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의 정치상황과 우리의 과제
(2011년 2월)
차 례
국제적인 정치상황
한국의 정치상황
오늘날 당 건설의 기본원칙
당면한 정치적·조직적 과제
(1)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노동자운동에 대한 정치적 지도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혁명정당 건설 전망에 기초한 정치선동을 전면화하고, 이 속에서 정치적 통일성을 강화하자!
(2) 당 건설의 실질적 주체인 ‘계급의식을 획득한 노동자들’을 결집하기 위해, 실제 투쟁에 계급투쟁의 관점을 명확히 하는 전술적 개입을 강화하자!
(3) 전략적 주요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현장분회 건설 계획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노동자계급 속에 뿌리 내리기 위한 당의 조직적 기초를 확보해나가자!
(4) 대안 지도력을 세우는 데 효과적으로 복무하기 위해, 유동적인 정세에 개입하고 주요 노동자투쟁에 기동성 있게 결합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적 대응체계를 준비해가자!
국제적인 정치상황
1. 자본주의가 전 세계 모든 나라를 촘촘하게 엮어버린 오늘날, 모든 중요한 사건들은 항상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등장한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순식간에 세계경제위기로 번져나갔다. 지금도 재정위기 폭탄을 실은 열차가 그리스·영국·스페인·일본 등 여러 나라를 휘젓고 다니며 체제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격발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결코 남북한의 문제로 협소하게 바라볼 수 없다. 오히려 세계패권을 둘러싸고 탐색전과 신경전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대결구도 그리고 거기에 끼어들어 한 몫 챙기려는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종합적인 세력관계에 한반도 문제는 종속돼 있다.
2. 무엇보다도 대규모 반세계화투쟁의 분기점인 1999년 ‘시애틀 전투’ 이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다시 한 번 격변의 시대로, 즉 20세기 초반에 이은 또 하나의 ‘전쟁과 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소련과 동유럽체제의 해체 이후 ‘사회주의는 끝장났다’거나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등의 헛소리가 한 때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이 그런 헛소리들을 비웃고 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널리 퍼져 있지만, 현실은 그런 관념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세력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국제적인 정치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정치적·조직적 과제를 끌어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3. 2007년의 경제위기가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등 굴지의 국제 금융기업들을 무너뜨리며 파국적인 상황으로 이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선고했다. 그리고 체제를 구원할 희망을 찾기 위해 허둥대며 케인즈주의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만 정신 차리고 보면, 케인즈주의가 무기력하게 실패했다는 결과를 토대로 신자유주의가 번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못 본 척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케인즈주의도 신자유주의도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뼈저리게 경험한 셈이며, 자본가계급은 ‘틀린 답’ 말고는 내놓을 게 없는 궁색한 처지가 됐다. 핵심적인 질문은, ‘과연 탈출구는 어디에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제대로 응답하는 세력만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계급, 어떤 정당, 어떤 세력도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4. 자본가계급이 걸어온 길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그들이 한창 성장·번영하던 시기의 자유경쟁 시스템과 자유주의 정책은 스스로 독점을 만들어냈다. 19세기 말에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 즉 제국주의로 대체됐다. 제국주의란 자본주의가 성장기를 마치고 기생성과 부패를 특징으로 하는 쇠퇴기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1차 세계대전과 1929년 대공황은 그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다. 파국적 위험에 처했던 자본가계급은 간신히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대대적인 자본파괴, 그리고 뒤이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이용해 산업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재건의 기회를 가졌다. 이 시기에 그들은 케인즈주의라는 카드를 전면화하면서 지배체제의 쇄신을 시도했다. 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 대신 국유화·복지·계획경제 등의 요소가 자본주의와 결합했다. 하지만 이 또한 자본주의 쇠퇴의 근본 경향을 넘어설 수 없었으며, 오래지 않아 장기불황에 빠져든 뒤 신자유주의 카드로 대체됐다. 케인즈주의가 복지체제라는 가면을 쓰고 자본주의의 위기를 은폐하려 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그 가면을 벗어던지고 솔직하게 노동자계급에 대한 전면적인 책임전가와 공격을 통해 자본가들의 생존을 도모하려 했다. 물론 이 시도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마침내 2007년 이후의 폭발로 자본가계급의 역사적 밑천은 바닥나버렸다.
5. 밑천이 바닥났는데도 ‘장사를 접고 물러날’ 생각이 없는 지배계급은 이제 체제유지를 위해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휘두르며 발작 증세를 보인다. 최근 오바마 정부를 비롯해 여러 나라의 정부들은 가공할 만한 수준의 공적자금 투입을 감행하며 낡은 케인즈주의 지휘봉을 휘둘러보기도 했으며,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재차 강화하면서 이미 갈가리 찢긴 신자유주의 망토를 또 다시 뒤집어 써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그들은 지배계급으로서 자신의 진로를 제대로 결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는 중이다. 위기에 처한 지배계급이 무너지지 않고 생존하려면 반드시 쇄신의 능력과 혁신의 힘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런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면 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는 깨져나갈 수밖에 없다. 헤게모니를 상실한 지배계급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이란 가장 폭력적이고 반동적이며 공격적인 통치 밖에는 없을 것이다.
6. 영국을 포함한 서유럽과 미국 등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국가의 반동화, 경찰국가화가 그것을 보여준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 복무하는 그들 정부는 이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난사하고 거침없이 곤봉을 휘두른다. 테러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전화와 이메일 등에 대한 노골적인 감시를 강화하고, 검문·검색을 일상화하며, ‘국가재난 대비’라는 허울을 쓰고 군대를 동원해 폭동진압 훈련을 벌인다. 더 나아가 이 제국주의 열강들은 세계 곳곳에서 패권전쟁, 약탈전쟁을 멈추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부패와 쇠퇴 경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는 이들 나라의 자본가계급이 더욱더 강력해지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성과 권위를 상실한 채 대중을 휘어잡지 못하는 지배계급은 결코 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더욱 뻔뻔스럽고 공격적으로 변할 뿐이다. 이는 상처입고 피 흘리는 짐승이 평소보다 더욱 난폭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처입고 난폭해진 짐승을 보고 ‘강력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7. 이런 진단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자신감 넘치는 투쟁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곳곳에서 자본주의 세계화에 맞선 투쟁이 펼쳐졌다. 오랜 침체기를 거친 후 등장한 이 새로운 물결은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사상과 정치로 뒤섞여 있었다. 고전적인 맑스주의 즉 혁명적 사회주의에서 생태주의와 무정부주의,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와 공정무역을 주장하는 데 그치는 개량주의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그에 뒤이은 여러 나라의 파국적인 경제위기 이후에는, 투쟁의 성격이 좀 더 급진적이고 계급적인 성격을 띠었다. 전투적인 양상을 보기 힘들었던 서유럽과 미국에서도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투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에게 손실을 떠넘기려는 자본가들의 공세에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단호함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행동성이 고조됐다. 그리스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파업과 점거, 끔찍하게 관료화된 미국 노동조합운동 내에서 등장한 평조합원들의 직접행동, ‘우리는 계급투쟁을 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행진하는 프랑스 노동자들, 그리고 중국·인도·방글라데시에서 격렬하게 펼쳐진 수많은 파업들. 또한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튀니지·알제리·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도 노동자들의 급진적 반란이 일어났다. 이렇게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자본가계급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는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정당성과 절박함이 이들에게 자신감과 대담함을 불어넣고 있다.
8. 서유럽·미국·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이렇게 노동자투쟁이 활성화되면서, 계급투쟁의 부흥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지배계급의 지도력이 땅바닥으로 추락했고, 개량주의 세력의 지도력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자본주의 관리인 수준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위기를 해결할 진정한 지도력은 오직 노동자계급에게서 새롭게 탄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전 세계적인 투쟁 양상은 이런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게 해준다. 하지만 낙관적 전망이 자동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아래로부터 자생적인 노동자투쟁이 도처에서 펼쳐지는 것과는 달리, 스탈린주의와 개량주의에 파괴당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도력을 재건하는 사업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오랜 기간 스탈린주의적 공산당, 개량주의적 사회당과 노동당, 사회민주당 그리고 이들과 결합된 뿌리 깊은 노조관료제에 농락당해온 노동자들은 이들 정당과 노조관료들의 지도력을 더 이상 신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아직 확고하게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이들과 완전히 단절하지 못하고 있다. 대담하게 파업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번번이 노조관료들의 투쟁 중단 선언에 직면한다. 과거에 비해 개량정당과 노조관료제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들은 사력을 다해 계급투쟁을 봉쇄하는 소방관 역할을 하려고 애쓴다.
9. 새롭게 시작된 격변의 시대를 뚫고 노동자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낡은 지도력을 넘어서야만 한다. 전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자본가정치와 개량주의 정치의 대안이 될 혁명적 지도력을 재건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노동자계급은 모든 위기와 고통의 근원인 자본주의의 숨통을 끊고, 체제위기와 자본가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다. 이에 실패할 경우, 인류는 지도력의 위기라는 절박한 과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야만으로의 후퇴라는 재앙적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 지도력을 발휘할 혁명정당 건설이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과제로 대두됐다.
한국의 정치상황
10. 격변의 시대로 빨려 들어가는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흐름이 한국의 정치상황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 이후 미국 지배계급의 보호 아래 지속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흐름은, 80년대 말의 호황을 끝으로 종료됐다. 90년대 중반부터 자본가 언론들은 금속·전자 등 주력 산업을 포함해 여러 영역에서 위험스런 과잉생산이 이뤄지고 있다며 경고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자율적인 제어 능력이 없는 자본주의는 97년의 IMF 사태를 통해 자신의 무정부성과 무능력을 고백했다. 김대중을 앞세운 자본가계급의 정부는 10년만 참아달라는 호소로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의 불만을 묶어 놨다. 그러나 금반지를 모아 바치고 허리띠를 졸라맨 10년을 견딘 후,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에게 돌아온 건 더 거대한 위기였다.
11. 이는 전 세계 자본가계급의 일부인 한국의 자본가계급 역시 대단히 모순적이고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한국 지배계급의 유력한 통치수단이었던 반공주의, 지역갈등,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 따위는 노동대중을 분할 통치하는 데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97년 IMF 사태에 이어 2007년 이후 세계경제위기에 얻어맞은 노동대중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의식, 즉 먹고 사는 문제를 이 체제가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자라났다. 이 위기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자본가계급은 더 이상 지배계급으로서 통치력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바로 이 지점을 거꾸로 파고들어 이명박의 집권이 이뤄졌다. 대중의 위기감을 이용해 7·4·7 공약이나 반값 등록금 등 파격적인 거짓 약속으로 ‘기업가 출신의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세워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이명박 정부 스스로 사형대에 올라서는 것이기도 했다. 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대중의 기대감이 좌절과 적대감으로 뒤집히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12. 한반도 전쟁위기 역시 한국의 정치상황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과거에도 남북한 지배계급은 상호비방과 군사적 갈등을 일삼았다. 남북한 지배계급은 각자 자기 나라 노동자계급의 불만과 투쟁을 단속하고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사적 대결구도를 활용했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 경제위기가 미국 중심의 패권체제를 흔들고, 그 틈을 비집고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는 중국의 영향력이 미국의 패권과 충돌하면서, 남북한 지배계급의 대결정책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력권 재편을 향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갈등과 맞물려 돌아가게 됐다. 천안함 사건이 발발하자 미국은 이를 이용해 후텐마 기지 이전 논란을 잠재우고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재확립했으며, 서해상에서 한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며 중국을 향한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동북아시아에서 다소 흔들리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을 재차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이런 미국의 행보에 들러붙어 북한에 대한 강경 태도로 치닫고 있다. 이는 북한을 더욱 궁지로 내모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직접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현 상황이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의 패권다툼이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켜 우발적 충돌을 야기할 위험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이 훨씬 더 커졌다. 자본가계급은 이런 상황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만이 이 위험을 막을 수 있다.
13. 이러한 혼란과 위기는 자본가계급 자신이 불러들인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위기의 포로가 돼 있다. 현 시기의 최대 쟁점으로 지배계급 내 한쪽인 한나라당은 ‘경제와 안보’를 말하고 다른 한쪽인 민주당은 ‘복지와 평화’를 말하지만, 그것이 다루는 실체는 동일한 것이다. 그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 하고, 두 마리 모두를 잡아야만 지배계급으로서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마리 토끼를 잡을 능력도 없다. 경제위기가 낳은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남북관계가 정세를 흔들어놓고, 남북관계를 정돈하려고 할 때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미국과 중국을 널뛰게 하면서 발목을 잡는다.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대한 괴리가 그들 자본가계급의 불행, 혼란, 무기력, 좌충우돌의 원천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지배계급이 대중을 설득·포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14. 사실 이명박 정부의 지난 3년은 대중 속에서 정부에 대한 반감을 차곡차곡 키워온 과정이기도 했다. 이명박의 약속은 어느 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대운하사업 논란과 광우병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청와대 앞까지 진격하는 거대한 촛불시위를 불러냈다. 아마도 이명박은 집권하자마자 물러날 것을 요구받은 최초의 대통령일 것이다. 경제위기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해마다 물가폭등에 시달리고 있다. 수출 중심의 대자본가들을 위한 정부의 환율정책이 거꾸로 석유 등 수입 원자재가격을 상승시키고, 거기에 기업들의 상습적인 담합행위까지 결합돼 유가폭등을 비롯한 물가폭등의 고통이 고스란히 노동대중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높은 실업률 문제는 이미 만성화돼버려서, 이제는 뉴스거리도 못 된다. 정치적 부패와 비리 역시 만성적이다. 이명박이 자기 주위로 불러들인 인물들은 하나같이 부동산투기·위장전입·병역비리·세금탈루 등을 줄줄이 달고 다녔다. 검찰의 스폰서 비리, 경찰의 함바집 비리를 보며 권력집단에 대한 노동대중의 불신과 증오심과 경멸감이 극에 달했다.
15. 지난 10여 년간 경제위기 고통을 노동자계급에게 떠넘기는 주요한 장치이자, 계급투쟁을 봉쇄하며 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구조이기도 했던 비정규직제도 역시 스스로 모순에 처했다.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피해와 고통을 최대한 집중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자본가들의 이윤을 극대화했던 대자본가들-자본가정부-노조관료의 암묵적 협력 시스템이 더 이상 효력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가 된 것이다.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제도가 크게 번져나가면서, 사회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계급의 상당 부분이 극심한 생계고에 시달렸다.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더라도 임시직·계약직·하청·인턴·파견 등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한 번 일자리를 잃은 정규직이나 퇴직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매우 열악한 비정규직 처지로 내몰렸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이 등장했다. 자본가들의 이윤 극대화라는 목표와 더불어 87년 이후 형성된 정규직 중심의 기존 조직노동자운동을 포섭하기 위해 전면화된 비정규직제도가,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또 다른 대대적인 투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16.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는 비정규직 투쟁의 초창기에는 대체로 소수의 고립된 투쟁 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현대차 같은 대공장 내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전면화되고, 점차 대중적 힘을 결집한 운동으로 뻗어나갔다. 자본가들의 공격이 확대될수록 자동차·중공업·철도·통신 등 기존에 조직노동자운동이 자리 잡은 산업뿐만 아니라, 화물·건설·유통 등 기존 조직노동자운동이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산업에서도 대대적인 투쟁 물결이 일어났다. 이런 투쟁들이 거듭해서 비정규직제도를 두들겨 팼다. 그리고 이 흐름은 지난해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정 후 현대차에서 터져 나온 비정규직파업으로 또 하나의 분기점을 경과하는 중이다. 자신감 넘치는 비정규직파업에 직면한 현대차 자본가들은 우물쭈물한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자구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반대로 이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도 거대한 공장을 멈추고 자본가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냄으로써, 희망을 갈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17. 현대차 비정규직파업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을 바라보는 대중의 정서가 분명히 변화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처음에는 “경제가 어려우니 할 수 없이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해야 하지 않은가?”라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이제는 “그래도 이건 아니다. 가진 자들은 계속 배를 불리는데, 우리에게는 도대체 무슨 희망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나도 비정규직이다.”라는 공감과 불만의 분위기가 거세졌다. 같은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 내에서도 작지만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령 지난 현대차 비정규직파업 때 어떤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현장 조합원들은 지금 관리자 눈치를 보느라 겉으로 드러내며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잔업거부라도 하지 않으면 결국 비정규직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란 인식은 하고 있다”, “현재 정규직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중 5% 정도의 자녀가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는데, 앞으로 2, 3년 후면 30% 이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많이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선을 다해 비정규직파업에 힘을 보탰다. 이렇게 대중의 정서가 이동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에게 분명히 압박이 될 것이다. 비정규직제도를 통해 기존 조직노동자운동을 포섭함으로써 계급투쟁을 봉쇄하려 했던 시도가 실패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18.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제도의 전면화는 사회 전체의 양극화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 대중의 생활수준, 따라서 소비능력도 크게 떨어졌다. 국제적으로 경쟁이 격화되면서 수출 중심 전략이 계속 승승장구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내수시장이 위축되는 것은 자본가들에게도 부담이 된다. 또한 경제위기와 비정규직제도 전면화에 따른 고통은 저출산 문제로도 이어졌다. 저출산 경향의 심화로 노동자계급의 재생산이 안 된다는 건 지배계급에게 다른 성격의 문제가 된다. 물가폭등, 전세대란, 실업난 등 다른 문제들은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방식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노동자계급의 처지 악화’라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는 자본가들에게 ‘착취할 노동자계급의 규모 감소’라는 원초적인 문제를 안겨준다. 게다가 저출산 문제는 사회 전체의 고령화 문제와 맞물린다. 부양해야 할 층은 많아지는 반면 그 비용을 뜯어내는 원천인 노동자계급은 줄어든다면, 각종 연금제도의 파산 또는 개악이 불가피할 것이다. 지금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연금제도 개악을 둘러싼 폭발적인 투쟁을 지켜본 자본가들은 이것이 또 하나의 계급투쟁 촉발 요인이 된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자본가계급 중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장기적 전략을 모색하는 부위에서는 이 문제를 ‘사회의 지속가능성’ 문제로까지 간주하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 이 모든 문제점들이 집약되는 화약고가 바로 비정규직제도다. 물가폭등이나 연금개악에 맞선 대중의 전면적인 저항이 아직은 미래의 문제라면, 비정규직제도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바로 지금 조직된 투쟁의 힘으로 자본가들의 목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화약고가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한국 자본가계급에게 사활적인 문제가 됐다. 이런 배경에서 대법원은 현대차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낙인찍는 판결을 내리고, 자본가정당들 내에서도 기존의 비정규직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자본가계급 내에서 제기되는 이런 목소리는 당장의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개별 자본가들의 목소리와 강하게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자본가계급이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제반 분야에서 확실한 방향 전환을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오랜 기간 지속된 장기불황과 위기 속에서 자본가들의 지불능력이 상당히 약화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본가계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된다. 자본가계급 내에서 기존 비정규직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나 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하는 무능력한 양상은 자본가계급의 권위와 지도력을 실추시키고, 그들 내부의 결집력과 단결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전 세계 차원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본가정부 및 자본가정당들도 위기를 넘어서는 데 필수적인 지도력, 쇄신 능력, 혁신의 힘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분출된다. 앞에서 거론한 대자본가들-자본가정부-노조관료의 암묵적 협력 시스템이 깨져나간다는 것은 곧 대공장 정규직들도 더 이상 삶의 안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의 타임오프제 공격과 올해 예고되는 복수노조 도입을 활용한 공격이 그 한 단면이다. 사실 대공장 정규직들의 삶의 안정성이란, 한편으로는 비정규직들에게 고통을 떠넘긴 대가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규직들에게 꾸준히 가해졌던 크고 작은 공격들에 대해 침묵하고, 체념하고, 저항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기만적인 것이기도 했다. 2009년의 쌍용차파업은 이 기만의 장막을 갈가리 찢으며 솟아올랐다. 지난 십여 년의 후퇴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운동은 완전히 무너졌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지만, 이 투쟁은 자본가들과 노조관료들 모두를 놀라게 한 단호한 공장점거파업으로 발전했고, 경찰과 용역깡패로 둘러싸인 불리한 상황에서도 완강하게 저항하는 강인함을 보여줬다. 쌍용차의 평조합원들은 여러 개의 분임조를 만들어 조별 대표를 뽑고, 이들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전투적인 힘과 결의를 모아 올리는 모범적인 직접행동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적극적인 연대 확산 노력을 방기한 민주노총 및 금속노조 상층 지도부의 시큰둥한 태도를 완전히 무력화하지는 못했지만, 상층 지도부의 공식 지침과 무관하게 현대차 등에서 아래로부터 연대를 확대하고자 했던 소중한 시도 역시 이 투쟁의 중요한 한 단면이다. 지난해 말의 현대차 비정규직파업 때와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는 이때에도 감히 즉각적인 공권력 투입을 감행하지는 못했다. 구사대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확실하게 자본가를 위한 부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분열정책을 관철하고, 파업대열이 오랜 고립 속에 지치고 사기저하에 빠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가장 강력하게 무장한 경찰특공대를 투입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자본가들과 그들의 정부에게는 자신감이 없었다.
21.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요동치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한편으로는 대량해고 등 자본가들의 포악한 공격성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규직·비정규직을 막론하고 노동자의 결사적인 투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지배계급의 취약성과 좌충우돌을 강화한다. 그 과정에서 자본가계급은 종종 실수하기도 하고 서로 다투기도 하면서 균열이 일어난다. 이 실수와 균열을 만회하기 위해 한층 더 폭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가령 G20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고 현장에서 체포하고 사법처리하겠다며 소동을 피웠던 사건처럼, 그것은 오히려 지배계급의 처지를 더욱 궁색하게 만든다. 자기 요구의 정당성을 확신하는 노동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투쟁으로 일어선다. 노동자계급 대중의 저변을 흐르는 정서는 점점 더 지배계급의 정책에 대한 불신과 반감으로 흘러간다. 바로 이런 것들이 오늘날 혁명적 전망의 토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낙관적 전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22. 그러나 전 세계 차원의 양상과 마찬가지로, 낙관적 전망이 자동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분명히 한편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힘, 즉 노동자투쟁의 힘이 지속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산업과 지역을 넘나들며 도처에서 투쟁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이 중요한 투쟁 흐름이 노조관료들과 개량정당들에 의해 번번이 끊기고 있다. 위기가 심화될수록,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한국의 개량정당들은 서유럽 개량정당들이 걸어갔던 길, 즉 자본주의 관리인 역할을 답습하는 방향으로 더욱 빠르게 이끌려 들어간다. 노조관료들과 개량정당들은 혼연일체가 돼 노동자투쟁의 폭발적 성장을 가로막고 자본가들의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데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으려 애쓴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금호타이어·KEC·현대차에서 개량정당들은 이른바 중재단 노릇을 자임하면서 노동자투쟁의 날카로운 칼끝을 뭉개버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노조관료들의 비열한 행태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23. 개량정당과 노조관료층의 우경화가 심해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간계급의 위기감이 높아지는 것과 어느 정도 연관돼 있다. 소상인·자영업자·농민 등 중간계급들의 현 상황은 대단히 불안정하고 고통스럽다. 자본가정부의 보호 아래 이마트 같은 거대 상업자본가들이 재래시장을 쓸어버리고, 롯데마트의 ‘통 큰’ 공세에 자영업자들이 죽어난다. 구제역 파동으로 살 길이 막막해진 축산 농가는 정부의 무능력과 책임전가에 분통을 터뜨린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중간계급들이 스스로 나서 직접 큰 목소리를 낼수록 개량정당들의 중간계급 성향도 강화된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며 계급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중재단’의 형태로 노동자투쟁에 개입하며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는 개량정당들의 우경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만약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자본가계급까지도 계속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 절망에 빠진 중간계급들의 불안과 동요는 더욱 극심해질 것이고, 매우 위험한 양상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미 노조관료층을 통해 노동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데 맛을 들인 중간계급은, ‘안정을 해치는’ 계급투쟁을 제압하기 위해 노동자조직들을 분쇄하는 행동에 직접 나설 수도 있다. 이는 이미 역사에서 파시즘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던 일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전망이 지나치게 앞질러 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파시즘의 시조인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사회당 출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간계급적 본성을 지니는 개량주의 운동은 그렇게 계급투쟁의 압력 속에서 순식간에 돌변할 수 있다.
24. 노동자계급은 당연히 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역사적 역할을 다한 채 산 채로 썩어가는 계급인 자본가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두려움에 떨고 절망감에 발버둥 치며 썩은 지푸라기든 뭐든 아무거나 붙잡으려 할 뿐인 중간계급에게서 대안 지도력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도 위기를 해결할 대안은 오직 노동자계급이 새롭게 혁명적 지도력을 세울 때에만 등장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대안세력으로 떠오르지 못할 경우, 역사는 불가피하게 가장 반동적으로 뒤틀린 야만으로 치달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자본가계급이 버티고 있는 유일한 이유 역시 노동자계급이 혁명정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 지도력을 세워내고 혁명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에 전면적으로 착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분석은 바로 이 지점으로 수렴된다. 세계경제위기가 아무리 자본주의를 요동치게 만들어도, 자본가정당들이 아무리 무능력과 혼란에 휩싸여도, 혁명정당 건설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공백을 채우지 못한다면 그 모든 기회는 우리에게 진정한 기회일 수 없다. 혁명정당 건설이라는 전망과 실천을 전면화하고 성취해낼 수 있는가에 노동자계급의 운명이 달려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을 우리의 제1의 목표로 제시한다.
오늘날 당 건설의 기본원칙
25.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이라는 목표에 동의한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즉 당 건설을 향한 운동에서 바로 지금 내딛어야 할 발걸음은 어디에 놓여야 하는가? 이에 대한 우리의 의견은 당 건설을 향한 지금까지의 운동들이 무엇을 성취했고, 어떤 한계를 드러냈는지에 대한 평가로부터 나올 것이다.
26. 한국에서 진정한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출발한 초창기에, 당 건설이라는 목표는 다분히 이념적 지향 정도에 머물렀다. 지방적 운동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만큼 규모가 아주 작았다는 점, 현실의 노동자운동과의 실제 결합력이 대단히 취약했다는 점 등이 그런 한계를 강요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르러서야 한국의 사회주의 조직들은 당 건설이라는 목표를 좀 더 전면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됐다. 그 바탕에는 지난한 준비과정을 거쳐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주요 원칙들을 실천적으로 가다듬어 왔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매우 미약한 역량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제는 전국의 주요 산업도시들을 연결하며 실제 노동자운동과 긴밀하게 결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성과로 깔려 있다. 특히 2007년 시작된 발작적인 세계경제위기, 그리고 같은 시기에 한층 더 뚜렷해진 개량정당들의 후퇴와 동요는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이 한층 더 비상한 태도로 혁명정당 건설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개량주의적 당 건설 전망, 가령 민주노동당 참여 내지 그들과의 연합 시도 등과 확고하게 단절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사회주의자들이 쉽게 넘어서지 못했던 조합주의 전투파적 실천의 한계와도 정확히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혁명정당 건설을 전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전망과 결의는 전 세계적인 전환의 물결과도 조응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과제의 사활적 중요성은 명백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이런 전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실천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27. 그런데 과거의 당 건설을 향한 노력은 통상적으로 기존에 있었던 이런저런 사회주의 조직들의 통합 노력으로 이해되곤 했다. 만약 이런 시도가 철저하게 노동자투쟁의 활성화 및 그 속에서 대안 지도력으로 성장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며, 명확한 정치적 일치를 확보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과 결합해서 진행된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수 년 간의 당 건설 노력은 노동자투쟁과 현장에서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에 철저하게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 앞에서 매우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을 경험주의나 또 다른 조합주의로 치부해버리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리고 중요한 정치적 차이들 역시 진지하고 공개적인 논쟁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모호한 방식으로 덮여버렸다. 우리는 이렇게 당 건설의 명분 아래 이질적인 사회주의 조직들을 절충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기존의 개량주의·조합주의 운동을 능가할 새로운 운동을 건설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28. 한편으로는 당 건설이라는 과제를 전면적인 화두로 이끌어낸 기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성과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적절한 방식이라는 게 입증된 조직 통합 중심의 방식과 단절하면서 당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당 건설을 향한 투쟁의 주요 기반은, 노동자계급 속에서 정치적이고 혁명적이며 규율 잡힌 활동을 하는 데 부적합한 특정 경향이나 기질로 굳어버린 기존 사회주의 조직들이 아니라, 크고 작은 투쟁 속에서 계급의식을 체득해나가는 선진적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을 발굴하고 결집하는 것, 이들이 새로운 운동의 핵심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혁명정당 건설 전망을 전면화하는 데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이 점에서 주요한 노동자투쟁에 긴밀하게 결합하고 일상적인 현장정치활동을 전면화하는 것은 사활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지금까지 더딘 속도로, 하지만 꾸준히 사회주의 운동이 발전해오면서 혁명적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들은 견고하게 확립됐다. 우리 역시 일곱 개의 핵심적인 정치원칙을 추려내 결집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원칙들은 이제 극소수 사회주의자들만의 원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일상적·전면적 정치활동을 통해 한층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면모를 갖춰야 한다. 투쟁 속에서 성장하는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이해하고 체화하며 자기 실천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혁명적 사회주의는 당 건설을 실현할 수 있는 수준의 정치적 명확함을 확보한 것이다.
29. 결국 오늘날 혁명정당 건설의 전술이란 사회주의 조직들 간의 통합 시도, 그 일환으로 제기되는 사회주의 조직들의 공동 토론회나 공동 캠페인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직접행동에 나서는 투쟁 속에서 가장 철저하게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원칙을 견지하고자 하는 것, 가장 철저하게 계급투쟁 전망에 기초한 투쟁요구와 방법을 제시하는 것, 이런 우리의 노력에 공감하는 선진적인 노동자층을 통상적인 노동조합 체계와 구별되는 아래로부터의 독립적인 운동으로 대담하게 조직하는 것, 그런 운동을 통해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대열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우리의 혁명정당 건설 전술이다. 이런 시도는 일반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강화하거나 파업을 더 전투적으로 치르자는 것과는 질적으로 구별된다. 계급투쟁 전망을 분명히 하는 전술행동을 통해 결집된 ‘계급의식적 노동자들’만이 혁명정당 건설의 주체가 될 수 있다.
30. 당 건설을 향한 노력의 조직적 기초는 당연히 행정적인 지역 구분이나 선거구 단위가 아니라 주요 현장단위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개별적인 주민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 함께 노동하고 투쟁하는 현장에서 일차적으로 자본가들과의 정치적 대결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산업 현장이야말로 노동자의 대중적 힘에 기초한 계급투쟁을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통로라는 이유와 더불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갈 수 있는 일차적인 물질적 기반 역시 산업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현장분회 건설이라는 계획을 제안한다. 노동조합이나 기존 현장조직과 구별되는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현장분회는 자기 현장의 대중과 정치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현장신문을 발행함으로써 최소한의 정치적 무기를 갖게 되며, 공식 노동조합 기구에 종속되는 대신 기층 평조합원, 더 나아가 조합원 여부를 떠나 모든 현장노동자와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혁명정당의 진정한 조직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복무해야 한다.
당면한 정치적·조직적 과제
31. 지금까지 다룬 정세 인식과 원칙을 토대로, 혁명정당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정치적·조직적 과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우리의 과제는 정치·전술·조직을 아우르며 대안 지도력을 세워가기 위한 세 가지의 핵심적인 방침, 그리고 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현 시기에 빼놓지 않고 강조해야 할 한 가지의 특별 방침으로 구성된다.
(1)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노동자운동에 대한 정치적 지도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혁명정당 건설 전망에 기초한 정치선동을 전면화하고, 이 속에서 정치적 통일성을 강화하자!
32.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정치상황을 개괄하면서 우리가 끌어낸 결론은, 또 한 번의 격변의 시대, 또 한 번의 ‘전쟁과 혁명의 시대’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이 명확한 정치적 전망을 획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요동치며 비틀거리고, 임금삭감·비정규직화·대량해고의 위협이 수시로 출몰하며, 도처에서 제국주의적 약탈전쟁과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명확한 정치적 전망을 갖고 있지 않다면 노동자투쟁은 불가피하게 이런 불안정한 상황의 압력 그리고 개량주의·조합주의·관료주의의 영향력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상황은 그렇게 전개됐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중요한 투쟁들인 96~97년 총파업, 98년 현대차파업에서 2009년의 쌍용차파업과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파업 등이 모두 결국에는 조합주의 관료들의 투쟁회피 전술에 밀려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 실패의 경험은 대중 속에 패배감을 낳고, 관료적 지도부는 다시 그것을 이용해 투쟁회피 방침을 정당화하며 노동자운동을 후퇴시킨다. 그 결과 자본가계급이 한층 더 허약해지는 상황에서도 우리 계급은 아직 공세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33.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일련의 패배가 낳은 사기저하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려면 작더라도 성공적인 투쟁과 승리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크고 작은 노동자투쟁이 개량주의·조합주의·관료주의로 쪼그라들지 않도록 새로운 혁명적 대안과 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중적·일상적·전면적인 정치활동, 정치선동이 그것의 기본적인 통로이며, 전국 차원의 정치신문과 개별 사업장 차원의 현장정치신문이 그것의 기본 수단이다. 그것을 통해 위기 속에서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동자들과 함께 답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투쟁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대안의 불명확함 때문에 주저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올바른 투쟁의 요구·전술·방법을 찾아나가며,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계급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34. 주목할 만한 노동자투쟁이 시작되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조합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도 그 투쟁에 뛰어든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들의 정치를 쏟아낸다. 노동자들은 정확한 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전면적이며 공세적인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뿐만 아니라, 지금은 투쟁할 때가 아니라는 주장, 일단 파업을 철회하고 교섭으로 문제를 풀어보자는 주장, 우리도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 자본가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장, 의원들이 책임지고 해결할 테니 믿고 맡겨달라는 주장 등 다양한 기회주의적 선동에도 노출된다. 투쟁을 말아먹는 데 기여하는 온갖 기회주의적 선동을 물리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폭넓고 대중적이며 다양한 정치선동을 수행해야 한다.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개량주의나 조합주의적 전망뿐만 아니라 혁명적 전망과 대안도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실제로 개량주의자들과 조합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목소리에 대중이 귀를 기울이고 공감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대안 지도력의 첫 번째 항목, 즉 정치적 지도력을 세우기 위한 중요한 주춧돌을 놓게 되는 것이다.
35.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정치적 지도를 하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일반화된 이론이나 개념으로부터 노동자대중이 자기 투쟁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고도로 추상화된 사회주의 이론의 눈으로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일상적인 사안의 조각들로부터 정치적 의미를 끌어내, 그것들을 서로 이어붙이며 자신의 ‘사소한’ 경험과 감정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정치적 구조와 연결돼 있는지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활동 능력의 핵심이다. 대중 속에서 일상적으로 정치선동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능력을 조직적으로 키워갈 수 없으며, 실천 속에서 조직의 정치적 통일성을 확보할 수도 없다. 전국적으로 발행하는 정치신문과 사업장에서 발행하는 현장신문은 바로 그런 훈련의 도구이기도 하다. 신문 사업은 단지 글을 쓰고 배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장을 실제로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제시하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우리의 주장을 설명하며 대화하는 것이 곧 신문을 통한 정치선동의 핵심이다. 우리의 시야를 특정 사업장이나 지역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급 전체로, 전국으로, 따라서 전체 운동으로 확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조건이다. 이렇게 해서 현장의 노동자들과 ‘정치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정치활동을 전면화할 수 없을 것이며, 당 건설을 향한 투쟁의 주체로서 선진노동자들을 결집시킬 자격이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36. 이러한 관점 아래, 2011년은 다양하고 진취적인 정치선동의 시도와 실험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 전국 정치신문에 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조직하자. 독자들을 정기구독자로 끌어올리기 위해 배포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토론 모임을 개최하자. 현장신문에도 현장의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 더 많은 사업장에서 현장신문 발행을 추진하고, 현장신문 독자모임이나 후원금 등 우리 신문에 대한 지지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하자. 이런 노력들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강연회, 공개적인 정치토론회 등 다양한 사업을 병행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축적된 역량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과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단련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만 진정한 정치적 통일성을 세워낼 수 있을 것이다.
(2) 당 건설의 실질적 주체인 ‘계급의식을 획득한 노동자들’을 결집하기 위해, 실제 투쟁에 계급투쟁의 관점을 명확히 하는 전술적 개입을 강화하자!
37. 우리의 정치적 올바름은 실제 노동자투쟁 속에서 전술적 올바름으로 구체화되고, 입증돼야 한다. 대안 지도력의 두 번째 항목, 즉 전술적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만 우리는 혁명정당의 실질적인 주체들을 결집할 수 있다. 혁명정당의 주체란 누구인가? ‘계급의식을 획득한 노동자들’이다. 투쟁 속에서 발휘되는 단호함, 전투성, 헌신성 등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계급의식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때로는 전투적이지만 계급의식과는 아직 거리가 먼 경우도 있다. 물론 단호하고, 전투적이며, 헌신적인 노동자들은 당 건설을 향한 투쟁에서 우리의 소중한 동지들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이런 동지들에게 계급투쟁 전술을 제기하고 공동의 경험을 축적하며 함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38. 가령 거대한 규모의 비정규직제도를 바탕으로 유지되던 대자본가들-자본가정부-노조관료의 암묵적 협력 시스템이 깨져나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계급투쟁 전술은 자연스럽게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을 최우선의 목표로 던져준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깊이 뿌리내린 노조관료제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외면, 방관, 배신 등이 조장된다. 그 결과,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부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가망 없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비정규직만의 독자적 운동을 자신의 전망으로 삼는 경우가 나타난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정규직 부문주의 즉 조합주의에 굴종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부문주의 즉 또 하나의 조합주의에도 굴종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계급투쟁 전술은 한 사업장이나 지역의 투쟁이 고립되지 않고 노동자들 전체의 투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힘쓰는 것, 따라서 자본가계급 전체에 맞선 투쟁으로 상승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사업장, 어느 지역에서 투쟁이 벌어지든 우리는 그 모든 투쟁을 ‘우리 자신의 투쟁’으로 간주하고, 우리 주위의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하며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곧 계급투쟁 전술에 전념하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계급의식이 발전할 수 있다.
39. 그런데 정치선동의 문제를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개량주의자들과 조합주의 관료들은 이 상황에 뛰어들어 자신의 전술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한다. 공세적인 투쟁전망 대신 타협적인 양보교섭 전망을 들이민다. 점거파업 같은 노동자대중의 전투적인 직접행동 대신 노조관료들과 의원들에 의한 대리행동에 노동자들을 종속시키려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노동자의 계급적이고 전국적인 단결과 투쟁의 확산을 위해 분투하지 않는다. 항상 ‘조합원 정서’를 운운하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떼어놓으려 애쓴다. 때로는 지난해 현대차 비정규직파업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그동안 관료들이 조장했던 패배주의와 실리주의에 감염된 상당수 조합원들의 정서를 악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중단시키려고 협박하기도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단결을 우선시하는 계급투쟁 전술은 상당한 압박을 받는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내에서도 정규직에 대한 불신과 반발심이 종종 강하게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일부 사회주의자들조차 계급투쟁 전술이 아니라 부문주의 전술에 자신을 가두기도 하며, 아예 계급투쟁 전술을 포기하고 소수만의 돌출적 행동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으로써 개량주의자들 및 조합주의 관료들의 전술과 정확히 단절하는 데 실패한다.
40. 이는 계급투쟁 전술의 기본원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지배계급의 군대는 이미 결집해 있고 훈련을 마친 완성된 부대를 가지고 전술을 구사한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있는 것’만을 가지고 승부를 보려 한다. 하지만 계급투쟁의 전술은 이미 결집해 있는 부대를 움직이는 계획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의 단결된 대열을 만들어내고 훈련하고 강화함으로써 노동자부대를 완성해가는 것이다. 노동자부대가 완성되는 순간은 곧 또 다른 전술을 구사하는 시기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의한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전략적 행동으로 도약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있는 것’, ‘현재 조합원들의 상태’뿐만 아니라 우리가 건설해야 할 운동의 목적과 과제를 항상 잊지 않으려 한다. 이 점을 도외시하면, 당장 있는 부대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만 골몰한 나머지 노동조합 관료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쏟거나, 정규직은 가망이 없으니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의 힘만으로 결전을 치르겠다는 부적절한 전술로 미끄러진다. 계급투쟁이라는 전술원칙을 분명히 한다면, 노동조합 관료들 특히 이른바 좌파관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대신 아래로부터 평조합원들의 적극적이고도 대중적인 직접행동을 조직하는 데 애쓸 것이며,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 어느 한 부분의 힘만으로 결전을 치르려 하는 대신 아무리 힘들더라도 끝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행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41. 다행히 이런 관점에 동의하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록 소수이지만 분명히 생겨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계급의식을 획득한 노동자들이며, 이 방향으로 굳건하게 나아가는 노동자들이 바로 혁명정당의 실질적인 주체다. 정규직 부문주의 또는 비정규직 부문주의에 갇혀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투쟁의 주체가 될 수는 있지만, 아직 혁명정당의 주체 역할을 담당할 수는 없다. 물론 운동의 전체적인 한계, 대중의 의식이 발전하는 속도의 제약과 불균형 등의 이유 때문에,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불가피하게 부문주의 즉 조합주의의 한계를 즉각 넘어서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현재 나타나는 투쟁의 패턴과 속도, 노동자들의 감정을 헤아리면서 이들이 계급의식적 방향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세심한 공동 활동을 전개해야 하지만, 그 한계를 감추거나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단지 투쟁을 더욱 전투적으로 펼치는 것 자체를 당 건설을 향한 투쟁이라고 포장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정치적·전술적 역할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42. 노동자투쟁이 항상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에서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투쟁에 뛰어든다고 해서 우리의 전술이 항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실제 투쟁에 긴밀하게 개입하면서 전술적 지도력을 획득해야 한다는 과제를 얼마나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예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길이 아니라면 우리는 절대로 계급투쟁이라는 혁명적 전망에 공감하는 노동자들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며,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수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당 건설의 실질적 주체인 ‘계급의식을 획득한 노동자들’을 결집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2011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곳에서 이런 실천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 그럼으로써 최소한 이러한 관점과 방향에 기초한 실천의 기틀을 확립하는 데 바쳐져야 한다.
(3) 전략적 주요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현장분회 건설 계획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노동자계급 속에 뿌리 내리기 위한 당의 조직적 기초를 확보해나가자!
43.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해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올바른 전망을 제시하고, 전술적 지도력을 발휘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새로운 운동을 건설해나간다면, 남는 것은 그런 전망과 운동의 에너지를 어떤 그릇에 담을 것인가, 즉 어떤 조직적 대안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개량정당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전망과 전술에서 이질적이기 때문에 조직적 대안이 될 수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대중적으로 단결하고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초보적인 수단으로서 여전히 유용하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조합은 조합주의와 관료주의에 심각하게 감염돼 있으며, 그 결과 또 다른 형태로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고 투쟁을 억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에만 머무르는 시각은 우리의 조직적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기존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혁명정당이라는 전망을 조직적 대안으로 제기하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 성장한 노동자들이 여전히 개량정당을 지지하는 데 그치거나, 노동조합 활동에 안주하거나, 현장조직 정도를 자기 전망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질적으로 다른 대안인 혁명정당 건설을 자기 전망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설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대안 지도력의 세 번째 항목인 조직적 지도력을 세워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44. 조직적 대안을 세워내는 데서는, 우리의 한정된 역량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방적 수준을 넘어 전국의 주요 산업도시들을 포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는 중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역량은 너무나 부족하며 미약한 영향력만을 발휘할 수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역량을 곳곳에 흩어놓고 분산성을 강화시키는 것은 해로운 결과를 낳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더 넓은 범위로 우리의 힘을 확장해나가기 위해서라도, 우선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데에서 전체적인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적 주요 사업장들에서 확실하게 우리의 조직적 기초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중공업·철도 등의 대규모 현장,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핵심 부품사들, 특정 시기에 중요한 투쟁의 초점 역할을 하는 사업장들이 그런 중요성을 지니는 사업장들이다. 물론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향한 투쟁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업장, 중요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있을 수 없다. 특히 혁명정당은 노동자계급의 모든 부분으로 깊숙이 뿌리를 내려야만 당장의 투쟁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다는 원대한 과제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폭넓게 노동자계급 속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라도 핵심적인 거점, 확고한 진지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거점과 진지가 튼튼하면 할수록 더 안정적이고 활력 있게 조직적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45. 전략적 주요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조직적 기초를 확보하는 것은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현장분회 건설로 정확하게 표현돼야 한다. 현장분회를 조직적 기초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집단의 힘으로 발휘되는 규율 잡힌 행동력과, 자본가들에 맞선 투쟁에서 가장 직접적인 파괴력을 끌어낼 수 있는 근원이 바로 현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서도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현장분회를 중심으로 조직적 기초를 확보하지 못한 노동자당은 당면한 투쟁을 계급투쟁으로 이끌어가는 데서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서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당은 결코 혁명정당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46. 이미 현장분회가 있는 곳에서는 이 현장분회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첫째, 전국 정치신문 및 현장신문을 활용한 일상적인 현장정치활동을 펼침으로써 운동 전체의 관점 아래 정치적 지도력을 키워가는 것, 둘째, 크고 작은 투쟁에 결합해 계급투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관점 아래 전술적인 지도력을 키워가는 것, 셋째, 현장분회 자체로 계급의식적 노동자들이 더 많이 합류할 수 있도록 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준의 모임들을 만들고 활용함으로써 조직적 지도력을 키워가야 한다. 아직 현장분회가 없지만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업장이라면, 최대한 빠르면서도 내실 있게 현장분회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를 일정에 올리자. 이런 방식으로 2011년을 경과한 뒤에는, 비록 당장 수많은 현장분회들을 세워내지는 못하더라도, 현장분회 건설과 그것을 통한 독립적 활동이 우리의 조직적 전망의 핵심이라는 점이 누구에게나 분명해질 수 있도록 하자.
47. 이를 위한 각 지역별·사업장별 활동에 대한 점검 및 평가와 필요한 경우 재배치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은 이후에도 꾸준히, 유연하고도 열린 태도로 지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조직적인 역량의 편재와 재배치는 교란 요인을 제거하고 확실하게 고정된 요소들만을 갖고 진행하는 과학연구소의 실험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적·인적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최적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고, 조직 내의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통해 동지적 협력을 이뤄낼 수 있도록 하자.
(4) 대안 지도력을 세우는 데 효과적으로 복무하기 위해, 유동적인 정세에 개입하고 주요 노동자투쟁에 기동성 있게 결합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적 대응체계를 준비해가자!
48. 지금 자본가계급은 단순한 경기순환에 따른 위기를 넘어선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너무나 정당한 요구를 내걸고 솟구친 노동자투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오락가락한다. 때로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날카로운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강변해온 자본주의적 공정성의 잣대조차 지키지 못한다는 부담 때문에 투쟁 진압을 주저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의 현 상황이 바로 그렇다. 이런 모순적인 양상은 노동자계급에게서도 나타난다. 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낳은 높은 실업률,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증대, 임금삭감 등의 압력 때문에 사기저하에 빠지고 투쟁 호소에 거리를 두려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이유에서 분노에 찬 투쟁에 나서기도 하며, 먼저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승리를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 그래서 도저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침체된 분위기와 함께 오랫동안 억눌린 분노가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투쟁의 분위기가 공존하고, 빠르게 서로 자리를 바꾸며 유동적 정세를 만들어낸다.
49. 이 때문에 통상적인 관점에서 노동조합 투쟁을 꾸준히 열심히 하자는 방식, 의회와 선거를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제한하려는 개량주의 방식, ‘큰 투쟁이 없는 일상의 분위기’만을 바탕으로 꽤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 준비에만 집중하는 방식 등으로는 도저히 낡은 지도력을 대체할 새로운 지도력을 키워낼 수 없다. 급변하는 정세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안 지도력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아니, 대안 지도력을 세우기는커녕 개량정당과 조합주의 관료들에게 항상 주도권을 내주고 질질 끌려 다니며 투쟁이 패배한 뒤에 한탄할 뿐인 가련한 처지가 될 것이다. 이 문제의 배경은 정치선동의 과제와 전술적 개입의 과제를 다루면서 이미 드러났다. 주요한 투쟁이 터져 나올 때마다 개량정당들은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그 투쟁에 발을 들여놓고 자신의 개량주의 전망과 타협적 전술을 뿜어낸다. 조합주의 관료들 또한 절대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교활하게 머리를 굴리며 곳곳에 투쟁을 파괴할 지뢰를 심어놓는다. 오랜 투쟁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업장뿐만 아니라, 생전 처음으로 투쟁에 나선 사업장의 노동자들 또한 이처럼 다양한 전망과 전술이 홍수처럼 휘몰아치는 현실로 밀려들어간다. 거기에서 모든 정치세력이 자신의 올바름을 입증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대중의 의식 또한 집약적으로 성장하며 정치적 판단과 선택이 이루어진다. 이런 기회를 거듭 놓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도력을 세워내는 데에서 중대한 실책이 될 것이다.
50. 이 때문에 한편으로는 주요 현장에 정치활동의 기초를 뿌리내리기 위한 일관된 작업을 추진하는 것과 나란히,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장 기반 정도와 무관하게 터져 나오는 투쟁들에 기동력 있게 개입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규정한 전략적 주요 사업장들과 일치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치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자들은 격동하는 투쟁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 속에서 계급의식의 성장이나 후퇴를 겪는다. 그 발걸음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는 대안 지도력을 키울 수 없다. 그러나 그 발걸음에 함께 하지 않은 채 대안 지도력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51. 만약 우리가 일상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자본주의의 완만한 상승기, 제2인터내셔널의 독일 사회민주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노동자운동의 점진적 성장기, 또는 심각한 침체를 면치 못했던 7, 80년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이런 압력을 거의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쇠퇴하며 요동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그런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성격이 아니라 발작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 이런 시기에는 거기에 걸맞은 행동방식을 취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이런 판단은 앞 항목에서 다룬, 주요 현장에서 끈기 있게 조직적 뿌리를 내려가는 작업의 중요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활동은 서로를 보완한다. 핵심 진지 역할을 하는 사업장에서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면, 거기에서 발휘되는 구심력을 바탕으로 한층 더 기동적이고 역동적인 노동자투쟁 개입과 활동 영역 확대를 꾀할 수 있다. 또한 주요한 투쟁에 기동적으로 결합하고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또 다른 사업장을 우리의 정치적 진지로 확보하고 전선을 강화하는 성과를 추구할 수 있다. 전자에만 매몰되면 급변하는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의도와 달리 방관자적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후자에만 매몰되면 진지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뜨내기 운동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활동 영역을 현명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우리는 상황의 갑작스러운 전환에 기습당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적응 능력을 배양하게 될 것이다.
52. 문제는 우리가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조직활동 영역을 넘어 기동적으로 움직이는 데 얼마나 많은 역량을 투여할 수 있는가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해 현대차 파업을 거치며 조직 역량을 가변적으로 움직인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경험이 즉각 보편적 의의를 갖는 모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나름대로 의미 있었던 선택이었음은 분명하다. 방식은 여러 가지로 모색해볼 수 있다. 각 지역마다 상대적으로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동지들을 선정해놓을 수도 있고, 전국 차원에서 몇 명의 담당자를 선발할 수도 있다. 이 분야 역시 우리에게 축적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포함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우리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대안 지도력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이런 방향으로 우리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가 만들어진다면, 이제는 현실성 여부를 두고 논쟁하기보다는 실천의 경험 속에서 함께 해결해나가자.]
53. 이상의 네 가지 방침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결의의 표현이다. 여기에 담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 투쟁에서 승리했을 때 비로소 혁명정당 건설의 진정한 주체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며,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싸워나갈 것이다.(끝)