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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 完踏者의 투혼에 경의를 표하며....)
1.산행 참가 산우
1)5산 완답:김종무+정혜인,양명륭
2)4산 이하:김극범,김지훈,남장현,유갑진,정인수
3)대남문 응원 산행:張씨부인,洪씨부인
(구석진 곳에서 입술을 앙다물며 완답의 의지를 다졌건만....)
2.산행 시간 기록
상계역 18:05
불암산(우회) 19:10
덕릉 고개 20:00(저녁 식사 ~20:20)
수락산 정상 21:35
동막골 23:40
회룡역 00:10(밤참및 휴식~00:35)
범골매표소 01:00
사패능선 02:00
자운봉 04:00
우이암 06:30
우이동 08:00
(우이동-백운대-산성/비봉/탕춘대 능선-구기동):포기
3.산행 落穗
어마어마한 장거리 산행에 믿는 구석도 없이 처음으로 도전하는 순간 과연 내가 이 46km 남짓의 산길을 무사히 完踏하여 구기동에 내려설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지난 2년간 가까스로나마 두 번 완답했던 佛水道三의 약식 4산 산행보다 거리와 시간이 많이 늘어난 이른바 佛水賜道三인 5산의 꼭지점을 제대로 밟는 산행이라 하는데 어림잡아도 사패산 정상과 삼각산 백운대를 제대로 오르내리는 거리와 산성주능선 거리,대남문에서 탕춘대 갈림길까지의 비봉능선 거리가 추가되었으니 지리산 당일 산행보다 더 먼 거리이고 그 만큼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은 틀림없을 터이니 피곤에 젖고 볼썽사납게 불어난 몸으로 제대로 完踏을 할 수 있을런지....
인생이 긴 승부이라는 것을 오십줄에 들어 겨우 어렴풋하게 알아채리듯이 오늘 이 긴 산길의 完踏에 느긋한 호흡과 忍耐가 필요함을 느낀다.行百里者 半於九十의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마음을 담아 발을 옮기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상계역 출발 장소에 明谷이 말끔하게 수염을 깎고 나타난다.무슨 일로 心境에 변화가 있었는지....
여섯 시 정각에 동창 선후배 50여명이 모여 완답을 다짐하는 단체기념사진을 찍고 오전에 수락-불암 2산 산행을 마친 몇몇 동기 산우들(申,劉,柳)의 격려와 배웅을 받으며 상계역을 출발하여 바로 불암산 오르는 비탈에 닿는다.
가는 날이 장날이고 시집가는 날 등창나는 격인지 발걸음의 시작부터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이 흩뿌리기 시작한다.배낭 덮개는 커녕 예상 밖의 비에 대한 대비를 전혀하지 않은 터라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짐을 느낀다.
마침 옆에서 올라가시는 6년 위 선배님과 한두 마디 5산 산행의 臨戰 소감을 나눈다.
선배님 말씀이 비도 오고하니 힘들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다라고 마음 먹으면 조금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것인데 南모의 대꾸는 끝까지 완답하겠다는 마음을 독하게 도사려먹어도 완답하기가 힘들 터인데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 곧 산길에서 튕겨져나가지 않겠느냐라는 것이었는데....결과적으로 이 선배님은 南모의 눈앞에서 사패산 정상도 올라갔다 오셨고 완답을 이루어낸 반면 南모는 비그친 우이동에서 주저앉았으니....
출발 50여 분만에 불암산 능선에 닿아 숨을 돌리며 상계동쪽 과 태능쪽의 비에 젖은 夜景을 내려다본다.저멀리 양주쪽의 불빛이 아련하다.
겨우 저녁 일곱시이건만 不夜城을 이룬 야경이 빗속에 아롱지는 모습이 꼭 한 밤중이 된 느낌이다.사실 비내리는 캄캄한 산중에서 산행의 정취를 찾는 것은 조금 그렇고 피안의 등불처럼 빛나는 야경만이 지친 발걸음의 위안이 된다.비나리는 산길에 새 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밤비에 젖은 상계동의 야경...저 멀리 가야할 삼각산의 실루엣이...)
조금 늦게 출발하여 합류한 凡川이 땀과 함께 온몸에서 김을 내뿜고 있다.나중에 알았지만 아킬레스腱에 염증이 있어 걷기가 불편하다 하면서도 열심히 걸을 태세이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바램과 달리 비가 멈추어주지 않는다.불암산 바윗길이 미끄럽다.오늘 이 산행을 위해 새등산화를 처음 신었는데 자꾸 미끄러지니 결과적으로 이것이 완답 실패에 一助를 한 것은 아닌지...
나중에 알았지만 딱딱한 비브람 밑창이 물기있는 바위에서는 미끄러지기 쉽다는 것이니 꼭 릿지화가 아니더라도 바위 표면의 미세한 틈에 착 달라붙는 듯한 粘性이 있는 등산화를 신지 못한 책임이 산길 내내 뒷따랐으니 딱한 일일 수 밖에...사람이든 등산화이든 본 바탕과 밑창이 부드러워야 하는데....쇠난간을 잡았어도 몇 번 미끄러질 듯이 휘청거리니 힘은 힘대로 들고 조금 짜증과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다행히 선두가 안전을 고려하여 삿갓봉을 우회한다 하니 조금 수월하게 불암산 정상을 넘어간다.佛岩山의 모습이 부처가 송낙(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들어 비구니들이 쓰는 모자)을 쓴 모습이라 했던가....바위와 소나무의 모습도 살필 겨를이 없다.
덕능 고개로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한다.일이 풀리지 않으려는지 랜턴의 불빛이 너무 흐려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몇 개월 동안 건전지를 바꾸지 않았으니...동창회 소식을 보고 오늘 산행에 나왔다는 甲進이 고비마다 손전등을 비추어주어 그럭저럭 덕능 고개로 내려온다.사실 甲進이 통보도 없이 이 산길에 출현한 것은 너무 뜻밖의 일인데.....
少時 적에 나에게 바둑을 가르쳐준 사람이 당시의 바둑 至尊인 甲進이었고 그 후 어언 40년 간 서로 지기 싫은 好敵手중의 한 사람으로서 手談을 즐겨오지 않았는가...오늘 한 판의 바둑을 유장하게 두듯이 이 먼길을 긴 호흡으로 밟아나가야 할 터인데....
덕능 고개에 志勳이 깜짝 선물을 거창하게 준비해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明谷이 부탁하였다(캔맥주 10개를)고도 하지만 페트병 맥주를 10 병이나 미리 시원하게 갈무리하였다가 정성으로 택시에 실어온 것인데 오십 여명이 저녁 반주 삼아 마시기에 충분할 뿐더러 짊어지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몇몇에게는 수락산 산행 내내 맥주를 양껏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저녁을 마치고 수락산 정상을 향해 계속 오르막을 오른다.눈에 익지 아니한 바윗길이 낯설고 힘이 든다.거북 바위 같이 전망 좋은 바위턱에서 쉴 때마다 기력이 부칠세라 배낭을 뒤져 간식을 먹는다.통통하게 살찐 대추 몇 알이 좋은 요기가 된다.먹는 힘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골바람 서늘하게 불어오고 안개 깃든 산중의 기온이 그리 높지는 않은지 입에서 김이 나는데 선두의 속도가 너무 빠른 느낌이어서 쳐지지 않고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생각해보니 8월 19일 대간 산행이후 첫산행인데 대열 중간에서 그럭저럭 선두를 따라 걷는다.멋진 실루엣의 철모 바위를 지나 수락산 정상에 닿아 한숨을 돌린다.
의정부쪽의 야경이 서울보다 못하지 않다.이곳에서 기차 바위 지나 봉우리 두엇 넘어 동막골로 내려서는 산길이 언제나처럼 미끄럽고 수월하지가 않다.
애를 먹이는 신발 탓을 하며 기차바위를 우회하는 험한 길을 걷고 이른바 매기의 추억봉을 오르내리려니 몸이 지쳐간다.벌써 지치면 안되는데...모르는 사이 비가 그치고 훤한 달이 구름 사이로 떠올라 산길을 비춘다.큰 바위들과 굵은 마사토 모래에 달빛이 반사되어 산길이 밝아진다.조금 걷는 기분이 나아진다.
자꾸 미끄러지는 발길에 어쩌다보니 몸상태가 좋지 않은 듯한 凡川,야간 산행이 처음이라는 甲進과 함께 제일 후미로 쳐져 동막골로 내려온다.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택시를 타고 회룡역에 닿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凡川이 젊잖게 만류를 한다.
회룡역에서 우선 랜턴의 건전지를 교환하고 이온 음료수를 한 병 보충 한 다음 뜨끈한 라면을 한 젓가락 맛있게 든다.조금 원기가 회복되는 느낌에 사패산쯤이야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새로 寅步가 합류를 하고 아킬레스건이 아프다는 凡川이 대추토마토를 통채로 건네주며 우이동에 먼저 가있겠다 한다.낮 12시쯤 대남문에 張씨부인과 洪씨부인이 맛있는 과일과 시원한 맥주를 싸들고 응원 산행을 나올 예정이니 완답을 당부하면서 새벽에 우이동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이다.백두대간 저수령에서 벌재 넘어갈 때와 비슷한 풍경인가....
범골 매표소 가는 길이 눈에 익지 않고 아스팔트길이라 南모가 우겨서 선후배들이 안보는 곳에서 택시를 탄다.범골 매표소까지 다 올라가고 싶지만 앞길에 열심히 걷는 선후배들의 모습이 헤드라이트에 비치니 양심상 더 타고 갈 수가 없다.나중에 사패산을 오르지 않고 또 택시를 타겠다는 의지 박약한 생각이 완답 실패에 직결된 것 같기도 한데...
아스팔트 오르막길부터 쳐지기 시작한다.志勳과 甲進이 열심히 잘 걷는데 졸리기만 하다.아스팔트길의 끝인 호암사 입구부터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움직이기가 싫다.이제부터는 졸음과의 싸움도 있는데 사실 이 산행 이틀 전부터 하루 네 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으니....이 또한 완답 실패의 원인이 아닌가....
몇 번이나 앞서가는 明谷을 쉬어가지고 붙러세우며 가까스로 사패능선에 닿으니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600m 떨어진 사패산 정상을 30분 정도 걸려 갔다오느냐 마느냐 갈등이 생긴다.결국 깃수별로 한 사람만 가면 된다는 엉뚱하고도 의지 박약한 의견에 동조했으니....宗山 부부가 힘을 내 사패산 정상으로 떠나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며 도봉주능선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역시 등반 대장은 아무나 못하는 것이 아닌가...
회룡역으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지루한 나무 계단길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간다.급격히 체력히 약해지며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계속 후미에 쳐지는 것을 앞에서는 明谷이 끌어주고 뒤에서는 寅步가 밀어주어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긴다.희미한 시야에 검게 다가오는 산들의 장중한 실루엣을 살필 사이도 없이 눈앞의 길만 살피며 허덕거리는 발걸음을 계속한다.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뚫어 산불 방지 초소를 지나고 포대능선 우회로를 밟아 거의 無我之境이 되어 자운봉에 닿는다.어디가 어디인지 왜 걷는지도 알 수도 없고...신선대에서 뜀바위,배꼽바위 넘어가는 우회로는 또 얼마나 꼬불탕거리며 오르내리는지....
완답을 향한 의지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깜박이고 체력은 새벽 여명에 점점 빛을 잃어가는 산아래 상계동의 불빛처럼 가물거린다.깜박이는 불빛을 살리려는 듯 凡川에게서 빨리 내려오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새벽 기도를 마친 崔보살이 격려 전화를 해오지만 이미 기운 형세를 어찌할 수 없는가.....
南모의 늦은 발걸음으로 발길이 지체되는 明谷과 寅步에게 앞서가라고 하니 보문능선 갈림길 부근에서 드디어 명실상부한 후미가 된다.후미를 보는 병우 선배와 영균 후배에게 우이동에서 4산으로 산행을 마감할 것이라 얘기를 하고 지훈,갑진과 더불어 최대한 천천히 걷기로 한다.
새벽 6시가 되니 산중의 모습이 산뜻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우이암 전망대에서 맑게 빛나기 시작하는 도봉 주능선의 암봉과 바위 구경을 실컷하고 원통사길로 접어 든다.
원통사의 시원한 물 한모금을 마실 자격이 없는 것인지 생각과 달리 원통사를 우회하는 험한 길에 들어서서 지친 다리에 더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세 사람 모두 물이 떨어졌는데....
상장능선과 점점 가까와지는 백운대를 바라보며 우이능선을 천천히 내려가 우이동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어 이미 모두가 떠난 시간....우이암에서 우이동까지 2 시간이 걸린 셈이다.우이암에서 우이동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가 그렇게 힘들 줄이야...
국밥집에 3인이 자리를 잡고 우선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국밥을 먹으며 空念佛 같지만 택시를 타고 도선사로 따라가든지 소귀천 계곡을 따라 대동문으로 올라 가든지 하다가 깨끗하게 어느덧 14 시간째의 산행을 이쯤에서 접기로 한다.志勳도 음식이 당기지 않을 정도로 지쳤고 甲進도 더 가기 어렵다 한다.
비장의 山頂용 위스키를 꺼내 한 컵씩 들이키는 마음이 시원하고도 섭섭하다.몸은 따라주지 않는데 意志만 앞세워 억지로 하고 싶은 욕심도 쓸데없는 執着인가....
바로 코앞에 백운대,인수봉,만경대가 마침 맑게 개인 아침 하늘에 빛나고 있는데...
더 준비된 몸과 마음으로 훗날을 기약하는 수 밖에...
章
2007.10.5 저녁
첫댓글 자운봉을 지나서부터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것 같군요. 더구나 우이암에서 우이동까지 1시간 거리를 1시간이나 더 알바를 했으니... 내년 봄 새벽출발 당일산행을 기약해 봅시다.
불.수가 appetizer, 사패-도봉은 main인 셈이고, 삼각은 dessert입니다. main에서 배부루면 dessert는 생략할 수도 있는데, 소생같이 main은 입에 대지도 않고 appetizer와 dessert로만 배부른 척 하고 있으니 부끄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