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에 가면 / 이소연
괜시리
마음이 공허한 날에는
대밭에 가서
우주의 소리를 들어본다
제 몸을 비우고 유성음으로 속내를 채운
대나무처럼
서걱서걱 우는
삶에도 연주는 필요한 것,
달빛의 숨결과
댓잎의 노래가 살고 있는 그곳에
새떼가 몰려오듯
바람이 불어와 소리를 조율하는
대숲에 가면
내 사랑의 노래
언제나 저렇게 득음할 수 있을는지
수련은 잠이 달다 / 이소연
속눈썹에 엉겨드는 잠이 깊어
물베개를 베고 꿈길에 든다
물위에 궁전을 짓고
햇살을 초대해 음악회를 여는 꿈
바람악사 한걸음에 달려와 나팔을 분다
한낮이라고
- 물웅덩이 소묘 / 이소연 -
길을 걷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 물웅덩일 지날 때가 있다
물 속에 비치는 낯익은 그림자
누가 디딘 흔적이기에
발자국 가득 눈물을 담고 있는가
깊게 패인 자리마다
낮은 음계로 연주하는 대지의 옹이,
보았는가 생채기에 박힌 꽃잎 흔적을
사람들은 애써 그 자릴 피해 가려하지만
제 속에 웅덩이 하나쯤 가지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나
그대 마음 창을 열고 들여다보면
누군가 걸어간 자국마다
둠벙 깊이만큼 물풀이 자라고
먹구름 지나간 자리에
황금새 떼지어 날아들어 하늘빛에 젖은 기억만
웃는 잇속처럼 환한 가을 한낮
복사꽃 환상
瑞河 이소연
봄이 올 때마다 뒷동산엔 연분홍 꽃물이 번졌어
과수원에 하나둘 별이 뜨더니
어느덧 동산 가득 은하수가 흘렀지
천상을 벗고 지상의 옷으로 갈아입은 꽃
어릴 적 나를 키우던 분홍꽃, 산비탈은 환하고
햇빛으로 잠들고 별빛으로 꿈꾸던 별천지였어
그린나래 꽃잎에 안겨 잉잉대는 꿀벌은 좋겠다
환희에 찬 꽃망울 부풀어 오를 때
과수원집 연홍이 뺨에도 발그레 꽃이 피었지
몇억 광년 우주의 시간이 닿은 가지마다
무지개 화음으로 절창을 연주하는 꽃구름
수채화인 듯 신들의 정원 향기롭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