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태양의 이미지를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일단 서양 사람들이 하는 카드 이미지 해설을 참고해 보면, 어떤 삶의 근원으로 본다. 좋다.
( As the source of all life on earth, the Sun represents the source of life itself.)
요즘 타로 카드를 뽑고, 이야기를 써 보고 하면서 이미지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보다도, 그림을 그릴 때 어떻게 이미지를 배경으로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그림 속에 이미지 배경으로 등장하는 숱한 상징들의 나열, 어울림을 어떻게 그려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어떤 힌트를 얻는 느낌이 든다. 타로 카드에 그려져 있는 이미지들은 연관성이나 통일성은 없다. 각자 자신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이 그냥 한데 어울려 조합되어 있을 뿐이다. 서로의 연관성이 파괴된 그 자리에서, 오히려 자율성이나 자유로움도 느낄 수가 있다. 이런 자유로운 이미지의 조합 속에서 카드를 읽는 독자들이 상징의 의미를 발견하고 느끼고 해야 하는데, 재미있는 건 이 타로 카드에도 역시 어떤 서사의 힘,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하는 최초의 씨앗이 되는 언어가 있다. 제목에 붙여진 이름이다.
태양이란 이름을 걸 때, 이 이름은, 카드에 붙여진 수 많은 이미지들에게 어떤 에너지를 부여한다. 이미지들이 꿈틀거리며 무언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듯 하다. 핵폭발을 일으키기 위해 모여 있는 응축된 에너지들이 태양이란 언어를 줄 때, 비로서 몸이 풀리며 폭발을 하고 사방으로 그 이미지들이 튀어 나가는 듯도 하다. 어디로, 우주를 향해서, 마음 속 우주를 향해서....
2
그림 아래 전면에 그려져 있는 아이는 또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 아이는 물론 신성한 아이의 관점에서 보면 좋을 것이다.
머리에는 꽃의 화한을 쓰고 있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 말 등에 올라타 천진하게 놀고 있는 듯한 이 아이는 일종의 영적인 행복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본다. 그것도 좋다.
요즘 아침마다 타로 카드를 뽑고, 이 타로 상징의 의미를 찾아 이야기를 쓰고 하는 이 놀이가 매우 즐겁다. 무언가 내 내면에서 어떤 영적인 상상력이 풍요롭게 흘러다니는 듯한, 깨어나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이 작업을 통해서 다시 내 몸에 흩어져 있던 언어들이 하나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언어가 한 군데로 모여 자기들끼리 춤을 추며 무언가를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입 밖으로 내 놓고 싶어하는 듯도 하다. 그게 글쓰기가 될 것이다. 쓰고 싶을 때, 써질 때 가능하면 거기에 순응하고 응답하여 써야 할 것이다. 독자들이 읽든 안 읽든 그것은 별 상관이 없다. 일단 내 몸의 리듬을 따라가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영적인 선생님인 자기(Self)와 함께 호흡을 맞출 때 그때 존재는 내면의 영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존재는 모두가 저렇게 흰 말에 올라타 태연히 놀고 있는 아이의 상태로 몰입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는 상태, 내면과 외부가 하나로 되어 있는 존재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 저 발가벗은 아이다. 저 아이는 순수, 순결 그 자체이다. 흰말은 힘과 영적인 순수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The child playing joyfully in the foreground represents the happiness of our inner spirit when we are in tune with our truest Self. He is naked, having nothing to hide. He has all the innocence and purity of childhood.)
3
그림의 이미지를 보는 사람의 눈은 매우 날카롭기도 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느낌도 든다. 안장 없이 말을 타고 있는 아이는 말과 온전히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의식의 관계로 가져와서 결국은 완전한 소통의 상징, 즉 의식과 무의식, 잠재의식 간의 완벽한 소통을 상징한다고 까지 말한다.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어떤 그림을 그릴 때, 한 인간의 온전한 내 외면이 하나로 소통하며 사는 일차원적인 인간을 그릴 때, 저 말의 이미지, 말에 탄 아이의 이미지를 빌려오는 것도 물론 좋겠다. 모든 신화적인 상징에서 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역시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영혼의 전달자를 상징한다. 영적인 상징인 것이다. 그 영적인 상징 그 자체를 타고 있는 아이는 역시 자유롭고 온전한 한 신성한 아이라 할 수 있겠다.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 그림책을 하는 사람들은 이 신성한 아이의 이미지 상징에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겠다.
( The white horse upon which the child rides represents strength and purity of spirit. The horse is without a saddle and is controlled without the use of the hands. This is a symbol of perfect control between the conscious and subconscious.)
그런데 또한 저 아이의 상징을 재탄생의 의미로 봐도 좋겠다. 이럴 때 무언가 확 열리는 느낌도 있다. 나에게는 그렇다.
어떤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해 들어가는 그 지점에서의, 새로 태어나는 나로 보면 좋겠다. 단순한 승리의 개념을 넘어서 어떤 내 앞에 놓여진 삶 전체를 통괄하는 능숙한 사유 같은 것.
보통 꿈을 꿀 때 꿈 속에 내가 어린 아이로 나올 때가 있다. 어린 아이들이 등장하는 꿈을 꿀 때가 있는데, 이때의 어린 아이는 바로 어떤 의미에서든 지금의 국면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의지가 반영된 재탄생의 신성한 아이가 아닐까. 내면의 어린 자아, 상처입은 자아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상처입은 자아가 바로, 신성한 상처를 가진 어릴 때의 나인 것이다. 그 어릴 때의 나 속에 바로 내가 다시 태어나야만 하고, 다시 태어나는 길로 인도하는 신성한 사유, 에너지가 들어있을 것이다. 내면의 아이를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어릴 때의 내면의 아이를 갖고 산다고 한다.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문제는 내면의 아이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내면의 아이하고 대화가 불가능한 지금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나를 반갑게 맞아들이자.
( welcome to a new you.)
4
그런데 이 태양 카드에서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이가 들고 있는 깃발이다. 깃발의 이미지가 매우 흥미롭다. 붉은 이미지를 띠고 있다. 휘몰아 치는 듯하고, 무슨 깊은 냇물이 흐르는 듯도 하고, 하여튼 바람에 펄럭이며 물결치고 있다. 리듬을 타고 있다. 그냥 축 늘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뱀과 같은 역동성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아이가 들고 있는 저 깃발은 아이 몸보다도 훨씬 더 크게 그려져 있다. 그림에서 가장 대칭의 균형을 깨고 있다. 아주 강렬한 무언가 영적인 기운을 상징하는 듯도 하다. 이 상징 그림을 보고, 의식에서 잠재의식으로 흐르는 의식의 조절 장치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좋다. 저 깃발은 행동과 정신의 영적인 파동을 뜻한다고도 하는데, 이렇게 보아도 좋을 것이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 또한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곧은 빛은 행동을, 물결치는 빛은 어떤 파동을 뜻한다고, 아우라를 뜻한다고 해도 좋겠다.
( The child holds an orange banner in his left hand, showing that control has passed from the conscious to the subconscious. The orange banner represents action and vibration, and the rays of the sun represent the same thing. The straight rays are action while the wavy rays represent vibration.)
해바라기는 영적인 결실을 뜻한다고도 한다.
5
오늘 하루 나에게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어떤 영감이 찾아올 것인가. 내가 하는 기도 속에 어떤 응답이 찾아올까. 이 모든 기운들에 감사하게 응답하며 살아가야겠다.
첫댓글 선생님의 말씀 중에,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영적인 선생님인 자기(Self)와 함께 호흡을 맞출 때 그때 존재는 내면의 영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존재는 모두가 저렇게 흰 말에 올라타 태연히 놀고 있는 아이의 상태로 몰입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이 지금의 제게 큰 위안을 줍니다. 내 안에 내 과거의 어떤 힘을 주는 모습이 살아있어 내가 자생하는 힘을 잃어가거나 잃었을 때 그 어떤 모습으론가 나타나(꿈, 창작, 내 현재의 아이(자식), 자연물의 어떤 형태, 하늘의 여러 모습 등등 ) 날 일으켜 세워주는 그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러워서, 힘이 납니다. 하마터면 그 아이의 존재를 잊을 뻔 했습니다. 그 아이의
가치를 등한시하고 망각할 뻔 했습니다. 매 번 그렇지만, 자꾸만 깜박 합니다.
예, 심리학에서 내면의 아이란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내면의 아이가 갖고 있는 신성한 의미에 대해서 이 카드를 뽑고 저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