곤란하면 나귀를 팔아 옷도 사고, 돈이 혹 남으면 밥도 사 먹고 해라."
그 후 친아들이 도착했습니다. 친아들은 이야기를 듣고 펄쩍 뛰었습니다.
"내일 당장 어떻게 하시려구요? 나귀가 없으면 누가 콩을 깝니까?"
"에그머니나, 네가 어서 쫒아가보렴."
친아들은 빨리 달려 장작림을 따라잡았지만, 정작 모습을 보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잘 가라는 말만 하고 왔습니다. 오히려 자기 옷을 벗어 그에게 주었을 정도입니다. 어머니가 돌아온 아들에게 사정을 물어보자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나귀 타령이세요? 그 형 너무 추워 보여 내가 옷을 벗어주었습니다."
훗날 장작림이 관운이 터져 이 어머니가 생각나 사람을 보냈지만, 배다른 어머니는 몇년 전에 사망했고 혼자 남은 아들만 어렵사리 살아갔습니다. 장은 이 동생을 불러 몇달동안 먹고 마시며 지냈습니다.
동생은 자리 하나를 얻기를 원했지만, 장작림은 이는 들어줄수 없다며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네가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오거라."
동생은 화가나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뜻밖에 초가집은 기와집으로 바뀌었고 부관 한 사람이 와서 땅문서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독군께서 당신에게 주는 것입니다."
장작림에 대한 각종 이야기는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든, 혹은 출처가 불분명한 민간의 전설같은 이야기든, 하여간 많습니다. 그만큰 괴이한 모습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살펴보려는것입니다.
일화중에 나름대로 멋있는 일화도 있겠지만은, 분명히 말해둘것은 장작림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든지 서슴없이 배신할수있고, 뒤통수를 칠 수 있으며 끊임없이 권모술수를 꾸며대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상주위와는 완전히 담을 쌓았고, 권력에 대한 야심외에 개인적인 철학 따위는 전무한 사람, 오만하고 현실감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뜻이 분명하고 이상이 있는, 이전에 연재한 정성공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인물입니다.
한때 전 중국을 손아귀에 질뻔한 패왕 장작림의 일대기는, 찢어지게 가난한 대가족 집안의 일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첫댓글 아버지는 그렇다손 치고 아들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장학량이 소문난 약쟁이였다는건 알겠는데
장학량은 무지 오래 살다가 불과 몇년전에 죽었더군요.
정성공도 매우 재밌게보았습니다^^
평소 관심있던 20세기초 중국얘기를 해주시다니 열독하겠습니다^.^
오 가카! 가카!! 장두한 가카!!!
이거 다 완결되면 읽으려다가 그냥 떡밥 뭅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을꼐요. (신불해님은 글쓰시는 재주, 특히나 적절하게 분량 조절하는 건 최고신듯.. 감질맛나게 말이죠 ^^)
근데 장쩌린이 알게 모르개ㅔ(개인의 야심때문이겠지만) 은근히 독립군을 지웠했다고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