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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을 초과하지 않는 시 의식
-정양주 시집 《별을 보러 강으로 갔다》중심
<시인. 평론가> 박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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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제 푸른 나뭇잎 속으로 스며드는 꿈을 꾼다. 문학부 벤치에서 함께 등꽃
을 본 한 동무로서 이 스며듦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30년 세월 동안 교단에 선 그
가 나뭇잎이 되어 세상의 모든 흔들리는 것들에게 반짝임을 선물하고 싶어 한다.
나뭇가지들 속에서 흔들리다 시를 생각하고 눈물을 쏟으며 다시 시를 쓰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눈물 흘리며 쓴 시를 가장 좋은 시라 생각했다. 40년 만에 첫 시집
을 내는 이 ‘머저리 후배’는 눈물로 처음 쓴 시를 다시 고쳐 쓰고 싶어 한다. 진정
한 시인의 자세 아니겠는가. 눈물 속에서 쓴 사랑과 진실의 시를 다시 고쳐 쓸 때
세계에 시의 진보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시집 <해설> 부분, 곽재구 시인
문학이 위기라고 하는 시대에 문학이 지속 가능한 생명체임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시인을 만나게 된다. 누구나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문학의 위기에 대하여 고민한 바가 클 것이다. 일상에서 조차 자유로워질 수 없는 시인에게 무리수라는 것은 아예 없는 것일까. 40년 동안 시집 한 권 펴내지 않고 수행자적인 고행의 시 쓰기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장이라도 시의 위기라는 문장을 뛰어넘을 담론을 생각해보지만 그 경계를 뛰어 넘을 수 없음을 수긍한다.
시인의 몸을 숙주 삼아 기생하고 있는 시라는 관계를 해체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 생명력은 질기고 변화무쌍해서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제자리로 귀환하여 더 견고해진 것을 볼 수 있다. 시인이라는 자체가 평범하지 않아 일반인과 다른 사고와 인식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고독한 예외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시를 빼놓고 문학을 논할 수 없듯이 사람을 논하며 사람 됨됨이 즉 성품을 예외로 칠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관상에서 이목구비를 예외로 둘 수 없듯 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시 의식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변화의 흐름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문학의 변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어 비례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부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의식의 정립을 통해 시의 본래성에 충실하기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더욱 현장에서 목도한 광주 80년 5월의 고통과 이후 감행된 압제의 시대는 망연하도록 길었다. 매몰찬 체제 속에서 숙명적인 시인의 양심은 풍경소리처럼 맑았다 해도 고요만을 지향하기에는 벅찼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예측은 아주 빗나갔음을 알게 된다. 불행한 80년대 시대 상황 이후 지금에 이르러서도 실천적 행위에 앞장서는 것보다 양심적인 시인으로 남기를 자처한 것이다. 정양주 시인의 양심은 다름 아닌 시인으로서의 충실한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진중한 시 의식에서 내면화된 각성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인위적인 의식보다 개방된 시 의식으로 무위無爲에 가까운 시인의 양심은 문장화 된 침묵이며 또 다른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담론으로 봐도 타당하다. 스스로 고독의 경계를 월경한 이후에도 깊은 침묵으로 감싼 내면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고독의 늪에서 긴 세월을 보낸 뒤 자신에 대한 사유와 반성을 통해 문학을 단단하게 키워낸 저력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시집 속 <시인의 말> 부분에서 “산길을 걷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같은 길이 계절마다 눈높이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 줍니다. 불쑥 함박꽃이 머리 위에 달리고 능선 아래로 노을빛 닮은 단풍잎이 팔랑거리다 온 산이 눈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발목으로 걷다가 허리로 걷다가 때로는 이마로 걷는 길, 나에게 시를 쓰는 일은 이 산길을 걷는 걸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어디에서도 시인을 힘들게 했을 과거의 고통과 상처는 잊힌 듯 찾아볼 수 없다. 외부의 충격을 대수롭지 않게 몸으로 반동해내는 시인이야말로 대 자연의 순리 속에서 시적 사유를 부풀리지 않고 스스로 침묵에 가까운 절제를 실천해온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자의식으로 일궈낸 시에 그치지 않고, 몸으로 사유하고 감각하여 살아있는 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겸허의 아름다움에 있다. 덧붙인다면 작은 마음을 지향하되 불합리한 현실에서도 묵묵히 포용으로 감내하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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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주 시인의 시를 말하기 전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순리에 따르고자 하는 순수한 본성이 주조를 이루면서 내면화한 내공도 만만찮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의 어조에 내장된 비밀한 결의가 자연의 풍경과 일상의 소소로움으로 변주되고 이어 도달한 서정의 아름다움과 여유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면을 탐색하다보면 더 많은 시 의식의 저변을 함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내면의 시적 세계관으로 분출하는 시의 비의는 결코 경계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기에 담담하듯 인내하는 시의 바깥과 외면은 무한한 자유 의지의 확장으로 사유를 거듭 환기한다. 설령 의도적이지 않다 해도 우리는 보이는 이미지만을 읽다 보면 되레 시독詩毒에 빠질 우려가 크다. 그런 것까지 감안한다면 정양주 시인의 시를 접할 때는 어느 정도 긴장이 필요하다. 정양주 시인의 영혼으로 현현하는 시의 파편 속에는 40년을 오롯하게 버텨온 내력이 사리처럼 박혀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맞닥뜨린 현장에서 교육과 문학의 괴리는 클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시대와 문학의 틈바구니에서 대립하되 파국이 아닌 전체성으로 균형점을 찾아간다. 시적 세계로 유입된 대상에 대한 시 의식을 초과하지 않겠다는 시의 주조는 물론이거니와 리얼리즘적 시각도 보여주고 있다.
하늘이 두 뼘쯤 되는 산골짜기 집 마당에
백 촉짜리 백열등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저 집에서 다시 불빛 새어 나올 일 없습니다
장독대 항아리들 다시 빛날 날 없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을 엉덩이 없습니다
시골집 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지막 불빛입니다
-<환하면 끝입니다> 전문
고독한 시인의 눈이 바라보는 곳은 하늘 아래 두 뼘으로 가릴 수 있는 산골짜기 외딴집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암시하면서 더 이상의 말을 아끼고 있다. 보잘것없는 집과 시인의 작은 마음이 같고 세상 사람들이 너무 작은 일이라고 여기는 일에 쓰이는 마음은 안타까움이다. 세상 끝 소멸되어 가는 풍경이 시인의 마음에서 환기된다. 사라질 풍경 속 작은 불빛이 의미하는 마음은 오랜 응시를 통해 온정 깊은 시적 세계로 이어진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거대한 이념이나 구호도 아니다. 온정이라는 마음의 모닥불 같은 작은 곁을 가진 사람들끼리 가슴을 열어 연민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소소한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는 타자에 대한 소중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고통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슴에서 파랑처럼 일렁인 것이다.
시인의 고독한 양심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살아왔던 그 온기를 조금이라도 오래 기억하려는 데 있다. 그렇지만 곧 사라질 산골짜기 외딴 집은 이미 시인의 마음으로 밝힌 등불로 오래토록 환할 것이다. 두려운 심정으로 시를 대했듯이 망각의 대상에 불과한 풍경을 가슴에품은 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삶의 시다. 이미 시인의 마음이 그토록 아름답기 때문 그 어디에도 그저 소소한 일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저 집에서 다시 불빛 새어 나올 일 없습니다/ 장독대 항아리들 다시 빛날 날 없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을 엉덩이 없습니다”라는 말미는 온정적인 삶의 일상을 더는 볼수 없다는 것 까지다. 그것은 현재의 시점보다 미래에 벌어질 소멸의 대상이 더 많아질 거라는 예감을 내포하고 있다.
시적 상상력은 곧 시의 은유이거나 환유로 변주되어 사유를 확장하는 데 그러기 전 시인의 시적 위의가 가볍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런 기회마저 겸손한 시인에 의해 아예 봉쇄당하고 만다. 독자로서 그런 우려를 앞서 언급했듯이 오독誤讀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시의 이면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시인은 현재의 과거를 상상하며 그 집에서 있었음직한 사변적인 일들을 미래의 시점으로 이연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희망만으로 실현이 불가능하겠지만, 시적 세계에서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 시의 본질인 서정에 깊숙이 다가갈수록 슬픔같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것은 심상 속에 존재하는 온정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심미적 서정의 시적 심화는 보편적 인식으로 다가온 대상에게 가까이하려한 의식을 내면까지 이끌어 동일시하는 데 있다.
<경천리 가는 길>에서 이미 길도 아닌 산의 한 부분이 되어가는 누이의 봉분을 통해 시적 의미보다는 사람이 사는 세속의 일을 담담히 전해준다. “누이의 무덤에는 억새꽃 하나 흔들리지 않더라// 누이의 무덤에는 풀벌레 한 마리 울지 않더라// 누이의 무덤에는 솔이끼만 새록새록 돋아나더라// 자식 살림 엷어지니 그 집마저 미안한지// 봉분 버리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고 있더라”하는 수사적 배열에 따른 눌변訥辯이 없어도 충분한 공감을 불러온다. 정양주 시인의 시를 단순하게 읽고 말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시에 담고 있는 담담한 표정으로 수수한 시선 속 담론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선은 오랜 고독한 시간을 통해 형성된 시적 세계관을 관류하고 있어서다. 세상사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신중하게 대처해온 삶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사후 봉분에 묻혀 소멸해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라쳐도 상상력으로 발화한 시적 서사는 평이한 것이 될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냉혹한 자본주의적 경제 논리가 망자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데 있다. 죽어서까지 경제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상은 시의 서정에 보편성을 강화시켜주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인간의 생명이 비록 유한하지만 사후까지 유기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것에 대하여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이거나 그 세태를 원망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봉분이기에 인간의 영향으로 소멸의 시기만 앞당겨질 뿐이다. 애초부터 그 산에는 봉분이 없었으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무위無爲의 자연관으로 본다해서 꼭 냉정한 것으로만 봐 선 안될 일이다.
<남평>에서 최소한의 욕구는 생존 의지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눈이 수북한데 거둬 가지 않은 배추/ 꼬마 눈사람마냥 옹기종기 논에 앉아 있다”는 풍경은 지금도 시골이라면 흔히 볼 수 있다. 한 겨울 밭 고랑에 버려진 배추가 시인의 가족에게 소중한 먹거리였다는 추억을 떠올린다. 엄마를 따라 삼십 리 길 리어카를 끌고 남평 들에 왔던 기억 속 열 살배기 아이가 이제 예순을 바라보고 있다. 당시는 힘들기만 했던 곤궁했던 세월을 돌이켜보지만, 그것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풍경을 통해 투사해내는 과거는 현재적 의미로 재 통합되어 과거 슬픔을 잊게하는 오브제가 된다. “남평 들은 넓어 논둑의 쑥부쟁이도 탐지고/ 겨울에도 푸른빛이 넘실대는 곳”이었다는 압축된 유년의 추억은 지금도 건강하다. 그것은 유년기 욕망이 배제된 순수함과 그 나름 가족애의 아름다운 삶의 끈기가 된 추억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솔직한 자기 고백처럼 “찰랑이는 드들강 따라/ 누나들과 길게 이마 맞대고 싶은 곳”으로 파동이 번져 냉이처럼 매캐한 과거 가족사를 소환한다. 굳이 시라고 구분하지 않아도 시의 정서가 어디까지 품어야 하는 가를 말해주는 시다. 말하건대 시는 시인에게 숙명처럼 다가왔고 지금까지 놓지 못한 실존적인 존재 이유까지 망라하되 욕망과 무관한 따스한 온기가 된 사랑이었음을 보여준다.
<달맞이꽃>의 꽃말에서부터 정인情人을 떠올리듯 애절함이 달무리처럼 번져 나온다. 정서상 고독의 표상을 심화시켜주는 강렬한 자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다. 그것은 각인된 고독이 견고한 중심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동안의 삶이 치열해질수록 자기 고립에 의한 고독은 깊어졌고 더는 끝 닿을 데 없어 시를 의지해온 세월이 이제는 생애 끝까지 닿았다. 그토록 자기모순과 균열에 동의하지 않고 선택해온 삶처럼 달맞이꽃에 다가간 눈빛은 자유로운 의지여서 한결 투명해졌다. 독백 같은 문답은 “누가 온다고/ 밤 깊은 저수지 둑 위에 나와 섰느냐/ 키 작은 강아지풀 쪽으로 허리 굽히고/ 그믐달 떴다 지는 줄 모르고/ 그리 쫑알거리며 킥킥 웃느냐”며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부여잡듯 순간이나마 현실적인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양주 시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시적 세계관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내심 궁금하여진다. 다들 광주 80년 5월을 직, 간접으로 체험한 세대는 아픈 과거를 전유물처럼 문학으로 전사轉寫하는데 있어 역할에 대한 실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질 않는다. 그런데 유독 정양주 시인은 80년 광주 문학에서만큼은 예외자로 남길 자처한다. 그렇다고 시적 세계관을 불온한 권력과 타협하거나 수긍하는 것도 아니기에 단정 지을 어떤 술수적 기미도 없다. 정양주 시인이 직접 경험했던 1980년 오월 광주에서 외려 더 멀리 거리를 두고 순수한 문학인으로 남기를 자처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혹시 중심으로 진입하려다 구심력에서 배제될 우려를 염려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면 시집 속에서 최소한 징후를 도모하는 시가 나와 줘야한다. 그런 데 어떠한 유추를 추론해 볼 만 한 징후가 시에 없다.
길 떠난 지도 이제 오래
누이의 흰 뼈는 지금 얼마쯤 삭고 있는지
무씨만 뿌린 채 손 놓아 버린 비탈밭에
저절로 자란 무청은
단풍 든 내 눈 속에 사각이며
입안에 푸른 물 가득 채워주고
은행나무는 온통 달덩이로
삶은 가볍고도 환한 것이라고
힘겨운 산길을 토닥여 주는데
폐가의 장독대처럼
적멸寂滅에 빠져든 부도 곁
한나절 웅크리고 잠든 귀에
들리는 탁한 돌종 소리
누이가 무거운 돌부도 굴려서
울리는 종鐘소리
풍화된 돌 표면에 땀처럼 맺히는
가랑가랑한 누님의 기침 소리
-<선암사 부도밭> 전문
전남 순천시에 소재한 ‘선암사 부도밭’은 조계산 초입에 화산당 오선 부도탑과 상월대사 부도탑 외에도 부도 11기와 비석 8기를 일컬는다. 여기 말고 경내를 돌아 나와 조계산 굴목재 오르는 등산로 변에 세월을 뒤집어 쓴 채 쓸쓸히 서 있는 몇 기의 부도탑을 만나게 된다. 부도탑 안에 잠든 영혼의 내력처럼 검버섯을 둘러쓴 채 간간이 지나는 산행객에게 묻지도 않은 인생무상을 전하고 있다. 사람은 죽어 흙에 묻히지만, 스님들은 부도탑 안에 사리를 안치해 불가에서 말한 영원의 세계에 든다. 그 앞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가슴에 묻은 누이를 떠올린다. 닥친 불행으로 창백한 분노가 휩쓸고 간 뒤 상처와 그 파장은 상당했을 것이다. 하나 이미 흰 뼈만 남았을 긴 세월로도 슬픔은 풍화도지 않았다. 누나의 죽음과 함께 “무씨만 뿌린 채 손 놓아 버린 비탈밭에/ 저절로 자란 무청은/ 단풍 든 내 눈 속에 사각이며/ 입안에 푸른 물 가득 채워 주”던 시절을 회상한다. 대상화된 사물을 통해 다양하게 상상력을 유발하고 그동안 억압되었거나 유보한 채 살아온 삶 속 누이에 대한 무의식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사실 시인이나 누이나 시대의 중심으로 살아본 적이 없고, 여전히 소시민적 예외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외진 길가에 서 있는 부도밭을 지나면서 누나의 단명한 생의 아픔이 기억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풍화된 돌 표면에 땀처럼 맺히는/ 가랑가랑한 누님의 기침 소리”가 살아 생전처럼 산행 길을 함께 따라나섰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서편아짐네였다. 순수했던 <아짐이 변했다>는 데 그런 사람을 누가 변하게 한 것일까. 결국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또 불거져 사단이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정든 고향 땅에 들어서는 저수지가 문제였고 이웃하며 살던 사람들의 이기심을 건드려놓았다. 공동체라는 이웃들의 인심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고 뒤 끝은 매정했다. 당장 지아비를 이장할 장소가 화급했던 서편아짐이다. 안 되는 팔자는 끝까지 안 풀리는 것이 세상사니 참 불공평하다. 그런데 “쉰 살 넘도록 혼자인 장남, 손자 둘 맡기고 소식 띄엄띄엄 전하는 둘째/ 남편은 배부르게 밥도 못 먹던 시절에 보내고/ 서편에서 양지뜸으로 다시 광주에서 절집으로/집 한 채 온전히 차지하지 못했던 아짐/ “형님이랑 함께 나 누울 자리 하나 봐 줘” 은근히 내 손가락을 쥐”며 매달리는 서편아짐네의 간곡함에 마음만 아프다. 세상 판을 뒤집어야 가능한 것도 아닌 몇 사람 마음만 돌려준다면 쉽게 될 일이다. “즈그들은 산 것같이 살았응께 평장平葬 하잔 말을 하제”라며 팽 돌아서며 던진 말의 의미를 새겨들은 화자는 그 서편 아짐네가 독하게 변해버린 것을 알아챈다. 죽어 묻힐 묏자리와 봉분에 집착하는 아줌마의 ‘말’로 시적 변형을 가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심정적인 감정을 온전히 전사轉寫해 냈다. 시의 매력은 먹먹하게 다가오는 감동이다. 그 긴 여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야말로 시의 순 기능이다. 삶의 노선에서 위태롭도록 고독한 상황에 처해 본 사람 만 할 수 있는 발화다. 긴 세월 시업詩業이라는 굴레를 놓지 않고 성찰을 통해 소소로운 것에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자의식이야말로 우리 시대에서 유효한 가치임이 분명하다. 태초 인간의 소통은 몸으로 말을 전하며 공동체를 유지해왔을 것이다. 아직도 그 모습을 알려주듯 여태껏 몸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꼭 빛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산다는 <별을 보러 강으로 갔다>에서 “별들도 끼리끼리 모여 밤을 건너고/ 해가 뜨자 강은 별로 가득 차고/ 어깨 부축이며 함께 살아온 사람들 이름을 세다/ 지난밤 스무 살까지 다녀온 나는/ 강가에서 붉게 일렁이는 별을 본다”는 시인 자신의 환영을 본다. “혼자 놀지 마라”라는 몸 말이 귀에서 환청처럼 들릴 때쯤 그 의미는 규범에 얽매인 우리의 현실을 질타하는 경구가 된다.
병들어가는 사회를 구성한 사람들의 근원적인 성찰은 쉽지 않다. 야만에 가득한 <잠들지 못한 밤>의 목록들이 너무 많다. “바람에 몰려 떠 다니는 눈”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잔영들이 밀려온다. 별처럼 빛나야 할 어린 학생들의 애꿎은 죽음을 부른 세월호의 참상과 성적을 비관하며 투신하는 아이의 영혼처럼 거칠게 내리는 눈발이 시인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시인이자 교사인 기성세대라는 이름으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두려운 밤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하지 못한 소외도 고통이다. 소외가 궁극은 개성의 해체까지 염두에 둔다면 <봄날이 간다>에서 보여주는 명제는 참이 아니다. “고공농성 노숙투쟁 소식에 빈주먹만 쥐었다 살그머니 펴고”라는 현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의 한계를 실감토록 한다. 루카치는 물상화의 개념을 자본주의 시장 체계 내에서 모든 인간관계가 상품 관계로 대치된다고 보았다. 그때 소외는 대중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에서는 자기 내부와의 소외로 치환된다고 보았듯이 사회 일상에서 무력함으로 드러난다. 그런 모습을 투사하듯 시인은 발걸음을 옮겨 <금남로를 걸었다>에서 속내를 드러낸다. “운구차를 따라 금남로를 걸었다/영정 속 동그란 미소/함께 걷는 알 만한 얼굴들 낯익은 깃발/ 슬픔보다 부끄러움으로/ 40년을 살아온 도시가 늘 버겁다/ 금남로에서 망월동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멀다”는 술회가 슬픔처럼 자괴스럽다. 금남로는 광주 사람들에게 살아서나 죽어서나 꼭 건너야만 할 곳이다. 산자와 마찬가지로 망자의 넋은 금남로를 밟고 가야 한다. 그 망자를 위로하며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시인은 고독보다 더한 과거의 고통을 잊을 수 없어 힘들다. 우리가 사는 나라는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이시영 시인은 2009년에 발생된 용산 참사에서 <경찰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에서 “2009년 1월 20일 오전 5시 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7시 26분, 특공대원들이 망루 1단에 진입하자 농성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 격렬히 저항했고 이때 내부에서 벌건 불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으며 큰 폭발음과 함께 망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물대포로 인해 옥상 바닥엔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물이 흥건했고 그 위를 가벼운 시너가 떠다니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 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며 참혹했던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자유와 민주 의식으로 변화하거나 호전될 기미가 없다는 방증이다.
3
<하류로 가고 싶다>라는 시를 읽으며 시의 품위인 고도를 생각해본다. “속으로 흘러온 골짜기의 물을 만나// 갈수록 맑아지는 강물처럼//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로// 저렇게 내일이 맑아진다면// 산 구비마다 함께 따라온 모래들이// 넉넉한 모래밭을 이루고 강물을 품어// 남은 기억을 가끔 반짝이게 한다면” 좋겠다는 강한 의지이자 시인의 소박한 소망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실현될 수 없음을 이미 지난 역사가 보여주었다. 인간의 궁극하는 이상향이 공상적 유토피아라면 이미 요순시대 이후부터 어긋났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고독한 지경에 들어서야 볼 수 있는 별 하나가 밤하늘을 외롭게 밝히는 것을 본다. 아직도 환해지지 못해 푸른 새벽을 기다리는 별을 찾아 시를 쓰는 시인은 그래서 특별한 예외자로 남아야 한다. 시의 위의威儀 앞에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적 세계관에서 발화된 보편적 의미가 미학적으로 충분하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아름답다고 말해줘야 한다. 시는 인간에게 유용한 문장이어야 한다. 인간은 몸으로 부대끼며 궁극에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으로 사유의 지평을 열어가려는 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몸을 나누듯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등꽃>은 “자기를 밀어 올린 땅바닥이 제일 어둡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싶게”라며 대상이 시적 사유 안에서 어떻게 성찰로 다가오는 가를 잘 보여준다.
정양주 시인은 온 몸으로 전율해오는 삶에서 시적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그 깊은 응시는 우리가 가볍게 지나쳐버린 주변의 아주 작은 곳까지 향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존재를 결코 가볍게 바라보지 않고 매사 긍정으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맹감나무 가시 넝쿨을 넘나들던 작은 새 한 마리가 말라버린 죽음으로 다가왔다. 생명체가 제풀에 말라 미라가 되어버린 각박한 세상살이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인은 새의 죽음 앞에서 생명 줄을 놓기까지 짧았을 생애를 유추해본다. <마른 새를 줍다>에서 “흔적 없는 허공에/ 이 작은 날개를 몇 번이나 파닥였을까/ 얼마나 짹짹거리다 고개를/ 흙바닥에 내려 놓았을까” 라며 안타까운 마지막을 상상하며 슬픈 위로를 건넨다. 생명의 경중은 아무리 미물인 ‘새’라고 해서 가벼울 리가 없다. 그 동안 정양주 시인이 살아온 삶의 가치에서 볼 때 사람과 동일한 생명체란 것이다. 그것이 정양주 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몸말에서 나오는 시의 정념이라고 보면 무방하다. 생명의 가치는 인간과 하등 다를 바 없고, 경중으로 재단할 수 없다. <풀 뽑기>에서 “하마터면 내가 뽑힐 뻔한 순간이다”라는 각성을 통해 언제든지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다. 따라서 매 순간 시적 의미 속에 삶의 성찰로 다가가려는 정양주 시인의 모습에서 시는 인간의 욕망인 언어 체계의 상상력보다 순정한 본성을 실행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지금껏 해온 고통의 시업앓이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미래시학》2020년 봄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