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이다. 본방을 사수하는 시청률도 높고, 많은 사람들이 입과 글을 통해서 여러 방법으로 되새김질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더욱 여운이 길어지기도 한다. 이게 다 대중들의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70-80년대의 향수를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는 "세시봉" 포크음악 가수들의 재등장은 어렴풋이 잊고 있었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건드렸고, 이런 감성이 <슈퍼 스타>나 <위대한 탄생> 등이 가졌던 '검투사식' 진행포맷과 합쳐져서 <나는 가수다>의 성공을 만든 것 같다.
출연 가수진들의 면면에서 부터 시작해서 공연된 곡들, 그리고 심지어는 출연료나 개인사생활까지도 화제가 되는 다면적인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심지어는 소소한 에피소드들까지 화제가 되고 패러디화가 되어 흥미가 재확산되는 현상까지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제작진들도 이런 류의 기획이 얼마만큼 시청자들의 반향을 일으킬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까지의 성과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진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만큼 실력이 있고 가창력 있는 가수들을 섭외한 제작진의 노력과 성의가 맺은 결실이라고 본다.
하나의 세련된 세미-프로 가수를 빚어낼려는 멘토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위대한 탄생>과 이미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실력파 가수들이 나오는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대중들을 보면서, 이미 달라진 대중들의 문화적인 취향과 분절적인 감각을 읽어낼 수가 있다고 본다.
요즘에 화려한 댄스와 외모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이돌 가수들이 많이 있지만, 정작 실력이 있는 뮤지션들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대중들은 눈치채기 시작했으며, 풍부한 성량과 바이브레이션을 가진 목소리에 대한 갈급이 대중을 <나는 가수다>류의 프로그램에 이끌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방송에 나와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사기질을 태연하게 벌이는 어느 정치인의 목소리에 지쳤음이며,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지친 대중들이 좀 제대로 된 음악에서 나마 위안을 받고자 하는 현상일 것이다. 위선적인 기교를 부리는 거짓소리에 지쳐 참되고 맑은 소리를 갈망하는 그런 시린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시봉' 음악에 열광하던 대중들이 70-80년대 포크음악에 깔려 있던 은근한 저항정신은 그냥 과거에 동결시켜 놓은 채, 음악성만을 가져 와서 정신적인 유희만을 즐기고 있지 않는지 우려가 된다. 음악적인 감흥이 심장까지는 다다르지 못하고, 디지털문화에 익숙해져 잘게 부스러진 감각과 두뇌만을 잠시 위로해 주고 있지 않는지 의심이 든다. 또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검투사식' 진행포맷이 해당 가수들을 얼마나 곤혹스럽게 만드는지 대중들은 아직은 눈치를 못채고 있는것 같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는 장르의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익숙하지 않은 곡으로 편곡해서 일주일만에 자신만의 곡으로 부른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대중들은 아직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가면 그 실력있던 가수들은 점점 자신감을 잃고 소모되어 갈 것이다.
이게 다 음악적인 장르는 그리 넓지 않고 실력있는 가수들은 그리 많지 않은 한국대중 음악계의 현실이긴 하지만, 쟁쟁한 가수들 중에서도 임재범이나 박정현 같은 몇몇 실력이 있는 가수들만이 대중들의 환호속에 우뚝 서는 현주소를 일찍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문화는 아우라가 생명이다. 아우라는 상상력이다. 이렇게 잔인한 '검투사식' 포맷 아래에서 가수들의 실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하고 비교당하게 만드는 일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들이 정치의식은 "레알"식이 아닌데, 문화만 "레알"로 박치기하면 문화는 오래 견디지 못하고 해체당할 것이다. 음악인들을 비롯한 문화인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딱 반 발자욱만 뒤쳐져서 갈 필요가 있다. 아니면 대중은 의식을 "레알"로 조용히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거나. 그렇다면 기꺼이 소모품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